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적이 등장했으니 정조준하라

[태종 이방원 194] 영의정이 대간이다

등록 2007.11.15 09:09수정 2007.11.15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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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사 궁궐을 시위하는 정예부대. 세종 즉위년, 명령에 죽고 명령에 사는 군대가 두 임금을 모시면서 혼란에 빠졌다. ⓒ 이정근


원하는 답을 받아내기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라는 명에 따라 본격적인 국문이 시작되었다. 병조에 마련된 국문장은 살점이 튀고 피가 튀었다.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와 고통에 몸부림치는 죄인들의 비명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심정과 무슨 말을 나누었느냐?"
심정(沈泟)은 사은사로 명나라에 간 영의정 심온의 동생이다.


"주상께서 본궁에 계실 때 궁문 밖 장막에서 심정을 만났는데 그가 '내금(內禁) 안에 시위하는 사람의 결원이 많아서 시위가 허술한데 어째서 보충하지 않느냐?' 하기에 내가 '군사가 한 곳에 모인다면 허술하지는 않을 것이다'고 하였더니 심정이 말하기를 '한 곳에 모인다면 어찌 많고 적은 것을 의논할 것이 있느냐' 하였다."

기다리던 답이 나왔다. 강상인의 입에서 심정의 연루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자백을 확보한 의금부에서 심정의 체포를 품신했다.

"비록 2품 이상의 관원이라도 공신(功臣)이 아니면 계문(啓聞)함이 없이 바로 잡아 가두어 국문하라."

동지총제(同知摠制) 심정이 체포되어 강상인과 대질심문이 시작되었다.

"나는 내금위(內禁衛)의 절제사가 된 까닭으로 강상인과 시위의 허술한 것을 의논하였을 뿐, '군사가 두 곳으로 갈라져 있다'고 한 말은 내가 한 것이 아니다."


심정이 극력 부인했다. 대질신문이 맞아떨어지지 않자 강상인에게 압슬형이 가해졌다.

"이종무에게 '군사(軍事)는 마땅히 한 곳으로 돌아가야 된다' 하였더니 이종무가 빙긋이 웃으면서 수긍하였으며 또 우의정 이원을 대궐 문밖 길에서 만나 '군사를 나누어 소속시키는 것이 어떠하냐?'고 하였더니 대답하기를 '이를 어찌 말할 수 있느냐'고 하였다."

물귀신 작전에 말려든 태종의 핵심 측근들

강상인이 물귀신 작전을 쓰기 시작했다. 태종의 핵심 측근세력을 끌고 들어간 것이었다. 상왕이 총애하는 우의정 이원과 장천군(長川君) 이종무가 걸려든 것이다. 정승이 연루되어있으니 윤허를 받아야 한다. 의금부에서 계본을 갖추어 보고했다.

"이원이 강상인의 간사한 꾀를 듣고도 즉시 잡아들이지도 않고 고(告) 하지도 않았으니 대신의 의무를 잃었습니다. 모두 잡아서 신문하기를 청합니다."
태종은 곤혹스러웠다. 자신이 신임하는 우의정이 연루되었다니 난감했다.

"그렇다면 말을 타고 국청에 나아가게 하라."

이원은 우의정이다. 오늘날의 부총리 급이다. 삼정승의 하나인 우의정을 어찌 여타의 잡범들처럼 잡아들일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말을 타고 자진 출두할 수 있도록 예우해 주라는 것이다. 뇌물수수 혐의를 받은 청장이 승용차를 타고 검찰에 출두하는 모습이 연상된다.

"죄인이 말을 타고 옥에 나아가는 것은 합당하지 못합니다."
조말생과 원숙이 반대했다.

"병조에서 이원에게 사람을 보내 그로 하여금 스스로 국청에 나아가게 하라."

우의정 이원이 갓(笠子)을 쓰고 걸어서 국문청에 출두했다. 이원의 처지에서야 모함을 받아 혐의 없다고 길길이 뛸 수 있다. 말(馬)도 있고 가마도 있다. 위세를 부리기 위하여 타고갈 수도 있다. 걸어가더라도 주위에 졸개를 풀어 대장에게 카메라를 들이미는 사진기자를 폭행하듯이 쳐다보는 백성들의 눈을 때려 분풀이 할 수도 있다.

공직자들의 과거와 현재의 모습

하지만 혐의를 받고 소환되는 것마저도 선비로서 자신의 부덕으로 받아들였다. 백성들 보기가 민망하여 갓을 쓰고 걸어서 출두한 것이다. 검은색 택시를 타고 천연스럽게 나타난 실장이나 지방까지 불려가 뻔뻔스러움을 보이던 후대의 공직자보다 훨씬 나은 그림이다. 장천군 이종무도 소환되었다. 고문에 시달리던 강상인과 대질신문이 시작되었다.

