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희망봉에서 아프리카의 희망봉으로

[내가 만나 아프리카 65] 케이프타운의 밤을 울린 앙골라 소년병 영화

등록 2007.12.26 21:23수정 2007.12.26 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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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봉 투어에 오르다

다음날은 일반 여행객들이 즐기는 케이프 반도 투어에 나섰다. 남아공의 최남단이라는 희망봉과 펭귄 해변, 포도주 농장 등을 둘러보는 하루짜리 패키지여행이다. 하루에 걸쳐 케이프타운 주변의 가장 아름다운 곳을 골라 보는 프로그램이다. 홀로 배낭 여행하는 경우에는 교통수단과 시간, 비용 등을 고려해 단체로 여행을 하는 투어에 참여해야 하는 상황이 있는데, 케이프 반도 투어가 바로 그렇다.

케이프 투어를 하는 미니버스는 아침 일찍부터 시내 곳곳의 여행객 숙소인 게스트하우스와 호텔 등을 돌면서 예약한 손님들을 태웠다. 나도 전날 전화로 투어회사에 예약을 했다. 20인승 미니버스는 시그널 힐을 넘어 씨 포인트 지역에 있는 리츠호텔에서 젊은 백인 부부를 마지막으로 태우자 20명 정원이 꽉 찼다. 여행객을 태우는 데 한 시간이 걸린 미니버스는 오전 9시께 케이프타운 시내를 빠져나갔다.

안내자는 60대 후반의 백인 할아버지였다. '하인'이라는 이름의 백인 할아버지는 이어폰 마이크를 쓰고 설명했다. 나이가 들었지만 일 자체를 즐기니 성실하고 일에 열정이 넘쳤다. 할아버지의 설명에는 역사적 지식과 지리, 삶 속의 경륜, 경험이 묻어난다. 에티오피아 악숨의 유적지를 설명하던 할아버지 안내인이 생각났다. 백인 할아버지의 해박한 설명으로 나는 차를 타고 가면서 눈으로는 구경하고, 귀로는 들으면서 즐거운 여행을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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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프스 베이 해변과 12사도 봉우리(뒤쪽 산봉우리) ⓒ 김성호


인상파 화가의 그림 같은 캠프스 베이와 12사도 봉우리

씨 포인트의 해변길이 아름답다. 젊은 여자들이 해변 길을 따라 조깅을 하고 남자들은 단체로 자전거 하이킹을 하면서 달린다. 해변의 아름다운 모습과 아침의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조깅을 하고 자전거를 타는 사람을 보니 내 기분마저 상쾌하다. 화강암 바위가 해변을 네 곳의 모래사장으로 나눈 클리프턴 해변을 지나 우리 차량이 선 곳은 캠프스 베이 해변이다. 바닷가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대서양의 바다는 환상적이다. 오른쪽은 하얀 바위해변이고, 왼쪽은 하얀 모래 해변이다.

모래 해변 뒤로는 12개의 높은 바위산이 솟아있는데, 예수 그리스도 12제자의 이름을 따서 '12사도 봉우리'라고 부른다. 어떤 제자는 얼굴이 뾰족하고 다른 제자는 둥글고, 그 옆의 제자는 울퉁불퉁하고 12제자가 모두 생김새가 다른데, 다른 모습을 한 12사도 봉우리가 나란히 어깨동무를 하고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다. 해변에 낮게 깔려 있던 하얀 안개가 바람에 실려 올라가다 12사도 봉우리의 중간에 구름이 되어 머문다.

산허리를 휘감고 있는 하얀 구름은 마치 아름다운 여인이 짙푸른 바다 속에서 알몸으로 목욕을 한 뒤 수건을 허리에 걸치고 있는 모습이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위아래로 춤추는 구름과 여인의 허리가 뒤섞인 곡선의 흐름이 나의 눈을 빨려들게 한다. 해변을 따라 줄지어 선 하얀색의 카페가 바다와 어울리자 네모난 액자 속으로 들어가 한 폭의 인상파 화가의 그림으로 다가온다.

캠프스 베이 해변을 지나 꺾어진 길을 돌아가자 왼쪽 산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내려온다. 햇빛가리개가 없는 둥근 이슬람 모자와 히잡을 쓴 1백여 명의 남녀 이슬람교도들이다. 모두 다 인도네시아나 인도계 사람들이다. 일요일이라 예배는 아닌 것 같고, 무슨 행사가 있나 보다. 기독교는 안식일을 일요일로 하지만, 유대교는 토요일로 하고 이슬람은 금요일을 안식일로 하기 때문이다.

에티오피아와 탄자니아의 다르에스살람, 잔지바르, 남아공과 마다가스카르를 여행하면서 금요일 정오가 되면 이슬람 사원에서 흘러나오는 예배시간을 알리는 소리인 '아잔'을 들었다. "하이야 알랏 쌀라(어서 예배드리러 오시오)"라는 아잔의 낭송소리는 마치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부르는 소리 같다.

