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에서 솟아오른 아프리카 '식탁산'

[생뚱맞은 과학선생의 아프리카 여행 22] 케이프타운 테이블마운틴

등록 2008.01.12 13:39수정 2008.01.12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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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블마운틴의 정상 정상은 또 다른 세상이다. 평평한 테이블에는 동서 3㎞, 남북으로 10㎞가량의 드넓은 ‘하늘 정원’이 거짓말처럼 펼쳐져 있다. ⓒ 조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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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서 불쑥 솟아오른 해발 1086m의 산은 이름 그대로 산 정상이 뾰족이 솟은 게 아니라 평평하게 다진 모양이다. 정상에 오르면 마치 칼로 반듯하게 자른 듯 평평해 테이블마운틴이라는 이름이 실감난다. 구름이 자주 정상을 가려 남아공 사람들은 산을 가린 구름을 가리켜 테이블보라고 부른다. ⓒ 조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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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동물과 희귀식물 종이 서식하고 있다. 산 위에 개울과 우거진 풀이 만들어내는 고산지대의 아름다운 풍경 속에 핀 야생화들은 몇 분 사이에도 확 달라지는 변덕스러운 기후에 용케도 적응한 식물들이다. ⓒ 조수영


수직으로 깎인 절벽을 내려다보니 마치 무지개떡처럼 층층이 쌓인 퇴적층의 경계가 분명하게 보였다. 이 곳이 오래전 지각변동에 의해 바다 밑 퇴적지형이 솟아올라 만들어진 지형임을 알 수 있는 증거다.

정상은 이름대로 평탄하고 넓은 책상 모양이다. 테이블 마운틴의 정상이 평평한 이유는 바다에서 솟아오른 부분이 윗부분부터 서서히 오랜 시간 비나 바람에 의해 깎였기 때문이다. 애초에 평평하게 차곡차곡 쌓인 지층은 깎일 때도 그 모양이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수직으로 깎인 절벽에 둘러싸인 지형 때문에 정상은 아랫부분과는 단절된 환경 속에 있었다. 바람 때문에 나무는 자라지 않지만 강풍을 이기고 용케도 적응한 식물은 야생화였다. 남아공의 국화인 킹 프로테아·핀보스·에리카·콘부시·핀쿠션 등 발견된 식물만 1500종을 넘는다.

테이블 마운틴에 가면 구름을 탈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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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구름을 뚫고 왔다. 왼쪽이 구름에 정상이 가린 악마의 봉우리. 노랫말처럼 '구름모자'를 쓰고 있다. ⓒ 조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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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블마운틴 한 편에서 구름이 쏟아진다. 마치 하얀 테이블보가 바닥으로 떨어지듯 수직으로 깎아지른 절벽을 타고 흐르는 구름의 모습은 정말 장관이다. ⓒ 조수영

정상의 날씨는 그야말로 변덕이 죽끓듯 했다. 햇빛이 쨍쨍하다가도 구름에 가리면 금세 추워지고 바람이 거세졌다. 절벽을 내려다보는데 구름이 스물스물 올라오고 있었다.

구름은 점점 더 커지더니 한치 앞도 안 보이는 상황이 벌어졌다. 구름 속에 들어온 것이다. 한참을 구름 속을 헤치고 다녔는데 어느 순간 순식간에 모든 게 걷히고 눈앞이 뻥 뚫렸다.

낮은 고도인데도 이 곳에 구름이 생기는 이유는 공기의 강한 상승기류 때문이다.

테이블마운틴의 경우 바다에서 불어온 바람에 실려 온 공기가 급하게 상승하게 되면서 온도가 떨어지고, 이 때 공기 중에 수증기가 물방울이나 얼음알갱이로 응결되면서 구름이 만들어진다.

문득 예전에 유행했던 '산할아버지 구름모자 썼네. 나비 같이 훨훨 날아서 살금살금 다가가서 구름모자 벗겨오지'라는 노래가 생각났다. 같은 시각, 시내에서 올려다 본 테이블마운틴은 마치 구름모자를 쓰고 있는 듯한 모습일 거다.

