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러기 아빠가 문제가 아니다

인수위의 해괴한 영어 교육

등록 2008.02.05 21:46수정 2008.02.05 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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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러기 아빠의 고통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어서 영어를 제대로 가르치겠다고 한다.

아이들을 외국에 보내고, 마음이 놓이지 않아 엄마까지 딸려가고, 홀로 남은 아빠는 공항 쪽을 보며 눈물짓는다. 죽어라고 벌어서 보내도 늘 모자라다는 소리에 아빠는 몸도 마음도 지쳐간다. 눈에서 보이지 않으면 마음도 멀어진다더니 헤어져 있다 보면 아이도 낯설고, 아내도 멀게 느껴진다.

드라마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기러기 아빠의 비극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무언가 대책을 세울 만도 하겠다. 그러나 그 대책이란 것이 국가적으로 나서서 영어를 확실히 가르치겠다는 말은 어이가 없다. 고등학교만 나와도 누구나 영어를 술술 할 정도가 된다면 정말 기러기 아빠는 없어질까.

할 일도 많은 인수위에서 영어 교육까지 챙기고 나선 것은 고마운 일이다. 그러나 이왕이면 영어뿐이 아니라, 교육 전체를 챙겼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기러기 아빠의 문제를 전하던 인수위원장의 표정은 비감했다. 그런데 정말 그이가 걱정하는 것이 교육 문제는 아닌 듯하다. 정말 우리 교육의 현실을 깊이 바라보았다면 정작 우리의 문제가 기러기 아빠에 있는 것이 아니라 기러기 아빠도 되지 못하는 아빠들에게 있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미국의 대학으로 아이들을 떠나보낸 기러기 아빠들이 일 년에 바리바리 싸서 보내는 돈이 수천만 원이 넘게 든다고 한다. 한 해에 아이 하나를 가르치기 위해 그런 돈을 쓸 수 있는 이들은 그렇게 흔하지가 않다. 한국에서는 잘 나간다는 의사나 학원장도 제 아이를 미국에 보내고 뒤를 대느라 엄청 고생을 했다는 보도를 접한 적이 있다. 아직도 우리 주변에는 미술이나 태권도에 애들 공부까지 가르쳐 주는 동네 학원비 이십 만원도 쩔쩔 매는 아빠들이 많다.

새 정부의 교육 정책을 준비한다는 인수위가 정말 우리 교육에 관심과 걱정이 있다면, 기러기 아빠의 딱한 처지를 챙기기 이전에 기러기 아빠가 되고 싶어도 되지 못하는 대다수 보통 아빠들과 그 아이들부터 챙겨야 했다.

좋다. 이왕 교육도 투자요, 시장판에서 물건 파는 경쟁판이니 앞서 가는 이들부터 챙기겠다는 것도 용서하겠다. 하지만 정말 고등학교만 나와도 영어를 줄줄 하게 가르치면 기러기 아빠가 없어질까.

유감스럽게도 그럴수록 더 많은 기러기 아빠가 나올 것이다. 비슷비슷해진 아이들의 영어 실력에서 한발이라도 더 나아가려는 아빠들이 제 아이들에게 ‘정통 본토 영어’를 가르치기 위해 떠나보낼 것이다.

우리 교육의 영원한 로망인 대학은 아이들을 잘 가르칠 생각보다는, 더 가르칠 게 없을 정도로 우수한 아이들을 고르기 위해, 소수점까지 찍어가며 아이들을 일렬로 줄 세우려 할 것이다. 영어는 줄 세우는 좋은 방법이 될 것이고, 대학들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한국에서 익힌 영어와 본토에서 익힌 영어를 구별하는 방법을 마련할 것이다. 기러기 아빠들의 아이들은 고생한 만큼 혜택을 받을 것이다.

문제는 영어가 아니라 대입에 있음을 인수위가 모른다면 한심한 일이다. 만일 못 믿어진다면 인수위가 그렇게 목을 매고 있는 영어 성적을 대입에서 제외시켜 보라. 기러기 아빠들은 순식간에 사라질 것이다. 대입은 대교협에 맡겨 둔 채 영어 교육에만 매달리는 인수위를 이해할 수 없다. 교육은 멀리서 넓게 바라보아야 한다. 영어와 기러기 아빠를 걱정하기 전에, 사교육과 입시교육에 무너진 우리 공교육과 뒤처진 아이들을 챙기려는 태도야 말로 올바른 교육 정책이 아니겠는가.

교육을 바로잡겠다고 영어를 챙기고 나서고, 그것을 기러기 아빠들의 처지를 헤아리는 일이라 비장한 표정으로 말하는 것을 듣다 보니, 참 기러기가 웃을 일이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남양주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남양주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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