해변의 교차로에 이르러 앞서가는 자전거가 오른쪽으로 도는 데 손 신호가 재미있다. 자전거를 타고 가는 사람이 왼손으로 자전거 손잡이를 잡고 오른손을 오른쪽으로 길게 활 모양으로 내밀어 우회전 신호를 보낸다. 자동차의 신호등 대신 손으로 뒤따라오는 차량에 방향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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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귄 서식지인 볼더스 비치로 내려가는 길의 핀쿠션 프로테아 꽃 ⓒ 김성호


고래가 춤추는 케이프 반도 바닷가

해안가를 따라 달리는 도로는 빅토리아 드라이브 거리이다. 후트(하우트) 베이로 넘어가는 작은 산길에는 푸른 나무들이 우거지고, 티크 베리(Tick Berry)라는 이름의 데이지처럼 노란 꽃이 활짝 피었다. 해변을 달릴 때와 또 다른 풍경을 선사한다. 작은 산을 넘으니 산 아래로 아담한 집들이 해안가를 따라 들어서 있고, 바다에서 깊숙이 육지로 들어와 있는 해안 인 후트 베이(Hout Bay, 또는 하우트 베이)다.

후트는 네덜란드어로 나무라는 뜻인데, 옛날에 이곳에 나무가 많았기 때문이다. 후트 베이를 지나면서는, 정말 세계 최고의 드라이브 코스의 하나라는 찬사가 부족하지 않은 채프먼스 피크 드라이브 해안도로를 달리는 기쁨을 느낄 수 있다. 해안선의 절벽을 따라 둥글게 돌아가는 채프먼스 피크 드라이브 도로는 아찔한 장면과 옆에서 바위를 깎아 들어가 반터널식으로 만든 도로가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만들어준다.

우리 차량은 아프리칸스어로 북쪽 코너라는 뜻인 누르트후크(Noordhoek, 노드혹)와 작은 분지라는 뜻의 코메키(Kommetjie) 해안가를 지나 스카보로(Scarborough) 해변에 이르자 잠시 멈췄다. 안내자인 백인 할아버지가 바다를 가리키며 "고래를 봐라"고 한다. 500m 정도 떨어진 바다에서 두 마리의 고래가 헤엄을 치고 있었다. 한 마리는 덩치가 크고, 다른 고래는 아기고래같이 작다. 푸른 바다에서 고래의 등이 보였다 사라졌다 한다. 마치 고래가 허리춤을 추는 듯하다. 그렇게 가까운 해안가에서 고래를 볼 수 있다는 것이 놀랍다.

바다와 멀어져 내륙으로 조금 달리자 초원이 나타나고 영양이 풀을 뜯고 있다. 길가에 3마리의 원숭이 가족이 웅크리고 앉아 서로 이를 잡아주고, 새끼 원숭이는 옆에서 이를 지켜보고 있다. 여행객이 사진을 찍자 새끼가 암컷의 배 밑에 거꾸로 매달려 숨는다. 그 앞에는 30~40마리의 원숭이가 떼를 지어 행군하듯 도로 양옆을 걸어간다. 안내자인 백인 할아버지는 "원숭이가 일요일 아침 단체산책을 나온 것 같다"고 말한다. 희망봉 자연보호구역을 지나고 있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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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프포인트 전망대 오르는 길(산 정상의 둥근 건물이 희망봉 등대) ⓒ 김성호


더 이상 갈 수 없는 케이프포인트에 서다

왼쪽으로는 타조 농장이 있어 차를 타고 타조를 볼 수 있다. 안내자는 "5km만 더 가면 희망봉의 케이프 포인트가 있다"고 말한다. 희망봉의 케이프포인트 가는 길은 어지간한 사파리 못지않다. 남아공의 최남단이라는 희망봉의 케이프포인트로 차는 달린다. 오른쪽으로 희망봉 가는 길이 샛길로 빠지고, 계속 직진으로 해안가 언덕길로 달려가면 케이프포인트에 다다른다. 케이프포인트 입구에 도착한 것은 오전 11시. 희망봉에서 바다 쪽으로 송곳처럼 쭉 뻗어나간 끝이 케이프포인트다.

희망봉과 디아스 포인트를 모두 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는 곳이 바로 케이프포인트(Cape Point)라는 작은 절벽의 정상이다. 남아공에서는 바다의 가장 앞쪽으로 튀어나온 뾰족한 지점이나 산의 가장 높은 지점을 '포인트'라고 부르는데, 케이프포인트는 바로 바다로 튀어나온 육지인 '케이프(곶)'의 가장 끝 부분을 말한다.

케이프타운에는 베이(Bay,만)와 케이프(Cape,곶)라는 지명이 많은데, 육지가 바다 속으로 가라앉으며 생긴 골짜기는 만이라고 하고, 바다 위로 들어난 산줄기는 반도(Peninsula)나 곶이라고 한다. 바다로 튀어나온 곶의 크기가 크면 반도라고 부른다. 케이프포인트는 케이프반도의 맨 끝 부분이다.

케이프 포인트 전망대에는 등대가 서 있다. 멀리 해안가를 향해 홀로 우뚝 솟은 등대가 나를 부른다. 케이프 포인트 입구에는 기념품점과 식당이 있다. 왼쪽으로 궤도버스가 정상의 등대 바로 밑까지 32랜드에 운행하고, 오른쪽으로는 걸어 올라가는 길이 있다. 안내자는 마음껏 구경을 하고 오라며 자유 시간으로 40분의 여유를 준다. 나는 걸어서 올라가기로 했다.

걸어서 올라가는 길 입구에 "동경 18도 29분 51초(18° 29’ 51”), 남위 34도 21분 24초(34° 21’ 24”)"라는 팻말이 서 있다. 전망대로 올라가는 산길 옆으로는 아프리카 데이지의 일종인 해안수풀엉겅퀴(Coastal Bush thistle, Cullumia squarrosa)의 노란 꽃이 활짝 피어있고, 핀보스의 일종인 프로테아와 케이프히스라 불리는 에리카(Erica) 나무가 푸르게 자라고 있었다.

