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라는 나라는 없다

[생뚱맞은 과학선생의 아프리카 여행 30] 아프리카, 다닐만 했냐고요?

등록 2008.04.23 10:07수정 2008.05.13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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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중에 폴라로이드 사진은 좋은 선물이 된다 ⓒ 조수영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니 주변에서 물어본다. "아프리카는 어때?", "그 더운 곳에 왜 가냐?", "추장은 만났니?"… 심지어 "에이즈 걸려서 온 거 아냐?"라고 물어보는 잔인한(?) 친구도 있었다.

우리에게 아프리카는 막연히 나와는 상관없는, 아주 먼 곳에 있는 기아와 가난의 땅, 동정과 구호의 대상으로 떠오른다. 반면 천만원을 호가하는 고급 패키지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에게는 사파리가 내려다보이는 롯지의 석양과 아름다운 빅토리아폭포, 쾌적한 케이프타운의 고급스러운 레스토랑이 떠오를 수도 있다.


남부 아프리카에는 아직 가난과 궁핍의 악순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나라들이 많다. 변변한 문화유산 하나 없는 나라들도 있다. 적지 않은 나라들이 정치적으로 부패되어 있고 민주주의와는 요원해 보인다.

여행을 마치며…, 지금까지 우리가 생각해온 아프리카에 대한 다양한 관점 중에는 정보의 부족과 무관심으로 생긴 무수한 오해가 있다고 본다. 물론 나 또한 한달이라는 짧은 일정과 여행의 경로가 남부 아프리카에 한정되어온 관계로 또 다른 오해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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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 때는 11시간, 올 때는 25시간. 한국으로 돌아오는 노선도 직항이 없기 때문에 여러 도시를 거쳐야 했다. 우선 국제공항이 있는 월비스베이로 가서, 남아공의 요하네스버그로, 또다시 홍콩까지의 긴 노선을, 마지막으로 인천공항에 도착하게 된다. 요하네스버그에서 1월 30일 오후 6시에 출발한 비행기가 서울에 도착하는 시간은 언제일까? 경유시간을 포함하여 비행시간은 18시간이다. ⓒ 조수영


왜 우리는 아프리카를 하나로 묶어버릴까?

일단 여기서 전제되어야 할 것은 아프리카는 대륙의 이름이지 특정 나라, 특정 지역의 이름이 아니라는 것이다. 아프리카는 지구 육지 면적의 5분의 1을 차치하는, 아시아 다음으로 큰 거대한 대륙이다. 그 안에 수천 개의 부족이 천여종의 언어로 소통하는 복잡한 사정이 있다.

아프리카 대륙에는 건기와 우기가 뚜렷한 사바나가 있는가 하면, 고릴라가 사는 우거진 밀림도 있고, 매마른 사하라 사막도 있고, 차가운 해류 덕분에 펭귄이 사는 남아공의 해변도 있다. 소말리아처럼 살아가기 힘든 나라도 있고, 아프리카의 유럽이라는 케이프타운도 있다.


가축의 수를 늘려 하늘로 돌아갈 날을 기다리며 사는 마사이족이 있고, 킬리만자로의 정기를 받고 사는 차카족이 있고, 매를 맞으며 성인식을 하는 은데벨레족이 있고, 원숭이를 이용해 사막의 물줄기를 찾은 산족도 있다. 만델라조차 남아공의 국민이기 이전에 자신이 용감한 템부족의 후예임을 자랑스러워 했다.

"한국은 어때?" 또는 "제주도는 어때?" 대신 "아시아는 어때?"라고는 말하지 않은 것처럼. 하물며 같은 아프리카 대륙에 있는 이집트에 대해서도 아프리카라는 이름으로 묶지는 않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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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에는 수천개의 부족들이 천여종의 언어로 소통하는 복잡한 사정이 있다. 사진은 마사이족의 점프 ⓒ 조수영


타잔은 없었다

우리는 무지와 무관심으로 이 거대한 대륙 속의 다양성을 보지 못하고 가난과 질병, 미개하고 불행한 사람들이 사는 단편적인 이미지로 굳혀버렸다. 심지어 어느 중학교 1학년 사회교과서에는 '아프리카는 타잔과 제인이 때묻지 않은 자연에서 아름다운 사랑을 나누던 곳이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30대 이상이라면 그 옛날 흑백TV의 추억으로 밀림의 왕자 '타잔'을 기억하고 있다. 아프리카의 밀림을 표범가죽으로 만든 팬티 하나만 걸친 채 넝쿨을 잡고 나무 사이를 누비는 타잔. 어린 시절 목청 돋워 "어~어허~"하고 소리 한번 안 질러본 친구는 없을 것이다. '10원짜리 팬티를 입고 20원짜리 칼을 차고' 타잔 흉내를 낸 것을 추억해보면 타잔은 우리나라 최초의 코스프레 대상이라 해도 부족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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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고롱고로에서 코끼리와의 맞대결. 중남부 아프리카에는 타잔이 넝쿨을 타고 나닐 만큼 울창한 밀림이 없다. ⓒ 조수영


