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아리 가득 담긴 어머님의 끝없는 사랑

시댁 김장 담그는 날

등록 2007.11.18 18:45수정 2007.11.18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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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감동어린 눈빛으로 "바로 이 맛이야~!"하며 엄지손가락을 펴 보였던 반짝 아이디어 쌈. ⓒ 김정애

팔자 좋은 '나이롱' 맏며느리는 김장철이 되어도 양념값이 얼만지 배추 값이 얼만지도 모르고 올해로 '은혼'이라는 결혼 25주년을 맞았다.

 

해마다 시어머니께서 가까운 분들과 김장을 하신 후 실어가라는 전화를 주시면 그것을 김치냉장고에 옮겨다 넣는 것으로 월동준비가 완료되었다. 

 

그런데 작년엔 오라고 하셔서 갔더니 벌써 거의 다 하셨기에 올해는 좀 제대로 해 보려고 5시30분에 시계를 맞춰 놓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알람소리에 일어나 단장을 하고 그동안 가져다 먹은 빈 김치 통들을 챙겨 서둘러 집을 나섰다.

 

도로 공사로 인한 정체구간을 벗어나자 주말의 이른 아침이라 도로는 한산했다. 송추를 거쳐 가는 외곽도로, 씽씽 달리는 차창 밖 풍경은 아직도 가을색이 짙었다. 생각보다 일찍 도착, 대문에 들어서니 배추를 씻고 계시던 어머니께서 벌써 왔느냐 하시며 반갑게 맞아주셨다. 마당 한 편엔 이미 빨갛게 버무려 놓으신 김장속이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서둘렀건만 또 한 발 늦었네~.

 

밤새 절인 배추를 차가운 물에 맨손으로 씻고 계신 어머니를 뵈니 내 손이 시린 듯했다.


"어머니~ 장갑 끼시고 하세요."
"감기라도 드시면 어쩌시려구요.~"
"아냐, 난 괜찮아" 하시면서도 아들, 며느리의 성화에 못 이겨 그제야 장갑을 집어 드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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씻은 배추를 물이 빠지도록 늘어 놓고 있는 필자와 시어머니 ⓒ 김정애

단독주택은 아파트와 달리 춥기 때문에 내의까지 껴입고 완전무장을 하고 갔는데도 발도 시리고 추웠다. 며느리의 그런 모습을 눈치 채셨는지 내가 혼자 씻어도 되니까 '어멈은 들어가서 밥이나 차리라'고 하셨다.

 

집안으로 들어가니 구수한 냄새가 식욕을 돋운다. 가스레인지 위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며 끓고 있는 배추 국이었다. 나물에 생선조림 등 아침 상 차릴 준비를 다 해 놓으셨다.

 

"어멈아, 방에서 먹자~" 하신다.


둥근상을 가운데 놓고 아들, 며느리와 둘러앉아 식사를 하시니 좋으신가보다. 이젠 늙어서 그런지 음식 맛이 예전만 못하다고는 하시지만 며느리가 느끼는 어머니의 손맛은 변함이 없었다.

 

같은 재료를 써도 특별한 맛이 나는 ‘어머니 표 손맛’에 밥 한 공기를 다 비우고도 얼른 수저를 놓지 못하고 맨입에 반찬만을 또 집어먹는다.

 

설거지를 끝내고 본격적인 김장 자세로 자리를 잡고 앉아 속을 넣어보지만 마음 같이 잘 되질 않는다. “어멈아,  속을 그렇게 많이 넣으면 덜 좋아 조금씩 넣어. 그러다 속 모자라겠다.”  “네, 어머니 조금씩 넣을게요.”

 

어설프고 더디기만 한 동작 이걸 언제 다하지 걱정이 앞선다. 마침 시이모님께서 오셨다 그리고 둘째 동서와 시동생이 오자 어찌나 반가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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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 첫 번째가 시어머니, 동서, 필자, 등을 돌리고 앉아 계신 분이 시이모님 ⓒ 김정애

이제야 마당 가득 김장하는 분위기가 연출된다. 어머닌 막내동서가 빠진 것이 마음에 걸리셨는지 아니면 두 며느리에게 미안한 마음이 드셨는지 "막내넨 연락도 안했다" 하시며 묻지도 않은 말씀을 하셨다.

 

세 동서가 다 모였으면 더 좋았을 텐데 사실 막내동서는 직장엘 다니기 때문에 쉬는 날이라 해도 밀린 집안일을 하느라 쉴 틈이 없을 것이다. 그래도 추석에 보고 못 봤으니 보고 싶기도 했다. 가끔 엉뚱함으로 웃음을 자아내 분위기 메이커로 통하는 막내동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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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통들이 하나, 둘 채워지고 있다. ⓒ 김정애

어느새 빈 통들이 하나, 둘 채워지고 세 며느리에게 나눠 줄 것을 다 담으신 후에야 나머지를 안마당에 묻어 놓은 항아리에 넣으신다. 무를 큼직하게 반으로 쪼갠 것을 배추김치 사이사이에 한 켜 한 켜 넣으시며 "이건 봄에 먹으면 맛있을 테니 그때들 갖다 먹으라"고 하신다. 어머님의 끝없는 사랑은 항아리 가득 차곡차곡 채워져 갔다. 

 

설거지와 물청소 그리고 그릇정리까지 마치고 집집마다의 몫을 챙겨 돌아오는 것으로 올 김장은 마무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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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며늘네와 둘째 며늘네로 갈 김치 ⓒ 김정애

그런데 집에 돌아 와 짐정리를 하고 나니 남편이 쌈(절인 배추의 노란 고갱이에 속을 싸서 먹는)을 찾는다. 없다고 하니까 어찌나 서운해 하던지…. 궁리 끝에 반짝 아이디어로 김치 한 쪽을 꺼내서 머리 부분만을 잘라내고 속에 넣어진 양념을 쌈처럼 싸서 말아주었더니 입 안 가득 넣고 우물거리며 감동어린 눈빛으로 하는 말 “바로 이 맛이야~!” 하며 엄지손가락을 펴 보인다.  

2007.11.18 18:45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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