대서양의 바다를 바라보며 전망대로 올라가니 해발 249m의 케이프포인트 정상에 1860년 설치한 등대가 여행객을 맞는다. 전망대에 오르니 정말 더 이상 갈 수 없는 땅 끝이다. 동부 아프리카 에티오피아에서 최남단인 케이프포인트까지 힘차게 달려왔다. 한 발짝만 더 내디디면 바로 절벽이고 그 절벽 아래로는 끝없는 푸른 바다가 펼쳐져 있다. 앞을 봐도, 좌우를 둘러봐도 모두 바다뿐이다. 나는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을 수밖에 없다. 케이프 포인트는 땅끝이고 바다가 시작되는 곳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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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스포인트에 설치한 새로운 등대(바다 쪽 절벽에 설치된 둥근 건물) ⓒ 김성호


케이프포인트의 전망대가 옮긴 이유

전망대에는 "남극 6248km, 뉴욕 1만2541km, 뉴델리 9296km" 등 뉴욕과 도쿄, 부에노스아이레스 등 전 세계 주요 항구도시의 방향과 거리가 표시되어 있다. 많은 여행객들이 등대와 그 방향표지판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는다. 희망봉의 등대로 알려진 이 전망대의 등대는 엄밀히 말하면 옛 등대이다. 현재는 케이프포인트 보다 아래쪽 바다 가까이에 새로운 등대가 설치되었다.

1488년 바르톨로뮤 디아스가 첫 발을 내디뎠던 '디아스포인트(Dias Point)'에 아프리카에서 가장 밝은 등대가 1919년 새로 설치되어 오늘날까지 대서양과 인도양을 항해하는 선박들의 나침반 역할을 하고 있다. 옛 등대는 디아스포인트에 새로 설치한 등대에 그 역할을 넘긴 채 역사적 기념물이자 관광지로 남아 있다. 디아스포인트에 새로운 등대를 설치하게 된 이유는 전망대 입구의 옛 등대에 표지판이 붙어 있다.

"해발 249m의 케이프포인트 정상에 세운 이 철제탑 등대는 2000 촉광의 빛으로 67km 전방의 바다에서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이 등대는 자주 구름과 안개에 가려 효율적이지 못하다는 것이 드러났다. 1911년 포르투갈의 정기선 '루시타니아'호가 좌초된 후, 해발 87m의 디아스포인트에 현재의 등대를 새로 세우기로 했다."

디아스포인트라는 해안가 바위에 부딪혀 선박이 좌초하는 등 사고가 자주 일어나자 아예 등대를 바다 쪽의 삐죽 튀어나온 디아스포인트에다 새로 설치했다는 설명이다. 디아스포인트에서 바다로 뛰어들어 끝없이 헤엄쳐 가면 남극에 다다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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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프포인트에서 내려다본 희망봉 ⓒ 김성호


희망봉은 우리에게 무슨 의미로 다가오나

케이프포인트에서 대서양 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바로 아래에 그 유명한 희망봉이 보인다. 케이프포인트의 옆 자락에 낮게 삐죽 튀어나온 곳이 희망봉이다. 케이프포인트와 희망봉은 거리로 2km이다. 우리에게 '희망봉'으로 알려진 곳은 '케이프 오브 굿 호프(Cape of Good Hope)'로 엄밀히 말하면 '희망곶'이다.

우리 선조들이 '희망곶'을 '희망봉'으로 표현한 것은 기쁨과 희망을 안겨주는 '봉우리'라는 말이 갖는 상징적 의미 때문이다. 높은 산의 봉우리에서 희망을 찾지, 낮은 바다의 곶에서 희망을 찾지는 않기 때문이다. 인도로 가는 항로를 찾다 희망봉에 1488년 처음으로 발을 디딘 바르톨로뮤 디아스도 파도와 바람이 거세다고 해서 '폭풍의 곶(Cape of Storms)'이라고 불렀으나, 포르투갈 왕 주앙 2세(존 2세.1455~1495)가 바로 '희망의 곶(Cape of Good Hope)'이라고 이름을 바꾸도록 했다.

디아스는 아프리카 최남단까지 갔으나 폭풍으로 몇 차례 죽을 고비를 넘기며 결국 인도까지 가는 데는 실패했기 때문에 인도로 가는 길의 장애물이라는 의미에서 '폭풍의 곶'이라고 불렀으나, 주앙 2세의 생각은 달랐다. 아프리카의 끝을 발견했으니 그곳만 돌아 동쪽으로 가면 인도를 발견할 수 있는 희망을 주었다는 의미에서 '희망의 곶'이라고 불렀다.

하나의 역사적 사건도 그렇지만, 하나의 지명도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이렇게 달리 보인다. 폭풍이 몰아치는 험한 희망봉에서 500여 년 전 디아스가 절망을 보았다면, 주앙 2세는 오히려 희망을 보았던 것이다. 포르투갈의 항해왕자로 불리는 작은할아버지 엔리케(엔히크·1394~1460)의 유지를 이어받은 주앙 2세는 대서양 탐험과 해외진출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었다.

