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님도 드셨다는 해구신의 위력은?

[생뚱맞은 과학선생의 아프리카 여행 23] 케이프반도 투어 - 물개섬, 희망봉, 펭귄해변

등록 2008.01.23 15:53수정 2008.01.23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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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블마운틴의 산세는 케이프반도의 끝, 희망봉까지 이어진다. 오른쪽 아래로 대서양이 있고, 왼쪽 위로는 절벽이 서 있다. 첫번째 목적지는 물개섬. ⓒ 조수영



테이블마운틴의 산세는 '대륙의 끝'이라 불리는 희망봉까지 연결되어 있다. 대부분 여행자들은 대륙의 끝으로 가기 위해서 현지 여행사의 당일치기 단체투어를 이용한다. 숙소에도 많은 광고지가 있었지만 시내 중심에 있는 여행안내소로 갔다. 10여 명의 직원들과 정말 많은 안내서가 있어서 상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친절한 아줌마 직원은 가장 일반적이고 인기있는 '물개섬-희망봉-펭귄해변'이 포함된 루트를 권했다. 팜플릿에 나온 공식가격은 점심을 제외한 가격이 350랜드(5만6천원상당)였다.

불쌍해 보이면 흥정도 가능

그녀는 어디서 왔느냐, 여행은 좋았냐 등 통상적인 질문을 했다. 갑자기 지난번 테이블마운틴에서 헤맨 사건이 생각나서 사연을 이야기했다. 여차저차해서 걸어갔는데 이러저러해서 울면서 돌아왔다, 테이블마운틴은 나쁘다는 등…. 분통에 겨워하는, 액션이 더해진 과격한 나의 설명을 듣더니 그녀는 자지러지게 웃었다. 덕분에 그녀는 직접 여행사에 전화해서 특별가격 300랜드에 흥정을 해주었다. 좀 많이 불쌍해 보였나?

여행 24일째(1월 25일). 아침 7시, 숙소 앞에서 투어버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묶는 숙소가 롱스트리트의 가장 끝에 있기 때문에 제일 먼저 데리러 온 것이다. 롱스트리트의 백패커와 워터프론트의 고급호텔을 지나면서 버스에는 각국에서 온 10여 명의 여행객이 더 탔다. 키가 2미터는 될 것 같은 가이드 겸 운전사 제이슨이 자기소개를 했다. 빡빡머리 백인 제이슨은 운전하면서 일정을 설명해 주었다.

케이프타운에서 해안도로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간다. 시내를 벗어나자마자 오른쪽으로 시원스런 바다가 펼쳐지고, 고급 주택들과 작은 규모의 해변들이 연달아 나타났다.

1488년 포르투갈인 바르톨로뮤 디아스가 서양인으로 처음으로 희망봉을 발견했을 때에도, 1652년 네덜란드 사람들이 케이프타운에 동인도회사 보급기지를 건설할 때까지, 그 누구도 이곳이 아프리카에서 가장 번화한 도시가 되리라고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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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파제에 팔자좋게 누워있는 물개. 원기둥 모양의 체형 또한 체온을 빼앗기지 않게 해준다. 부피가 같아도 표면적이 가장 작은 모양이 원기둥이기 때문이다. 외부와 접촉하는 면적을 최소로 하여 열이 작게 빼앗기게 한다. ⓒ 조수영



케이프타운으로 사람들이 몰려든 데에는 이곳의 기후도 한몫을 했다. 이곳의 기후는 지중해성 기후로 일년내내 기온의 큰 변화 없이 따뜻하다. 무엇보다 강한 바닷바람 덕분에 대기오염을 느낄 수 없어서 굉장히 상쾌하다. 

지금도 유럽의 부자들은 케이프타운 근처의 바닷가에 별장을 짓고 천혜 날씨를 즐긴다. 북반구가 더울 때에는 이곳에서 시원하게 피서를 즐기고, 겨울에도 따뜻한 바닷물에서 요트와 같은 해양 스포츠를 즐길 수 있다. 그러나 흑인들은 아무리 돈이 많아도 이런 곳에서 살 수 없다.

아프리카에서 만난 반가운 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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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개섬으로 가는 유람선. 뒤쪽으로 고급 요트들이 보인다. ⓒ 조수영



40분가량 해안가 드라이브를 마치고 호트베이(Hout Bay)라 불리는 항구에 도착했다. 이곳은 수천 마리의 물개가 사는 물개섬으로 갈 수 있는 곳이다.

호트베이(Hout bay)는 '나무로 덮인 만'이라는 뜻인데, 목재를 뜻하는 독일어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사람이 접근할 수 없을 정도로 숲이 우거진 곳이었지만 초기 식민지 시절에 목재로 사용하고자 나무를 모두 베어버려 지금은 흔적도 찾을 수 없다. 항구에는 날렵한 요트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이곳으로 오면서 보았던 고급주택에 사는 사람들의 것일 것이다.

