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 권력자도 한 방에 가더라

[태종 이방원 198]영광도 부귀도 하룻밤 꿈이련가

등록 2007.11.22 09:57수정 2007.11.22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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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 때는 영광의 길, 올 때는 달구지 길

압록강을 건넘과 동시에 의주에서 체포된 심온은 칼을 쓰고 함거에 실려 남행길에 올랐다. 갈 때는 가마 타고 가는 길이었는데 돌아오는 길은 덜컹거리는 소달구지 길이다. 산천은 의구한데 신세는 달라져 있었다. 심온이 체포되어 압송중이라는 보고를 받은 태종은 평안도 관찰사에게 명했다.


“심온을 만난 종을 단단히 가두어 누설되지 않도록 하고 중요한 길목에 군사를 풀어 잡인의 접근을 차단하라. 심온에게 한양 소식을 알려서는 아니 된다.”

심온은 흔들리는 수레에서 눈을 지그시 감았다. 지난 일이 주마등처럼 펼쳐졌다. 청운의 꿈을 안고 벼슬길에 나아가 부귀영화도 누렸다. 국구와 영의정에 오른 40여년 생애에 여한은 없지만 대역죄로 죽는다는 것은 억울하기 짝이 없었다. 수레 속도가 빨라졌다. 달구지가 내리막길에 접어든 모양이다. 자신의 삶을 뒤돌아봤다.

명문가에서 태어나 열한 살 어린 나이에 감시(監試)에 합격하여 승승장구했지만 그래도 오르는 길은 힘들었다. 정상 언저리에서 하륜과 부딪쳤을 때가 가장 힘들었다. 정상인가 싶었는데 벌써 내리막길이다. 예상치 못한 내리막길에선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천 길 벼랑 끝에서 굴러 떨어지는 것만 같았다.

'내 비록 죄인의 몸으로 압송되고 있지만 한양에 가면 진실은 명명백백 가려질 터. 강상인과 대질하면 내가 억울하게 뒤집어쓰고 있는 누명은 벗겨지겠지.'

강상인과 자신의 아우 심정이 이미 처형된 것을 알지 못하는 심온은 한 가닥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흔들리는 함거에서 심온은 깊은 생각에 잠겼다.


'임금의 장인이요, 일인지하 만인지상인 내가 왜 죽어야 하나?'

이인지하 만인지상이라는 현실을 간과한 것이 한이로다

아무리 생각해도 죽을 이유가 없었다. 그 순간 머리를 스치는 것이 있었다.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萬人之上). 만백성을 내려다보고 오로지 한 사람을 올려다보는 영광스러운 자리 영의정을 일컫는 말이다.

'일인지하 만인지상'이라는 말을 곱씹던 심온은 등줄기를 흐르는 오싹한 한기를 느꼈다. 현실은 어떠한가? 창덕궁에 주상이 있고 수강궁에 상왕이 있지 않은가? 이인지하(二人之下) 만인지상이 아닌가? 그렇다면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萬人之上)이라는 말이 나에게 덫이었단 말인가?'

의주에서 체포된 심온이 평양을 통과했다는 평양발 장계가 수강궁에 접수되었다. 때를 같이 해 의주목사의 장계도 도착했다. 귀국하는 심온에게 종을 보내어 한양의 사정을 알리게 한 장본인이 판통례문사(判通禮門事) 안수산이었다는 것이다. 보고를 받은 태종은 안수산을 의금부에 하옥하고 신문하라 명했다.

“죄인 심온에게 서찰을 보내어 읽어본 후 불살라 버리라고 한 연유가 무엇이냐?”
“소인이 주상전하를 뫼시고 종묘에 제사지내는 예(禮)에 참여하여 상사(賞賜)를 많이 받았다는 이야기를 하였을 뿐입니다.”

“허튼 소리하지 마라. 서찰 말미에 강상인이 투옥되었다는 말을 쓰고 읽어본 후 불살라버리라고 한 것은 강상인의 대역모의를 알고 있었던 것이 아니냐?”
"모의라니요? 천부당만부당 합니다.”

“의주에 보낸 아이는 누구 집 아이냐?”
“장의동 대감댁 아이입니다.”
의금부에서 안수산 신문결과를 계본을 갖추어 태종에게 보고했다.

사돈마님의 연루에 난감해진 태종, ‘모두 석방하라’

“자서(姊壻)에게 서신을 보내는 것은 보통의 인정인데 더 이상 문제 삼을 것이 없다.”
안수산은 심온 처제의 지아비다. 동서지간에 있을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이다.