주앙 2세가 지은 '희망봉'의 이름 때문인지, 10년 뒤 포르투갈 탐험가 바스코 다 가마는 1497년 결국 희망봉을 지나 인도로 가는 동방항로를 개척하는 데 성공한다. 금과 향료를 찾기 위한 포르투갈의 오랜 꿈이 실현된다. 선원들에게 공포를 심어주는 '폭풍의 곶'이라는 이름보다는 '희망의 곶'이라는 꿈과 기대를 갖게 하는 이름이 바스코 다 가마의 선원들에게 용기를 주었음이 틀림없다.

부정적인 사고보다는 긍정적인 생각이 역사를 바꾸고 세상을 변화시킨다. 임진왜란 당시 수백 척의 군함을 가지고도 참패한 원균의 패잔병을 이어받은 이순신은 "나에게는 아직도 12척의 배가 있다"고 말한다. 이순신은 12척의 배로 일본 수군을 거의 전멸시키는 명랑대첩을 이끌어낸다.

이처럼 지명에는 꼭 지형적인 특성만 들어가는 것은 아니고, 역사적 의미와 사람의 희망이 담겨 있는 것이어서 우리 선조들이 '희망봉'이라고 이름 붙인 것은 탁월한 혜안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머나먼 아프리카 대륙의 한 꼭짓점에서 우리 나름의 희망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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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봉에 설치된 팻말 ⓒ 로렌스 스미스


유럽의 희망봉에서 아프리카의 희망봉으로

희망봉은 유럽과 아프리카에 모두 같은 의미는 아니다. 유럽인에게는 아프리카 대륙 침략의 발판이자 인도로 가는 항로의 기착지로서 희망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아프리카인에게는 삶의 터전을 빼앗기고 인종차별을 받기 시작했던 아픈 역사의 시발점이기도 하다. 실제로 포르투갈에 이어 네덜란드 백인들이 1652년 케이프 반도에 이주해왔을 때 원주민인 코이코이족은 백인 이주민들에게 삶의 터전을 빼앗기고 아프리카 내륙으로 쫓겨 가야 했다.

네덜란드 백인들은 코이코이족이 말을 더듬는다고 하여 네덜란드어로 '말 더듬는 사람'이란 뜻의 '호텐토트'라고 얕잡아 부르기까지 하지 않았던가. 이제는 남아공에 인종차별 정책이 사라지고, 아프리카인이 주인이 된 무지개 나라가 되면서 다양한 인종이 함께 어울려 살게 되었다. 마침내 아프리카인에게도 말 그대로 '희망봉'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희망봉이 오랜 옛날 백인들에게 인도로 가는 '희망'을 주었듯이, 이제는 흑인들에게 자유와 인권이 보장되는 평등의 세상으로 가는 등불이 되어주고 있었다. 마침내 희망봉이 아프리카로 돌아갔다.

희망봉의 앞바다에 멀리 배가 떠나가는 모습이 보인다. 아시아의 태평양과 인도양에서 대서양의 아프리카와 유럽으로 가는 물자를 실어 나르는 선박과 원양어선들이 오늘도 희망봉을 지나가고 있다. 오래전 탐험가들과 유럽에서 인도로 가려던 상인들이 오랜 항해로 인한 피곤과 절망 속에서 희망봉에 이르러 새로운 활기와 희망을 찾았듯이, 오늘날 선원들도 희망봉을 보면서 목적지에 다가왔다는 기쁨을 느낀다. 희망봉은 아프리카와 동서양의 사람과 문화, 상품과 문물의 교류가 이뤄지는 상징으로 남아 있다.

희망봉의 지리적 위치는 "동경 18도 28분 26초((18° 28’ 26”), 남위 34도 21분 25초(34° 21’ 25”)"이다. 케이프 포인트와 비교해도 희망봉이 남위 1초(1”)차이로 더 남쪽으로 뻗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반적으로 희망봉이 남아공의 가장 남쪽인 최남단으로 알려졌지만, 실제 최남단은 희망봉에서 동남쪽으로 160km 떨어진 '아굴라스곶(Cape Agulhas)'이다. 아굴라스는 포르투갈어로 바늘이라는 뜻이다.

아굴라스곶이 "동경 20도 00분 09.15초((20° 00’ 09.15”), 남위 34도 50분 00초(34° 50’ 00”)"이니까, 남쪽 끝으로 따져도 아굴라스곳은 희망봉보다 29분 정도 아래쪽에 있는 셈이다. 희망봉의 팻말에도 "아프리카 대륙의 서남쪽 끝"이라고 되어 있지, 최남단이라고 되어 있지 않다.

지리학적으로만 보면 대서양과 인도양이 만나는 곳은 당연히 아굴라스곶이지만, 역사적 의미와 해양 생태계적 측면에서 보면 희망봉이 대서양과 인도양이 만나는 곳이라고 해서 크게 틀린 말이 아니다. 아굴라스곶은 암초가 많아 항구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했지만, 케이프 반도는 만으로서 항해자들에게 안전한 피난처의 구실을 했다. 그뿐이랴. 적도에서 내려온 인도양의 아굴라스 난류와 남극에서 올라온 대서양의 벵겔라 한류가 교차하는 지점은 바로 희망봉이다. 아프리카 연안의 기후와 해양생태계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조류의 만남은 이처럼 희망봉에서 시작된다.

