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에게 닫힌 세상 향해 문을 두드리다

2007 국제인천여성비엔날레(2007.11.10~12.30) 개막식 참관기

등록 2007.11.16 15:43수정 2007.11.16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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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종합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 <2007 국제여성비엔날레> 개막식 축하공연 장면 중 하나인 작은 뮤지컬. ⓒ 김형순


인천 종합문화예술회관에서 '문을 두드리다(Knocking on the door)'라는 주제로 <2007 국제여성비엔날레>가 오는 12월 30일까지 열린다. 여성만의 흔치 않은 비엔날레다. 지방자치시대라 도시마다 문화도시로 도약을 꿈꾸는 이때 동아시아 관문도시 인천도 예외일 수 없다.

여성적 가치와 그 잠재력 발견과 남성과 차원 높은 화합과 조율 등을 기치로 내세웠다. 지난 10일 개막행사는 간소하나 알차게 진행되었고 여성적 세심한 배려와 준비도 돋보였다. 다만 정보와 섭외부족, 자금난 등으로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다 발휘하지 못한 것 같다.


퍼포먼스도 정말 예술이네!

개막식을 연 인천시립합창단의 축하공연 작은 뮤지컬은 감칠맛이 난다. 이날의 하이라이트는 호주출신의 작가 수리(Sue Lee)의 축하 퍼포먼스, 여성이라는 이름으로 여성을 여성답지 못하게 하는 것에 대한 항변의 메시지가 담겨있다.

이 사회가 여성에게 요구하는 건 많고 이를 감당하자니 너무 힘겨워 이를 어찌할 수 없음을, 발을 묵었던 검은 비닐보자기에서 하얀 옷을 꺼내 그 얽히고설킨 실타래를 푸는 절박한 몸짓에 비유하여 관객의 공감을 끌어내고 큰 박수를 받았다. 퍼포먼스가 한 예술장르임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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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출신의 작가 수리(Sue Lee)의 인천여성비엔날레 축하 퍼포먼스 ⓒ 김형순


이번 전에는 한국을 비롯하여 22개국, 445명 여성작가(외국작가 59명 포함)가 1700여점의 작품을 출품했다. 본전시와 특별전으로 나뉘고, 본전시는 세 개의 방, '체험의 방', '신화의 방', '발견의 방' 그리고 특별전(25-40세 여성작가)은 '감수성'이라는 주제로 '핑크,' '사이보그', '불완전한 구조'로 구성된다.

여기서 다 일일이 열거할 수는 없다. 사실 여성성이 잘 드러나는 건 특별전이지만 본전시에서 본 감명을 주고 인상적인 몇몇 작품을 중심으로 감상해보고자 한다.


재독작가의 단숨에 그은 한 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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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현숙 '2획' 160×240cm 캔버스에 템페라 2006. '27획' 160×240cm 캔버스에 템페라 2005(아래). ⓒ 김형순


손현숙(1952~ )은 작년 서울에서 전시회가 있었고 여기서 또 보니 반갑다. 그는 간호보조사로 독일에 갔다가 함부르크대학 미대를 졸업하고 화가가 된 특이한 이력의 작가다. 한국 아낙의 소박함과 강인함을 고스란히 간직한 그의 그을린 아궁이를 연상시키는 색이 퍽이나 인상적이다.

그는 정말 단숨에 그은 한 획의 미학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서양에는 미니멀리즘이라는 사조가 있기는 하지만 그보다 한 차원이 높은 정말 담백하고 획기적인 하나의 선으로 모든 것을 다 담아내는 기적 같은 그림이다.

서양 물감인 템페라와 캔버스를 씀에도 여전히 한국의 문인화 전통이 그대로 살리고 있어 서구인들에게 동양적 사유의 한 정점을 보여주는 소중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자연친화적 숲 풍경 정겨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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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숙진 '비경풍경-존재는 비존재로부터 탄생한다' 나무에 채색 180×540×45cm 1998-2000 ⓒ 김형순


조숙진(1960~ )의 이 작품은 나무를 소재로 하여 친근감이 절로 생긴다. 숲 속에 나무들이 키 재기를 하는 것 같다. 각각 다른 색과 모양에도 전체적 조화를 이루며 자연스럽게 배치하여 관객의 마음을 끈다. 게다가 나무들 표정이 익살스런 탈의 얼굴을 닮아 흥미롭다.

