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가 봉이니?" VS "누가 내랬어?"

데이트 비용 주로 남자 지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등록 2007.12.07 21:37수정 2007.12.11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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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산대 앞에 선 남과 여. 남자친구가 계산을 위해 카드를 내밀고 여성은 뒤에서 남자친구의 계산이 끝나길 기다리고 있다. ⓒ 이관식


대학생 L(25세)씨는 최근 처음 사귄 여자친구와 식당에서 크게 다퉜다. 식사를 마친 뒤 계산하는 그의 뒤에서 가만히 있었다는 것이 그 이유. L씨가 돈을 좀 내라고 하자 여자친구는 "남자가 째째하다"며 짜증을 냈다. 결국 계산을 마치고 밖에서 크게 '한판'했다는 L씨는 "학생 입장에서 혼자서만 데이트 비용을 내려니 부담이 만만치 않다"며 "가끔은 계산대 앞에서 나몰라라하는 여자친구가 원망스럽다"고 토로했다.

돈 나가는 거 무서워 연애 하겠나

말을 꺼내자니 껄끄럽고 참자니 속상한 문제. 데이트 비용을 둘러싼 남녀간의 불편한 속내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지금까지는 남성이 주로 비용을 부담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졌다. 하지만 나날이 오르는 물가 속에서 대부분의 남성들은 데이트 시 남성이 많은 비용을 내는 것에 대해 부담을 느끼는 모습이다.

결혼정보회사 듀오에서 미혼남녀 72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남성의 절반인 49%가 남성 위주 데이트 비용지출을 '생활 속의 성차별'로 보았다. 반면 같은 조사에서 여성은 18%만이 그렇다고 대답했다. 남녀 간의 인식 차이가 드러나는 부분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아예 연애를 포기하는 젊은이도 생기고 있다. 강남에 거주하는 대학생 P(24세)씨. 그는 대학 신입생 시절 경험한 몇 차례의 소개팅 자리에 대해 "주로 내가 밥을 사면 상대편에서는 커피를 사는 식이었다"며 "서로 번갈아가며 계산을 하더라도 레스토랑에서의 식사 등 돈이 많이 나갈 때에는 내가 돈을 냈다. 결국 매번 데이트에서 대부분의 비용은 내 부담인 셈"이라고 말했다. 그는 당시 기분에 대해 "돈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매번 나만 계산을 하니 손해를 보는 느낌이었다"며 "이런 문제로 신경 쓰기 싫어 연애를 하지 않는다"고 털어놓았다.

남녀간의 계산 황금비는 7:3?

실제 계산대 앞에서의 상황은 어떤 모습일까? 실제 데이트 비용 '지출 불균형'이 어느 정도인지 알아보기 위하여 대학로의 한 유명 커피 체인점을 찾았다. 오후 3시부터 7시까지 계산대에 가까운 테이블에 앉아 같이 온 남녀를 대상으로 둘 중 누가 계산하는지 살펴보았다.


결과는 인터뷰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카운터에서 이루어진 총 계산횟수 81회 중에서 63회를 남성이 계산하여 전체 비율의 78%에 이르렀다. 남녀가 함께 온 경우, 여성이 테이블에 앉아 있는 가운데 남성 혼자 카운터로 나가 계산하는 모습이 많았다.

반면 함께 나누어 내는 경우는 가장 적은 6회로 7%에 그쳤다. 여성이 계산을 치른 횟수는 12회(15%)였다. 한편 여성끼리 온 경우에는 예외 없이 더치페이를 하는 모습이었다. 남녀가 함께 온 경우와 대조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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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데이트 비용을 더 부담하는지 자체 조사해 보았다. 남자가 더 부담한다는 대답이 대다수였다. ⓒ 이관식


서울소재 한 대학의 커뮤니티에서 자체 조사한 결과도 마찬가지였다. 이 대학 재학생들을 대상으로 '데이트 시 비용부담은 누가 하나'를 주제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한 학생 216명 중 66%에 해당하는 143명이 '남성이 더 부담한다'고 대답했다. 반면 '비슷하게 부담한다'는 대답은 27%에 그쳤다.