희망봉을 대서양과 인도양이 만나고, 희망을 품게 하는 곳이라는 우리의 마음속 의미는 그래서 퇴색되지 않는다. 희망봉에는 아굴라스곶이 갖지 못하는,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유럽과 아프리카의 만남, 나아가 유럽과 인도의 교류라는 디아스와 다 가마의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것은 단순한 지리적 위치가 아니라, 그곳이 품고 있는 역사이고 인간의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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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프포인트 전망대에 있는 옛 희망봉 등대 ⓒ 김성호


케이프포인트 방문기념 야구 모자를 사다

전망대에서 내려와 입구 기념품점에서 영어로 "케이프포인트"라고 쓰인 야구 모자를 사서 쓰니 그럴듯해 보였다. 아프리카 배낭여행을 하면서 다른 기념품을 거의 사지 않았지만, 왠지 아프리카 최남단에 왔다는 표시가 있는 모자를 보자 마음이 동했다. 그래도 아프리카의 희망봉에 갔다는 뭔가 물증이 필요할 거라는 생각이 번뜻 스쳤다. 한국에 갔을 때 희망봉에 갔다는 얘기를 믿지 않을 어깃장 놓는 친구 녀석도 있을 테니까.

내가 혼자서 76일간 아프리카를 배낭 여행했다는 사실조차도 믿지 않을 친구도 있을 텐데, 희망봉을 보았다는 사실쯤이야 물증이 없다면 깔아뭉개는 것은 그 녀석에게는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어디 유명한 유적지나 관광지에 가면 유적지 이름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거나 관광지 이름이 새긴 수건, 열쇠고리 등을 사는 것은 바로 '내가 이곳에 갔다왔다'는 물증확보 차원이 아닐까. 시비에 쐐기를 박겠다는 생각이 들어 있는 것이다.

실용적인 가치도 있었다. 모자는 앞으로 남은 아프리카 여행에도 아프리카의 강렬한 햇볕을 가리는데 쓰임새가 있기 때문이다. 기념품점 왼쪽으로는 동쪽의 인도양과 서쪽의 대서양이 만나는 식당이라는 뜻의 '투 오션스 레스토랑(Two Oceans Restaurant)'이 폴스 베이(False Bay)를 바라보며 여행객들에게 잠시 쉬었다 가라며 손짓을 하고 있었다. 케이프포인트에서 와인농장으로 올라가는 길은 폴스 베이 만을 끼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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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 오션스 레스토랑에서 바라본 폴스 베이 ⓒ 김성호


억울하기 짝이 없는 폴스 베이 만의 이름

고래들이 뛰어놀고 하얀 구름에 싸여 있는 아름다운 바다인 폴스 베이(False Bay)가 '가짜 만'이라는 불명예스런 이름을 갖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옛날 인도에서 돌아와 케이프타운 앞 바다인 테이블 베이로 들어가 식량 등을 보충하려던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선박들이 폴스 베이로 잘못 들어갔다. 바다에서 육지 쪽으로 쑥 들어간 모양이 비슷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원들이 이제는 속지 말자고 다짐하면서 아예 이름을 '가짜 만'이라고 붙였다고 한다.

폴스 베이는 억울하기 짝이 없을 것이다. 착각을 한 것은 선원들 자신이지, 폴스 베이가 속인 것은 아닌데도 불구하고 애꿎게 ‘거짓’의 대명사가 되었으니. 폴스 베이는 수백 년 동안 하소연도 못하고 그 오명의 이름을 그대로 갖고 있었다. 오늘도 배들은 "가짜 만"이라고 수군대며 지나가지만, 펭귄과 물개들이 즐겁게 뛰어놀며 나의 친구가 되어주니 그것으로 만족하리라며 안으로 분을 삭이는 듯하다. 항상 인간들은 수백만 년 동안 자기 멋대로 평가하고 잠시 머물다 훌쩍 떠나갔으니까.

케이프포인트 구경을 마치고 내려오는데 어른 키만 한 커다란 타조 두 마리가 차도를 따라 케이프 포인트 쪽으로 올라가고, 왼쪽 초원에는 얼룩말들이 풀을 뜯고 있었다. 이제부터는 케이프타운의 반대쪽인 대서양의 폴스 베이를 끼고 해안가를 달려 와인농장이 있는 스텔렌보쉬 지역으로 가는 오후 일정이다. 케이프 포인트에서 20여 분 달려 도착한 곳은 사이먼스 타운이다. 언덕 아래로 아름다운 해변이 있는데, 왼쪽으로는 해수욕장인 모래사장의 씨포스 해변과 오른쪽에는 아프리카 펭귄이 사는 볼더스 해변이 있다.

볼더스 해변(Boulders Beach)은 말 그대로 둥근 돌이 많은 해변이라는 뜻이다. 실제로 해변에는 둥근 화강암 바위들이 많이 있는데, 아프리카 펭귄들이 바다 속에서 나와 바위에 앉아 햇볕을 쬐고 있었다. 볼더스 해변은 3,000 마리의 아프리카 펭귄이 사는 집단 서식지이다.

아프리카 펭귄의 가장 큰 특징은 남극 펭귄처럼 그리 크지 않다는 것이다. 큰 것이 보통 50cm이고 작은 새끼는 큰 닭보다도 작다. 마치 애완용 펭귄 같은 느낌을 준다. 바다 속에서 더위를 식히며 헤엄을 치거나, 바위로 올라와 쉬거나, 해안가 모래사장에서 햇볕을 쬐는 펭귄들이 자유롭게 시간을 보내고 있다. 햇볕에 몸이 더워졌는지 해변에서 물속으로 들어가는 펭귄의 걷는 모습을 보라. 마치 갓돌을 지나 걸음마를 하는 아이가 걷듯 아장아장 걷는 모습이 귀엽다. 다른 작은 펭귄은 뒤뚱뒤뚱 걷는 모습이 아기자기하다. 등은 검고 배는 하얀 펭귄은 언제 봐도 귀엽다.

