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에 당했으면 적당히 하라고?
'파리'들 무모한 도전... "이긴다"

[인터뷰] 최세진 삼성SDI 사내하청 하이비트 해고 노동자 대표

등록 2007.11.28 20:03수정 2007.11.29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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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금속노조 울산지부와 삼성SDI 하이비트 해고 노동자들이 서울 태평로 삼성그룹 본관 앞에서 '12월 7일 삼성을 상대로 총파업을 벌이겠다'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선대식


삼성과 비정규직 노동자. 나란히 놓기엔 어색한 두 단어다. 2007년 한국사회에서 하나는 '제국'의 다른 말이고, 다른 하나는 '파리 목숨'과 같은 뜻이다. 한국사회를 '약육강식'으로 표현할 수 있다면, 각각 먹이사슬의 가장 높은 곳과 낮은 곳을 차지한다.

그런데 해고된 비정규직 노동자가 삼성과 싸운다면? 누군가는 한국사회 '먹이사슬' 시스템을 무시하는 무모한 짓이라고 말할 게다. 하지만 28일 서울 태평로 삼성그룹 본관 앞에 나타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삼성 재벌과의 전면전을 선언한다"고 외쳤다.

이들은 지난 3월 삼성SDI 사내하청업체인 하이비트에서 해고됐다. 이들 18명의 해고 노동자들은 출근투쟁과 8월부터 진행한 울산시청·삼성SDI 공장 앞에서의 천막농성 등 242일째 삼성과 싸우고 있다. 지난 16일부터 삼성 본관 앞 1인 시위를 하고 있는 최세진(29) 대표는 "모두 원직 복직 시켜라"고 외쳤다.

최씨와 그의 동료들은 왜 삼성에 맞서 '무모한' 싸움에 나서게 된 걸까? 이날 오후 1시 삼성 깃발이 휘날리는 삼성 본관 앞에서 최씨를 만났다. 행인들이 옷깃을 세우고 걸음을 재촉하는 사이 최씨의 입에서 '노동자를 다루는 삼성공화국의 실체'가 흘러나왔다.

주야맞교대 530시간에 월급은 140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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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세진 삼성SDI 하이비트 해고 노동자 대표의 입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를 다루는 삼성공화국의 실체'가 흘러나왔다. ⓒ 오마이뉴스 선대식


먼저 해고된 이유에 대해서 물었다. 최씨가 답했다.

"삼성SDI 부산사업장은 지난해 11월부터 사내하청업체 20여 곳과 계약해지 했어요. 그 곳에 다니던 비정규직 노동자 4000여명이 해고됐죠. 대부분 현실을 받아들였죠. 하지만 전 열심히 일했는데, 갑작스럽게 해고가 되니 너무 억울했어요."


'억울하다'는 말에 그의 말을 옮기던 펜이 멈췄다. 이랜드·코스콤·KTX 여승무원 등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취재하면서 그렇게도 많이 취재수첩에 담았던 말이다. 최씨의 싸움은 '삼성'만의 문제가 아닌 우리 사회 모든 노동자들의 공통적인 문제가 담겨있었다.

- 일하던 환경은 어땠나요?
"일이 많을 땐 주야 맞교대 530시간 일하고 한 달에 140만원을 받았어요. 그렇지 않을 때는 토요일까지 12시간씩 일하고 120만원 받았어요."

- 정규직과 같은 일을 했나요? 차별이 없었나요?
"한 작업장에서 거의 같은 일은 했어요. 차별도 많았죠. 우린 성과급을 1년에 100만원 받는데, 정규직은 2000만원 정도 되는 걸로 알고 있어요. 정규직 20명, 비정규직 40명 정도가 같이 일하는데, 휴게실이 나눠져 있고, 우린 자리가 없어 앉지도 못했어요. 탈의실도 정규직은 한 명이 두 개 쓰고, 우린 두 명이 한 개 썼죠."

'일류기업' 삼성이라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처우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간접 고용'인 이들의 사정은 열악했다. 2004년 3월부터 이 곳에서 일하다 해고된 최씨는 3월 21일 금속노조에 가입해 '복직투쟁'에 나섰다. 상대는 삼성. 두렵지 않았을까? 최씨는 "두려운 걸 몰랐다"고 말했다.

"3월 28일 하이비트가 계약해지 통보가 나왔어요. 그 전부터 소문이 돌았는데, 그때 98년 삼성 SDI의 구조조정을 반대하다 해고된 송수근씨를 만났어요. '떠난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말이 가슴에 와닿았죠."

삼성의 집요한 추적과 미행... "섬뜩하다"

금속노조에 가입하는 순간, 최씨는 삼성의 '무노조 경영'과 맞닥뜨려야 했다. 최씨는 동료들과 4월 2일부터 회사 앞에서 출근투쟁을 했고, 삼성의 집요한 추적과 미행이 시작됐다.