"강 참판은 사람을 끌고 들어가지 마시오."
이종무가 엄중하게 힐책했다. 자신은 결백하니 물귀신 작전을 거두라는 것이다. 고개를 늘어뜨린 강상인은 아무 말이 없었다.

"강 참판은 사람을 죄에 빠뜨리지 말라."
이원이 고함을 쳤다. 압슬형으로 몸이 만신창이가 된 강상인이 측은하기도 했지만 자신이 살아야 한다. 헤어나오지 못하면 강상인과 함께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초를 견디지 못함이었다. 실상은 모두 무함(誣陷)이었다."

강상인이 사실대로 토설했다. 압슬형을 견디지 못하고 '예' '예' 하다 보니 그렇게 됐다는 것이다. 우의정과 이종무를 끌어들인 것은 허위자백이라는 것이다. 이원과 이종무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 우의정 이원을 즉시 석방하라 명한 태종은 강상인을 더욱 강하게 신문하라 일렀다. 강상인에게 강도 높은 압슬형이 가해졌다.

"군사는 한 곳에서 나와야 한다고 네가 말했지?"

"예. 선위(禪位)하는 교지(敎旨)의 뜻을 모두 다 알고 있었다. 일찍이 이와 같이 하지 않은 것은 내 마음에 국가의 명령은 마땅히 한 곳에서 나와야 한다고 생각하였으므로 상왕에게 아뢰지 않은 것이다."

"박습도 옳다고 말했지?"

"예, 내가 박습과 의논하면서 '군사(軍事)는 한 곳에서 나오는 것이 어떠냐?'고 하니 박습도 '옳다'고 하므로 아뢰지 않았다."

죄인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다. 다른 말을 하면 모범답안을 들이밀고 압슬형을 가하니 끝내는 "예, 예"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압슬형은 1차에 2명, 2차에 4명, 그래도 불지 않으면 3차에 6명이 달라붙어 가한다. 더 이상 고통스럽게 하지 말고 빨리 죽이라고 애원하게 만드는 고문이다. 심문자가 죄인의 고통을 극한으로 끌어올려 원하는 답을 받아낼 수 있는 악랄한 고문이다. 그 험한 압슬형을 3번째까지 견뎌낸 강상인도 독한 사람이다.

병조참판 강상인의 입에서 병조판서 박습의 연루사실이 튀어나왔다. 기다렸다는 듯이 박습에게 압슬형이 가해졌다. 뼈가 으스러지는 압슬형을 한차례 견뎌 낸 박습이 두 번째 압슬형에서 무너졌다.

"강상인이 모든 군사는 한곳에서 나와야 한다고 하기에 상왕전에 아뢰지 않았습니다."

순순히 자백하기 시작한 강상인, 밤 사이에 밀사가 다녀갔나?

또 다시 강상인에게 압슬형이 가해졌다.

"날짜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영의정 심온을 상왕전의 문밖에서 보고 의논하기를 '군사를 나누어 소속시키는데 갑사(甲士)는 수효가 적으니 마땅히 3천 명으로 해야 되겠다'고 한 즉, 심온이 '옳다'고 하였다. 그 후에 또 의논할 일이 있어 심온의 집에 가서, '군사(軍事)는 마땅히 한 곳으로 돌아가야 된다'고 하였더니, 심온이 '옳다'고 하였다."

압슬형을 3번째까지 견디던 강상인이 4번째는 견디지 못하고 자백했다. 3번 이상의 압슬형은 법으로 금지했지만 갈 길이 바쁜 심문자들은 이를 지키지 않았다. 강상인은 태종의 수하다. 잠저시절부터 모셨다. 태종의 의도를 간파한 강상인이 죽어가면서 마지막으로 충성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는지, 의금부 옥에 갇혀 있는 강상인에게 밀사가 다녀갔는지 알 수 없다.

드디어 강상인의 입에서 심온의 연루가 튀어나왔다. 기다리던 답이었다.

"진상이 오늘날에야 나타났구나. 마땅히 대간(大姦)을 제거하여야 될 것이다."

지금까지의 심문결과를 의금부로부터 보고를 받은 태종은 흡족했다. 만인지상 영의정이 큰 간신(大姦)으로 지목되었다. 임금의 장인이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떠올랐다. 명나라를 방문 중에 있는 사은사가 간신의 수괴로 등장했다. 피바람을 예고하는 검은 구름이 창덕궁과 수강궁에 무겁게 내려앉았다.
#심온 #심정 #강상인 #이원 #이종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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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의 행간에서 진실(眞實)을 캐는 광원. 그동안 <이방원전> <수양대군>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소현세자> <조선 건국지> <뜻밖의 조선역사> <간신의 민낯> <진령군> <하루> 대하역사소설<압록강>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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