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 신사가 아프리카엔 왜 왔을까?

[생뚱맞은 과학선생의 아프리카 여행 24] 케이프반도 투어 - 희망봉, 펭귄해변

등록 2008.01.26 17:02수정 2008.01.26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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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제국들의 대륙 침략의 발판이었던 슬픈 역사를 간직한 희망봉이 지금은 케이프타운을 찾은 여행자의 필수 관광코스가 되었다. 진짜 아프리카 대륙의 남쪽 끝은 희망곶에서 동남쪽으로 200㎞ 거리의 아굴라스곶이다. ⓒ 조수영


희망봉이 최남단이 아닌 것은 다 아는 거 아냐?

호트베이를 출발한 버스는 남쪽으로 채프먼스 피크 드라이브(Chapman's Peak Drive)길을 달린다. 눈 아래로는 푸른 대서양이, 반대편으로는 험한 절벽이 올려다보이는 아찔한 드
라이브길이다.

30분가량을 달려 희망봉 자연보호 구역(Cape of Good Hope Nature Reserve)으로 들어섰다. 오로지 평원이다. 87미터 높이의 해안절벽인 케이프 포인트를 정점으로 넓게 펼쳐진 평원에는 프로테와, 에리카 등의 희귀식물들과 원숭이, 타조 등의 야생동물들이 살고 있다.

버스에서 내리자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로 바람이 불었다. 등대가 있는 케이프포인트 정상에 오르자 끝없이 펼쳐진 수평선이 눈에 들어왔다. 온도가 낮은 대서양은 검푸른 빛이고 따뜻한 인도양은 에메랄드빛이기 때문에 두 해류의 경계가 뚜렷하게 보였다. 두 해류가 만나는 부분은 소용돌이가 일어나고, 반대로 갈라서서 등을 대기도 한다.

몸이 떠밀릴 정도로 바람이 거세다. 난간에 머리를 쭉 내미니 절로 바람 마사지가 된다. 등대 옆에 세워진 이정표에는 이곳에서 지구 곳곳까지의 거리가 표시되어 있다. 북경 1만2993km, 뉴욕 1만2541km, 도쿄 1만4724km…, 서울은 없다. 월드컵이 끝난 지가 언젠데 이곳 사람들의 글로벌 감각이 둔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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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봉 등대에 있는 이정표. 뉴욕, 시드니, 동경…. 서울은 없었다. ⓒ 조수영


개코원숭이에게 제대로 당하다

등대에서 내려와 해안으로 향하는 산책길을 걷고 있었다. 가방 속에 있던 소고기 빌통을 꺼내 먹었다. 빌통은 우리나라 육포와 비슷한데 소고기 이외에도 타조, 쿠두 등 종류가 다양하다.

어디선가 갑자기 개코원숭이가 나타나더니 꽥꽥 소리를 질렀다. 나도 놀라서 악악대고 소리를 질렀다. 펄쩍펄쩍 뛰더니 다리를 할퀴었다.

순간 반사적으로 들고 있던 빌통을 저 멀리 던져버렸다. 원숭이는 땅에 떨어진 빌통을 재빨리 주워 먹더니 달아나버렸다. 너무너무 무섭고, 상처 난 다리도 아팠다.

투어버스로 돌아와 가이드 제이슨에게 원숭이 습격사건을 이야기했더니, 돌아온 말은….

"이곳의 바분(개코원숭이)은 음식을 든 사람만 보면 빼앗아 먹으려고 달려들어요. 케이프반도 해안마을에도 갈수록 난폭해지는 바분들이 집안까지 습격해 음식을 가져가고 어질러서 골칫거리예요. 근데…, 네 다리는 튼튼해서 괜찮을 것 같아 보여. 너 혹시 산악자전거 탔니?"

이후 버스에 탄 사람들은 나를 '산악자전거'라 불렀다. 정말 맘에 안 드는 별명이다.