작가는 '존재는 비존재에서 탄생한다' 다소 어려운 철학적 제목을 붙었다. 무(無)에서 유(有)가 탄생된다는 뜻일 텐데 누가 봐도 마음을 편하게 놓아주는 작품이다. 버려야 할 폐품이 이렇게 멋진 작품이 되다니 놀랍다.

그의 작품에 대해서 미국 평론가 로버트 몰간은 "하나하나 서로 연결시켜나가는 조율형식은 잭슨 폴록의 떨어지는 방울, 쏟아붓기, 리듬, 진동, 전면을 뒤덮는 감각 같다"고 했다.

우주 만물의 숨소리가 들리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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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희 '솟아오르는 강' 설치 가변크기 2007 ⓒ 김형순


정연희(1945~ )의 설치미술 '솟아오르는 강'은 주변이 온통 푸르다. 강인지 바다인지 하늘인지 구별이 안 된다. 그 광활함은 관객의 마음을 시원하게 씻어주고 포근히 안아준다. 관객은 마치 우주선이나 해저함 안이 들어와 있는 착각이 든다. 게다가 음양효과로 내는 시냇물소리까지 들려 더 흥겹다.

이 작가는 이런 자연에 담긴 숭고함과 신비함을 보이지 않는 에너지로 바꿀 줄 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자연과 인간 공존하며 끊임없이 소통하고 대화하는 낙원, 바로 그런 멋진 신세계를 꿈꾸는지 모른다. 물아일체와 음양조화의 동양미도 함께 느껴진다.

여성들, 제 시대에 제대로 대우받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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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영순 '위안부프로젝트' 설치 가변크기 2007. 차학경 '눈먼 목소리' 25 20cm 10개 흑백사진 1975(아래) ⓒ 김형순


민영순(1953~ )의 미국 얼바인 캘리포니아대 교수로 (탈)식민주의, 여성주의를 포함 소수주의를 바탕으로 왕성한 활동을 하는 설치미술가다. 우리가 이젠 잊고 싶고 상당수 잊어버린 불편한 과거사의 한 토막을 다시 들춰낸다. '위안부 프로젝트'도 바로 그런 작품이다.

이 작품은 한국여성들이 그 시대에 걸맞게 제대로 된 옷을 입고 제대로 된 인간적 대우를 받았는가'를 묻고 있다. 상하이에 군위안부가 설치된 1932년부터 2007년까지 75년간 여성의 삶은 이제 여성시대라고 하지만 아직도 할 일이 많음을 경고한다.

아래 '눈먼 목소리'는 차학경(1951-1982)의 작품으로 그는 어려서 미국으로 이민 가 버클리대에서 미술과 비교문학을 전공했고 프랑스에는 영화이론을 공부했다. 언어혼란과 문화충돌 그리고 망명자의 상처 등 버거운 과제를 개념미술, 행위예술, 비디오 등에 도입한다.

'눈먼 목소리' 그 제목이 암시하듯 여성이 세상을 보는 눈이 어두워 여성 스스로 제 목소리를 땅에 묻고 있음을 천명한 셈이다. 70년대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는 계몽적 성격을 띤다.

여성적 색채와 착상, 그 화려한 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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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에코 타츠노 '2007년 2월6일' 캔버스에 아크릴채색 194×194cm 2007(좌). 세튼 스미스 '무제' 플렉시글라스에 시바크롬 183×122cm 1997 ⓒ 김형순


한편 여성적 섬세한 감각이 빛나는 일본과 미국의 작품도 눈에 띈다. 하나는 깔끔한 색채로 또 하나는 참신한 발상에서 신비한 몽상을 낳는다.

일본작가 토에코 타츠노(1950~ )는 동경대 미대를 졸업하고 자기 나름으로 미니멀리즘을 소화해냈다. 기하학적인 형태를 감정적인 것으로 확대하려는 그의 노력은 초기와 달라진 점이다. 그는 회화의 시대적 조류보다는 그 본질과 근원을 찾는다. 그래서 회화의 평면성을 극복하고 심연의 깊이를 창출하려고 노력한다.

