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이 밝혀지면 낭패다, 입을 막아라

[태종 이방원 195] 진실은 밝혀지기 위해 존재 한다

등록 2007.11.16 14:57수정 2007.11.16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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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명률. 조선시대 현행법으로 적용된 중국 명나라의 형률서. 태조4년 정도전이 대명률직해를 간행하여 조선조 500년동안 활용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이정근

▲ 대명률. 조선시대 현행법으로 적용된 중국 명나라의 형률서. 태조4년 정도전이 대명률직해를 간행하여 조선조 500년동안 활용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이정근

 

"전하께서 군무를 청단하심은 오로지 종묘사직을 위하신 것이온데 불온한 무리들이 군무를 옮기고자 하니 그 마음을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비록 종실과 훈척일지라도 어찌 감히 용서하겠습니까."


조말생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엄중한 처벌을 주장했다.

 

"참판과 지사(知事)도 의금부에 같이 가서 심정을 국문하라."


표적이 등장했으니 정조준하라는 것이다. 강상인의 자백만 가지고는 뭔가 부족하니 심온의 아우 심정의 자백을 확보하라는 것이다.

 

"오늘은 금형일이오니 어찌 하오리까?"


이명덕이 난색을 표명했다. 공교롭게도 금형일(禁刑日)이었다. 아무리 큰 중죄인도 이레 중에 하루, 금형일에는 심문하지 말도록 대명률이 규정하고 있었다.

 

"병이 급하면 날을 가리지 않고 뜸질을 하는 법이다. 이것은 큰 옥사이니 늦출 수 없다."

 

금형일을 무시하고 강행하라는 지시다. 법과 원칙은 한가할 때나 지키는 것이지 이렇게 바쁠 땐 거치적거리고 사치스럽다는 얘기다. 규정과 절차를 무시하고 결과만 만들어내라는 것이다. 먹이를 발견한 배고픈 호랑이가 쌍심지를 켜고 전력 질주하는 모습과 흡사하다.

 

뼈가 으스러지는 고문에 장사 없다. 천하장사도 못 견딘다

 

영의정 심온의 아우 심정에게 압슬형이 가해졌다. 심정은 이를 악물고 압슬형을 견뎌냈다. 자신과 형 심온 그리고 가문의 존폐가 걸린 문제기에 죽을 힘을 다해 참았다. 하지만 이렇게 견딜 수 있는 고문이라면, 누가 인간이기를 포기하게 만드는 형문이라고 말하겠는가. 심정도 견디지 못하고 2차 압슬형에서는 모범답안을 내놓기 시작했다.

 

"군사는 마땅히 한 곳에서 나와야 한다고 네 형 심온이 말했지?"

"예. 형 온(溫)을 그 집에서 보았는데 형이 '군사는 마땅히 한 곳에서 나와야 된다'고 하였습니다."

"형의 말에 너도 옳다고 말했지?"

"예."

 

굿판이 끝났다. 원하는 답이 나왔기 때문이다. 이명덕의 보고를 받은 태종은 더 이상 심문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푸닥거리만 남았으니 굿판을 치우라는 얘기다. 그날 밤 태종은 좌의정 박은을 불렀다. 삼정승 가운데 영의정 심온은 사건과 연루되어 있고 우의정 이원도 무고가 밝혀졌으나 역시 사건에 연루되어 있다. 상의의 대상은 오직 좌의정 박은뿐이었다.

 

속내를 드러내는 태종, 핵심 측근들에게 하사품을 내리다

 

"강상인의 죄는 내가 그 정상을 모르는 바가 아니었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여 외방으로 내쫓기만 하였다. 그 후에 생각해보니 나의 여생은 많지 않고 대간(大姦)은 제거하는 것이 마땅하므로 다시 그 일을 신문(訊問)하여 이와 같은 결과에 이른 것이다. 심온이 군사가 한 곳에 모여야 된다는 말을 듣고 '군사가 반드시 한 곳에 모이는 것이 옳다'고 하였다 하니 경은 이를 알아야 할 것이다." - <세종실록>

 

진솔한 태종의 속내다. 강상인 건은 사건의 내막을 속속들이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가볍게 처리했는데 여생이 얼마 남지 않은 현 시점에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차기를 위하여 큰 산을 헐어내야겠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호사스럽게 떠난 임금의 장인 심온을 세종의 앞길을 가로막는 큰 산으로 규정했고 대간(大姦)으로 지목한 것이다.

