한글날을 맞아 아람 서정수 선생님을 추모함

등록 2007.10.09 09:12수정 2007.10.09 09:49
0
원고료로 응원
우리나라 국어학계의 별이 한줄기 커다란 빛을 남기고 하늘나라로 가셨다. 얼마 전 병상에 누워계시면서도 선생님께서는 "내가 집에 가서 할 일이 많은데…" 하시며, 항상 연구하는 학자로서의 정신을 끝까지 견지하셨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나는 지난 9월 19일 출근길에 "오늘 오전 8시에 아람 선생님께서 운명하셨다"는 비보를 들었다. 그 순간 나는 목이 메이고 가슴이 뭉클하여 출근길에 자동차를 잠시 길가에 세울 수밖에 없었다. 정신을 가다듬고 연구실로 와서는 부지런히 여기저기 연락할 곳을 찾아 아람 선생님의 운명 사실을 전화로 알렸다.


그러는 동안에도 아람 선생님의 모습이 자꾸만 눈에 밟혀, 돌아가셨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나는 한동안 마음을 진정하기 어려웠다. '선생님이 쾌차해지시면 집에서 만나 뵐 수 있지 않을까?'하는 착각까지 하면서 이곳저곳에 전화를 걸었다.

한글날 얼마 안 남겨두고 홀연히 떠나신 선생님

오늘(9일)은 작년에 한글날이 국경일로 정해진 후 두번째로 맞이하는 한글날 국경일이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소홀히 취급되어 오던 한글날이 인제 국경일로 잔치를 치르게 된 뜻 깊은 날이다. 오늘과 같이 한글날이 국가의 경사스러운 날로 격상된 데는 수많은 분들의 노고가 있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특히 아람 서정수 선생님이 '한글날 국경일 제정 범국민 추진위원회' 추진 본부장과 '한글문화 세계화 운동본부' 회장직을 맡아 열심히 몸바쳐 일해왔다는 사실을 생각하니, 한글날 국경일을 맞이하는 오늘, 우리는 불과 20일 전에 타계하신 아람 선생님의 지난날의 노고에 대한 고마움을 더욱 잊을 수가 없다.

선생님은 한동안 세인들의 관심에서 점점 잊혀 가던 한글날을 국경일로 격상시키는 일에 적극적으로 앞장서신 원로 국어학자이며 한글문화 운동의 실천가였다. 이러한 분들의 노력의 결과로 비로소 우리 겨레 문화의 얼이 담긴 훈민정음의 창제를 기리는 한글날 국경일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제부터라도 우리는 선각자들이 몸바쳐 지켜온 한겨레 문화의 생명선인 한글을 자손만대에 잘 보전하도록 가일층 노력해야 할 것이다. 정부에서 한글날을 국경일로 제정한 뜻도 그런 데에 있다고 본다. 특별히 오늘은 우리의 말과 글을 지키다가 온갖 고통을 겪고 순국하신 선각자들의 애국애족 정신을 기리는 데에도 큰 의의가 있다고 본다.

한글은 우리 겨레와 문화의 주체성을 확립한 금자탑이다. 이렇게 소중한 한글의 문화적 가치는 세계의 유명한 언어학자들도 찬탄하며 기리는 것이다. 한글날 국경일 1주년을 맞이하여, 특별히 아람 서정수 선생님에 대한 추도의 마음과 함께 더욱 깊은 추모의 정이 일어나는 것은 그동안 국어를 연구하거나 가르치며 한글 운동을 해 오신 분이라면 누구나 같은 심정일 것이다.

이제 우리는 아람 서정수 선생님을 이 세상에서 다시 만날 수가 없게 되었다. 선생님은 멀고 먼 하늘나라로 먼저 가신 한글 동지들을 만나러 떠나신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선생님이 먼 길을 떠나고 안 계신 지금, 그분의 모습이 우리들의 머리 속에 더욱 뚜렷하게 기억되는 것은 왜일까? 그 이유는 아마도 선생님이 항상 학술 발표회 때면, 해박한 지식과 논리 정연한 이론으로 좌중을 감동시켰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활기 넘치는 기지와 유머로 참석자들에게 즐거운 웃음을 듬뿍 선사하시던 선생님의 모습이 아직도 우리 눈에 선하게 그려진다.

