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갈치시장에 오면 가끔 '통역'이 필요하다

[복합문화공간개념] 신(新)자갈치 수변공원, 생활문화의 쉼터로 최상

등록 2008.02.17 19:14수정 2008.02.18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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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자갈치 시장 맞능교 ? 복합문화 공간으로 새로 태어났심더. ⓒ 송유미

▲ 여기가 자갈치 시장 맞능교 ? 복합문화 공간으로 새로 태어났심더. ⓒ 송유미
 
요즘의 내 서울 친구들은, 부산에 사는 나보다 부산 정보가 빠르다. 그리고 부산에 놀러오면, 자연 풍경이 너무 좋은 해운대 바다 두고, 꼭 자갈치 남항을 바라보며 싱싱한 자갈치 생선회를 먹고 싶다고 한다.
 
"야, 자갈치 시장 옛날 같지 않다. 자갈치 구경할 거 별로 없는데…."
 
내가 말꼬리 흐리면 눈치 채면 좋을 것인데, 기필코 신 자갈치 수변공원 등을 보고 가야 한고 해서 나온 자갈치 시장… 조금씩 성형을 해서 정말 얼굴을 몰라볼 만큼 예뻐진 친구의 얼굴처럼 확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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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끝내준다. 자갈치바다 퍼담기 ⓒ 송유미

▲ 와, 끝내준다. 자갈치바다 퍼담기 ⓒ 송유미
 
내 친구가 부산 놀러 오는데 함께 온 친구의 친구 하나(이하 친친)가 갈매기 춤을 한참 바라 보다 정색하고 묻는다.
 
"저어- 자갈치 시장이 왜 자갈치 시장이죠 ?"
"아, 그게요. 자갈 해안에서 비롯된다고 하기도 하고, '자갈치' 어종에서 비롯됐다고도 하던데요. 아무래도 자갈 해안에서 비롯된다고 하는 것이 맞을 듯해요."
 
나는 제법 묵직하게 보이는 사진기 하나를 둘러맨 예술가 분위기를 풍기는 '친친'에게 더듬거리며 실수 없이 말하려고, 애써 설명했는데.
 
"그런데… 그 자갈 해안은 어디 있어요?"
하고 내 말이 전혀 믿어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자갈치 수변 공원 구석구석을 살폈다.
 
"자갈 해안…요. 사실 저도 본 적은 없어요. 아마 오래 전에 있었겠지요? 그러나 옛날에 여기가 자갈밭이라는 것은 확실해요."
"(웃음) 본적도 없으면서 확실하다는 말씀 확실하나요?"(모두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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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복받은 '자갈치 갈매기'는 배가 고프지 않다 ⓒ 송유미

▲ 축복받은 '자갈치 갈매기'는 배가 고프지 않다 ⓒ 송유미
깔깔거리며 호호 거리는 서울서 부산 구경 온 친구, 전화할 때는 너 진짜 보고 싶어 내려간다는, 그 말 간 곳이 없다. 난 자갈치 수변공원까지 가이드 했으니, 자리를 떠도 무방할 것 같은 분위기라서, 친구의 눈치만 보는데, 친구와 '친친'들이 갈매기들의 춤에 반해서, 자리 이동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너 아까 보고 싶다던 '자갈치 갤러리' 구경 안할 거니? 이러다 문 닫겠다" 재촉하자, 친구는 카메라 맨 '친친'의 눈치를 보며, 왁자한 자갈치 시장 와서 웬 갤러리 타령이냐고, 서울서 바다 구경 하기 얼마나 힘든데, 넌 분위기 파악이 그렇게 안 되냐고, 따가운 눈총까지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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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뜩 찍어라. 사람들 보는데 쬐금 부끄럽다. ⓒ 송유미

▲ 퍼뜩 찍어라. 사람들 보는데 쬐금 부끄럽다. ⓒ 송유미
 
이걸 두고 사람 마음을 '조석변이'라 이르는가. 그나저나, 자갈치 시장이 언제 이렇게 혁명적으로 변했나? 자갈치 건어물 시장에서 잠깐 쇼핑하고 돌아가면서, 먼 발치서 보던 자갈치 신시장 건물과 수변공원 주위가 조석변이처럼 변해 있다. 그러나 하나를 얻고 나면 하나를 상실한 기분이 드는 것이 마음일까.
 
옛 자갈치 시장의 가장 부산항구다운 분위기도 정말 나름대로 운치가 있고 토속적인 분위기였는데…. 뉘엿뉘엿 해가 지는 노을바다를 배경으로 합동 사진을 찍고, 시장기가 돌아, 가까운 회센터에 들어갔다.
 