 

태종은 좌의정 박은, 우의정 이원, 병조판서 조말생, 병조참의 원숙을 불러 술을 내렸다. 뭔가를 암시하고 부탁하는 하사품이다. 이튿날 태종은 판전의감 이욱을 의금부진무(義禁府鎭撫)로 임명하고 의주에 가서 심온이 명나라에서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잡아 오라고 명했다.

 

"심온이 만약 사신과 같이 오거든 심온에게 병을 핑계하고 잠간 머물게 하여 비밀히 잡아 오도록 하라. 명나라 조정에서 우리 부자 사이에 변고가 있는 것으로 잘못 알려질까 염려되니 사신으로 하여금 알지 못하게 하여야 한다."

 

심온 체포조가 의주로 떠났다. 영광의 길 떠났던 영의정에게 체포령이 떨어진 것이다. 체포조가 떠나던 날 의금부에서 보고가 올라왔다.

 

"형률에 의거하면 강상인·박습·심정·이관은 모반대역(謀叛大逆)에 해당되므로 수모자(首謀者)와 종범자(從犯者)를 분간하지 않고 모두 능지처사(凌遲處死)해야 할 것입니다. 그들의 부자 나이 16세 이상이 된 자는 모두 교형에 처하고 15세 이하와 처첩·조손(祖孫)·형제·자매는 공신의 집에 주어서 노비를 삼게 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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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대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 사형실 교수대에 있는 올가미. 매달려야 할 사람들은 매달리지 않고 매달리지 않아야 할 사람들이 때로는 매달렸을 것이다. 인혁당 사건으로 이곳에서 사형이 집행되었던 사람들에게 최근 재심에서 무죄가 선고되었다. ⓒ 이정근

▲ 교수대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 사형실 교수대에 있는 올가미. 매달려야 할 사람들은 매달리지 않고 매달리지 않아야 할 사람들이 때로는 매달렸을 것이다. 인혁당 사건으로 이곳에서 사형이 집행되었던 사람들에게 최근 재심에서 무죄가 선고되었다. ⓒ 이정근


의금부의 보고를 받은 태종은 박은·조말생·이명덕·원숙을 불러 긴급 구수회의를 했다.

 

"강상인과 이관은 죄가 중하니 지금 마땅히 죽일 것이요, 심정과 박습은 강상인에 비하면 죄가 경한 듯하고 괴수(魁首) 심온이 아직 돌아오지 않았으니 남겨 두었다가 대질시키는 것이 어떠한가? 그렇지 않으면 인심(人心)과 천의(天意)에 부끄러움이 있지 않겠는가."

 

"대질시키고자 하신다면 강상인만 남겨두고 세 사람은 처형하는 것이 옳습니다. 그러나 심온의 범한 죄는 사실의 증거가 명백하니 어찌 대질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남겨 두는 것이 옳지 못합니다. 그리고 반역을 함께 모의한 자는 수모자와 종범자를 분간하지 않는 법이오니 어찌 차등이 있겠습니까."

 

박은이 대질은 필요없다고 주장했다.

 

"옥에서 곤란한 일이 많사오니 속히 형(刑)을 집행하기를 청합니다."


이명덕이 의금부의 의견을 내놓았다.

 

"강상인은 형률대로 거열형에 처하고 박습과 이관·심정은 모두 참형(斬刑)에 처하라."

