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전생에 한국인이었나봐!"

이리도 동동주 좋아하는 사람, 더욱이 일본인은 처음

등록 2007.12.07 11:33수정 2007.12.09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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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닥불파티에 모인 한일시민기자들. ⓒ 안소민

모닥불파티에 모인 한일시민기자들. ⓒ 안소민

1년 전, 그들의 입에서 어눌하나마 한국배우들의 이름이나 영화이름이 나올 때마다 우리는 감탄사를 늘어놓으며 신기해했다. 한류열풍을 직접 체험한 순간이었다. 낯설고 물설은 도쿄 거리의 한 면을 장식한 한국영화나 배우들의 포스터를 보며 우린 감격했다.


작년, 1회 한일시민친구 만들기 행사 동안 아쉬웠던 점은 일본 시민기자들과 함께했던 시간이 단 하루뿐이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2박3일(11월 30일~12월2일) 행사 기간 내내다. 다른 무엇보다 그 점이 가장 나를 설레게 했다.


행사 전부터 내가 취재하려고 마음먹었던 분야는 한국과 일본의 드라마와 소설 비교였다. 제목은 거창했지만 사실은 한국인은 왜 일본 드라마와 소설을 좋아하는가, 일본인은 왜 한국 드라마에 열광하는가, 예전부터 궁금했던 그 점에 대해 수다나 한판 떨어보자고 생각했다. 아마 전부는 아니지만 이번 행사를 통해 어느 정도는 궁금증을 풀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한국인보다 더 한국적인 일본시민기자 두 분


대부분 많은 일본 시민기자가 한국문화에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행사기간 내내 내 눈을 사로잡는 시민기자 두 분이 있었다.


한국드라마 이야기에 유독 눈을 반짝거리며 생글거리는 미소를 감추지 못했던 야마자키 유코상. 넌지시 한국드라마 이야기를 꺼내보았더니 기다렸다는 듯 술술 이야기하는 것을 보니 보통 좋아하는 분이 아니었다. 제일 처음에는 ‘어? 좀 하네?’ 했지만 이야기하는 걸 자세히 들어보니 이 분은 단순히 ‘좋아하는’ 차원을 떠나 한국문화만 전문적으로 취재하고 연구하는 한국문화 전문기자였다. ‘아싸~’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유코상은 근래 가장 재미있게 보았던 드라마로 <주몽>을 꼽았다. 그리고 가장 좋아하는 배우는 김상경이란다. 김상경이 나오는 영화와 드라마는 대부분 섭렵했다. <살인의 추억> <내 남자의 로맨스>까지 모두 보았다. 되려 나에게 묻는다. “소민씨는 한국배우 누구 좋아해요?” 내가 김명민이라고 하자 “아! <불량가족> 넘넘 웃겨요. 김명민, 너무 재밌어요”라며 손뼉을 치며 좋아한다. 그런데 어쩐담? 난 <불량가족>을 못 보았는데. 내가 드라마 <하얀거탑> 이야기를 꺼내자 유코상은 고개를 끄덕인다.


한국드라마가 왜 일본에서 인기가 있느냐고 묻자 유코상은 처음에는 곰곰 생각하는 표정이었다. 내가 다시 ‘그렇다면 유코상은 왜 한국드라마를 좋아하느냐’고 묻자 그녀는 주저없이 시원스레 대답했다.

 

"재밌으니까요."

 

다른 말도, 다른 이유도 필요없었다. 무조건 재미있다는 것이다. <대장금>이나 <겨울연가> 등 일본에 비교적 잘 알려진 드라마는 물론이거니와 한국에서도 그다지 큰 인기를 끌지 못했던 드라마까지 유코상은 대부분 본 듯했다.

 

그런데 그 드라마들이 한결같이 유코상의 마음을 끌었던 이유는 단연 재미있다는 이유 하나였다. 한국드라마가 왜 재미있느냐고 물어보는 내 물음에 이번엔 유코상은 난처한 표정이었다. 물론 한국드라마가 재미없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그것이 어떻게 일본인의 마음을 사로잡았는지가 궁금했다.


한국드라마를 잘 보지 않는 이유 중 하나로 신데렐라 이야기나 재벌2세들의 이야기, 불치병 등 너무 뻔한 소재를 남발하기 때문이라고 내가 이야기하자 유코상은 이렇게 대답했다. “물론 그런 면도 없잖아 있어요. 그런데 각 드라마마다 갖는 재미와 매력이 다 있어요.” 게다가 한국배우들의 연기가 너무 훌륭하다고 유코상은 덧붙였다.


한국드라마 보며 한국어 배우는 유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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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코상의 명함. 이름 위에 'korean Culture Writer'라는 직함이 퍽 당당하고 멋져보인다 ⓒ 안소민

유코상의 명함. 이름 위에 'korean Culture Writer'라는 직함이 퍽 당당하고 멋져보인다 ⓒ 안소민

유코상은 한국말을 매우 잘했다. 그런데 더욱이 놀라운 것은 그녀가 오로지 한국드라마와 영화를 통해 한국말을 배웠다는 사실이다. 그 말에 나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존경스럽다고 할 밖에. 오죽하면 이메일 주소도 ‘윤자’다. ‘유코’를 한국어로 하면 ‘윤자’가 되기 때문에 이메일 주소를 그렇게 정했단다. 이즈음 되면 그녀의 한국 사랑을 짐작할 만하지 않은가.