'악마의 봉우리'를 향해 달리고 또 달렸건만

정상의 안내문에는 "테이블마운틴은 동서로 3㎞, 남북으로 10㎞ 이어지는데 반대편 끝에서는 악마의 봉우리를 볼 수 있다"고 쓰여 있었다.

머릿속으로 계산을 했다. 10㎞ 단거리마라톤을 45분에 달린 기록이 있으니 여유있게 2배, 3시간이면 악마의 봉우리를 보고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달렸다. 도중에 예쁜 야생화가 있어도, 귀여운 망구스가 보여도 악마의 봉우리를 보기 위해 걸음을 재촉했다.

그렇게 2시간을 달렸는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어느 지점부터는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갑자기 안개가 깊어지면서 귀신이 나올 듯한 돌무덤이 나타났다. 자세히 보니 테이블마운틴의 끝이라고 쓰여 있는데, 악마의 봉우리는커녕 구름 속으로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이 이어져 있었다.

지금까지 달렸는데 되돌아갈 수도 그렇다고 앞으로 더 갈 수도 없는 상황이다. 안개는 더욱 깊어져 오던 길도 보이지 않았다. 구름 속에 갇혀서 방향도 거리감각도 잃어버렸다. 주변도 점점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조금 전까지 보았던 바위모양을 기억하며 겨우 방향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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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블마운틴의 끝을 알려주는 돌무덤. 사이렌이 울리는 긴박한 상황에서도 돌하나를 올리고…. 정상은 구름의 물방울과 바람으로 무지 춥다. 가방안에 있던 비상용점퍼를 입었는데, 반바지를 입은 다리는 꽁꽁 얼어버렸다. ⓒ 조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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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블마운틴에서 바라본 바다는 시간마다 다른 색과 모양을 띤다. 따사로운 햇살이 바다에 반사되어 더욱 눈이 부시다. ⓒ 조수영


사이렌이 울렸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갑자기 사이렌이 울렸다. 바람이 거세져서 케이블웨이의 운행을 중단하겠다는 신호다. 두 시간을 넘게 뛰었는데 산 아래까지 걸어서 내려간다는 것은 막막하고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전망대에서 우아하게 커피나 마시며 케이프타운 시내를 내려다보고 싶어서 올라온 테이블마운틴에서 이런 막노동을 하게 되다니….

얄미운 태양은 내가 달릴 때는 잘 비추더니, 힘들어서 잠시 쉬면 마치 빨리 달리라고 재촉하는 것처럼 구름 속에 숨어버렸다. 햇빛이 비치지 않으니 더 불안해졌다. 그 다음은 죽을 만큼 뛰었다는 것 이외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전망대가 보이기 시작하면서 의식이 돌아왔다. 이 곳의 바람은 몸을 제대로 가눌 수 없을 정도로 강했다. 식당의 직원들도 이미 내려가서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사이렌이 한 번 더 울렸다. 혹시나 해서 케이블웨이로 갔더니 마지막 한 대가 있었다. 눈물이 났다. 케이블웨이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엉클어진 머리카락에 눈물범벅인 내 얼굴을 쳐다보고 놀라는 듯 했다.

테이블마운틴이 그렇게 미울 수가 없다. 테이블마운틴이 가라고 한 건 아니지만 왠지 고무줄처럼 몸을 늘여 우리를 골탕먹인 것 같다. "미친 테이블마운틴"이란 말이 저절로 나왔다. 거기까지 갔는데 악마의 봉우리 끄트머리라도 보여주면 좀 좋아. 마치 눈뜬 장님처럼 코앞의 것을 보지 못하고 온 아쉬움에 테이블마운틴이 너무 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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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속에서 세시간의 사투를 벌인 끝에 돌아온 전망대. 정상에는 레스토랑과 전망대, 산책로, 기념품 가게가 있다. 케이프타운 시내 뿐만아니라 테이블 만, 라이온스 헤드, 북쪽으로는 악마의 계곡이라 불리는 데빌스 피크, 서쪽으로는 만델라 전 대통령이 18년 동안 투옥되었던 로빈 섬이 보인다. ⓒ 조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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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블웨이를 타고 내려오면서. 그땐 구름 뒤에 숨어있는 테이블마운틴이 어찌나 야속하고 원망스럽던지 눈물이 났다. ⓒ 조수영