아프리카 펭귄을 소개하는 테이블 마운틴 국립공원의 설명서에 보니 펭귄의 등이 검고, 배가 흰 부분에 대한 의문점이 풀렸다. 설명서에는 "펭귄의 배가 흰 것은 바다 속에서 위쪽을 노리는 포식자를 속이고, 등이 검은 것은 하늘 위에서 물 위를 노리는 포식자를 속이기 위한 위장술"이라고 한다. 아, 그래서 펭귄의 등과 배가 그렇게 색깔이 달랐던 거구나. 펭귄은 주로 추운 남극 주변에 서식하는데, 남극을 중심으로 가까운 남아공의 아프리카 펭귄과, 남미의 훔볼트 펭귄과 마젤란 펭귄, 적도 근처 태평양의 갈라파고스펭귄 등은 비교적 온난한 해역에서 살고 있기도 하다.

성을 쌓는 자는 망한다고 했는데...

볼더스 베이가 있는 사이먼스 타운은 바닷가를 내려 보며 줄지어선 멋진 집들이 아름답다. 네덜란드식 건축양식의 별장 같은 집이다. 길가에는 핀보스의 일종인 핀쿠션 프로테아가 붉은색과 분홍색으로 활짝 폈고, 병솔나무(Bottle Brush Tree)에는 새빨간 꽃이 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꽃이 병을 씻는 솔을 닮았다고 하여 병솔나무라고 붙였는데, 정말 이름 그대로 병솔과 똑같이 생겼다.

이렇게 아름다운 꽃과 나무들로 둘러싸인 사이먼스 타운의 고급 주택가는 그런데 평안하지가 못하다. 마치 성을 쌓은 듯 높은 담장을 올렸고, 대문 입구에 '에이디티(ADT)'라는 보안경비회사가 무단 침입하는 경우 "무장 대응"이라는 무시무시한 경고문을 붙여 놓았다. 범죄로 인한 남아공의 치안불안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문구이다.

성을 쌓는 자는 망하고, 길을 만드는 자는 흥한다고 했다. 물론, 이 말은 "성을 쌓고 사는 자는 반드시 망할 것이며, 끊임없이 이동하는 자만이 살아남을 것이다"는 돌궐제국을 부흥시킨 명장 톤유쿠크가 남긴 말에서 따온 것이다. 저 부잣집의 주인도 높은 담을 쌓고 싶어서 그리했겠느냐마는, 아름다운 바닷가의 전경을 가리는 높은 담을 보면서 안타까움이 밀려왔다.

펭귄 구경을 끝으로 오후 1시께 반나절 투어를 신청한 4명의 여행객은 다른 차량으로 숙소로 돌아갔다. 우리는 오후 일정의 가장 중요한 와인농장 방문길에 나섰다. 피시후크를 지나 뮤젠버그를 지나는데 수천 마리의 바다갈매기와 왜가리, 해로라기 등이 마치 선탠 하듯 늪지대에 앉아 있다. 뮤젠버그는 영국의 제국주의자 세실 로즈의 별장이 있는 곳이다. 그는 이 별장에서 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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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텔렌보쉬의 마을광장인 브라크와 레니쉬 교회(오른쪽 검은색 지붕 건물) ⓒ 김성호



와인의 도시 스텔렌보쉬

볼더스 해변에서 1시간 정도 달려 와인농장으로 유명한 스텔렌보쉬에 도착했다. 스텔렌보쉬는 온통 사방이 포도밭과 와인농장이다. 네덜란드가 식민지배 하던 1679년 총독인 사이먼 반 데 스텔이 세운 도시로, 그의 이름을 따서 스텔렌보쉬라고 한다. 남아공에서 케이프타운에 이어 두 번째로 오래된 도시답게 고풍스런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마치 네덜란드와 독일의 오래된 전원도시를 옮겨 놓은 듯한 느낌이다. 마을 앞으로는 에르스트강이 흐르고 시 외곽으로 기차역이 있으며, 뒤로는 높은 바위산이 도시 전체를 감싸고 있다.

1시간의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여행객 각자 늦은 점심을 먹고 도시 구경을 하는 시간이다. 나는 짬을 내어 도시 곳곳을 돌아다녔다. 여행에서 나의 가장 큰 무기는 튼튼한 두 다리와 왕성한 호기심이다. 네덜란드 식민지 초기의 오래된 도시답게 건물들이 단층 건물로 유럽풍의 분위기를 한껏 드러내고, 떡갈나무의 일종인 오크나무가 도시 곳곳에서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건물의 대부분이 하얀색을 띠고, 지붕은 검은색이나 회색이어서 동화의 나라에 온 듯 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도시 한가운데는 넓은 잔디밭이 있는 '브라크'라는 마을광장이 있는데, 한 젊은이가 배를 깔고 엎드린 채 따뜻한 햇살을 맞고 있다. 그 옆의 장난감 같은 둥근 지붕형태의 요새는 1777년 만들어진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탄약고이다. 탄약고 지붕에는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약칭인 '브이오시(VOC)' 글자가 선명히 새겨져 있고, 입구에는 1777년에 설치된 대포 2문이 그대로 탄약고를 지키고 있다.