타잔은 영국 귀족 출신인데 부모를 잃고 아프리카에 버려져 유인원 엄마 '칼라'에 의해 길러졌다. '타잔'이라는 이름 자체가 '하얀 피부'를 뜻한다고 한다. '백인' 타잔은 아프리카 밀림에서 혼자 스스로 영어와 서구 문화를 터득한다. 게다가 미개하고 나쁜 흑인들을 응징하여 밀림의 왕자가 된다.

영화와는 달리 아프리카에는 타잔이 줄을 타고 다닐 만큼 울창한 밀림이 별로 없다. 우간다, 콩고, 가봉 등 일부 적도가 지나가는 서부지역에 열대우림이 있을 뿐, 대부분의 아프리카 땅은 '사바나'라고 부르는 열대초원과 황무지, 사막으로 되어 있다.

사실 영화 <타잔>을 촬영한 정글은 남미 아마존강 유역이었다. 타잔의 부름에 잽싸게 달려오는 코끼리조차 아프리카 코끼리가 아니라 인도코끼리였다. 다혈질인 아프리카코끼리를 훈련시키는 것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귀가 큰 아프리카 코끼리처럼 보이기 위해서 귀를 덧붙이는 성의는 보였다.

우리나라 광고도 마찬가지다. 아프리카 생태에 대한 작은 관심만 있었더라도 어느 국제전화 광고처럼 한국에 있는 아들 고릴라가 '세렝게티 국립공원'에 있는 엄마 고릴라에게 국제전화를 거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탄자니아 세렝게티와 같은 사바나에는 고릴라가 살지 않는다. 현재 고릴라는 콩고강 주변의 열대우림과 우간다의 산악지대에 살고 있다. 아프리카, 실상 잘못 알려진 것이 너무 많다. 

아프리카는 '동물의 왕국'이다?

'동물의 왕국' 아프리카. 사실 나도 여행을 시작하기 전 그렇게 생각했었다. 나이로비 공항에 내리면 임팔라가 뛰어다니고, 탄자니아와 잠비아를 잇는 타자라 열차는 코끼리의 습격으로 멈출 수도 있고, 창밖으로 누 떼가 지나가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라 상상했었다. 그러나 이것은 TV에서 본 일부의 모습을 아프리카 전체라고 인식한 탓이다. 현재 야생의 동물들은 대부분 국립공원이나 지정된 동물보호구역 안에서 살고 있다.

지정된 동물보호구역이라 하지만 워낙 넓고, 사파리 차량이 지날 수 있는 길 또한 정해져 있다. TV에서처럼 사자들이 버펄로를 앞뒤에서 협공하고, 치타가 가젤을 쫓는 생생한 장면을 보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다. 그것은 TV 프로그램 <동물의 왕국>에서나 가능한 이야기다. 이것은 카메라를 설치하고 며칠이고 기다려서 간신히 얻은 화면이다.

3박4일의 사파리에서 눈을 부릅뜨고 다녀야 간신히 빅5를 다 볼 수 있고, 찾는다 해도 사파리 도로와 멀리 떨어져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동물들을 종류대로 자세히 보고 싶다면 과천 동물원이 훨씬 효과적이다. 사파리에선 사자건 하이에나건 간에 사파리 차량이 다가오면 귀찮아서 슬슬 도망가 버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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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렝게티 사파리에서 만난 사자 가족. 우리나라 강원도 크기의 국립공원안에서 동물 가족을 찾아다닌다. ⓒ 조수영


무지 더운 아프리카?... 드러내면 야만, 감추면 문명?

날씨도 그렇다. 아프리카, 생각보다는 그리 덥지 않다. 덥기로 말할 것 같으면 우리나라 한여름 날씨가 훨씬 더 덥다. 케냐의 나이로비, 남아공의 요하네스버그, 잠비아의 루사카, 짐바브웨의 블라와요 등 많은 도시들은 고지대에 위치하고 있어서 기후는 매우 쾌청하다. 오히려 남아공의 겨울은 가끔 영하로도 떨어지기 때문에 노숙자가 동사하는 일도 있다.