폭풍의 언덕이 희망의 봉우리로... 그리고 상처의 장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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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봉에서 내려다 본 바다. 왼쪽의 인도양, 오른쪽이 대서양이 만나기 때문에 파도가 거세다. 서양인으로 처음 이곳에 도착한 기록을 세운 디아스도 9년 뒤 다시 방문하던 중 이 풍랑에 죽었다. ⓒ 조수영


아프리카의 가장 끄트머리로 알려진 이곳은 1488년 인도로 가는 항로를 찾던 포르투갈인 바르톨로뮤 디아스(Bartolomeu Diaz, 1450 ~1500)가 발견했다. 당시 이름은 '폭풍의 곶(Cape of Storms)'이었다. 서로 다른 두 바다가 만나는 이곳의 바람은 팽팽했고 파도는 거세게 부딪쳤다. 돛 하나로 바다를 가르던 위세 좋던 범선도 이 바다에선 맥을 못 췄다. 디아스도 결국 이 폭풍의 바다에서 풍랑으로 죽고 말았다.

폭풍의 곶을 희망봉으로 둔갑시킨 것은 포르투갈 국왕이었다. 선원들이 겁을 먹어 항해를 꺼리자 신대륙을 발견하는데 차질이 생길 것 같았다. 그래서 '죽음의 바다'를 '희망의 바다'로 이름을 바꿔버린 것이다.

이름을 바꾼 희망봉은 그 후부터 이름 그대로 선원들의 희망이 되었다. 동방으로 가는 신항로가 개발되었고, 인도를 향한 수개월의 항해를 끝낸 선원들은 향신료와 보석을 가득 싣고 부자가 되어 돌아왔다. 선원들에게는 이곳만 넘어서면 대서양이 시작되고, 고향이 가까워졌음을 알리는 희망의 이정표였을 것이다.

유럽의 사람들은 이런 역사적 가치에 만족하지 못하고 지리적 가치까지 더하고 싶었나보다. 지도에서 보면 알 수 있듯이 희망봉이 아프리카 대륙의 최남단은 아니다. 케이프반도의 최남단일 뿐이다. 아프리카 대륙의 최남단은 희망봉에서 남동쪽으로 160킬로미터 더 내려간 '아굴라스 곶(Cape Agulhas)'이다. 희망봉 그 자체는 그저 바다를 향해 불쑥 튀어나온 평범한 곶(cape)에 지나지 않는다.

'마젤란의 필리핀 상륙'이 필리핀의 입장에서는 '유럽의 침략'으로 기록되듯, 역사는 같은 장소라도 시대와 상황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어야 한다. 유럽의 입장에서는 신대륙의 꿈을 전해주는 '희망의 봉우리'로 불리지만, 아프리카 입장에서는 희망봉이 발견된 이래 5백여 년에 걸친 유럽의 침략이 시작된 곳이니 희망과는 요원한 '절망의 봉우리'로 불려야 되지 않을까 싶다.

원숭이의 봉변을 당한 관광객의  입장에는 '쓰라린 상처의 장소'로 기억될 것이다.

남극의 신사가 아프리카에 살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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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얘네들이 다 어디갔지?"... "수풀속에 뭐가 있을까?" ⓒ 조수영


희망봉을 출발한 버스는 자갈 해변이라는 뜻의 볼더스비치(Boulders Beach)로 향했다. 케이프반도의 동쪽 해안도시, 사이먼스타운의 중심부에서 10분정도 걸어가면 나온다. 이렇게 작은 해변에 많은 관광객이 찾아오는 것은 오로지 아프리카에 사는 펭귄 때문이다.

이곳의 펭귄은 황제펭귄처럼 큰 놈들은 아니다. 녀석들은 어른 무릎높이 정도로 키가 작다. 울음소리가 당나귀와 비슷해 자카스 펭귄(Jackass Penguin)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똑같이 우는 남미에 사는 펭귄과 구분하기 위해 '아프리칸 펭귄'으로 불리기도 한다.

바다 쪽으로 향한 나무 산책로를 따라가니 백사장에 귀엽고 앙증맞은 펭귄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너무 귀여워서 인형으로 착각할 정도다. 녀석들은 바위 위에 서서 하염없이 먼 바다를 바라보기도 하고, 뒤뚱거리며 모래 해변을 걷기도 한다.