 

죄인들을 처형하라는 서릿발 같은 명이 떨어졌다. 심정의 입에서 심온의 이름이 튀어나온 하루만이다. 이례적으로 매우 신속하다. 이렇게 서둘러 처형한 것은 진실이 밝혀질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만행의 생명력은 질기다. 훗날 인혁당 사건 연루자들을 대법원 확정 판결 18시간만에 8명을 처형한 박정희 역시 만행이라는 지탄을 벗어날 길이 없을 것이다.

 

대역죄인의 사지를 묶어 달구지에 걸어라

 

인왕산 범 바위 계곡에서 발원해 도성 밖 서쪽을 남북으로 관통하는 물줄기가 있다. 덩굴내 라고 부르는 만초천이다. 한양과 경기도를 구분하는 경교 밑을 지나 서소문 밖 후미진 곳을 통과해 남산에서 흘러오는 물줄기와 만난다. 청파역에 다리를 만들어 사람과 말(馬)을 모으고 용산강을 이루며 한강으로 흘러드는 물줄기다.

 

서전문 앞에서 만초천을 따라 연결된 길과 서소문 언덕길로 연결되는 지점엔 숲이 울창했다. 서교 삼거리에는 나그네가 쌓아놓은 돌탑과 이름 모를 묘지가 듬성듬성 있었다. 도성에서 삼개나루터로 통하는 지름길 이지만 백성들은 별루 이용하지 않았다. 지나가면 으스스한 사형장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사형에는 교형, 참형, 능지처사가 있었고 능지처사에도 오살(五殺)과 육시(戮屍), 거열(車裂)이 있었다. 그 외에 사사와 부관참시가 있었다. 박습과 이관, 심정을 참형에 처하고 강상인을 거열하라는 명에 따라 서교 삼거리에서 박습과 이관, 심정의 목을 벴다. 고문을 견디지 못하고 옥중에서 절명한 병조판서 박습의 목도 벴다. 시신의 목을 자른 것이다.

 

대역죄인을 처형한다는 방을 보고 종루 사거리에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문무백관이 참관하고 수많은 백성이 지켜보는 가운데 강상인의 거열형이 시작되었다. 태종 잠저시절 한때는 집사를 자처하던 강상인이 머리는 산발한 채 손과 발을 묶여 달구지에 걸렸다. 압슬형에 무릎이 으깨진 강상인은 제대로 서지도 못하고 흐물거렸다.

 

살아있는 사람을 찢어 죽이는 거열(車裂)은 참혹한 형벌이다. 손과 발, 사지를 밧줄로 묶어 달구지에 연결한 뒤, 소나 말을 네 방향으로 출발시켜 사람의 몸을 찢어내는 잔혹한 형벌이다. 참관한 관리들과 백성들에게 권력자의 힘을 과시하는 효과를 노린 반인륜적인 처형이다. 압슬형으로 만신창이가 된 강상인이 제대로 서지도 못하고 밧줄에 묶인 채 울부짖었다.

 

"나는 실상 죄가 없는데 때리는 매(箠楚)와 고문을 견디지 못해 죽는다."

 

강상인의 거열형이 집행되었다. 한 때는 태종의 총애를 받던 강상인의 몸이 네 갈래로 찢어졌다. 권력무상, 인간관계 무상이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군중들이 얼굴에 손을 가리고 손가락 사이로 쳐다봤다. 무섭고 두려워 고개를 돌려 외면했다가 다시 쳐다봤다.

 

압슬형에 견딜 사람은 없다. 천하장사도, 항우장사도 안 된다. 이러한 폐단을 조정에서도 알고 있었다. 그 누구도 압슬형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두려움 속에 1665년(현종 6년) 까지 법으로 사용을 제한하다가 1725년(영조 1년) 영구 폐지되었다.

#심정 #강상인 #사법살인 #박정희 #대명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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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의 행간에서 진실(眞實)을 캐는 광원. 그동안 <이방원전> <수양대군>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소현세자> <조선 건국지> <뜻밖의 조선역사> <간신의 민낯> <진령군> <하루> 대하역사소설<압록강>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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