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정부가 '국가보안법' 다시 휘두를까 두렵다"

[인터뷰] 마지막 인문사회과학 서점 ‘그날이 오면’ 지킴이 김동운 씨

등록 2008.01.10 12:37수정 2008.01.10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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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사회학의 '마지막 희망'을 만나다. ⓒ 손기영

▲ 인문사회학의 '마지막 희망'을 만나다. ⓒ 손기영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인문사회과학 서점은 전국에 100여 개가 넘게 있었다. 하지만 90년 중반을 지나면서 대부분의 서점들이 문을 닫고, 전국적으로 겨우 10개 정도만 명맥을 유지한다. 2000년대 들면서는 신촌에 있던 ‘오늘의 책’등 대표적인 인문사회학 서점들마저도 없어지게 된다.

 

인문사회과학은 이제 죽은 걸까. 지난 9일 찾아간 서울 신림동 골목 한 편에는, ‘작은 희망’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마지막 남은 인문사회과학 서점 ‘그날이 오면’. 세상의 무관심과 강팍함은 야속하지만, 다시 날아오를 ‘그날’을 손꼽아 꿈꾸고 있었다. 인문사회학은 아직 살아있다는 것을 증명하면서.

 

신림동 골목에서 피어나는 '인문학의 희망'

 

서점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책꽂이를 가득 매운 인문사회학 도서들이 눈앞을 가린다. 압박이었다. 대형서점에 진열된 책들처럼 예쁘게 정돈 되지도 않았다. 자리가 모자라 이중삼중으로 쌓아 올린 책들은 투박해 보였다. 서점 한쪽에는 물이 담긴 주전자가 소리 없이 끊고 있었다. ‘먹지 못하는 물’. 주전자에 쓴 이채로운 내용이 호기심을 자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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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사회과학서점 '그날이 오면' 대표 김동운 씨. ⓒ 손기영

인문사회과학서점 '그날이 오면' 대표 김동운 씨. ⓒ 손기영

<마르크스 뉴욕에 가다>, <고추장, 책으로 말하다>, <전염성 탐욕>…. 지적편력을 자극하는 책 제목들은 이곳이 지향하는 세계를 알게 해줬다. 또 일반 서점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조금은 급진적인 내용의 사회주의 교양서적도 눈에 띄었다. 인문사회과학서점 ‘그날이 오면’은 지난 1988년 문을 열어 87년 민주화항쟁, 7·8·9월 노동자대투쟁으로 촉발된 진보담론의 ‘진지’가 되었다.

 

하지만 90년대 중반 이후, 자본주의의 독주와 진보담론의 위축으로, ‘그날이 오면’도 어려움을 겪게 된다. 또 신자유주의가 본격적으로 이식된 1997년 IMF 외환위기 후, ‘그날이 오면’은 많은 것을 잃게 된다. 자체적으로 창간한 무료잡지 <그날에서 책읽기>를 폐간해야 했고, 학생들이 부담 없이 세미나를 하고 책도 읽을 수 있도록 서점 2층에 마련한 북 카페 ‘미네르바’도 문을 닫아야 했기 때문이다.

 

마지막 인문학 서점 지킴이, 김동운씨를 만나다

 

1990년에 서점을 인수하면서, 지금까지 ‘그날이 오면’ 대표를 맡고 있는 김동운씨. 그는 단순히 어려움을 겪는 서점을 살리자는 구호를 거부한다. 비록 현실은 절망적이지만, 포기하지 않은 ‘진보사회의 꿈’을 더욱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날이 오면’ 지킴이 김씨와 인문사회과학 서점의 존재 의미, 새로운 희망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봤다.

 

- ‘그날이 오면’은 어떤 서점인가? 
“‘그날이 오면’은 1988년에 설립되었다. 올해로 20년이 되었다. 20년 간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자세로 이겨내려고 노력해 왔다. 그동안 많은 인문사회과학 서점들이 문을 닫았다. 사실상 유일하게 남은 인문사회과학 서점이다. ‘그날이 오면’이 우리 사회를 보다 진보적 방향으로 나갈 수 있게 하는 밑걸음이 될 수 있도록, 서점을 운영해 나갈 생각이다.”

 

- 인문사회과학 서점들이 설 곳을 잃게 된 이유는?
“90년대 이후 여러 변화들이 있었다. 무엇보다 사회 전체를 끊임없이 올바른 방향으로 만들어가려는 노력이 약화되었다고 본다. 특히 대학생들에게서 개인의 진로문제가 모든 것에 우선하는 풍토가 생겼다. 이런 상황 속에서 개인주의가 더욱 확대되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만 사는 것도 하나의 삶의 방식이 되었다.

 

즉, 여러 사람들과 어떤 것을 바꿔보자는 생각은 조금은 헛된 것으로 치부되는 것 같다. 전반적으로 사회나 대학의 분위기가 암울한 상황으로 흘러간 것 같다. 여기에 청년실업이나 비정규직 문제들이 더해지면서 사람들로 하여금 사회문제보다 개인의 문제에 더욱 관심을 갖게 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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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날이 오면' 내부모습. 서점에 책들이 가득하다. 자리가 모자라 이중삼중으로 쌓인 책들도 눈에 띈다. 사회주의 교양도서 등 진보담론을 지향하는 책들이 대부분이다. ⓒ 손기영

' 그날이 오면' 내부모습. 서점에 책들이 가득하다. 자리가 모자라 이중삼중으로 쌓인 책들도 눈에 띈다. 사회주의 교양도서 등 진보담론을 지향하는 책들이 대부분이다. ⓒ 손기영

- ‘그날이 오면’을 운영하면서 어려웠던 점은?
“가장 큰 어려움은 재정이다. 가정을 책임질 위치에 있는 상태에서 아이들 학비도 많이 들어간다. 또 내 개인 생활도 있다. 그런 문제들을 서점운영으로만 해결 할 수가 없다. 항상 ‘부채문제’에 쌓여 사는 것 같다. 이런 제 상황이 안타깝고 어려운 점이다. 단기간에 쉽게 해결책이 생길 것 같지 않다. 하지만 이런 점은 ‘그날이 오면’을 운영하면서 제가 안고 가야 할 숙명 같다.”