"보소, 보소 회 한 사라(접시) 하고 가이소. 싱싱함더. 마 이리 앉으소. 가격은 걱정마소."
자갈치 아지매 두 분이 반색하며 반기더니, 채 대답도 하기 전에 싱싱한 생선을 그물 소쿠리에 건져, 회칼로 회 장만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주머니, 이 생선회 안심하고  먹어도 되나요 ?"
"뭐라카능교? 펄쩍 펄쩍 뛰는 산 놈을 잡아서 회 떴는데, 그게 무슨 희안한 소린교? 마 아무 걱정마소. 이거 먹고 탈 나면 다 책임진당카이."
 
한 자갈치 아지매 말에 '친친'이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그럼 정말 이상이 있으면 변상해 준단 그 말이에요?"
(잠시 침묵)
"그라모. 근데 말임더. 사람 메음이 상하면 상하제, 이 싱싱한 생선이 그 새 변하겠나 그 말이다 말이제?"
(모두 폭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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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거리 문화뿐만 아니라 새로운 생활문화 공간으로 뿌리 내리는 자갈치 공원 ⓒ 송유미

▲ 먹거리 문화뿐만 아니라 새로운 생활문화 공간으로 뿌리 내리는 자갈치 공원 ⓒ 송유미
 
네 명이 맛 있게 생선회를 먹고 나오는데, 챙 모자 눌러 쓴 '친친' 사뭇 심각한 표정으로,
"저, 경상도 사투리 재미 있기는 한데 말이에요. 아까 그 자갈치 아주머니 말씀 말이에요. 아무리 사투리라도 잘못 된 표현을 하신 거 아닌가요?"
"무슨 말씀이신지요 ?"

그의 지적은 '생선이 변했다'는 표현은 잘못됐다, 국어사전에 '변하다'는 '사물이 전과 다르게 되다, 혹은 사람의 마음, 성질, 취미, 습관, 모습 등이 달라지다 등 어떤 것이 다르게 고치거나 바뀌다, 라는 뜻이므로 틀린 말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웃으며,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에 따르듯이, 여기 오면 '바다의 언어'를 알아 들어야 한다, 여기서는 상했다는 뜻을, 변했다는 표현으로 빌려 쓰기도 하니, 틀린 말이 여기서는 아니다는, 내 궤변에 '친친'은 못내 석연치 않는 표정이지만, 어쩔 수 없다.
 
이곳에 오면 누구라도 갈매기의 말, 바다의 말을 알아 듣는다. '변했던', '상했던', 숱한 인간의 말들이, 이 바다의 묵언 앞에 태초의 말씀 이전으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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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가 광장, 광장이 바다 여기와서는 바다의 언어로 말해야 갈매기들이 알아 듣심더. ⓒ 송유미

▲ 바다가 광장, 광장이 바다 여기와서는 바다의 언어로 말해야 갈매기들이 알아 듣심더. ⓒ 송유미
 
아무튼 자갈치 시장은 혁신적으로 변했다. 복합적인 문화공간으로 자리 잡아 나갈 자갈치 수변공원 주위에는 쾌적한 휴식공간과 함께 '자갈치 역사관'과 '자갈치 미술관' 등에서 다양한 예술 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지난해 10월 12일 오픈 기념으로 종합예술가 데이드림(Daydream)의 '내 집엔 복(福)이 가득'의 전시회를 비롯 서예화가 장철수의 전시회를 연 바 있는 '자갈치 갤러리'는 앞으로 다양한 작품 전시회를 열 계획이다.

서울지역에서 활동한다는 사진 예술가(친친; 뒤늦게 그의 이력을 알게 됨)의 날카로운 지적처럼 자갈치의 유래를 살려 자갈마당을 복원했으면 하는 아쉬움도 들고, 마트와 백화점에서 느낄 수 없는, 자갈치 어물전만의 비릿한 생선 냄새와 짙은 바다 냄새마저도, 새 건물과 수변공원의 시멘트 냄새에 묻혀 희미했다. 
 
그러나 자갈치 시장은 부산 시민의 것이기도 하지만, 자갈보다 야무진 자갈치 아지매들은 6·25 사변 이후부터 이곳을 삶의 터전으로 삼았다. 그 구(舊)자갈치 아지매들과, 신(新)자갈치 아지매들과 이 항구를 들락이는 어부들의 전래되어 내려온 해양 문화와 어우러진 도시의 예술 문화들이 '복합적 문화공간'의 부산 명소로 새롭게 자리 잡을 것이다. 
2008.02.17 19:14 ⓒ 2008 OhmyNews
#수변공원 #자갈치시장 #사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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