“의주에 종을 보낸 사람은 안수산이 아니고 심온의 부인입니다. 심온의 아내를 신문(訊問)하기를 청합니다.” - <세종실록>

압록강까지 찾아가 심온을 만난 아이가 안수산집 아이가 아니라 부부인이 보낸 아이라는 것이다. 국모의 어머니를 신문하자는 것이다.

“그럴 수는 없다. 모두 석방하라.”

부부인을 신문한다는 것은 모양새가 썩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림이 좋지 않은 마당에 여자 아이와 안수산을 가두어둔다는 것도 명분이 없었다. 때문에 모두 석방하게 한 것이다.

12월 22일. 심온이 압송돼 한양에 도착했다는 보고를 받은 태종은 대사헌 허지, 병조참판 이명덕, 좌대언 성엄과 사간 정초에게 의금부에 나아가 심온을 신문하라 명했다. 강상인과 박습, 그리고 심정을 신문할 때처럼 필요한 답을 받아오라는 것이다. 심온에게 신문이 시작됐다. 심온은 왕비의 친정아버지이고 영의정이다. 그렇다고 봐주는 것은 없었다.

“군사는 마땅히 한 곳에서 나와야 된다고 네가 말했지?”
“그런 말 한 적이 없소이다.”

“강상인이 네가 말했다고 토설했는데 무슨 딴소리냐? 사실대로 이실직고 하렸다.”
“강상인을 대변(對辨)시켜 주시오.”

강상인이 처형된 것을 모르고 있는 심온은 강상인과의 대질심문을 요구했다. 강상인과 대질하면 결백에 자신이 있었다. 허나, 강상인은 이미 처형되어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살아있어도 대질시켜줄 위인들이 아니다. 대질을 요구한 심온에게 돌아온 것은 심한 매질과 압슬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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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온의 묘. 경기도 수원 이의동에 있다. ⓒ 이정근


심온에게 압슬형이 가해졌다. 압슬형에 이길 장사 없다. 영의정의 산 같은 위엄은 산산이 부서졌다. 자존심도 철저하게 짓밟혔고 체신도 무너졌다. 뼈가 으스러지는 고통을 견디지 못한 심온이 순순히 모범 답안을 내놓기 시작했다.

“강상인이 아뢴 바와 모두 같습니다. 신은 무인(武人)인 까닭으로 병권을 홀로 잡아보자는 것뿐이고 함께 모의한 자는 강상인 등 여러 사람 외에 다른 사람은 없습니다.”

막을 내릴 시간이 가까워졌다. 신문도 고통도 마감하는 시간이 다가온 것이다. 불과 4개월 전 태종이 세종에게 선위할 때, 아들의 머리에 원유관을 씌워주며 문무백관들에게 천명한 말이 있다.

“주상이 아직 장년이 되기 전에는 군사(軍事)는 내가 친히 청단할 것이고 국가에 결단하기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정부·육조로 하여금 함께 그 가부를 의논하게 할 것이며 나도 함께 의논하리라. 병조 당상은 나에게 시종하고 대인들은 주상전에 시종하라.”

태종의 전위교서에 어긋나는 자백을 받아냈으니 더 이상 신문할 필요가 없었다. 의금부에서 계본을 갖추어 신문 결과를 보고했다. 보고를 받은 태종은 안수산을 예천에 유배 보내고 심온에게 자진하라 명했다. 왕비의 아버지이기 때문에 참형이나 거열형을 행하지 않고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 있도록 예우해 준다는 것이다.

이튿날 진무 이양에게 심온을 수원으로 압송해 자진(自盡)하게 하라는 명이 떨어졌다. 말이 자진이지 사사(賜死)나 다름없었다. 이렇게 하여 44년 심온의 생애가 막을 내렸다. 심온에게 체포령이 떨어진 것이 11월 25일, 목숨을 끊은 것이 12월 25일. 딱 한 달 간 벌어진 일이었다.

250여 년이 흐른 현종 때, 서인이 노론과 소론으로 분열하는 것을 보고 벼슬을 집어던진 이익은 <성호사설> '인사문'에 이렇게 기록했다.

‘민씨와 심씨 두 집안이 태종에게 흉화(凶禍)를 당했으나 대개 먼 장래를 생각함이 매우 깊었던 것이다.’

589년이 흐른 오늘날, 우리는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심온 #압슬형 #공비 #세종 #태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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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의 행간에서 진실(眞實)을 캐는 광원. 그동안 <이방원전> <수양대군>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소현세자> <조선 건국지> <뜻밖의 조선역사> <간신의 민낯> <진령군> <하루> 대하역사소설<압록강>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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