한국어 어렵지 않느냐는 우문에 유코상은 ‘어렵긴 해도 재미있다’고 했다. 그렇다! 무조건 재밌다, 좋다는 데 다른 이유는 필요없다. 옛말에도 있지 않은가. ‘천재는 노력하는 자를 이기지 못하고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기지 못하나니.’

 

지금껏 한국에 수차례 와보았다고 한다. 파주출판도시에도 가보았고 2002 한일월드컵 응원차 울산에도 가보았다고 한다. 전주는? 아직이라고 한다. 전주에도 볼 것이 많고 먹을 게 많다고 설명을 해주니 취재차 꼭 한번 오겠다며 자세한 위치를 묻는다. 머잖아 전주에서 콩나물국밥을 맛있게 먹을 유코상의 모습을 떠올려 본다.


또 한 분은 콧수염을 멋들어지게 기르신 아키라 상이었다. 이 분은 한국 술을 무척 좋아했다. 처음엔 그저 술을 조금 좋아하는 일본인 정도로 생각했다. 그런데 동동주를 마시면서 ‘쓰고이’(훌륭하다) ‘오이시’(맛있다)를 감탄사처럼 연발하는 것을 보았다. 그 역시 처음에는 그냥 으레 하는 말인 줄 알았으나 이틀밤 자정이 넘어서까지 함께 술자리를 해본 결과 그것은 그냥 인사치레가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다.

 

나중에는 맥주와 소주, 동동주를 한자리에 놓고 번갈아 마시는데 마치 굉장한 보물을 옆에 둔 듯 굉장히 흐뭇해 했다. 그는 진정 한국 술을 ‘즐기는’ 듯 보였다.


한국인도 못 따라잡는 아키라상의 '돈돈주'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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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키라상의 귀여운 표정. 이 표정에는 동동주의 힘이 숨어 있다. ⓒ 안소민

아키라상의 귀여운 표정. 이 표정에는 동동주의 힘이 숨어 있다. ⓒ 안소민

아키라상은 한국이 처음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번에 와서 맛본 한국 술맛은 단연 잊을 수 없다고 한다. 특히 동동주의 맛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일본에도 그와 비슷한 술이 있긴 하지만 그 맛은 아니라 했다.

 

집 근처에 있는 마트의 한국식품코너에서 막걸리는 자주 애용하긴 하지만 그 역시 이 맛은 아니라 했다. 더욱이 그날 술자리에 나온 동동주는 강화도의 특산품인 인삼 막걸리였다. ‘어떻게 하면 이 맛이 나오느냐’고 묻는데 그저 웃을 수밖에 없었다. 설령 내가 아무리 일본어를 잘한다 해도 과연 설명할 수 있었을까. ‘많이 드세요’라고 할밖에.

 

이 분은 평소 집근처의 마트 한국식품 코너에서 한국음식을 많이 즐긴다고 했다. 집에서도 한국 음식을 자주 만들어 먹는다고 했다. 매운 것을 잘 못 먹는 딸아이를 위해 맵지 않은 김치볶음밥을 만드는 법까지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요즘은 <대장금>을 열심히 보는데 볼 때마다 아주 곤혹스럽단다. 이유는 당연히 거기에 등장하는 진수성찬 때문이다. 볼 때마다 먹고 싶어 죽겠단다. ‘아키라상, 완전 공감해요. 저도 그랬거든요.’

 

일본 시민기자들 대부분이 그렇듯 이 분 역시 자신만의 ‘무기’가 있었다. 이 분은 인터넷 사이트를 만들어서 운영하고 있다. 대부분 교육이나 사회문제를 다룬 웹사이트를 만들어서 문제점을 토론하고 이에 그치지 않고 자원봉사활동으로 이어지는 여러 일들을 하고 있다.

 

그가 운영하고 있는 사이트만 해도 30여 개가 된다. 텔레비전보다는 컴퓨터와 더 친하다는 아키라상은 그 일을 통해서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우리가 대단하다고 손뼉을 치자 아키라상은 툭 한마디 한다. "돈돈주(동동주)가 더 대단해요."(역시 항상 결말은 동동주)


정말 마음같아서는 가시는 길에 동동주를 선물로 싸드리고 싶었다. 동동주를 그렇게나 맛있게 먹는 사람을 아직껏 보지 못했다. 내가 당신은 전생에 한국인인 것 같다고 하자 과연 그렇다며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나는 알지만 그들은 모르는 것, 혹은 그들은 알지만 나는 모르는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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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조약이 체결되었던 연무당 옛터. 그러나 이곳에는 을씨년스런 과거만 있는 것은 아니다. 과거와 더불어 밝은 미래도 있다. 연무당옛터에서 화기애애한 한 때를 보내는 젊은 한일젊은이들의 미소가 바로 그렇다. ⓒ 안소민

강화도조약이 체결되었던 연무당 옛터. 그러나 이곳에는 을씨년스런 과거만 있는 것은 아니다. 과거와 더불어 밝은 미래도 있다. 연무당옛터에서 화기애애한 한 때를 보내는 젊은 한일젊은이들의 미소가 바로 그렇다. ⓒ 안소민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한가지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했다. 나는 한국문화에 정통한 그들을 보면서 놀라고 그들은 일본문화에 흥미를 가지고 있는 나를 보며 신기해했다. 한마디로 서로서로 신기해 했다는 이야기이다.