세미 스미스(1955~ )는 매사추세츠 미대에서 사진과 예술이론을 공부했다. 주변에서 흔히 보는 램프, 그릇, 의자 등 친숙한 사물과 자연풍경을 찍는다. 흐릿한 영상의 불분명한 피사체는 사진이 찰나적인 것만이 아니라 사유적 상상력을 유발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마리 로랑생과 천경자의 나르시시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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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 로랑생 '주디스(Judith)'판화 65×54cm 1927. 천경자 '청춘의 문' 화선지에 먹채색 145×89cm 1968 ⓒ 김형순


프랑스와 한국을 대표하는 여성작가 마리 로랑생(1883~1956)과 천경자(1924~ ), 두 사람의 그림을 비교해 보는 짭짤한 재미가 있다. 두 작품은 40년이라는 세대차이와 색감, 형태, 분위기는 달라도 여성적 나르시시즘을 표현한다는 면에서는 같다.

마리 로랑생의 소녀의 꿈과 천경자의 여인의 이상적 세계에 대한 동경은 소녀와 여인이라는 차이만 있을 뿐 여성적 정서와 감성을 드러냄에 있어 다를 것이 없다. 

두 작가는 공교롭게도 평탄치 않는 삶의 굴곡이 많았고 한 시대의 한계를 뛰어넘는 독창적 관점을 가진 작가라면 면에서 꽤 닮았다. 그림에서 보듯 소녀나 여인의 눈가와 입술에는 한결같이 사랑과 에로스에 대한 갈망으로 넘친다.

여성의 심적 상처가 담긴 작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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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잔 앤드루스 '루이즈시리즈' 람다 프린트 2005(위). 쉬린 네샤트 '최후의 한마디' 싱글채널 비디오-오디오 설치 18분 2003(아래우). 리나 김 '비트스톡의 방' C-프린트 디아섹 125×185cm 2006 ⓒ 김형순


할머니와 어린 소녀는 어느 시대, 어느 나라나 약자를 대표한다. 할머니의 후덕함과 어린 소녀의 천진함이 인정받지 못하는 곳에 평화와 행복의 꽃이 피어날 수 없다. 그런 면에서 수잔 앤드루스(1958~ )의 '루이즈시리즈'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아래 오른쪽 '최후의 한마디'는 이란출신으로 뉴욕에서 활동하는 쉬린 네샤트(1957~ )의 작품이다. 그는 1999년 베니스비엔날레 국제상을 타 유명해졌다. 관료주의로 여성예술가에게 가해지는 위협과 신문을 다룬 것으로 차단된 이란여성의 표현자유를 고발하고 있다.

'비트스톡의 방'는 작가 리나 김(1965~ )의 작품으로 그는 한국인 2세로 브라질에서 태어났고 뉴욕과 베를린에서 활동하고 있다. 2차 대전 독일군이 썼던 벙커를 찍은 것으로 남성중심의 문화와 신화가 거짓이고 실패한 것임을 사진을 통해 풍자한다.

이 세 작가는 여성이 사회에서 받은 심적 상처(트라우마)가 은연중에 깔고 있다. 이 밖에도 신디 셔먼, 루이스 부르주아, 재불화가 이성자, 설치미술가 니키드 생팔, 민중 판화가 콜비츠 등이 있으나 지면상 줄인다. 직접 가서 한번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덧붙이는 글 | 1회 입장료는 어른 1만원, 청소년 5000원, 유치원생 1000원.
전시기간 : 2007년11월 10일부터 12월30일까지
행사 일정은 인터넷 홈페이지: www.iwabiennale.org 참조
교통편 1호선 부평역에서 하차 인천 지하철로 환승, 종합문화예술회관 앞(6번, 7번출구) 하차


덧붙이는 글 1회 입장료는 어른 1만원, 청소년 5000원, 유치원생 1000원.
전시기간 : 2007년11월 10일부터 12월30일까지
행사 일정은 인터넷 홈페이지: www.iwabiennale.org 참조
교통편 1호선 부평역에서 하차 인천 지하철로 환승, 종합문화예술회관 앞(6번, 7번출구) 하차
#국제인천여성비엔날레 #천경자 #마리 로랑생 #송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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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중 현대미술을 대중과 다양하게 접촉시키려는 매치메이커. 현대미술과 관련된 전시나 뉴스 취재. 최근에는 백남준 작품세계를 주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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