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인은 증거를 남긴다

[붓 한 자루1] 증거, '지울 수 없는 흔적'를 곱씹어보다

등록 2007.12.14 15:39수정 2007.12.14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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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기록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하는 한 광고 문구가 있었다.

 

“기억력을 믿지 마라, 기록을 믿어라! 기록은 기억보다 강하다.”

 

‘기록하지 않은 것은 기억되지 않는다’는 말을 생각나게 하는 이 문구를 나는 요즘 틈틈이 곱씹고 있다. 지금 쓰는 이 글도 언젠가 내가 살아온 길, 생각 등 ‘그때 그 시절 그리고 나’를 기억하는 ‘증인’이 될 게다. 그러고 보니, 요즘 한창 증인이니 증거니 하는 말들로 한국 사회가 시끄럽다.

 

증거,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기다

편지는 물론 그날 그날 하루 일들을 적은 일기도 꽤 많이 보관하고 있다. 순수한 시절이라 그랬는지(지금은 아닌가, 묻기도 전에 괜스레 멋쩍다), 날 가르치신 분에 대한 예의를 무척 중요하게 여기던 어린 시절, 그 고민이 얼마나 심했는지 결국 ‘지울 수 없는 흔적’으로 남아 이제는 지우고 싶지 않은 내 삶이요 생각이요 보물이 되었다.

 

그날 일기 제목은 <‘선생’과 ‘선생님’>이었다. 내용은 한 마디로 ‘선생’이라는 호칭 대신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써야 한다는 주장성 글이었다. 이유는? 이유는 꽤 분명하다. (물론 나름대로 논리적이라는 사실을 알아주기 바란다. 진짜다!) 뒷말이 더 아니 진짜 높임말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굳이 그렇게 꼬집어 말할 일이 아니었는데 그랬다.

 

‘선생’과 ‘선생님’을 두고 혼자서 고민하던 흔적을 남긴 지 약 5-6년 후 나는 덧붙이는 말을 남겼으니, 그것은 두 번째 증거였다.

 

“99.12.2 지금 이 글을 다시 읽어보면 순수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쓸데없는 말장난 같기도 하다. 사실 ‘선생’이란 말 자체가 경어인데… 여하튼 사제간의 정이 없어 삭막한 교육 환경이 되어가는 요즘 세태가 걱정스러울 뿐이다.”

 

후후, 뭐가 그리 걱정스러웠을꼬. 무엇이 또 그리 삭막했을꼬. 게다가 교육 환경 얘기는 또 무엇인가. 다시 봐도 우습고 멋쩍고 쑥스럽고 미안하고 창피하기까지 하다. (그러면서 두 번째 증거를 남기긴 왜 남겼는지 모를 일이다.) 그러면서도 지금 나는 또 다른 증거를 남기고 있으니, 세 번째 증거인 지금 이 글이다.

 

날짜도 뚜렷하게 박아놓고 두 번째 읽은 글임도 환히 밝혀놓은 두 번째 증거. 괜히 썼다 싶을 만큼 미울 때는 덧니처럼 보이는 그 ‘미운 오리’가 지금 같은 때에는 ‘아름다운 백조’가 따로 없다.

 

이제는 빼면 오히려 더 못나 보이고 아프기도 해서 오히려 더 소중히 여기고 다듬는 그 뚜렷한 증거 하나, 둘, 셋. 두 번도 아닌 세 번이나 되는 증거라면 굳이 뭘 더 묻고 확인하겠는가. 한 번도 아닌 두 번째 증거 앞에서는 되돌릴 일이 아니고 차라리 빼도 박도 못할 만큼 확실히 해 두는 게 좋다. 한 번이면 모를까, 두 번이나 되새김질한 글을 내팽개치는 것은 그 어떤 ‘증거인멸’보다 더 큰 잘못이다.

 

그런데 요즘 너도 나도 ‘증거’며 ‘증인’과 같은 말을 마치 공을 주고받듯 이리저리 넘기고 있다. 기록이란 ‘지울 수 없는 흔적’인데, 그 흔적을 지운다고 해 봐야 오히려 두 번째 아니 빼도 박도 못할 세 번째 증거를 남기는 일이 되지는 않겠는가!

 

평범한 어떤 이들처럼 평범하기 그지없는 나도 짧은 글 한 편 쓴 것에 부끄러워하고 그걸 다시 읽고 내버리지 않은 것도 부끄러워하고 나중에는 지우려 한 것도 부끄러워하는데, 또 다른 어떤 이들은 왜 그리 ‘지울 수 없는 흔적’들을 애써 지우려 할까. 더 진한 흔적만 남고 말 텐데 왜 더 손때를 묻힐까.

 

그날 일기에서 첫 번째 증인은 일기를 쓴 나 혼자였지만 두 번째 증거는 나를 보는 또 다른 나가 있어 증인이 둘이 되었다. 그리고 세 번째 증인인 이 글은 말 그대로 온 세상 사람에게 드러났다. 무엇을 더 감추고 무엇을 변명하리, 차라리 말을 아껴 삶을 되찾을 일.

덧붙이는 글 | '붓 한 자루' 들고 차곡차곡 우리네 삶을 이야기 하렵니다.

2007.12.14 15:39 ⓒ 2007 OhmyNews
덧붙이는 글 '붓 한 자루' 들고 차곡차곡 우리네 삶을 이야기 하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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