또 하나의 편견은 아프리카 사람들이 미개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어린 시절 아프리카 사람하면 떠오르는 것은 새까만 얼굴에 곱슬머리, 코에는 닭뼈 같은 것을 끼우고, 밤에는 모닥불을 피워놓고 북치고 춤을 추며 제사를 지내고, 사람을 잡아먹는 식인종 쯤으로 묘사되었다.

유독 흑인들의 역동적인 춤과 노래를 본능적이라고 표현하는 것도 이상하다. 춤과 노래로 감정을 표현하지 않는 민족은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 특히 가정용 노래방 기기까지 설치하면서 가무를 즐기는 우리로서는 할 말이 없다. 유독 아프리카 사람들을 본능적이라고 몰아세우는 것은 오래된 편견인 것 같다.

방송도 그렇다. 보통 여성의 가슴이 TV에 노출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드레스가 흘러내려 드러난 여배우의 가슴은 해외토픽감이다. 모자이크 처리를 하더라도 '19금'이라는 딱지가 붙는다. 그러나 염소가죽으로 만든 미니스커트만 입은 아프리카 여인의 가슴은 여과 없이 그대로 방영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시청자들도 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원시적이고 미개한 아프리카 여인의 가슴은 동물의 젖처럼 '선정적'이지 않은 것이다.

서양인들이 우리 여인네들의 드러난 젖가슴을 보며 미개인이라며 혀를 차던 게 불과 1세기 전의 일이다. 실제 1910년 <내셔널 지오그래픽>지 11월호에 실린 'Glimpses of Korea and China'라는 제목의 사진에는 한복 저고리 아래로 가슴을 훤히 드러낸 채 서 있는 여인의 모습이 있다. 개화기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서는 여성의 가슴을 성적인 매력과 연관을 짓지 않았다.

평범한 아낙네들은 젖가슴을 가난에 굶주린 아이들의 소중한 '양식' 정도로 여겼다. 할머니들의 풀어헤친 젖가슴은 대를 이을 자식을 낳았다는 자랑스러운 표식이고, 생육에 대한 강한 애착이었다.

그러나 당시 이런 모습이 조선의 일반적인 모습이 아니었음에도 서양인들이 이런 사진을 남긴 것은 특이하고, 충격적이고, 미개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마치 지금 우리가 일부 아프리카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열심히 사진을 찍어대는 것처럼, 우리네 할머니들을 수치심조차 느끼지 못하는 불쌍한 야만인으로 받아들이는 차별적 시선이 빚어진 일이다. 그들과 우리는 서로 다른 문화를 가지고 있을 뿐이다. 우리에게 낯선 그들의 모습을 그들만의 모습으로 인정해주는 마음이 필요하다.

아프리카는 항상 내전 중

아프리카에 대한 또 하나의 대표적 부정적 이미지는 내전이다. 뉴스에 등장하는 아프리카는 늘 괴로운 모습이다. 내전으로 사람이 죽고, 총을 든 시민들의 모습에서 아프리카 사람들은 잔인하고 공격적으로 느껴진다. 그러나 여행을 하면서 느낀 그들의 모습은 순박한 시골아저씨의 느낌이었다.

불쑥 들어간 민가에서 막걸리 비슷한 술을 건네는 아줌마, 내 머리카락을 신기하게 만지작거리던 아이들, 버스정류장까지 공짜로 태워주는 트럭기사, 우갈리 먹는 법을 열심히 가르쳐주던 청년, 자기네의 식사를 먹어보라 건네던 짐바브웨 노점상 아줌마가 그랬다.

유럽 사람들이 오기 전까지 이 대륙에는 1만 가지가 넘는 인종과 작은 국가, 왕국, 술탄국가, 부족들이 있었다. 그들은 모두 서로 평화롭게 지낸 것은 아니었지만 서로 인정하고 인정받았다. 유럽 열강의 식민정책은 그들만의 생활 질서를 뒤죽박죽 엉키게 해 버렸다. 그들은 식민지 쟁탈전 결과 자기들이 통치하기 편한 대로 금을 그었다. 수천 년 동안 각 부족들이 설정해 온 영토 경계는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한 나라에 여러 부족들이 살거나, 한 부족이 둘 이상의 나라로 나뉘기도 했다. 한 나라에 소속된 서로 다른 종족들은 분리독립이나 권력 쟁탈을 위해 전쟁을 벌였고, 인근 나라에 있는 같은 종족들이 전쟁을 거들고 나서 국가 간 전쟁으로 비화되었다.

