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자주의적 외교안보 위해, 파병연장은 거부돼야 한다

등록 2007.12.28 20:14수정 2007.12.28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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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인도 출신의 미국 언론인 파리드 자카리아(Fareed Zakaria)의 글입니다.

 

“부시대통령은 이라크에서 대량살상무기가 발견되지 않자 침공을 정당화할 목적으로 이라크가 아랍세계의 본보기가 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라크는 결국 결딴나고 말았다. 200만 명이 해외로 피신했고 200만 명 이상이 이라크 내부에서 난민이 됐다. 시아파 과격분자들이 대부분의 지역을 장악했고 공포의 신정통치를 편다. 학교, 병원, 공장, 사무실 등 일상적인 삶의 터전이 엉망이 됐다. 오히려 이라크는 부시의 희망과 정반대되는 의미에서 하나의 본보기가 됐다. 지금 이라크는 편협한 민주주의의 위협을 알리는 살아 있는 광고판이다.”

 

이라크전 개전의 정당성 여부는 이미 논쟁 밖입니다. 오죽했으면, 전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인 앨런 그리스펀(Alan Greenspan)조차도 최근 출간된 자서전에서 “이라크 전쟁의 주된 원인이 석유라는 것을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지만, 그 사실을 인정하는 게 정치적으로 적절하지 않다는 현실이 서글펐다”고 고백했습니다.

 

이라크전의 정당성 여부는 이미 앞선 결과가 말해주고 있습니다. 불행하게도 미국은 건국 이래 베트남전 다음으로 두 번째로 긴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이미 우리가 염려하는 이상으로 이라크전에 대한 국제적 연대는 사실상 깨져 있습니다. 최고의 동맹, 영국조차도 브라운(Gordon Brown) 수상이 집권한 이후, 입장을 바꿔 내년 상반기까지 철군하겠다는 것입니다.

 

인권과 시장경제, 안보를 중심으로 한 60여 년간의 동맹관계를 유지해 온 우리나라로서는 미국의 정책에 우리의 이해관계를 일치시키는 것은 결코 낯선 일은 아닙니다. 더구나 세계 전체 GDP의 29%를 차지하는 나라,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자랑하는 나라, 동북아시아에 확고한 정치경제 군사적 영향력을 보유하고 있는 나라, 이런 종합적이고 현실주의적 관점에서 고려해볼 때도 일응 당연해 보입니다. 어쩌면 이것이 주변 4대 강국에 둘러싸여 있는, 분단국가 한반도의 ‘국제정치적 현실’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문제는 미국이 먼저 변화하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우리는 그 변화의 흐름에 주목해야 합니다. 세계적인 칼럼리스트 토머스 프리드먼(Thomas Friedman)은 “9.11이 미국을 폐쇄적인 국가로 만들었다”며 “9.11 시대는 끝났다. 이제 미국은 공통의 적이 아니라 공통의 목표를 제시하는 9.12 후보를 뽑자”고 주장합니다. 프리드먼은 “미국은 누구나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는 희망의 땅에서 두려움을 수출하는 국가로 전락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자카리아는 미국이 역사상 최강대국이면서도 테러리스트와 불량국가 무슬림 등 주변세력에 압도당했다고 평가합니다. 그래서 ‘두려움과 피해의식을 떨치는 길’이 미국역사의 흐름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 두려움은 어느새 우리에게 수입되어 있습니다. 미국의 공포는 곧 우리의 공포가 되고 말았습니다. 마치 ‘만들어진 신’처럼 ‘만들어진 공포’를 우리는 신주단지 모시듯 하고 있습니다. 알게 모르게 우리는 현실론이라는 이름으로 가부장제적인 국제질서에 스스로를 강화시켜갑니다. 미국이 우리의 정책변화에 일일이 개입하면서, 구체적인 이익 혹은 손해로 대응할 것이라 두려워합니다. 한미관계를 지나치게 일회적이고 편협한 대가 관계로 규정합니다.

 

미국의 정치지형도 의회와 정부를 이라크전에 대해 온건 혹은 반대입장인 민주당이 동시에 장악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도 이라크전에 가장 적극적으로 동조했던 정권이 물러나고 수상은 총선에서조차 낙선하고 말았으며, ‘다자주의적 접근’을 선호하는 노동당 정부가 들어섰습니다. 이런 것들은 분명한 국제정치적 흐름의 변화들입니다. 부시정권의 일방주의적 국제질서관, 가치동맹 전선이 분명 변화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북핵문제 해결에 있어서 ‘다자주의적 접근’이라는 방식을 선택하고 있습니다. 주변 4대 강국의 동의를 얻어 북핵을 폐기하고 평화체제를 성립시키려는 평화지향적인 통일 프로세스를 진행해 나가고 있습니다. 한미동맹관계도 분명한 전환기에 들어섰습니다. 기존의 군사안보 중심 동맹에서 ‘복합적이고 미래지향적’인 한미동맹관계로 변모해 나가고 있습니다.

 

국제정치학자인 폴 케네디(Paul M. Kennedy)는 대한민국에 대해 ‘코끼리 네 다리 사이에 놓인 나약한 존재’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스리랑카 속담에 코끼리가 사랑을 해도, 코끼리가 싸움을 해도 잔디밭은 망가지기 마련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래서 중심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원칙이 중요합니다. 한반도의 지정학적 특성에 맞는 균형잡힌 평화주의, 그리고 다자주의적 접근이 한반도에 살고 있는 우리의 외교원칙이어야 합니다.

 

공포와 두려움에 기반을 둔, 석유라는 에너지원 확보에 속내를 둔, 일방주의적 국제질서에 기초한 이라크전에의 파병연장은 이제 멈추어야 합니다.

2007.12.28 20:14 ⓒ 2007 OhmyNews
#이라크파병 #최재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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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법인 한강 대표변호사, 김대중평화센터 고문으로, 연세대 의과대학 외래교수, 이화여대, 영남대, 전남대 로스쿨 및 광운대 겸임교수로 재직중입니다. 홈페이지는 www.e-sotong.com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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