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서기 시작한 7살 손자

"조금씩 조금씩 강하게 잘 자라거라"

등록 2008.02.05 10:16수정 2008.02.05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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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춘이라고는 하지만 여전히 날씨는 겨울이다.  딸아이가 한참동안이나 베란다에서 밖을 향해 서 있다.

 

“추운데 들어오지 거기에서 뭐하니?”

“응 우진이가 끝날 때가 되어서 지나가나 보고 있는 거야.”

 

잠시 후 딸아이는 “어 이제 우진이 지나갔네. 막 뛰네 뛰어”하면서 안으로 들어온다.

 

“얘는 이젠 잘 올 거야.”

“그렇긴 한데, 아직은...”

 

7살 된 손자가 피아노학원을 혼자 가고 온 지 며칠 째가 되어간다. 3개월이나 학원을 다녔지만, 그동안은 딸아이가 데려다 주고 데려오고 했었다. 딸아이가 바쁘면 내가 그일을 대신하기도 했다. 집에서 5분 거리기는 하지만 딸아이가 그러는 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다.

 

딸아이가 9살, 아들아이가 6살 때였다. 어렸을 때부터 저축하는 습관을 들이기 위해 통장을 만들어 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적은 돈을 저금 하려고 제 동생 손을 잡고 은행에 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한참 신이 나서 콧노래도 부르고 동생과 장난을 치면서 걸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동네 입구에서 웬 낯선 남자 두 명이 자신들이 세워둔 봉고차 앞에서 한동안 두 아이를 쳐다보고 있더란다. 그러더니 두 남자가  딸아이를 부르더란다. 딸아이는 제 동생손을 잡고 그 남자 앞으로 갔단다. 그 남자는 “니 동생은 말고 너만 와서 이 차 타자. 아저씨가 맛있는 거 사줄게”하더란다. 딸아이는 그 말에 겁을 먹고 큰소리로 “안돼요. 싫어요”하곤 제 동생 손을 잡고 막 뛰어 집으로 향했다고 한다. 다행인지 그남자들은 아이들 뒤를 따라오지 않았다고 한다. 

 

정신 없이 뛰어 들어오는 딸아이의 모습에 무슨 큰일이 생겼나 하며 나도 조금 긴장이 되었다. "엄마, 엄마 글쎄~~~"숨이 턱에 닿게 뛰어 들어 온 딸아이는 말도 제대로 못했다. 숨을 가라앉힌 딸아이한테 그 말을 듣어보니 큰일도 그런 큰일이 없었다. 동네 입구에 가봤지만 그 일행들은 이미 그 자리를 떠난 뒤였다. "휴~~" 우린 모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는 지금처럼 흉흉한 사건도 잘 일어나지 않았고, 그런대로 이웃 간의 인심과 정이 있을 때였다. 하여 아이들한테도 "모르는 사람이 맛있는 거 사준다고 해도  절대 따라가면 안 된다. 엄마아빠 친구라고 해도 따라가면 안 된다"라는 말을 해준 기억이 잘 나질 않는다. ‘만약 그때 딸아이가 따라갔더라면. 어찌 되었을까?’ 지금 생각해도 너무나 끔찍한 일이다.

 

딸아이는 언제고 그 말을 할 때면 눈이 커지고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기도 한다. 그때 그 일은 지금도 생각하면 온몸에 소름이 끼친다고 한다. 왜아닐까. 부모, 형제,  친척, 친구 집, 모두 못 볼 수도, 올 수도 없는 상황이었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지난 연말에 가족끼리 밥을 먹으면서 그런 이야기가 나왔다. 사위가 “우진이 엄마는 아이들을 너무 지나치게 보호를 하는 것 같아요. 남자아이들은 조금 강하게 키워야하는데”한다. “그 말이 맞긴 맞는데 요즘 세상이 너무 무섭잖아. 그리고 저 아이한테는 그런 비슷한 경험이 있어서일 거야”라고 내가 말해주었다. 사위도 들었다고 한다. 난 또 “학교 들어갈 때 되면 우진이 엄마도 조금씩 나아지겠지”했다.

 

그러면서 안양에서 실종된 혜진이 예슬이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다. 그 말에 모두가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지”한다. 그리곤  혜진이 예슬이 걱정을 하면서 잠시 숙연해지기도 했다. 아직도 돌아오지 않고 있는 혜진이 예슬이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이렇게 추운날씨에. 하루빨리 아이들이 무사히 가족들 품에 안기기를 간절히 기원해본다.

 

가끔씩 들려오는 아이들의 끔찍한 실종소식. 언제나 아이들이 마음 놓고 다니고 놀 수 있는 그런 세상이 올 런지. 해맑게 웃으면서 손자가 집에 들어섰다. “어 할머니! 할머니 언제 왔어?”하며 신발을 벗는 둥 마는 둥 급하게 거실로 들어선다. “우진이 보고 가려고 기다렸지. 그래 우리 강아지 혼자 학원 갔다오는 거야?” “응~~ ” “우리 강아지가 언제 이렇게 많이 컸지” 하곤 힘껏 녀석을 껴안아 주었다.

2008.02.05 10:16 ⓒ 2008 OhmyNews
#홀로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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