관광객은 정해진 산책로 아래로는 내려갈 수 없다. 오히려 녀석들이 가까이 다가와 빤히 쳐다보고 있다. 사람들을 빤히 쳐다보고 피하지를 않아 이놈들과 눈을 마주치면 마치 눈싸움 하는 것 같다.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펭귄의 행동은 상대를 위협하는 경고의 메시지라고 한다. 귀엽다고 가까이 다가가면 사람을 공격할 수도 있다. 부리가 날카롭고 힘이 세기 때문에 만약 손가락을 물리면 잘릴 수도 있다.

펭귄이 북극에서 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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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언제 고향인 남극으로 갈 수 있을까?" ⓒ 조수영


보통 펭귄 하면 남극의 얼어붙은 바다를 연상하지만, 그동안 종에 따라 자신이 살기 편한 장소를 찾아 한류를 타고 이동하기도 했다. 여기 남부 아프리카의 연안 외에도 호주 남부, 칠레와 페루 연안에도 펭귄이 살고 있다.

남극에서 이곳 아프리카까지 왔지만 녀석들이 적도를 넘어 북반구까지는 이동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펭귄은 차가운 한류에 의지해서 생활하기 때문에 열기와 난류가 흐르는 적도 부근을 넘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만약 인간의 힘으로 펭귄들은 북극으로 옮겨 놓는다면? 기후와 먹이가 펭귄에게 적합하기 때문에 얼마든지 잘 살아나간다는 것이 전문가의 설명이다.

추위를 모르는 펭귄, 동상 걱정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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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많은 펭귄이 바위 위에서 일광욕을 하고 있었다. 이처럼 많은 펭귄 떼가 서식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곳 주민들 때문이라고 한다. 한 때 거의 멸종 되다시피 한 것을 주민들이 돌봐주고 아끼면서 펭귄 서식지를 철저히 감시해 이처럼 많은 펭귄 무리가 이곳에 살 수 있게 만들었다. ⓒ 조수영


펭귄의 고향인 남극은 최대 영하 75도까지 내려간다. 젖은 몸을 5분 안에 말리지 않으면 얼어 죽는다. 맨손으로 10분 이상 노출되면 동상으로 손을 잘라내야 한다. 물개와 마찬가지로 펭귄처럼 극지방에 사는 동물들의 피부는 두꺼운 지방층으로 되어 있다.

펭귄이 작은 키에 뚱뚱한 체형을 가진 것도 그런 이유에서이다. 다이어트를 해야 하는 사람에게는 지방층이 골칫거리지만 펭귄에게 지방층은 생존의 필수조건인 것이다.

얼음 바람을 정면에서 맞는 것도 모자라 맨발로 걷는 펭귄은 동상에 걸리지 않는다. 펭귄은 발바닥조차도 추위에 견딜 수 있는 혈관 구조로 발달하였다. 동맥의 주위를 정맥이 빽빽이 둘러싸고 있어 따듯한 동맥피는 적당히 차가워지고 발끝에서 올라오는 정맥피는 적당히 따뜻해진다. 그래서 발바닥 온도는 몸보다 낮은 수준에서 얼지 않을 만큼 적당한 수준을 유지할 수 있다.

펭귄은 용가리 통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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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야 놀자."(위 사진), 펭귄의 검은 등은 일종의 보호색이다. 물속에 있으면 짙은 바다색에 묻혀서 큰 새들의 공격을 피할 수 있다.(아래 사진). ⓒ 조수영


모래 위를 뒤뚱거리며 걸어가는 펭귄은 모처럼 연미복을 차려입고 파티를 가는 모습처럼 보인다. 펭귄의 등 부분은 어둡고, 배 쪽은 밝은 색을 띠는 이유는 물고기와 마찬가지로 일종의 보호색이라고 할 수 있다.

바닷물에 들어갔을 때 독수리가 위에서 어두운 바다를 내려다보면 펭귄의 등이 어두운 색이라서 잘 보이지 않고, 깊은 바다에서 상어나 고래가 올려다보면 하얀 배가 하늘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약한 동물들도 그들만의 생존 법칙이 있기 마련이다.