케이블웨이를 타고 내려와서 보니 구름을 가득 덮고 있다. 저걸 뚫고 달렸나 싶은 놀라움도 있지만, 테이블마운틴이 구름 뒤에 숨어서 비웃는 것 같아서 더욱 얄밉다.

케이블웨이 안에서 우리나라 말이 들렸지만 모른 체 했다. 이 몰골과 기분으로 누구랑 이야기 할 상황이 아니었다. 가만히 있으면 일본인이나 중국인쯤으로 알 것 같았다. 그러나 가방에 붙어있는 커다란 한글이름표 덕분에 금방 탄로났다.

케이블웨이에서 만난 한국인은 어학연수를 온 대학생이었는데 지난 3개월 동안 날씨가 좋지 않아 테이블마운틴에 올라오지 못했다고 했다. 우리는 어제저녁에 와서 하루 만에 보았으니 성공적이었다고 해야 하나?

평화로운 줄 알았던 케이프타운, 시내 한가운데서 총에 맞을 수도

학생은 그동안 이 곳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마치 쏟아붓는 듯 이야기했다. 칼이나 권총을 든 강도를 만나는 건 예삿일이기 때문에 절대 큰 길을 벗어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3일 전에도 백인 여성이 길거리에서 총에 맞아 숨졌으며, 한국인 여행자들이 많은 현금을 가지고 다니기 때문에 날치기의 표적이 된다고 했다. 자신은 강도가 나타나면 즉시 줄 수 있도록 따로 20랜드 정도를 가지고 다닌다고 했다.

평화롭게 느꼈던 케이프타운이 갑자기 무서워졌다. 불과 10년 전까지만 해도 오후 5시가 넘으면 흑인들은 시내를 돌아다닐 수 없었다고 한다. 흑인들은 해가 지기 전 도심 밖으로 빠져나가야 했다. 발각 시에는 무차별 폭행을 당하기 십상이었다.

아파르트헤이트 종결 이후 여행자의 눈에 드러나 보이는 인종차별은 없어졌지만, 케이프타운 시내에는 청소부나 주차요원과 같은 힘든 일을 하는 사람을 제외하면 흑인이 거의 없었다.

백인들은 케이프타운을 '마더시티'라고 부른다. 백인들에겐 어머니의 도시일 수 있겠지만, 흑인들에겐 아픈 식민지의 역사가 시작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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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의 물방울에 의해 무지개가 생겼다. 수직으로 깎인 절벽을 내려다보니 마치 무지개떡처럼 층층이 쌓인 퇴적층의 경계가 분명하게 보였다. 이 곳이 오래 전 지각변동에 의해 바다 밑 퇴적지형이 솟아올라 만들어진 지형임을 알 수 있는 증거이다. ⓒ 조수영


우리가 테이블마운틴을 떠난 지 이틀 후 신문에는 그 곳의 화재소식이 1면에 실렸다. 영국인 여행자가 케이블웨이에서 버린 담배꽁초가 원인이 되어 3일 동안 산을 태웠다고 했다.

우리나라 뉴스에는 그리 크게 보도되진 않은 것 같지만 이번 불로 한명이 질식해 죽었고, 케이프타운의 상징인 테이블마운틴의 희귀 동식물이 많이 죽었다. 이 화재는 100만 년 만에 가장 큰 화재라고 알려졌다. 그동안 원망했던  테이블마운틴에게 너무나 미안했다.

"미안해. 내가 널 원망해서 그래. 미워해서 정말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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