선착장에는 몇 개의 선박회사들이 시간대를 다르게 하여 여객선을 운행하고 있다. 승선인원이 100명인 칼립소호는 여객선 내부 바닥이 유리로 되어 있어 바다 속을 내려다볼 수 있는 구조였다. 선착장에서 반갑게 만난 것은 한글로 쓰인 한 장짜리 안내문이었다.

머나먼 아프리카에서 한글을 볼 수 있음에 감격했다. 게다가 배에선 영어, 일어 등에 이어 한국어로 "물개를 잡거나 해치는 행위를 할 경우 벌금을 물게 된다"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한국관광객이 늘고 있음을 실감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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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고 매끈한 것은 태어난 지 얼마되지 않은 것이다. ⓒ 조수영



항구를 출발한 지 10여 분 후, 파도가 거세지고 바다색이 짙어지는 것으로 보아 수심도 깊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수천 마리의 물개들이 넓적한 돌 섬 위에서 일광욕을 즐기고 있다. 바위섬에 빽빽이 자리 잡은 물개, 자맥질하는 물개, 서로 얼굴을 비비고 있는 물개….

어찌나 많은지 엉엉거리는 물개 소리에 옆 사람의 말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다. 검고 매끈한 물개는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이다. 나이를 먹을수록 덩치도 커지고, 털갈이를 해서 갈색이나 회색으로 변한다. 몸무게는 암컷은 60kg 정도이지만 수컷은 360kg에 이른다.

유람선은 천천히 섬 주위를 돌면서 물개구경을 하게 해준다. 섬에는 정기적으로 물개의 상태를 연구하는 동물학자만이 내릴 수 있다.

임금님도 드셨다는 해구신의 효력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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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개는 수컷 한마리와 수십마리의 암컷이 하렘을 이루고 살아가고 있다. ⓒ 조수영



물개는 덩치 큰 수컷 한 마리가 40~50마리의 암컷을 거느린다. 번식기간 2~3개월에 수컷은 이 많은 부인들과 하루에 20~30회씩, 통산 600~1800번의 교미를 한다.

게다가 수컷은 이 기간에 암컷과 새끼에 대한 경계 때문에 먹이잡이도 나가지 않는다. 먹지도 않고 쉬지도 않고 뿜어대는 물개의 정력은 가히 인간들의 경외의 대상이 되고도 남았다.

사람들은 물개의 생식기를 먹음으로써 물개의 능력을 전수받을지도 모른다는 주술적 믿음을 갖게 되었다. 정력강장제의 대명사처럼 불려온 해구신(海狗腎)이 그것이다.

수컷 물개의 생식기를 그늘에서 백일동안 말리고, 술에 하루 동안 담가두었다가 종이에 싸서 약한 불에 구워서 먹는다고 한다. 남성의 발기부전에 좋고, 약해진 정액생산 능력을 높여주며, 허리를 따뜻하게 해주는 것으로 믿는 사람이 많았다. 그러나 과연 성분상으로 보아 그럴만한 것이 있는지는 의심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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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개 한마리가 물속으로 뛰어들 준비를 하고 있다. 물개는 콧수염의 감각을 이용하여 물고기를 잡는다. ⓒ 조수영


해구신의 구성성분은 단백질과 지방, 유기물, 호르몬 등이다. 그러나 주성분을 이루는 단백질은 콜라겐과 엘라스틴 같은 경성단백질로, 생선이나 콩에 들어 있는 고단백질에 비교하면 인간의 성 기능 강화에 미치는 영향은 아주 미미하다.

설령 호르몬이 있다 해도 그것을 먹어서 사람의 정력으로 변환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싼값에 성능 좋은 남성 호르몬을 구할 수 있는 오늘날엔 비용 대비 효과라는 측면에서 매우 비효율적인 일이다. 먹으면 틀림없이 효과가 있을 것이라 믿는 플라시보 효과가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아닌지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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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개가 앞다리(혹은 앞지느러미)로 걸어다닐 수 있는 것은 튼튼한 가슴뼈가 내장을 보호해주기 때문이다. 물개의 다리에는 발가락의 흔적이 남아 있다. ⓒ 조수영


얘네, 물개쇼 할 수 있겠어?

녀석들은 우리에게 익숙한, 사육사의 손짓에 따라 움직이는 재주 많고 영리한 물개들이 아니었다. 자연에서 느긋하게 게으름을 피우며 저희들끼리 희희낙락 유희를 즐기는 모습이었다.

야생의 물개 그대로의 모습이다. 이들은 물고기나 조개 등을 잡아먹고 사는 데 민감한 콧수염을 이용해 먹이를 찾는다. 물고기를 잡으려고 바닷물에 뛰어들더라도 인간과 거의 비슷한 36~38℃ 정도의 체온을 유지한다.

