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집단 돌연사 '사돈기업' 좀 혼내세요

[取중眞담] 한국타이어 노동자 집단 사망 사건

등록 2008.02.20 16:01수정 2008.02.21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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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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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0월 한국타이어 유가족들이 대전공장 앞에서 사인규명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 오마이뉴스 심규상

2007년 10월 한국타이어 유가족들이 대전공장 앞에서 사인규명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 오마이뉴스 심규상

"한국타이어에서 발생한 돌연사 등 질병사망은 직무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산업안전공단 등은 20일 역학조사 최종결과 발표를 통해 한국타이어 노동자들의 집단 돌연사의 원인을 과로와 작업장 고열 등 작업환경에 의한 산재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역학조사를 시작한 지 5개월만의 일이다.

 

뒤늦게 특별근로감독에 나선 지방노동청은 지난 해 12월, 한국타이어 현장에서 1394건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사항을 적발했다. 유가족들은 지난 해 8월 말부터 피눈물을 흘리며 사인규명을 요구해 왔다. 최근에는 대전지방노동청 앞에서 천막농성을 벌이고 있다.

 

감사원은 '지방노동청과 산업안전관리공단이 수십명의 노동자가 죽어나가도록 뭘 했느냐'며 감사를 벌였다. 정치권도 한국타이어 대전공장을 오가며 유가족 앞에 고개를 떨어뜨렸다.

 

시민들은 21세기 대한민국 대기업 산업현장에서 벌어진 전 근대적 노사관계와 작업환경에 혀를 차며 자괴감을 느껴야 했다.

 

그랬다. 한국타이어 노동자들의 집단사망은 '성장우선' 정책 속에 가려진 우리 사회의 치부였다.     

 

적반하장, 너무나 당당한 한국타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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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2월 조호영 '한국타이어 노동자 사망 유가족 대책위원회' 대표가 서울 역삼동 한국타이어 본사 뒤편에서 회장 면담을 요구하며 직원들과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 <건치신문> 박은아

2007년 12월 조호영 '한국타이어 노동자 사망 유가족 대책위원회' 대표가 서울 역삼동 한국타이어 본사 뒤편에서 회장 면담을 요구하며 직원들과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 <건치신문> 박은아

 

한국타이어 사측이 최근 몇 개월간 보여준 태도는 적반하장을 떠올리게 한다. 

 

사측은 사망자가 속출하자 우선 은밀하게 사망 유가족의 가계도를 작성했다. 가계도에는 유가족의 할머니에서 형제자매를 비롯 3세대에 걸쳐 학력, 종교, 술 담배 여부까지 기재했다. 유리한 협상을 위해 사생활까지 뒷조사했다는 비난이 쏟아졌지만 사측은 오히려 '유가족을 돕기 위한 일이었다'며 사과 한 마디 하지 않았다.

 

회사 노동자들에게는 "유족대책위 주관 집회에 참여하거나 동조하면 명예훼손으로 인사위원회에 회부하겠다"는 경고문을 내밀었다.

 

경고로만 그친 게 아니다. 몇몇 회사 노동자들이 유가족들과 함께 사인규명을 촉구하는 시위에 참여하자 '업무를 방해하고 회사 명예를 훼손시켰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결국 한 동료노동자는 "친구가 죽어도 슬퍼할 수 없는 회사"라며 울음을 터트렸다.

 

사측은 또 역학조사단이 조사를 벌이려 하자 작업 현장에 "이전에 사용하던 솔벤트 통은 사용금지할 것"과 "각 조별로 군더더기 및 찌꺼기를 완전히 제거하라"고 지시하는 등 현장왜곡을 꾀했다.

 

단 한차례 발표된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글'에서는 사과보다는 "작업 환경이 안전하고 회사는 사원 저마다의 인격과 자율성을 존중하고 있다"는 홍보에 치중했다. 언론에 대해서도  "근거 없는 비난과 오도로 기업이미지가 부당하게 실추되는 등 피해를 입고 있다"고 날을 세웠다.

 

사측은 1300여건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사항이 드러난 뒤에도 당당함을 잃지 않았다. "위반사항은 이미 시정 조치했다"며 자기변호에 공을 들였다.

 

사법처리 받는 한국타이어에 상준 박성효 대전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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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2년 서울시청에서 히딩크 감독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는 이명박 일가. 이명박 후보 옆 사람이 당시 한국타이어 조현범 상무(현 부사장)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지난 2002년 서울시청에서 히딩크 감독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는 이명박 일가. 이명박 후보 옆 사람이 당시 한국타이어 조현범 상무(현 부사장)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과 한나라당은 '총체적 침묵'으로 일관했다. 대선국면에서 각 당의 후보 진영들이 한국타이어 현장을 찾아 유가족을 위로했지만 당시 이명박 후보와 한나라당 진영은 한국타이어의 '한'자도 운을 떼지 않았다. 

 

한국타이어 피해자들이 인수위원회에 호소문을 보냈지만 아직까지 의례적인 답신마저 보내지 않고 있다.  

 

집권여당의 실책에 관대한 이명박 차기정부에 대해 '사돈이 회장으로, 사위가 부사장으로 있는 회사라 눈 감아 주는 것 아니냐'는 성난 목소리가 쏟아졌지만 말이 없다. '침묵만한  도움이 없다'고 생각한 것일까?  

 

관할 자치단체인 대전시는 침묵을 깨고 상을 주는 파격(?)을 선보였다. 박성효 대전시장은 지난 해 말, 한국타이어 대표이사와 대전공장장 등을 시청으로 불러 '지역경기 활성화에 기여했다'며 '1조원 매출 탑'을 수여했다.

 

매출 탑은 시가 처음 제정한 것으로 한국타이어는 1000억원 이상 매출을 달성한 11개 업체와 함께 첫 수상 기업이라는 영예를 안았다. 당시는 검찰이 산업재해 보고의무위반 등 500여건 혐의로 한국타이어 관계자들을 불러 조사하고 있던 때였다.

 

반면 대전시장도 대전시도 성장의 과실 뒤에 수많은 현장 노동자가 죽어 나간 현실과 노동자들을 병들게 한 작업환경에 대해서는 단 한 번도 입을 열지 않았다. 

 

그래도 바란다. 기대한다. 한국타이어 사측이 유가족과 현장노동자들을 향해 진심이 담긴 성찰의 말을 건네기를. 이명박 당선인이 사돈기업의 허물에 대해 오히려 추상같은 나무람 한마디를 건네기를. 대전시장이 1조원 매출의 과실보다 현장 노동자들이 대접받고 일할 수 있는 여건 만들기에 더 큰 관심을 갖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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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타이어 유가족대책위는 한국타이어 경영주의 구속을 요구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심규상

한국타이어 유가족대책위는 한국타이어 경영주의 구속을 요구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심규상

 

2008.02.20 16:01 ⓒ 2008 OhmyNews
#한국타이어 #돌연사 #이명박 #박성효 대전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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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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