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병연장, 여진족의 경험을 배우자

등록 2007.10.29 08:22수정 2007.10.29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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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실록>에 따르면, 임진왜란 초기인 선조 25년(1592년) 9월 17일에 조선 조정은 명나라 병부(兵部)가 요동도사(遼東都事)를 통해 발송한 1통의 자문(咨文)을 전달받았다. 여기서 자문이란 ‘동급 부서’ 혹은 ‘직무상 관계 없는 부서’ 간에 교환되는 공문서를 말한다.

명나라 측이 보낸 자문의 내용은 이런 것이었다. 최근 명나라를 방문한 건주여진(여진족)의 사신들이 “우리 누르하치 도독 휘하에 마병 3~4만 명과 보병 4~5만 명이 있으니, 우리 군대가 조선을 도와 왜군을 물리쳤으면 좋겠다”고 제의했다는 것이다.

이 자문에서는 여진족(뒷날 만주족으로 개칭)이 그런 제의를 한 사실을 소개하면서, “저들의 속사정은 헤아릴 수 없고 속마음과 말을 믿기 어렵다”며 여진족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드러냈다. 이에 대한 조선측의 자문 역시 동일한 내용이었다. 여진족은 믿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처럼 임란 초기에 여진족의 파병제의는 조선과 명나라 양측에 의해 거절되었다. 여진족의 진의를 헤아릴 수 없었던 조·명 양국으로서는 ‘고맙지만 사양하겠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동아시아 국제대전에 참여하겠다던 여진족의 제의는 결국 무산되었지만, 이것은 결과적으로 여진족에게 화(禍)가 아닌 복(福)이 되어 돌아왔다.

당시 여진족의 입장에서는 나라를 업데이트시킬 수 있는 카드가 2개였다. 하나는 동아시아 국제대전인 임진왜란에 참여하여 전승국 대열에 낌으로써 여진족의 국제적 입지를 강화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조·명·일 3국이 뒤엉켜 전쟁을 벌이는 동안에 조용히 국력을 증대시키는 것이었다.

여진족은 처음에는 앞의 것을 선택했으나 조·명 양국이 거절했다. 결국 여진족은 뒤의 카드를 선택했고 그것이 결국 여진족의 번영을 가져왔다. 조·명 양국이 남쪽의 일본과 싸우는 데에 정신이 없는 틈을 타서 누르하치는 통일작업에 박차를 가하는 한편, 식량과 농기구를 구입·비축하는 등의 방법으로 훗날을 위한 준비작업을 조용히 진행했다.

남의 전쟁에 개입하지 않고 조용히 국력을 증대한 결과, 여진족은 임란 이후 그 진가를 발휘할 수 있게 되었다. 전후에 조·명·일 3국이 모두 지친 틈을 타서, 여진족은 그동안의 준비를 바탕으로 조·명 양국에 대한 공세를 강화하였다.


그 결과가 바로 1637년 병자호란 승리와 1644년 입관(入關, 중원 정복) 달성이었다. 동아시아에서 변방 민족이 산해관(山海關)을 넘는 것 즉 입관하는 것은 중원의 새로운 패자로 등극함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참고로, 국사편찬위 발행 고등학교 <국사>에는 병자호란이 1636년에 발발했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9월 19일자 기사 ‘병자호란은 1636년이 아니라 1637년’에서 밝힌 바와 같이 병자호란의 실제 발생연도는 1637년이다.

이처럼 동아시아 동북방의 여진족은 ‘남의 전쟁’인 임진왜란에 휘말리지 않고 그 사이에 조용히 국력을 쌓은 결과, 1644년에 중원 대륙을 정복하고 최강국이 될 수 있었다. 아편전쟁(1840년) 이전만 해도 동아시아 최강국이 곧 세계 최강(예컨대, 당나라·몽골·명나라·청나라 등)이었으므로, 1644년 이후의 청나라 여진족은 당시로서는 세계 최강의 나라를 건설한 셈이다.

조선과 명나라로부터 수백 년간 멸시를 받고 살던 여진족이 세계 최강의 청나라를 건설할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는 바로 임진왜란이었고, 이 임진왜란 7년 동안 조용히 실력을 축적한 것이 성공의 원동력이 되었다. 

이러한 여진족의 성공 경험담은 오늘날의 한국에게도 좋은 참고자료가 되어야 할 것이다. 현재 한국은 여러 가지 면에서 ‘할 일’이 많은 나라다. 경제적으로는 양극화를 해소하고 국제경쟁력을 키워야 하고, 민족적으로는 통일을 성취해야만 한다.

인적·물질적 자원이 제한된 한국이 위와 같은 과제들을 해결하려면 가급적 모든 역량을 한 군데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마치 수험생이 그러하듯, 한국은 ‘공부’ 집중을 위해 주변의 ‘경조사’에는 가급적 눈과 귀를 닫을 필요가 있다.

그런데 남의 전쟁에 휘말려들어 이라크에 군대를 파견한 데에 이어 이제 그 파병을 더 연장하려 하고 있으니, 한국은 대체 자신의 문제에 대해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나라일까?

미국이 무서워서 어쩔 수 없다는 것은 결국 핑계에 불과하다. 이 세상에 가장 무서운 것은 자기 자신이어야 한다. 자기 자신을 망치고 자신의 문제를 방치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두려운 형벌일 것이다. 미국을 돕기 위해 자신을 망치는 길로 가고 있으니, 이것보다 더 무서운 일이 대체 무엇일까?

국민이 잘못된 길을 가려 하면 지도자와 정부가 이를 뜯어말리는 것이 원칙이다. 그런데 지금 한국에서는 국민이 올바른 길을 가려 하는데도 지도자와 정부가 도리어 그 반대의 길로 가려 하고 있다.

미국인들의 세금이 아닌 한국인들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한국 정부가 미국의 눈치만 보고 있으니, 대체 이를 어찌 이해해야 할까? 그리고 ‘석양에 기우는 해’인 미국을 도와준다 해서 그것이 한민족에게 장기적으로 이익이 된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지금 미국을 도와주면, 단기적으로는 미국의 비난을 좀 피하고 국제무역상의 불이익을 좀 피할 수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한국의 과제를 해결하는 데에 필요한 역량을 엉뚱한 데에 소모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담배 1대가 단기적으로는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될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생명을 갉아먹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만약 공직자로서 이라크 파병연장을 거부한 후에 미국을 볼 자신이 없다면, 단 하루라도 그 자리를 지켜서는 안 된다. 공공을 위해 옳은 일을 할 자신이 없다면, 당장에라도 사표를 쓰는 것이 공직자의 태도가 아닌가? 국민은 생각 않고 그저 자리만 꾹 지킨다면, 그것은 공인으로서 참으로 서글픈 일일 것이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한민족을 억압해온 나라, 한민족을 능멸해온 나라. 그런 미국을 위해서 우리의 힘을 낭비하지 말고, 이런 기회를 활용하여 우리 자신의 실력을 키우는 것이 진정으로 현명한 태도일 것이다.

여진족이 보여준 ‘자기 문제에 대한 집중력’, 한국은 지금 그것을 배워야 한다.
#파병연장 #이라크파병 #자이툰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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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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