드라마와 관련, 내가 최근에 본 일본드라마 이야기를 꺼내자 유코상은 자못 의아스럽다는 표정과 알 수 없는 신기함을 감추지 못했다. 내가 일본드라마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 소재와 주제가 다양하기 때문이다. 물론 한국드라마처럼 가슴을 후벼파는 애잔하고 진득한 정서는 없지만 가끔은 삶을 약간은 관조적으로, '쿨'하게 바라보는 그들의 정서가 퍽 신선할 때가 있다.


그러나 유코상은 그렇지 않다고 했다. 너무 재미없다는 것. 게다가 일본인들의 연기도 ‘별로’라고 했다. 한국드라마가 갖고 있는 옹골진 재미에 비하면 일드(일본드라마 약칭)는 아직 따라오기 힘들다는 것이다.


아키라상과는 일본문학에 관한 이야기를 했는데 50대인 그의 연령을 감안하더라도 요즘 한국 젊은이들에게 많은 인기를 끌고있는 ‘온다 리쿠’나 ‘기모노 나쓰오’ 등은 잘 모르는 듯 갸우뚱해 보였다. 특히 ‘에쿠니 가오리’나 ‘요시모토 바나나’는 자국에서는 오히려 그 인기가 덜하다는 게 그의 의견.(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아키라상의 견해다)


오히려 그가 좋아하는 작가는 일본 근대 동화작가이자 농촌운동가였던 ‘미야자와 겐지’다. 그의 원작으로 만든 애니매이션 <은하철도 999>가 한국에서 굉장히 있기 있었으며 나 역시 초등학생 시절 무척 즐겨보았다고 말하자 그는 고향사람을 만난 것 만큼이나 반가워했다. 그리고 미야자와 겐지에 대해 설명을 해주었다.


양국의 역사, 몰라도 너무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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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해설사의 설명을 열심히 듣는 한일시민기자들. 기자들 뒤편에 있는 안내판은 역사의 한 장면(강화도 조약)을 설명해놓은 것. 그러나 너무 미약했다. ⓒ 안소민

전문해설사의 설명을 열심히 듣는 한일시민기자들. 기자들 뒤편에 있는 안내판은 역사의 한 장면(강화도 조약)을 설명해놓은 것. 그러나 너무 미약했다. ⓒ 안소민

한가지 아쉬운 점은 한국소설 이야기는 아예 꺼내보지도 못했다는 점이다. 일본 내에서 한국드라마나 영화는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듯 하나 그 밖의 문화는 '아직'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다. 특히 서로의 역사는 차라리 ‘무지’라는 표현이 어울릴 듯.

 

강화도 역사탐방을 다녀온 뒤 그날 밤 술자리에서 서로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꼭 이런 주제를 술자리를 빌려서 해야만 하는 이유도 서로의 역사에 대한 껄끄러운 태도때문인지도 모른다)

 

결론은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것이었다. 서로의 역사에 이처럼 무지할 수 있을까. 아키라상은 강화도조약이나 그밖의 근대역사 사실을 오늘 여기에 와서 처음 들었다고 했다. 교과서에도 실리지 않았다고 한다. 잠깐 분개했지만 사실 우리도 그럴 처지는 못되었다. 우리는 일본의 고대사나 현대사에 대해 얼마나 배웠던가.


새삼 일본이 가까우면서도 먼 나라라는 사실이 가슴에 와 닿았던 순간이었다. 그러나 더 이상 멀기만 한 나라는 아니다. 그들의 한국드라마 열풍과 동동주 사랑을 확인한 순간 또는 한국 젊은이들의 가슴에 ‘꽂힌’ 일본드라마 정서를 공감할 수 있던 그 순간부터 일본과 한국은 참으로 가까운 나라가 되었으니.


그나저나 오늘부터 한국드라마를 잘 챙겨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야 다음에 유코상을 만나면 한국드라마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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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오후의 인사동거리. 이번 행사의 마지막 순서였다. 일본어 통역이 가장 필요한 곳이기도 했다. 몸짓 손짓 발짓 서투른 영어로나마 인사동을 소개했으나 그들이 이해했을지는 과연.... ⓒ 안소민

일요일 오후의 인사동거리. 이번 행사의 마지막 순서였다. 일본어 통역이 가장 필요한 곳이기도 했다. 몸짓 손짓 발짓 서투른 영어로나마 인사동을 소개했으나 그들이 이해했을지는 과연.... ⓒ 안소민
#한일시민 친구만들기 #시민기자 #한류 #한국드라마 #동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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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픈 것은 삶이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도스또엡스키(1821-1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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