최씨가 가는 곳마다 검은색 SM5가 따라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그는 "한적한 산으로 야유회를 갔는데, 멀리 검은색 승용차 3~4대가 기다리고 있었다"며 "손을 흔드니 그제야 도망갔다"고 말했다.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 7월 노조 결의대회를 위해 간 울산 작천정 계곡에서 따라다니던 검은색 승용차를 막아섰다. 좁은 산길이라 차는 옴짝달싹 못했다. 최씨와 동료들은 "왜 미행하느냐, 법적으로 문제가 된다"며 강하게 따졌고 차안에 있던 남자 2명은 "알겠다"고 답했다.

최씨는 "삼성SDI 간부들이 집까지 따라오고, 계속 전화를 걸어 '빨간 줄 그어질 수 있다'고 했다"고 밝혔다. 삼성의 추적은 이뿐 아니었다.

"서울에 가면 삼성SDI 노무팀에서 '서울 왜 갔느냐?'고 문자 오고, 계곡으로 놀러 가면 '물놀이는 잘 했느냐?', '감기 안 걸렸느냐?'는 문자가 와요. 어떻게 아는 건지 모르겠어요. 섬뜩해요."

"삼성을 위한 검사, 언론, 노무사... 삼성공화국임을 느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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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18일 열린 '삼성노동자 공동투쟁 결의대회'에서 삼성 비정규직 노동자, 해고자 그리고 연대 단체 회원 등 200여명이 '삼성 민주노조 건설' 팻말을 흔들고 있다. ⓒ 오마이뉴스 선대식


최씨가 검찰, 노동부 등의 국가기관이나 언론 등에 도움이 요청하지 않았는지 궁금했다.

- 언론에 보도가 많이 안됐나요?
"거의 나오지 않았어요. 한 방송사에서 카메라로 삼성SDI 정문을 찍고 있어 우리를 좀 취재해달라고 했더니 취재 안 해줬어요. 나중에 보니까 삼성SDI 구조조정에 관한 거였는데 내용도 '어쩔 수 없이 구조조정한다'는 보도였죠.

또 한 번은 권영길 후보가 울산에 와서 이랜드와 우리 농성하는 곳을 들렀는데, 보도에서는 권 후보가 이랜드와 '모 기업'에 들렀다고 나왔다. 몇몇 진보 언론을 빼면 우리의 목소리를 들어주지 않아요. 인터뷰 자체가 없죠."

- 노동부나 다른 국가기관에 안 가봤나요?
"노동부 근로감독관을 만났는데, '삼성SDI 하이비트에서 오셨죠?'라고 먼저 알아보더라고요. 그러면서 하는 말이 '회사가 어려운데, 사직서 쓰고 나가라'고 했어요. 욕하고 나왔죠.

8월부터 울산시청 앞에서 노숙 농성했는데, 그때 성추행 당해서 고발한 게 있어요. 그래서 울산지검 검사를 만났는데, '진짜 당했냐?'고 하더니 '삼성이 워낙 큰 회사고, 개인한테 안 좋은 일 일어나니까 적당히 하라'고 했어요. 삼성을 위한 검사였죠."

최씨는 이어 노무사 얘기를 꺼내며 "삼성공화국임을 여실히 느꼈다"고 담담히 말했다.

"노무사를 찾아가서 '삼성에서 왔다'고 하면 모두들 '바쁘다, 죄송하다'고 해요. 어떤 노무사는 우리 얘기 듣고는 '불법파견이고, 최저임금도 안 되고, 일이 되겠다'고 했죠. 마지막에 '삼성 SDI'라고 하니까, '바쁘다, 내일 오라'고 했어요. 그래서 이튿날 찾아가니 '삼성에서 연락 왔다, 무서운 건 아닌데 좋게 해결하는 게 낫지 않겠느냐'고 하더라고요."

삼성 직원도 1인 시위에 관심... "꼭 이길 것 같아요"

최씨는 "놀라웠다"며 "이런 세상이 어딨냐"고 분통을 터트렸다. 최씨는 "모두 삼성의 대변인이었다"고 밝혔다. 그의 목소리에는 현실에 대한 분노가 짙게 묻어났다. 말을 이었다. "우리나라 안에 삼성이 있는 게 아니라, 우리나라가 삼성 안에 있어요."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고백은 최씨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그는 "삼성 비자금은 근본적으로 노동자를 탄압해서 만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삼성이 이를 반성하고 노동자를 위해 일해야 한다"고 밝혔다.

최씨는 12월 7일을 기다리고 있다. 자신의 생일이기도 한 이 날에 금속노조 울산지부의 총파업이 예정돼 있다. 그는 "우리나라 최초로 삼성을 상대로 파업을 하는 것"이라며 의미를 부여했다. 그러면서 그는 씩씩한 어투로 "이길 것 같다"고 밝혔다.

"조합원 5명이 삼성 본관 앞에서 이건희 회장 탈 쓰고 '무노조 경영 반성하겠습니다, 비자금 조성해서 죄송합니다'는 팻말을 들고 1인 시위해요. 예전엔 절대 쳐다보지 않던 삼성 직원들도 와서 팻말을 읽어요. '맞다'는 사람도 있죠. 꼭 이길 것 같아요."
#삼성노동자 #비정규직 #삼성비자금 #삼성뇌물 #삼성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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