세인트 메리 교회의 브라크 맞은편에는 오래된 녹슨 종 2개가 달려 있는 하얀색의 교회가 있다. 레니쉬 교회인데 건물 정면에 "1840"이라고 쓰여 있다. 1840년에 세워진 교회라는 뜻이다. 레니쉬는 '라인강'을 의미한다. 레니쉬 교회와 세인트 메리 교회 뿐 아니라 스텔렌보쉬의 건물들은 대부분 네덜란드식 건축양식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었다. 삼각형의 경사진 지붕과 커다란 베란다, 중앙 홀, 파스텔 색조의 하얀 색으로 칠한 겉 벽면 등….

어디를 가나 보통 200년은 된 건물들이 도시의 역사를 말해준다. 마침 매년 8월 3일부터 6일 사이에 열리는 '스텔렌보쉬 와인 페스티벌' 기간의 마지막 날이어서 포도주를 좋아하는 전 세계의 여행객들로 식당이나 거리나 어디나 붐빈다. 스텔렌보쉬 시내는 하루 정도 거닐며 구경하기에 안성맞춤이다. 와인 한잔과 치즈가 생각나는 도시이다.

한 시간의 짧은 휴식을 끝내고 스텔렌보쉬에서 마지막 목적지인 와인농장으로 가는 길이다. 스텔렌보쉬를 중심으로 근처의 팔과 프랑쉬후크, 섬머셋 웨스트, 웰링턴 지역을 통틀어 남아공 포도주의 중심지라고 하여 '와인랜드'라고 한다. 와인랜드에 맛좋은 포도주를 생산하기 시작한 것은 1688년 프랑스에서 쫓겨난 위그노파 신교도들이 프랑쉬후크에 이주하면서부터이다. 이들이 프랑스의 와인 제조기술을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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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텔렌보쉬의 체벤바히트 와인농장 ⓒ 김성호


와인농장에서 와인의 깊은 맛에 취하다

온통 포도밭이다. 1000m 이상의 고원지대를 달리는 와인랜드의 도로는 그 자체로 환상적인 장면을 연출한다. 도로 옆의 산기슭에는 이미 오래전 수확이 끝난 포도밭이 있다. 포도나무에는 잎들도 모두 떨어져 줄기만 남았다. 그 앙상한 포도나무 사이의 고랑에는 밀이 파랗게 자라고 있다. 포도를 수확한 뒤에는 포도나무 사이에 밀농사를 이모작으로 재배하고 있었다. 푸른 초원 위에 작은 호수를 뒤로하고 하얀색과 빨간 벽돌집들이 있다. 말 그대로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이다.

우리가 찾아간 와인농장은 스텔렌보쉬에서 케이프타운으로 오는 길에 있는 "체벤바히트(ZEVENWACHT)"였다. 작은 호수와 유럽풍 전원주택은 관광홍보 책자에 단골로 등장하는 농장이다. 호수 옆으로 와인제조 공장과 언덕으로는 포도밭이 있다. 와인농장은 포도재배 단지이면서 포도주 제조공장이다. 농장에 도착하자 커다란 나무알로에(Tree Aloe)가 인상적인, 포도주를 맛보는 시음 장소로 안내한다. 입구에서부터 와인의 깊은맛이 코끝을 유혹한다.

젊은 여자 직원이 농장에서 생산하는 포도주의 종류를 설명한 뒤 다섯 종류의 포도주를 따라준다. 3개의 화이트 와인이 먼저 나오고 2개의 레드 와인이 뒤따랐다. 제일 먼저 맛본 것은 쇼비뇽 블랑(SAUVIGNON BLANC)이라는 상표의 '드라이 화이트 와인'이다. 2005년산으로 열대 아로마 향과 허브 향이 강한 포도주라는 설명이 따른다.

그 다음 역시 2005년산 체벤블랑(Zevenblanc)이라는 화이트 와인인데 오렌지 향이 풍긴다고 한다. 뒤이어 2005년산 틴 마인 화이트(Tin Mine White)라는 화이트 와인을 따라 준다. 쇼비뇽 블랑과 샤도니 등을 섞은 포도주 맛이란다. 2005년 국제와인대회에서 은상을 수상한 "빈티지(Vintage·품질 좋은 와인)"라는 자랑도 빼놓지 않는다.

뒤이어 체벤루드(Zevenrood)라는 2004년산 레드 와인을 맛보는데, 부드럽고 과일 맛이 났다. 마지막으로 시라(Syrah)라는 2002년산 레드 와인이 나왔는데, 풍부하고 입안에서 살아 움직이는 듯 한 맛이 났다. 마지막에 나온 시라 레드 와인이 내 입맛에 가장 와 닿는다. 가장 오래된 포도주라서인지 깊은맛이 느껴진다. 사실 나는 술을 별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포도주의 맛 차이는 잘 모른다. 내 느낌상 그렇다는 것이다.

나처럼 술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내 기분에 따라 술 맛이 다를 뿐이지, 애초 술 맛이 달라서 내 입맛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나에게는 비싼 술이나 싼 술이나 맛에서 차이가 없다. 내 기분이 좋으면 싼 술도 달콤해 보이고, 그렇지 않으면 비싼 술도 도통 내 입맛에 맞지 않는다.

포도주 시음에는 치즈가 곁들여졌다. 포도주 시음과 여러 종류의 체다 치즈를 맛보는 치즈 시식을 함께 한다. 치즈의 맛도 포도주만큼이나 달랐다. 신맛이 나기도 하고, 향기가 나는 치즈도 있어 다양했다.