체온유지의 비결은 털과 3~4cm나 되는 지방층이다. 극지방에 사는 종류는 무려 14cm나 되는 지방층을 가지고 있다. 두꺼운 체지방은 열전도율이 낮아 체온이 뺏기는 것을 막아주기 때문이다. 오히려 너무 물밖에 오래 있게 되면 체온이 올라가서 위험하기 때문에 바닷물에 뛰어들어 체온을 식혀야만 한다.

물개는 포유류로 허파 호흡을 하기 때문에 시간 대부분을 뭍에서 생활한다. 물속에서 지느러미 역할을 하는 앞다리가 뭍에서는 다리 역할을 한다. 튼튼한 앞다리와 갈비뼈가 물 밖에서도 몸과 내장을 충분히 지탱하고 보호해주기 때문에 상체를 세울 수도 있고, 걸을 수도 있다. 물론 '물개쇼'도 가능하다.

물개나 바다표범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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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짝 놀랐다. 잘못왔나? seal은 우리말로 바다표범이다. 이곳에 사는 녀석들은 fur seal, 물개다. 까칠한 성격은 남아공에 와서도 트집을 잡는다는 핀잔을 들을 것 같다. ⓒ 조수영



관광안내소의 팜플릿에도, 호트베이에 있는 매표소에도 'SEAL(바다표범) ISLAND'라고 쓰여 있었다. 그렇다면 물개섬이 아니라 바다표범섬인가? 너무 당황하였다. 잘못 온 건가?

결론은 이곳에 사는 것은 바다표범이 아니라 분명히 물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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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엄치고 있는 물개. 물개는 귓바퀴가 있어서 바다표범과 확실히 구분된다. ⓒ 조수영



바다표범은 표범 같은 얼룩무늬가 있고, 귓바퀴가 없다. 그러나 물개는 네 다리가 모두 지느러미 모양이고, 귓바퀴가 있어 확실히 구분된다. 이곳에 사는 녀석들은 귓바퀴가 있었다. 큰 몸집에 큰 코와 상아를 가지고 있다면 바다코끼리다.

바다표범(물범, seal), 바다사자(sea lion), 바다코끼리(walrus)는 모두 기각류(鰭脚類)에 해당한다. 지느러미(기)처럼 생긴 발(각)이 있는 동물이라는 뜻이다. 물개(fur seal)는 바다사자과에 속한다.

물개를 비롯한 바다사자는 일부다처제지만, 바다표범은 일부일처제라는 점도 다르다. 여러 부인들과 왕성한 정력을 자랑하는 물개를 닮고 싶어 그 생식기를 먹는다지만, 비슷하게 생겼다는 이유로 바다표범 또한 그 재료가 된다는 것은 이해되지 않는다. 우리나라 남자들의 ‘해구신 사랑’은 북극의 에스키모들도 아는 일이라고 한다. 동물의 생태나 제대로 구분하고 먹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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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표범, 바다사자, 바다코끼리...기각류들은 인간과 같은 포유류이면서도 물속 깊은 곳까지 잠수할 수 있다. 그 이유는 혈액과 미오글로빈에 많은 양의 산소를 저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바다표범은 150미터 깊이까지 잠수 할 수 있다. ⓒ 조수영


물개는 튼튼한 앞다리와 갈비뼈 덕분에 물 밖에서도 걸을 수 있고 몸과 내장을 충분히 지탱할 수 있다. 그러나 바다표범은 앞발은 앞쪽을, 뒷발은 뒤쪽을 향하고 있다. 마치 사람이 손발을 늘어뜨린 모양과 같아서 땅 위에 오르면 걸어다닐 수가 없고 기어다닌다.

물개가 사육사의 구령에 따라 앞 지느러미로 걸어다니며 묘기를 하는 동안, 바다표범은 따스한 햇볕이 비치는 돌섬 위에 늘어지게 누워서 일광욕이나 하고 있다.

우리는 보통 바다표범이나 물개를 비롯한 바다사자나 기각류를 통틀어 '물개'라고 부른다. 반대로 이곳의 사람들은 'Seal'이나 'Fur seal'을 통틀어 'Seal'라고 부르고 있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물개를 좋아해서도 남아공 사람들이 바다표범을 좋아해서도 아니다. 그냥 간단하고 짧은 단어로 묶어서 부르는 것이다.

물개니 바다표범이니 그것으로 당황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생각이 많으면 피곤한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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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개구경을 마치고 호트베이로 돌아오니 배에서 내리는 관광객을 상대로 노래를 부르는 공연단이 기다리고 있었다. 얼굴을 자세히 보면 흑인도 백인도 아니다. 이들은 혼혈인 '컬러드'에 속한다. ⓒ 조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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