바다에선 예닐곱 마리가 서핑을 하듯 물 위에 배를 깔고 파도를 가르며 차례로 모습을 드러냈다. 해변에 먼저 도착한 놈은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어떤 놈은 파도의 힘을 이기지 못해 나뒹굴기도 한다. 펭귄은 조류에 속하기는 하지만 날개가 완전히 퇴화되어 날지는 못한다. 대신 펭귄의 날개는 물속에서 헤엄치기 적합하게 발달했다.

일반적으로 새의 뼈는 가볍게 날기 위해 속이 비어 있다. 그러나 물속의 먹이를 잡아야 하는 펭귄의 뼈는 속이 꽉 차 있다. 단단한 펭귄의 날개는 물속에서 노와 같은 역할을 해서 날개를 펄럭여 빠르게 헤엄치거나 방향을 바꾸어도 휘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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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에 고이 감춰진 펭귄의 알. ⓒ 조수영


뒤에 보이는 굴이 저놈들 집이다. 펭귄 부모는 새끼 돌보는 일을 사이좋게 분담한다. 한쪽이 새끼를 보호하는 동안 다른 한쪽을 바다에 나가 사냥을 한다. 사냥을 마친 펭귄은 자신의 위에 음식을 소화되지 않은 상태로 저장해 와서 새끼에게 먹인다.

뒤뚱거리는 펭귄의 걸음걸이, 효율은 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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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에서 일광욕을 하고 있는 펭귄과 하늘을 나는 갈매기. 사이먼스 타운에서 산책로를 따라 가면 아프리칸 펭귄의 서식지가 있다. ⓒ 조수영


두꺼운 지방으로 싸인 뚱뚱한 몸 이외에 펭귄을 상징하는 것이 뒤뚱거리는 걸음걸이다. 짧은 다리로 뒤뚱거리는 모습이 사뭇 힘들어 보인다.

펭귄은 몸에 비해 다리가 매우 짧아서 오른발을 내밀 때에는 자연스레 몸통이 오른쪽으로 기울고 무게중심 또한 오른쪽 앞으로 이동한다. 왼발을 내밀 때에는 몸통을 왼쪽으로 기울여 무게 중심을 잡는다. 이런 걸음걸이는 몸 전체가 좌우로 흔들리며 진동하기 때문에 뒤뚱거리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펭귄의 걸음걸이가 반드시 불리한 것만은 아니다. 일정한 박자로 좌우로 뒤뚱거리는 펭귄의 몸은 마치 흔들이처럼 좌우로 진동하고 있다. 이처럼 흔들이의 원리를 이용해 걷기 때문에 다리를 흔들려면 특별한 힘을 들일 필요가 없다.

즉 펭귄은 짧은 다리로 가장 효율적으로 걷고자 뒤뚱거리게 된 것이다. 어느 과학자의 연구에 따르면 한쪽으로 기울어지면서 발생하는 에너지의 80%를 다음 걸음을 위해 이용한다고 한다. 사람은 약 65%만을 이용한다고 하니 옆으로 몸을 흔들면서 걷는 펭귄의 걸음걸이는 매우 효율적이라 할 수 있다.

사이먼스 타운에서는 펭귄들이 도로로 나오는 일이 빈번해지면서 교통사고가 많이 났다. 1900년대 110만 마리에 달하던 펭귄은 현재 2천여 마리만이 남았다. 현재는 울타리로 장막을 쳐놓았다. 학자들은 2050년에는 멸종될 것으로 보고 있다니 안타깝다.

어쩌다 '썰렁하다'는 핀잔의 대명사가 되어버린 귀여운 펭귄, 남극에서만 볼 수 있을 거로 생각했던 펭귄을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아프리카 해변에서 해수욕과 모래찜질을 즐기는 모습으로 만난다는 것이 눈앞에 두고도 믿기지 않는 일이다.

꼬박 하루 동안의 케이프타운 투어가 끝났다. 제이슨은 우리를 워터프론트 항구에 내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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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위로부터)
[1단계] "으~ 시원하다." 수영을 마친 펭귄이 해변으로 돌아오고 있다.
[2단계] "일단 물기를 털어야지."
[3단계] "어때, 이제 보송보송하지? 샤워는 이맛에 하는 거야." ⓒ 조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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