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쇼를 하면, '이기적인 부모'가 완전 공짜?

[조은미의 비틀어뷰] CF에 나오는 그들은 행복한가

등록 2007.10.10 17:39수정 2007.10.11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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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통화 핸드폰을 모빌 자리에 매달아 놓으면, 바쁜 아빠도 아기 얼굴을 볼 수 있다는 CF. ⓒ SK텔레콤



CF가 보여주는 아이는 행복할까? 부모와 자식 관계, 아이가 주인공인 CF 네 개를 묶자, 한 인간의 일생이 완성됐다. 영상통화 핸드폰과 아파트 광고가 그린 행복한 아이 모습이다.

[# 1살] 이 아기의 조기 교육, 아빠는 핸드폰에 산다

아기는 하루 종일 유아 침대에 누워있다. 온통 새하얗기만 하고 아무 것도 없다. 아기 방에 아기 혼자 내버려두고, 엄마는 보이지 않는다. 아빠도 보이지 않는다. 아기는 엄마도 아빠도 없이 아기 침대에 그 홀로 누워있다. 아기 얼굴 위에선 모빌이 빙빙 돌아간다. 핸드폰도 하나 매달려 같이 돌아간다. 과거 자린고비가 천장에 조기를 매달았다면, 현대판 아빠는 아기 방 천장에 영상통화 되는 핸드폰을 매단다. 현대판 '조기 교육'이다.

날마다 너무 바빠 집에 들어올 줄 모르는 아빠가 핸드폰으로 전화를 한다. 아빠는 핸드폰 속 아기 얼굴에 "까꿍"을 외치다, 멀뚱멀뚱 보는 아기를 남겨두고 핸드폰을 끊는다. 아빠는 안심한다. 영상통화기가 있어 다행이야. 이제 눈 뜬 아기 얼굴 못 본다고 죄책감을 느끼지 않아도 되잖아?

아기는 아빠 얼굴을 핸드폰으로만 본다. 전화가 오지 않는 대부분 시간을 아기는 환자마냥 침대에 누워 돌고 도는 모빌만 멀뚱멀뚱 쳐다보다, 가끔 걸려오는 영상통화기에서 자신이 아빠라고 말하는 아빠 얼굴을 보며 자란다. 안아주는 사람이 없어도 핸드폰만 있다면, 아기는 울지 않는다. 엄마 없어도, 아빠 없어도, 아기는 일절 '티'내지 않는다.

아빠가 아기 앞에 직접 나타나면 아기는 울음을 터뜨린다. 몇 달 만에 봐서가 아니다. 아기는 당황한다. 아기가 아는 아빠 얼굴은 저렇지 않았다. 저렇게 크지 않았다. 아기가 아는 아빠 얼굴은 핸드폰 액정보다 작았다. 그런데 그 10배 되는 큰 바위 얼굴이 '아빠'라니? 아기는 울음을 터뜨린다. 그렇게 아기는 자란다. 영상통화만 완전정복하며, 아기는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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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통화의 장점을 알려주는 CF. ⓒ SK텔레콤



[# 7살] 엄마에게 '쇼'하는 법을 배우다

그 아기가 자라서 유치원에 다닌다. 아이는 회사에 출근한 엄마한테 전화한다. 영상통화기 너머 엄마 얼굴이 보인다. 엄마 회사 사람들이 우르르 모여 있는 게 보인다. 이마에 하얀 수건을 얹고 울먹이며 아이가 말한다. "엄마, 언제 와?" 주변에서 말한다. "많이 아픈가봐" 아이 엄마는 울상을 지으며 말한다. "엄마 금방 갈게" 그 아이 얼굴을 본 엄마의 직장 상사가 말한다. "들어가." 엄마는 울상을 지으며 사무실을 뛰쳐나온다.

핸드폰을 든 엄마의 얼굴이 사무실을 빠져나오자마자 활짝 핀다. 갑자기 파닥파닥 날아다니는 팔팔한 목소리로 아이가 말한다. "엄마, 빨리 와." 엄마가 춤을 춘다. 아이는 그렇게 일찌감치 '쇼'를 배운다. 원하는 걸 얻으려면, '생쇼'를 하면 된다는 사실을 일찍이 깨닫는다.

아이 엄마는 요술쟁이가 아니라 거짓말쟁이다. 아이는 일찍이 '생쇼'의 위력을 깨우친다. 생쇼 전문가로 자란다. 그리고 학교에 가서 요긴하게 써먹는다. 아이는 차차 어떤 게 생쇼인지 아닌지 그 누구도 구별하지 못할 경지에 이른다. 그렇다고 배우가 되진 못한다. 안타깝게도 버릇 때문이다. 손에 핸드폰을 들고 치켜들지 않으면, 아이는 연기가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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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통화 핸드폰 광고 '육아문제'편. ⓒ KTF


[# 8살] 비싼 아파트로 친구 호감을 사다

아이가 자라 초등학교에 간다. 아이는 말이 별로 없다. 핸드폰 없이 직접 사람을 보고 말하는 데 익숙지 않아서일까? 아이는 같은 반 여자 아이 하나가 맘에 든다. 어느 날 용기를 내 아이는 소녀에게 다가가 말한다. "소연아, 우리 집에 갈래?" "왜?" 여자아이가 묻는다. "니네 집에 뭐 있는데?" "음. 장난감도 많고, 맛있는 것도 많다." 잠시 망설이던 여자 아이는 흔쾌히 허락한다. "그래, 가자." 아이는 기쁨에 젖는다.

