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아프리카에서 17대 1로 싸운 여자야

[생뚱맞은 과학선생의 아프리카 여행 29] 나미비아 스와코문트

등록 2008.03.20 10:03수정 2008.04.02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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쿼드 바이크. ⓒ 조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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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멧을 쓰고 쿼드바이크 타기를 준비하는 사람들. ⓒ 조수영


여행 28일(1월 29일). 다음날 아침, 미리 예약했던 액티비티 여행사를 찾았다. 시내에는 수십 개의 다른 여행사가 있었고 비용도 더 저렴했다. 결국 할인행사를 하는 곳으로 옮기기로 했다.

할인된 가격이지만 '쿼드바이킹'이 350랜드(5만6000원), '샌드보딩'이 200랜드, '스타이다이빙'은 1500랜드(24만원)나 된다. 녹화된 화면을 보여주며 스카이다이빙까지 하라고 꼬드겼다. 그러나 오래 전 호주에서 눈물콧물 다 흘렸던, 스카이다이빙에 관한 아픈 추억 때문에 단호하게 거절했다.


'샌드보딩'은 경사에서 보드판을 깔고 내려오는 것이다. 가이드 말로는 시속 60㎞의 속력으로 내려온다고 한다. 온 몸으로 바람을 느끼며 내려오기 때문에 '쿼드바이크'보다 훨씬 스릴이 있겠지만 모래언덕까지 걸어서 올라가야 한다는 치명적인 어려움이 있다. '쿼드바이크'는 2시간의 시간제한이 있는 반면 샌드보딩은 시간이 무제한인 것도 이 때문이다.

결국 '사륜오토바이' '사발이 오토바이'라고도 불리는 쿼드바이크(Quad Bike, 일명 ATV : All Terrain Vehicle)를 타기로 했다.

모래 사이로 바이크 타고 달리는 기분, 상쾌도 하다!

바이크 코치는 작동법과 안전수칙을 알려주었다. 쿼드바이크의 왼쪽 손잡이는 브레이크, 오른쪽 손잡이는 액셀레이터다. 바이크를 선택하고, 초급자팀과 상급자팀으로 나누었다. 실력은 초급자이지만 두 팀이 경로가 다르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욕심이 났다. 슬그머니 상급자 쪽으로 줄을 섰다.

살살 바이크의 엑셀을 밟았다. 아니 눌렀다. 엄지손가락으로 레버를 돌리면 가속하게 된다. 두껍고 넓은 타이어 덕분에 모래 위에서도 잘 달린다. 처음에는 조심해서 모랫바닥의 감각을 느꼈다. 바이크 코치의 꽁무니를 줄지어 쫓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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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서양과 쿼드바이크. 사막의 끝은 곧바로 바다로 이어져 있었다. ⓒ 조수영


첫번째 모래언덕이 나타났다. 미리부터 가속을 하고 '오르막에선 몸을 최대한 앞으로'라는 코치의 말을 되새기며 언덕을 향해 출발했다. 쉽게 언덕이 올랐다. 다음은 내려갈 차례다. 내리막에선 무게중심을 뒤쪽으로 옮겨 속도를 줄여야 바이크가 넘어지지 않는다.

경사가 있는 언덕을 오르다 옆으로 휙 넘어지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차체가 넘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무게중심이 중요한데 오른쪽으로 기울어진 곳을 지날 때에는 몸을 왼쪽으로, 왼쪽으로 기울어진 곳을 지날 때에는 반대로 몸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성공! 무게중심이 낮고, 차체의 폭이 넓어서인지 몸으로 느끼는 경사도 그리 심하지 않았다. 몇 개의 모래언덕을 더 넘고 나니 '어, 이거 되는데, 이 쯤이야'라는 건방진 생각이 들었다. 더욱이 산길과 달리 모래바닥은 굴러도 다칠 일이 없지 않은가.

다음 언덕부터는 내리막에서도 몸을 앞으로 숙였더니 내려오는 속도가 빨라졌다. 속력이 빨라질수록 정상을 넘어서는 순간 몸이 붕 뜨는 스릴감도 느껴진다. 

경사가 심한 경우에는 미리부터 가속하여 중간에 멈추지 않고 한 번에 올라가야 한다. 한번 멈추게 되면 다시 동력을 가한다 해도 바퀴가 헛돌았다. 경사가 심한 경우에는 브레이크를 밟고 있어도 바퀴가 미끄러지면서 차체가 뒤로 밀렸다.

이 모래를 퍼다가 집을 짓는다면?

바이크팀은 스와코문드의 남쪽 사막을 30㎞로 이동한다. 가도가도 끝이 없는 모래언덕이다.

문득 사막의 모래를 퍼다가 건축에 쓰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건축에 필요한 모래를 얻기 위해서는 일반적으로 강이나 바다의 바닥모래를 긁어낸다고 한다. 바다에서 채취한 모래는 염분을 없애기 위해 세척까지 해야 한다.