여행 중에 짐바브웨에서 느낀 불안한 사회분위기도 부족 간의 권력 쟁탈을 놓고 쇼나족과 은데벨레족 사이의 다툼 때문이었다. 같은 탄자니아에 살면서도 차카족은 마사이족의 일부다처제를 비난한다. 식민지배는 끝이 났지만 종족 분쟁이라는 후유증으로 여전히 남아 있는 듯하다.

에이즈와 아프리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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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리만자로에서 만난 아이. 가는 곳마다 너무도 많은 아이들을 만난다. 관광객이 한두 번 주기 시작한 돈이나 사탕, 볼펜이 오히려 아이들에게 평생 구걸하는 삶의 굴레를 씌우는 것 같아 어떤 것도 거저주지 않기로 마음먹었지만, 애원하는 아이들은 외면하는 일은 너무 어렵고 불편하다. ⓒ 조수영


시간이 지나고 뒤죽박죽 엉켜진 그들의 생활에도 나름의 질서가 자리 잡는 듯했다. 풍부한 원자재의 수출과 금과 구리의 가격상승이 산업발달로 이어졌다. 일부이긴 하지만 정치 환경도 개선되고 있어 해마다 향상된 경제 성장률과 많은 투자로 인해 미래에 대해 희망이 보였다. 오랜 식민지 시절과 인종차별의 굴레를 벗어나 아프리카는 이제 가난에서도 벗어나는 듯했다.

그러나 전쟁과 빈곤으로 바닥까지 피폐해진 아프리카에 에이즈라는 더 큰 재앙이 닥쳤다. 2007년 기준 전 세계 에이즈 환자 중 3분의 2가 사하라 사막 이남의 남부아프리카에 살고 있다. 짐바브웨의 경우 HIV바이러스 감염률이 25%에 달한다. 4명 중 한 명이 면역결핍바이러스를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다. 보츠와나의 경우 장관과 국회의원도 에이즈로 인한 병으로 사망하였고, 노벨평화상을 탄 남아공의 전 대통령 만델라의 아들도 에이즈의 감염으로 사망하였다.

그렇다면 왜 유독 남부 아프리카에서 HIV 감염자가 많을까? 많은 분석이 있지만 에이즈에 대한 인식부족이 가장 큰 문제인 것 같다. 사실 이번 여행을 하면서 지났던 남부 아프리카의 나라에서는 포스터 한 장 보기 힘들었다. 에이즈 감염자 수가 20%에 이르는 나미비아를 지날 때에도, 대통령의 동생까지 에이즈로 죽었다는 짐바브웨에서도, 지난 10년 사이 국민평균연령이 10년이나 감소한 남아공에서도 에이즈에 대한 교육이나 홍보의 흔적을 보기 어려웠다.

심지어 비교적 엘리트라고 생각했던 사막투어 가이드 찰스조차도 에이즈 검사를 받았냐고 물었더니 자신은 건강해서 괜찮다는 말도 안 되는 대답을 했다. 자신의 몸 안에 바이러스가 잠복되어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 에이즈를 퍼뜨리고 있는 셈이다.

어쩌면 가난과 질병에 허덕이는 대부분의 아프리카 사람들에게는 다른 질병과 비교해볼 때 에이즈가 그다지 특별히 두렵거나 조심해야 할 이유가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문제는 급속하게 늘어나는 감염자와 사망자로 인해 사회구성에 필요한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이다. 성인 5명 중 1명을 양성 반응자이다. 획기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10년 안에 그만큼의 인구를 잃게 될 것이다. 이는 14세기 유럽 인구의 3분의 1이 몰살한 흑사병이 사라진 이래 지구촌 최대의 재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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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속히 퍼져나가는 에이즈에 노출되어 있는 세상을 살아가기엔 그들의 눈은 너무 순수하고. 너무 왜소했다. ⓒ 조수영


더욱 심각한 것은 모태 또는 모유 수유에 의한 모자감염이다. 남부 아프리카에서 태어나는 아이의 30%는 이미 감염이 된 채 태어난다. '마더 차일드'라 불리는 15세에서 19세의 소녀 엄마들은 모유 수유로 아이가 에이즈에 걸릴 것을 알면서도 아사를 막기 위해 젖을 물리게 된다.

물론 에이즈에 대한 성공적인 사례도 있다. 우간다의 요웨리 무세베니 대통령은 공중 교육, 콘돔보급, 자발적인 테스트, 상담, 지원서비스로 이루어진 장기적인 캠페인을 통해 감염률을 15%에서 9.7%로 감소되는 성과를 거두었다.