포도주 맛을 본 뒤 지하 1층에 있는 와인 제조공장으로 가서 시설을 둘러본 뒤 제조과정을 설명 듣는다. 와인공장 1층에는 포도주를 숙성시키는 둥근 오크통이 수천 개 쌓여 있었다. 이 통에서 짧게는 1년, 길게는 몇 년을 숙성시키면 코끝을 유혹하는 감칠맛 나는 포도주가 나온다. 여직원은 “레드와인은 보통 오크통에서 숙성하고, 화이트와인은 스테인리스 스틸통(강철통)에서 숙성을 한다”고 말했다. 향기가 감도는 깊은 맛의 와인이 나오는 데는 이처럼 숙성에서부터 까다롭고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김치도 갓 담은 햇김치보다는 묵은지가 깊은 맛이 나는 것과 마찬가지다.

화장실에 가니 메를로와 피노타지, 시라즈, 카베르네 쇼비뇽의 포도 잎사귀가 붙어있는데, 잎사귀의 모양도 각각 달라 신기했다. 화장실까지 와인 농장답게 꾸며 놓았다. 와인 농장 방문은 포도주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도 야외의 포도밭을 방문하고, 포도주 제조과정을 직접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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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벤바히트 와인농장의 와인을 숙성하는 오크통 ⓒ 김성호


앙골라 소년병 이야기를 다룬 영화가 케이프타운의 밤을 울린다

포도농장을 다녀온 뒤 저녁은 숙소 바로 근처의 "줄루 사운드 바"라는 식당으로 갔다. 피자 와 샐러드 등의 간편한 식사도 나오고 맥주를 마시면서 컬트영화나 독립영화를 볼 수 있는 곳이다.

마침 들어가니 왼쪽 모서리 벽에 설치된 2m 정도의 스크린을 통해 영화를 상영하고 있었다. 시작한 지 10분 정도 지났다. 앞쪽에 4명의 중년 여행객들이 소파에 몸을 젖힌 채 영화를 보고 있었다. 영화 제목은 <영웅(The Hero)>인데, 프랑스의 영화감독 제느 감보아(Zene Gamboa)가 2004년에 만든 프랑스와 앙골라 합작영화이다. 앙골라 내전을 다룬 영화였다.

전쟁으로 파괴된 사회에서 피어나는 인간성 회복을 보여주는 영화이다. 15살에 학교에서 강제로 군에 끌려가 전쟁 중 지뢰를 밟아 한쪽 다리를 잃고 의족을 하고 다니는 젊은이가 주인공이다. 그의 고난과 극복을 통해 전쟁으로 파괴된 사회 속에서 피어나는 희망을 보여준다. 아프리카 내전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소년병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주인공 젊은이는 길거리에서 자다 자신의 의족을 도둑 당한다. 의족을 훔쳐 팔려는 어린이들의 짓이다. 이 어린이들 역시 전쟁으로 먹을 것이 없어 닥치는 대로 도둑질을 한다. 라디오 방송을 통해 주인공의 아픈 사연이 알려지게 되고, 결국 잃어버린 의족을 찾는다는 가슴 뭉클한 내용이다. 의족을 통해 잃어버린 신뢰와 믿음, 희망을 찾아가는 이야기이다. 앙골라가 추구하는 미래를 그려내고 있다.

97분짜리 영화인데, 꽤 짜임새 있게 만든 영화이다. 특이 이 영화에는 전쟁의 와중에서 잃어버린 아들과 부모, 동생, 삼촌 등 가족을 찾는다는 텔레비전 방송내용이 나온다. 자신의 이름과 찾는 가족의 이름, 헤어진 장소와 시간 등을 말하는 장면을 텔레비전을 통해 내보낸다. 수많은 사람들이 줄을 지어 텔레비전 출연을 위해 며칠씩 기다리고 있다. 앙골라판 이산가족 찾기 운동이다. 80년대 초 우리나라 텔레비전을 통한 이산가족 찾기 운동과 너무나 비슷한 장면이어서 깜짝 놀랐다.

앙골라는 1975년 포르투갈로부터 독립했으나 옛 소련과 쿠바의 지원을 받는 정부군과 미국의 지원을 받는 반군 사이에 내전이 벌어져 2002년 휴전 때까지 무려 50만 명 이상의 사망하고 180만 명의 이산가족이 발생했다. 앙골라 내전처럼 아프리카에서 독립 이후 벌어진 내전의 대부분은 단순한 권력투쟁이나 인종갈등이 아니라, 미국과 소련의 동서 냉전 체제의 부산물이기도 하다.

해물피자 맛도 괜찮았지만, 맥주를 마시면서 한편의 재미있는 영화도 즐긴 좋은 저녁이었다. 이곳에서는 매주 일요일 오후 6시에 이런 실험영화를 상영한다. 케이프타운에는 이런 분위기 있는 장소가 많다. 특히 롱 스트리트 거리는 여행객 숙소가 많다 보니 자연스럽게 음식과 맥주, 커피 등을 마실 수 있는 식당과 카페, 바가 즐비하다.

카페 모지토라는 카리브 식당은 월요일에는 30랜드에 마음껏 음식을 골라 먹을 수 있다는 광고물에 체 게바라를 이용하고 있었다. 광고물에는 "심지어 체 게바라 조차도 '오, 말도 안돼'라고 한다"며 믿기지 않을 정도의 대폭적인 할인행사라는 것을 홍보하고 있었다. 아프리카 배낭여행은 고된 이동의 연속인데, 케이프타운의 밤은 편안한 휴식을 가져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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