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박자 빨랐던 압수수색 답답했던 '숨통' 뚫을까

삼성특검, 삼성화재 본사 등 8시간 째 압수수색 중

검토 완료

이경태(sneercool)등록 2008.01.25 15:47

삼성 비자금을 조사중인 특검이 25일 새벽부터 서울 중구 삼성화재 본사를 압수수색중인 가운데 직원들이 점심식사를 위해 건물을 나서고 있다. ⓒ 권우성


승지원 및 핵심 임원 자택 -> 삼성 본관 -> 에버랜드 -> 삼성화재

지난 24일 KBS <뉴스9>가 "삼성화재가 고객의 보험금을 빼돌려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의혹을 제기한 지 6시간 만에 특검팀의 압수수색이 시작됐다.

삼성 비자금 의혹을 수사 중인 조준웅 특별검사팀은 25일 새벽 3시 30분 30여명의 수사관을 중구 을지로에 위치한 삼성화재 본사와 경기도 과천 전산센터, 그리고 경기도 고양군 수유리에 위치한 삼성화재 사옥으로 파견했다.

삼성화재 압수수색은 그동안 결정적 물증 확보에 목 말라왔던 특검팀이 내린 특단의 조치다.

삼성 특검, 의혹 제기 6시간만에 전격 압수수색 벌여

삼성그룹 비자금 의혹 사건을 수사중인 조준웅 특별검사가 17일 오전 서울 한남동 삼성특검 사무실로 출근하고 있다. ⓒ 남소연

KBS <뉴스9>는 어제 내부제보자인 김씨의 말을 빌어 "합의 등이 이뤄지지 않아 지급하지 않은 미지급 보험금이나 고객들이 잘 챙겨받지 않는 렌터카 특약비 등 소액의 돈을 골라 차명계좌에 빼돌리는 방식으로 연간 15억원의 비자금을 조성했다"며 "건물 꼭대기 층에는 평소 10억원 씩 예치해놓은 비밀금고가 있다"고 보도했다.

삼성화재 측의 대응도 기민했다. 뉴스가 방송된 지 10분도 채 되지 않아 전화를 통해 KBS 보도에 대해 반박자료를 준비 중임을 밝히고 40여분이 지난 뒤에는 삼성화재 임원 2명이 직접 기자실을 찾아 보도 내용을 부인하기까지 했다.

삼성물산과 삼성중공업에 이어 비자금을 조성한 새로운 삼성그룹 계열사의 등장. 그리고 또 다른 비밀금고의 존재까지 제기된 의혹이 큰 만큼 다들 특검이 압수수색 등의 확인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렇게 빠르게 행동을 할 줄은 아무도 몰랐다. 삼성화재 직원들도 보도 직후 회사로 출근했지만 특검의 압수수색을 예상하지 못하고 모두 퇴근한 상태였다.

이와 관련해 윤정석 특검보는 이날 오전 10시 10분 브리핑에서 "특검팀에도 KBS에 제보한 내용과 동일한, 비자금 조성 과정과 또 다른 비밀금고 존재에 대한 제보가 들어왔던 것 같다"며 "상대방이 준비하기 전, 긴급성을 요하는 상황이라 새벽에 압수수색을 실시했다"고 밝혔다.

그동안 성과 거두지 못했던 압수수색 ... 초동수사 미진했기 때문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등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15일 오후 여의도 국회 앞에서 삼성그룹의 불법 비자금 조성 의혹 규명을 위해 특검제 도입을 촉구하고 있다. ⓒ 남소연


특검팀의 이 같은 발 빠른 조치는 그동안 압수수색의 성과가 미진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추측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 10일 출범 후 벌인 압수수색에서 특검팀은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김용철 변호사가 지난해 11월 폭로한 삼성 본관 27층의 비밀금고는 찾지 못한데다, 용인 에버랜드 미술품 창고에서 핵심 의혹 작품인 <행복한 눈물>, <베들레햄 병원>을 찾지는 못했다.

압수수색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한 것은 전적으로 초동수사의 미진함 때문이다.

김 변호사가 문제를 제기한 지 벌써 4개월 가까운 시간이 흘렀지만 비밀금고 의혹이 제기됐던 삼성 본관 27층의 베일은 지난 15일에야 벗겨졌다. 비밀금고는 없었다. 에버랜드 '미술품 창고' 압수수색도 의혹이 제기된 지 하루 만에 압수수색을 벌였지만 이미 항온 · 항습 장치가 된 수장고 작품들이 일일이 포장되어있는 등 삼성그룹이 압수수색을 대비한 조치들을 취하지 않았나 하는 의심을 낳았다.

사건 초기부터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이하 민변), 참여연대 등 시민사회단체들은 삼성그룹의 증거인멸을 우려해 즉각적인 검찰 수사를 촉구했다. 그러나 당시 검찰 특별수사 감찰본부는 "특검의 취지를 고려해야 한다"며 "피의자들의 내성을 길러줄 수 있는 수사를 할 수 없다"는 입장을 취했다. 결과는 우려대로였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삼성그룹 측은 지난 4개월 간 조직적으로 증거인멸에 주력했다. <한겨레>는 삼성전자는 이달 초 본사 주관으로 모든 사업장에 '보안지침'을 내려 자료 파기를 지시했고 삼성 중공업과 삼성물산은 지난해 11월부터 일주일 또는 보름에 한번씩 직원들의 컴퓨터와 책상서랍을 점검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삼성화재 압수수색 성과 있다면 특검 수사 속도 빨라질 듯

지금까지 특검팀에 소환된 삼성그룹의 핵심임원들은 입을 맞춘 듯 보유하고 있는 차명의심계좌가 자신의 계좌이며 자신이 개설에 동의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조준웅 특별검사는 "이들이 제 때에 출석한 적이 없다"며 삼성그룹의 버티기 전략에 따른 고충을 토로하기도 했다.

방대한 규모의 차명의심계좌 추적 역시 영장 발부 기간, 계좌 개설 전표 유무 등 물리적 제한으로 수사 진행 속도가 느리다.

이번 압수수색이 특검의 답답했던 '숨통'을 뚫어줄 수 있을지 이목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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