지금 아프리카는 자체만의 힘으로 이 질병의 확산을 막을 수는 없어 보인다. 외부 세계에 의약품과 교육 이상의 지원을 요구하고 있다. 우리의 천원이 그들에게 전해진다면 에이즈에 걸린 어린이가 합병증인 피부병으로 고생하지 않게 피부약을 보내줄 수 있다. 매년 반복되는 말라리아로 인한 어린이의 죽음을 예방할 수 있다.

빅토리아 폭포에서 만난 재수 없는 한국인 관광객은 에이즈에 감염될지도 모르기 때문에 돈을 셀 때 반드시 장갑을 낀다고 했다. 에이즈에 대한 무지로 인해 그들을 도울 수 있는 길을 우리 스스로 막고 있은 것일지도 모른다.

때론 도와주지 않는 것이 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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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전에 꼭 다시 가보고 싶은 곳을 꼽으라면 나미비아의 데드벨리를 선택할 것이다. ⓒ 조수영


가는 곳마다 너무도 많은 구걸하는 아이들은 만난다. 낯선 사람들에게 손을 내미는 아이들, 그걸 무심히 지나는 사람들 너무도 자연스럽다. 관광객이 한두 번 주기 시작한 돈이나 사탕, 볼펜이 오히려 아이들에게 평생 구걸하는 삶의 굴레를 씌우는 것 같아 어떤 것도 거저 주지 않기로 마음먹었지만, 애원하는 아이들은 외면하는 일은 너무 어렵고 불편하다.

며칠 아니 오랫동안 세수도 안 한 듯 얼굴에 땟국물이 줄줄 흐르는 아이들, 윗옷만 입은 채 맨발로 다니는 아이들이 내미는 손을 뿌리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게다가 이 아이들은 하나같이 배가 볼록 나와 있다.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해 복근과 위장의 근육이 쇠약해졌기 때문이다.

어쩌다 음식물이 들어오면 배가 팽창하는 것을 막아줄 근육이 없기 때문에 배는 비정상적으로 튀어나온다. 반대로 만약 이런 상태에서 더 굶게 된다면 배와 등이 딱 달라붙고 만다.

한 달에 2만원, 나를 위한 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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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마치고 귀국한지도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그리고 지금 일상으로 돌아와 생활하고 있지만 아직도 아름다운 아프리카의 자연과 그 속에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특히 아이들의 까만 눈동자를 잊을 수 없다. ⓒ 조수영


여행을 마치고 귀국한 지도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그리고 지금 일상으로 돌아와 생활하고 있지만 아직도 아름다운 아프리카의 자연과 그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 특히 아이들의 까만 눈동자를 잊을 수 없다. 가난과 질병, 특히 급속히 퍼져 나가는 에이즈 바이러스에 노출되어 있는 세상을 살아가기엔 그들의 눈은 너무 순수하고, 그것을 이해하기에는 여유가 없고, 그것을 견디기에 그들은 너무 왜소하다.

솔직히 모르겠다. 구호와 자립의 딜레마. 잡은 물고기를 줄 것인가, 낚시하는 법을 가르쳐줄 것인가의 문제를 고민하고 싶지는 않다. 마치 아이가 걸음마를 배울 때 어머니의 고민, 잡아주자니 걸음마가 더딜 것 같고 혼자 두자니 넘어질 것 같은 걱정처럼 이들을 도와주는 방법에는 정답은 없다. 솔직히 직접 자원봉사나 선교활동을 나갈 정도의 용기와 형편도 되지 않는다. 그저 이해와 관심으로 내 생활의 범위 안에서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을 뿐이다.

여행을 마치고 국내봉사활동 기관의 도움으로 케냐의 한 어린이와 또 하나의 인연을 맺기로 했다. 자선단체를 통한 일대일 후원 프로그램이다. 한 달에 2만원이면 결연을 맺은 아이는 학교에서 교육을 받을 수 있고, 점심때에 무료 급식을 받을 수 있다. 서로 편지도 주고받고, 선물도 보낼 수 있다고 한다. 한 달에 2만원 기부로 나만의 위안한 셈이다. 아름다운 아프리카, 다음 여행은 그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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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쿠유니 마을에서 만난 아이들. 처음엔 경계의 눈빛을, 다음엔 나의 디지털카메라에 관심을, 이내 자기네들과 다른 나의 머리카락을 만지며 깔깔대던 아이들. 카메라 앞에서의 포즈도 자연스럽다. ⓒ 조수영

덧붙이는 글 | '생뚱맞은 과학선생의 아프리카 여행'은 이번 기사로 마감합니다. 관심을 보여주신 독자여러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덧붙이는 글 '생뚱맞은 과학선생의 아프리카 여행'은 이번 기사로 마감합니다. 관심을 보여주신 독자여러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아프리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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