아이는 소녀를 데리고 가며, 지름길을 두고 일부러 돌아간다. 거긴 징검다리도 있고, 동그랗게 이어지는 근사한 다리도 있다. "우와." 아파트 내 근사한 놀이터에 도착하자 여자 아이가 감탄하며 뛰어간다. 아이는 뿌듯하다. "엄청 좋지?" 아이가 자랑이 뚝뚝 묻어나는 목소리로 말한다. 여자 아이가 웃으며 말한다. "내일 또 와도 돼?" 아이는 생각한다. 역시 이걸로 안 통하는 아이는 없다니까. 의기 양양한 목소리로 아이가 말한다. "응" 아이네 집은? "OOO입니다" 아이 뒤로 아파트 로고가 크게 보인다.

아이는 친구 삼고 싶은 아이가 있으면, 먼저 집에 데리고 간다. 아이는 안다. "자기가 사는 집이 자신을 말한다." 엄마, 아빠가 말하지 않아도, 아이는 안다. 아이는 임대 아파트 사는 아이하곤 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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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아파트 광고. ⓒ 삼성래미안



[# 65살] '쇼'를 하면 TV가 세탁기가 모두모두 공짜

아이도 자라 할아버지가 된다. 할아버지가 된 아이는 자식에게 전화를 건다. 영상통화 전화기 너머 아들 얼굴이 보인다. 인자한 미소를 띠고 할아버지는 말한다. "우리……. 아무것도 필요 없다. 하하하하." 그리고 살짝 돌아본다. 지글지글댈 뿐 화면은 하나도 안 나오는 고장난 TV 옆에서 할머니가 말한다. "아무 것도 안 나온다." 할아버지도 거든다. "연속극은 옆집 가서 본다."

아들이 말한다. "알았어요. 아버지. 바꿔드릴게요." 할아버지는 또 아들에게 전화한다. "아무것도 필요 없다." 그 할아버지 옆에 놓인 세탁기에서 부글부글 거품이 흘러넘친다. 마구 거품이 넘친다. 할아버지는 생각한다. 쇼를 하니까, 자식 효자 만들어주고, 좀 좋아? 쇼를 하니까 모든 게 공짜네? 할아버지는 TV가 고장 나 옆 집 가서 연속극을 볼망정, 비싼 영상통화는 멈추지 않는다. 물론 영상통화 전화요금은 아들 계좌에서 빠져나간다.

요즘 CF, 이기적인 사람을 향한다?

뽀사시하고 아름다운 화면으로 포장한 이 CF들이 보여주는 이야기를 정리하면 이렇다. 영상통화란 현대 과학의 쾌거를, 갓 태어난 자식 얼굴 보러 집에 뛰어가지 않아도 되는 호재로 활용하는 이기적인 아버지, '호적만 아빠'인 아버지의 자식으로 태어난 아기는, 영상통화 전화기로 천연덕스럽게 꾀병을 연출해, 엄마가 회사 땡땡이치는 걸 돕는 어린이로 자란다.

자신의 땡땡이를 위해 어린 아들에게 일찌감치 '생쇼하는 법'을 가르치는 이기적이고 철딱서니 없는 엄마의 아들로 자란 아이는, 드디어 학교에 가자 새로운 기술을 선보인다. 맘에 드는 아이를 자기가 사는 '비싼 아파트'에 데려와 넋을 빼서 꼬시는 법을 깨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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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통화 핸드폰 광고. ⓒ KTF


그렇게 이기적인 부모 아래 자란 아이가 남을 배려하는 인간이 될 리 없고, 노력보다 '쇼'만 하며 자란 인간에게 노후 대책 같은 게 있을 리 없다. 그 아이도 늙어 노인이 되자, 아들에게 전화한다. 이번엔 아들을 대상으로 TV를 사 내놔라, 세탁기를 사 내놔라, '쇼'를 한다. 아니면 회사에서 미팅중인 자식에게 영상통화로 전화 걸어, 머리엔 아픈 환자용 흰 수건 얹은 채 지글대는 TV를 떨리는 손으로 가리키며 눈물을 훔치지 않을까?

이 CF들이 보여주고 말해주는 이 제품의 장점은 이거다. 이 영상통화기를 쓰면, 하루 5분도 아기 얼굴 못 보는 아빠도 죄책감 느끼지 않아도 된다. 아이가 '영상 쇼'만 잘 해주면, 엄마는 회사에서 완벽한 땡땡이를 칠 수 있다. 이 아파트에 살면, 당신 아이는 자랑스럽게 친구를 집에 데려올 것이다. 아파트 레벨이 당신 아이 레벨을 결정한다. 이 영상통화기를 쓰면, 당신은 구차하게 아들에게 "TV 사달라"고 말하지 않아도 된다. 시침 뚝 떼고 손 벌릴 수 있다.

과거 이 회사 CF들은 "사람을 향한다"느니,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차이는 인정해도 차별엔 도전한다" 고 노래했다. 그게 '그 회사적인 생각' 이라고 했다. 그리고 아름다웠다.

하지만 최근 이 CF들이 그리는 아이 생활은 끔찍하다. 마치 "이기적인 사람을 향한다"며, "자식 사랑은 쇼에 불과하다"고 노래하는 것 같다. 이러니 애가 애답지 않다. 지금 이런 부모가 되란 건가? 쇼가 따로 없다.
#CF #광고 #영상통화 완전정복 #쇼 #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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