 

- ‘사상의 자유’를 제한하는 국보법이 아직 존재하는데?
"과거 (김영삼 정부)에 ‘그날이오면’ 대표가 구속되고, (여기에 있는) 책들이 압수되는 사건이 있었다. 하지만 (지난 10년 동안) 민주적인 정부가 들어선 이래로, 국가보안법이 엄격히 적용되지 않아 피해는 많지 않았다. 이번 17대 대선 이후로는 상황이 어떻게 흘러갈지 모르겠다. 여전히 국가보안법이 살아있는 상황에서, (이명박 정부가) 인문사회과학 서적을 팔거나 읽는 것에 대해 어떤 칼날을 들어댈지 마음이 놓이지 않고 걱정된다.”

 

- ‘그날이 오면’을 운영하면서 보람이 있었던 점은?
“유일하게 남아있는 인문사회과학 서점으로서, ‘진보적 가치’가 아직 살아있음을 보여주는 징표가 되고 있다는 점이 보람된다. 또 양심수들에게 책을 보내는 운동, 학생들이 관심 있는 저자를 초청해서 ‘저자와의 대화’를 했던 일….

 

특히 (근처에 있는) 서울대 학생들과 함께 연 ‘도서전’을 통해, 많은 학생들이 인문사회과학 서적들을 읽을 수 있게 한 점, 새내기들을 위한 ‘책읽기 길라잡이’를 했던 점, 또 총학생회와 함께한 ‘서평대회’에서, 활발한 참여가 있었던 점들이 기억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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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 성공회대 교수가 쓴 '그날이 오면' 붓글씨가 서점 한 편에 가지런히 놓여 있다. ⓒ 손기영

신영복 성공회대 교수가 쓴 '그날이 오면' 붓글씨가 서점 한 편에 가지런히 놓여 있다. ⓒ 손기영

- ‘진보적 가치’를 소중히 하는 대학생들이 아직 많다고 생각하나? 
“우리는 개인주의적이고 물질주의적 시대에 살고 있지만, 이런 점을 철저히 반성하고 비판하는 학생들은 아직 많다고 본다. 이런 사람들과 함께 ‘그날이 오면’을 운영하고, 이끌어 갈 수 있다는 점에 (삶의) 보람을 느끼고 있다.”

 

- ‘그날이 오면’에 힘을 보태주시는 분들이 있나요?
“지금도 어려움이 많지만, 어려움을 같이 이겨내고자 하는 많은 분들의 도움이 있다. 현재190명이 넘는 후원 회원들이 있다. 또 최근 ‘희망제작소’에서 사회에 공익적 역할을 담당하는 소기업들에 대한 지원차원에서 ‘그날이 오면’에 대한 도움을 주고 있다.

 

비록 사회가 보수화 되었다고 하지만, 사회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의식을 갖고 꾸준히 서점을 찾는 분들이 있어, 어려움들을 이겨내면서 보다 나은 '희망'을 만들어 갈 수 있을 거라 기대하고 있다.” 

 

- ‘그날이 오면’이 대학생들에 추천하는 책은?
“첫 번째로 <소금꽃나무>를 추천한다. 이 책은 부산지역에서 헌신적으로 노동운동을 해왔던 김진숙씨가 쓴 책이다. 스스로 노동운동을 해가면서 느낀 단상들, 그 과정 속에서 겪은 일들을 담고 있다. 과거에 <전태일 평전>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사회의 현실들을 알아왔고, 노동자들의 열악한 삶에 대해 고민을 할 수 있었다. <소금꽃나무>는 2000년대 판 <전태일 평전>과 같은 의미를 갖는 책이다.

 

두 번째로는 <88만원 세대>다. 요즘 대학생들의 현주소를 정확하게 보여주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요즘 우리가 처한) 상황들이 왜 생겨났는지, 어떻게 이겨낼 것인지 고민해볼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대학에 입학하는 새내기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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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행동>, <고추장, 책으로 말하다>, <전염성 탐욕>…. 지적호기심을 자극하는 책 제목들은 이곳 서점이 지향하는 세계를 알게 해줬다. ⓒ 손기영

<직접행동>, <고추장, 책으로 말하다>, <전염성 탐욕>…. 지적호기심을 자극하는 책 제목들은 이곳 서점이 지향하는 세계를 알게 해줬다. ⓒ 손기영

덧붙이는 글 | '그날이 오면' 위치: 서울대학교 정문에서 신림동 방면으로 가는 길에, 서울산업정보학교 지나 한남교(삼성교와 화랑교 사이) 건너편에 있다. (02-885-8290)

2008.01.10 12:37 ⓒ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그날이 오면' 위치: 서울대학교 정문에서 신림동 방면으로 가는 길에, 서울산업정보학교 지나 한남교(삼성교와 화랑교 사이) 건너편에 있다. (02-885-8290)

#그날이오면 #인문사회과학서점 #김동운 #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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