선생의 불멸의 업적 <국어문법>

아람 선생님은 1995년에 <국어문법>을 저술한 독보적인 업적으로 인문학분야에서 '대한민국학술원상'을 수상하셨다. 그때의 아람 선생님의 환한 미소와 당당하신 위풍에 영광스럽게 빛나던 눈빛을 우리는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아람 선생님은 국어학자이면서 영어를 잘하시어 당시 유행하던 변형생성 문법 연구에도 열중하셨는데, 그 때부터 선생님의 국어문법 연구는 학계의 많은 관심을 끌게 되었다. 당신의 필생 업적인 <국어문법>은 일찍이 1960년대부터 이 방면 연구의 싹을 키워온 결정체였다.

이 책은 전통 문법과 구조주의 문법의 문제점을 동시에 극복한 국어문법학 분야의 커다란 업적으로 평가받았다. 곧 전통문법에서 변형문법 이론에 이르기까지 미진했던 부분을 충실히 보완하여 정리한 것이다.

그래서 이는 국어문법을 쉽고 상세하며 완전하게 기술한 책으로 세간에 알려져 있다. 현대 국어 문법의 전 분야를 균형 잡힌 당신의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시각으로 방대하게 체계화시킨 국어 문법학의 큰 자산이라 할 수 있다.

더욱이 이 저술은 한힌샘 주시경 선생과 외솔 최현배 선생 이후 최대 국어문법서로 평가를 받기도 했다. 이런 사실은 그 책이 출판될 당시 언론에 대서특필 되었으며, 이 공로로 대한민국 학술원상을 받는 영예를 안았으니, 이는 우리 국어학계의 자랑이기도 하다.

또한 이 책이 지금까지도 국내는 물론 나라밖에서 한글을 가르치는 분들의 필독서로 자리매김한 것을 보면, 우리는 한국인의 자긍심을 느낌과 동시에, 선생님이 타계하신 사실에 대하여 더더욱 애석한 마음이 간절하다.

한국어 정보학의 초석 다져

선생님은 또 1991년에 국어정보학회를 창설하여, 부회장으로 활동하다가, 곧 이어 창립 회장이 자리를 옮기는 바람에 잔여 임기와 2대 회장으로 취임하면서, 7년간 초창기 한국어 정보학(당시는 국어정보학)의 초석을 다지셨다. 특히 1994년에는 '우리말 정보처리 국제학술 대회(ICCKL)'를 처음 창설하여 남북 학술 교류의 물꼬를 열어 국어 정보학 분야를 개척해 온 주인공이시다.

이렇게 처음으로 물꼬를 튼 이후 13차례나 지속해 올 수 있도록 국제학술회의로 발전시킨 것이다. 이것이 분단 이후 최대 최다의 남북 학술교류라는 평가를 얻은 것도 참으로 아람 선생님의 덕이 아닐 수 없다.

그러기에 아람 서정수 선생님은 원로 국어학자로서 북한 동포 학자들과 중국, 일본, 미국 등 재외 교포 학자들로부터 우러러 존경을 받게 된 것이다. 이처럼 국외는 물론 북한의 여러 학자 전문가들과 우리가 일일이 기억하지 못하는 분들까지도 아람 선생님의 타계하심을 애도하며 추모하는 것이다.

아람 선생님은 국어문법의 학문적 이론 탐구뿐 아니라, 국어학 분야의 현실 문제를 개선하는 일에도 진력하셨다. 그뿐만 아니라 '작문의 이론과 방법', '논리적인 글쓰기', '문장력 향상의 길잡이' 등의 문장론에 관한 여러 저술을 통해, 우리 국민의 문장력 향상을 위하여 심혈을 기울이셨다. 특히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쉽고 체계적인 국어 글쓰기 보급에도 앞장서셨다.

선생님은 국제비교한국학회장, 한글학회 이사, 한국어 정보학회장, 한글 인터넷 주소 추진 총연합회장 등 그 직함에서 보듯이 한국어의 정보화와 한글문화의 세계화 활동에도 언제나 앞장서셨다.