관습의 블랙홀, '원래 그래 온 거잖아'

이런 현상의 원인에는 '남자가 돈을 쓰는 게 당연하다'는 고정관념이 자리잡고 있다. 여기에 한국식 '한턱 문화'가 가미된다. 실제로 대학생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미팅이나 소개팅의 경우 처음 만남에서 남학생 측이 모든 비용을 부담하는 것이 관례다. 기성세대의 반응 역시 마찬가지였다.

대학로에서 만난 한 50대 남성은 데이트 비용의 대부분을 남성이 부담하는 현상에 대해 "당연하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그는 "내 아들이라 해도 당연히 데이트 비용을 전액 부담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연장자가 돈을 쓰는 문화도 다른 원인으로 꼽을 수 있다. 보통의 남녀 사이에서 남성이 여성보다 나이가 많은 점을 생각하면 남성 위주 비용지출은 당연한 결과인 셈이다. 즉 '오빠가 돼서는 얻어먹을 수야 없다'는 얘기다. 어설픈 객기 같아도 여기엔 나름의 이유가 있다. 나이가 많을수록 능력이 있으니 더 부담하자는 것이다.

회사원 유동민(29)씨는 "예전에 사귀었던 모든 여자친구와 데이트 때마다 7:3 정도로 내가 많이 내는 편이었다"며 "하지만 대부분 나보다 어렸고 학생인 경우가 많았다. 여유 있는 쪽에서 내는 것이 당연하다"며 문제없다는 반응이었다.

"누가 내랬어?" 여성들의 이유 있는 항변

남성들의 불만에 대해 여성들은 엇갈리는 반응을 보였다. 대학생 장진경(28)씨는 "예전에 직장인일 때에는 반반씩 부담하는 편이었다"면서 "다시 대학에 다니면서부턴 데이트 비용의 대부분을 남자친구가 부담하고 있다"고 밝혔다. 장씨는 돈을 많이 쓰는 남자친구에 대해 항상 미안한 마음이라고 말했다. 회사원 K(24)씨는 "둘 다 버니까 절반씩 부담한다"며 "동등하게 내는 것이 합리적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반면에 불만을 쏟아내는 여성도 있다. 데이트 비용 문제로 남자친구와 크게 싸운 경험이 있다는 여대생 S(24)씨. "나눠서 계산하자는 데도 만류하며 괜히 허세를 부리는 남성 역시 문제"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여성 역시 "남자 친구가 나한테 돈을 써야 한다는 의무감이 있는 것 같다"며 "매번 받는 입장이지만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라고 밝혔다.

소개팅을 자주 한다는 대학생 C(23)씨는 "항상 계산을 안 하다 보니 상대 남성이 사주는 게 당연하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고 말했다.

'돈 써야' 즐길 수 있는 문화부터 바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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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들이 즐겨찾는 한 외국계 커피전문점. 대다수 커피전문점의 커피 가격은 1잔당 평균 5000원에 달한다. ⓒ 이관식


'자신의 데이트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젊은층의 대답은 한결 같았다. 지나치게 소비 지향적이라는 것이다. 김유리(24·서울시립대)씨는 "만나면 밥 먹고, 커피 마시고, 영화를 보는 등 데이트 모든 과정이 소비활동에 집중되어 있다"고 말했다. 김범준(24· 세종대)씨 역시 "여자친구를 만나도 딱히 할 일이 없다"며 "밖에서 함께 뭔가를 하려면 결국 돈을 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한 결혼정보업체의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연인들의 데이트 비용은 1회당 7만 2000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구인구직 포털사이트 알바몬에서 조사한 결과 대학생들 한 달 평균 용돈은 31만여 원에 불과했다. 돈도 없으면서 '써야 하는' 데이트를 하니 비용 문제가 불거지는 것이다.

이화여대 여성학과 김은실 교수는 "남성이 데이트 비용을 주로 지출하는 데에는 경제력 있는 남성을 선호하는 사회적 관행이 반영되어 있다"며 "남녀 모두 비슷하게 부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밝혔다.
#데이트 #더치페이 #연애 #관습 #고정관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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