힘이 들 뿐만 아니라 생태계도 파괴된다. 사막의 그 흔한 모래를 가져가면 사막의 입장에서는 일반 땅의 면적이 넓어지는 셈이니 일거양득이다.

무심히 들으면 그럴 법하지만, 전문가의 의견으로는 절대 불가능하다고 한다. 보통 콘크리트를 만들 때 사용하는 모래는 0.08㎜ 정도의 굵은 모래다. 흩날릴 정도로 입자가 작은 사막의 모래로 콘크리트를 만들면 마치 찰흙으로 만들어놓은 것처럼 갈라지고 부서지기 때문에 건축에 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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쿼드바이크는 나미브 사막의 모래언덕을 달렸다. ⓒ 조수영


똑같은 모양의 사구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모양과 색깔이 다른 모래언덕을 사막의 바람을 가르며 신나게 달렸다. 지상 최대의 사막인 나미브 사막을 직접 오토바이를 몰고 달린다. 사막의 폭주족이 되어 씽씽 달렸다.

이젠 연속으로 넘기에 도전한다. 원래 겁이 많다. 하지만 쿼드바이크의 엑셀과 브레이크감을 좀 익히고 나니 어쩐지 안심이 됐다. 덩치가 크고 안정감이 있어 왠지 보호해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엑셀을 놓으면 기어가 강해서 속도가 바로 줄어드니 웬만하면 함부로 미끄러지진 않을 것 같았다. 

좀 더 속도를 냈다. 그런데, 꽤나 높은 언덕을 연달아 넘다가 균형을 잃은 바이크가 옆으로 넘어져 버렸다. 내팽개쳐진 바이크와 그 아래 깔려있는 나.

문제는 그 상황이 너무 웃겼다는 거다. 뒤집어진 개구리 자세로 꼼짝없이 깔려서 내 힘으로는 전혀 일어날 수 없었다. 가이드는 이렇게 과격하게 바이크 모는 여자는 처음 봤다고 한다.

어딘가 부러질 수도 있었는데 다행히 다리에 약간의 멍만 들었고 여기 저기 조금씩 긁혔다. 희망봉에서 원숭이에게 할퀴고, 사막에서 오토바이에 깔리고 다리의 수난시대다.

방갈로 숙소로 돌아왔더니 찰스가 상처에 대해 물었다.

"그게, 17대 1로 싸운 상처야. 내가 이정도면 상대편이 어느 정도인지 알겠지?"

찰스는 오늘도 관심을 보인다.

남한이든 북한이든, 작업멘트는 똑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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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다이빙에서 바다가재를 잡아온 아저씨. ⓒ 조수영


여행 29일 (1월 30일). 오늘은 나미비아에서의 마지막 날이다. 아프리카에서의 마지막 날이기도 하다.

아침 일찍 일어나 대서양 해변을 걸었다. 새벽 다이빙을 마친 아저씨 다이버가 갓 잡은 바다가재를 꺼내고 있었다. 낡은 잠수복과 그물망이 우리나라 머구리 다이버와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몇 m에서 잡았냐, 어떻게 잡으면 되냐, 수온이 어떻게 되냐"고 물었더니 지금 자기네 집에 가서 같이 먹자고 한다. 대서양 바다가재 맛은 아쉽지만 자칫 따라갔다가 고기잡이배에 팔려 영영 육지로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손하게 거절하고 돌아서는데, 해변 끝에서 그저께 식당에서 만났던 북한 남자를 다시 만났다. 일행에서 벗어나서인지 이번에는 자기 자랑을 시작했다. 취미는 바이올린이고, 능력을 인정받아서 나미비아뿐만 아니라 세계 이곳저곳을 다닌다고 한다.

기가 막히는 것은 얼핏 봐도 40대 후반에 중학생 정도의 아이가 있는 학부형인데, 30대 총각이란다. 남한이든 북한이든 작업멘트는 똑같은 것 같다. 그러나 사진을 보내줄 이메일을 달라고 했더니, 사무실에 인터넷 상황이 좋지 않아서 이메일이 없다는 이상한 핑계를 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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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와코문트. 대서양 해변. ⓒ 조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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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풍의 건물이 있는 거리. ⓒ 조수영


투어 가이드 찰스와도 이별을 했다. 찰스는 팔에 끼고 있던 구리 팔찌를 선물했고, 나는 여행용 컵과 남아있던 커피믹스를 선물했다. 우리나라 커피믹스의 깊은 맛은 세계어디서나 인기가 있다. 찰스는 이메일을 써주며 꼭 편지를 보내라고 했다. 여행이 끝난 지금도 가끔씩 연락을 주고받지만 찰스는 아직 내 나이를 모른다.
#아프리카 #스와코문드 #나미비아 #쿼드바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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