그러기에 한국어 연구와 한글 운동을 빼고는 선생님의 생전 모습을 상상할 수가 없다. 선생님을 중심으로 한 많은 분의 노력으로 2006년에는 한글날이 국가 5대 국경일로 지정되는 쾌거를 이룩하였다. 그러나 온 국민이 경축하는 10월 9일, 한글날 국경일을 얼마 앞두고 아람 선생님이 타계하셨으니, 그저 애통하고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1998년에 한양대학교에서 정년퇴임을 하시자 잠시도 쉬지 않고, 바로 한신 오피스텔에 사무실을 차려서, <세계 속담 대사전>을 편찬하여 언론의 좋은 평가를 받으셨다. 지난 2001년에는 간암 진단을 받고 병마와 싸우면서도 쉬지 않고, 몇 년 동안 <새천년 한국 언어문화 대사전(영문판)>, <한국 문화 백과사전> <21세기 한영 대사전> 등을 편찬하면서 한국 언어문화의 세계화 운동에 힘쓰셨다.

타계하시기 직전인 최근까지도 그러한 사전의 수정 보완 작업에 심혈을 기울이다가 건강이 더욱 악화되셨다. 그래서 입원하여 투병하다가 끝내 돌아오지 못하는 먼 길로 떠나신 것이다.

간암과 싸우며 사전 편찬

또한 선생님은 '한글문화세계화운동본부'를 결성하여 외국인과 재외 교포들에게 올바른 한글 교육을 할 것과 한국의 언어문화를 올바르게 가르치는 일에 정진하였다. 선생님은 이러한 사업을 합리적으로 추진하려고, 이 분야의 여러 전문 학자들과 공동으로 연구하여 '국제 한글음성문자(IPH)'를 제정함으로써 한글문화의 세계화 운동에도 온 힘을 쏟았다.

이와 같이 아람 선생님은 보통 사람이 생각하기도 어려운 여러 가지 사업을 추진해 오셨다. 교수로 재직할 때는 물론, 정년퇴직 후 10여 년간에 걸친 각고의 노력 끝에 방대한 저술을 학계에 남기고 이 세상을 떠나셨다.

위와 같은 사전을 편찬하는 일이 한글의 세계화나 한국 언어문화의 국제화를 위해서는 필수적인 기초 작업이다. 아무도 이를 눈여겨보지 않는 우리의 현실 상황에서 외로운 고통을 겪으면서 일구어 낸 선생님의 엄청난 업적들은 참으로 선구적이며, 독보적인 업적의 성과로 평가받아야 마땅하다.

하지만 좋은 책일수록 시장성이 열악한 출판 풍토에서 좋은 성과를 보지 못하고 선생님은 먼저 하늘나라로 가셨으니, 이제 누가 그 일을 감당하랴? 그토록 끊임없이 학문적 열정을 불사르며 쉬지 않고 책의 편찬 저술에 여념이 없으시더니, 어찌하여 그렇게 황망히 떠나셨는지?

아마도 하늘나라에서 더 큰 일을 하시려고, 속세의 사업을 훌훌 떨치고 떠나신 것 같다. 때론 천진하게 웃으시면서 후학들을 다독거리고, 때론 엄한 스승처럼 후배 학자들을 지도하시던 아람 선생님 모습을 이제는 다시 뵈올 수 없어 마음이 허탈할 뿐이다.

언제 어디서나 끊임없이 연구하던 원로 국어학자요, 몸소 행동으로 실천하는 한글 운동가였던 아람 서정수 선생님은 이제 많은 과제를 우리 후학들에게 남기고, 경기도 파주 천주교 추모 공원에 영면의 터를 잡아 평화로운 안식의 세계로 돌아가셨다.

오늘 한글날 국경일을 맞이하여, 앞으로 우리 후학들은 선생님의 남기신 일을 완성할 때까지 성심껏 노력하고 전력을 기울일 것을 삼가 다짐해 본다. 촛불처럼, 햇볕처럼 아니, 횃불처럼 뜨겁게 인생을 태우시던 아람 서정수 선생님의 명복을 두 손 모아 빈다.

덧붙이는 글 | 정달영 기자는 대진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입니다.


덧붙이는 글 정달영 기자는 대진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입니다.
#서정수 #추모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천연영양제 벌꿀, 이렇게 먹으면 아무 소용 없어요
  2. 2 61세, 평생 일만 한 그가 퇴직 후 곧바로 가입한 곳
  3. 3 버스 앞자리 할머니가 뒤돌아 나에게 건넨 말
  4. 4 "김건희 여사 라인, '박영선·양정철' 검토"...특정 비서관은 누구?
  5. 5 죽어라 택시 운전해서 월 780만원... 엄청난 반전이 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