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우린 다시 거리에서 피흘려야 하나

"악, 사람이 죽어가요"... 백골단에 대한 아픈 상처들

등록 2008.03.20 09:32수정 2008.03.20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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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이 긴박하다. 좁은 골목길, 자욱한 최루탄이 시야를 흐린다. 축축이 젖은 아스팔트 위로 짝 잃은 운동화와 뭉그러진 손수건, 주인 잃은 가방이 아무렇게나 팽개쳐져 있다. 가만, 여기저기서 비명 소리가 들린다.

"악, 아저씨 때리지 마세요. 사람이 죽어가요."
"야, 그만 때려. 사람이 죽는다고."

대한극장 앞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다. 백골단과 전경들의 ‘토끼몰이’ 진압방식에 쫓겨 골목길에 가둬진 학생들은 무차별한 폭력 앞에 하나 둘 쓰러졌다. 그 현장에서 숭고한 젊음이 산화했다. 열사는 그렇게 우리 곁을 떠났다.

아직도 눈에 선한 백골단의 무자비한 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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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귀정 열사1991년 5월 25일 김귀정 열사는 백골단의 무자비한 폭력에 의해 살해됐다. 단아한 표정을 볼 때마다 그 날의 악몽이 떠오른다. ⓒ 김귀정 추모사업회


위 내용은 1991년 5월 25일, 백골단의 폭력에 숨져간 성균관대 학생 김귀정에 대한 기억이다.

오랜 시간이 흘렀건만 당시 서울 대한극장만 생각하면 진절머리가 처진다.

번쩍번쩍 빛나는 하얀 헬멧에 청잠바와 청바지 차림을 하고 긴 곤봉을 든 채 시위대를 짓밟던 '백골단'의 무자비한 폭력이 눈앞에 선하기 때문이다.

끔찍했던 그 날의 기억을 다시금 더듬은 건, 불법폭력시위를 엄단하기 위해 경찰관들로 구성된 '체포 전담반'을 신설하겠다는 서울지방경찰청의 살벌한 방침을 접한 뒤였다.

주지하다시피 이명박 정부는 '강력한 법질서 확립'을 유난히 강조하며 출범했다. 서울시장을 역임했던 대통령 때문일까. 서울시경찰청이 발 빠르게 체포전담조를 내세우며 대통령과 '코드'를 맞췄다.

그보다 앞서 지난 11일에는 서울 영등포구청이 용역업체 직원들을 고용해 182일째 천막을 치고 농성하던 코스콤 비정규직 노동자 60여명을 폭력적으로 끌어낸 바 있다. 대통령이 강력 기조를 내세우자 행정부(영등포구청)와 사법부(경찰청)가 기다렸다는 듯 코드를 맞추며 화답하는 일련의 상황들은 많은 우려를 낳게 만든다.

체포전담조 신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과거 군부독재 시절처럼 백골단을 이용해 더욱 강력하게 시위를 진압하겠다는 선언과 다름없다.

진압이란 이름 아래 쓰러져간 수많은 열사들

멀리 갈 것도 없다. 1990년대 초중반 대학을 다녔던 내가 기억하는 시위 현장에는 최루탄과 지랄탄·사과탄 등과 물대포가 무차별 난사되던 공권력의 폭력이 있었다. 그리고 그 공간에서 백골단은 눈부신(!) 활약상을 펼쳤다.

시위대를 최전방에서 방어하며 강력하게 진압하고 신속하게 체포하는 역할을 맡던 이들이 바로 '백골단'이라 불린 폭력경찰이었다. 백골단은 이름 그대로 하얀 헬멧을 자랑하며 언제나 위풍당당한 모습이었다. 그들과 마주치는 순간 시위대는 움츠러들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여학생이고 노인이고 가리지 않았다.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빠르게 진압하는 것만이 최선의 지상과제였다.

결코 잊을 수 없는 1991년, 나는 백골단을 신물나게 봐야했다. 4월 26일 학원자주화투쟁과 노태우 정권의 비리를 규탄하며 시위를 하던 명지대 신입생 강경대가 백골단의 곤봉에 맞아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리고 그 날 이후, 대학은 물론이고 사회는 박승희·김영균·천세용·박창수·김기설·윤용하·김철수·이정순·정상순 등에 이르기까지 일일이 나열하기 힘들 만큼 연일 계속되는 사람들의 죽음으로 엄청난 혼란에 휩싸였다.

백골단의 폭력에 의해 숨지고, 정권의 부당함에 맞서 몸에 불을 지르며 숨졌던 수많은 사람들. 그 현실은 참으로 감당하기 버거웠다. 나는 사람들이 죽어가게 만든 정부를, 나라를 도저히 신뢰할 수 없었다. 그래서 대학교 교정 대신 시위대와 함께 거리를 뛰어다녔다. 그럴 때마다 어김없이 서슬 퍼런 눈빛을 반짝이는 백골단과 맞닥뜨려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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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귀정 열사 영정사진김귀정 열사는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에 모셔졌다. ⓒ 김귀정 추모사업회


그리고 잔인했던 5월, 나는 '권력의 시녀' 백골단의 폭력을 생생하게 실감하고 말았다. 김귀정 열사를 잃은 것이다. 그는 시위대와 함께 좁은 골목에 갇힌 채, 머리 위에 사과탄을 터뜨리고 방패로 내리치고 발로 짓밟는 백골단의 폭력 아래 숨졌다.

권력의 시녀는 김귀정 열사의 시신조차 그냥 내버려두지 않았다. 시신이 모셔진 서울 백병원은 차라리 전쟁의 현장이었다. "타살이 아니라 시위대가 뒤섞이면서 질식했다"는 논리를 관철하기 위해 백골단은 선봉에서 시신을 탈취하려 했다.

몇날 며칠 이어진, 열사의 시신을 지키려는 학생들과 백골단의 충돌은 대한민국 젊은이들의 애꿎은 출혈만 가져다줬다.

체포전담조? 백골단 부활이 아니면 뭔가

과거의 아픈 기억이다. 그런데 역사 속으로, 먼 기억 속으로 사라진 줄 알았던 백골단의 망령이 다시 살아 움직이고 있다.

지난 15일 청와대 업무 보고 자리에서 서울시경찰청은 2013년 완전히 폐지될 전경과 의경을 대체하기 위한 인력 900명을 이미 선발해 교육을 진행 중이며 이 가운데 일부를 체포전담조로 운용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도대체 체포전담조를 이용한 강력한 법집행이라니, 이 무슨 시대착오적인 발상인가. 체포전담조는 백골단의 부활과 마찬가지다.

나는 백골단을 떠올리면 폭력과 안쓰러움이 교차한다. 가끔이긴 했지만 과격한 시위 중에도 그들과 어울려 담배를 피울 때가 있었다. 헬멧을 벗은 그들은 대한민국의 신체 건강한 사람들에 다르지 않았다. 다만, 국가의 부름을 받고 원했든 원치 않았든 어쨌든 시위 현장의 선봉에 서야 했다는 것 뿐.

"가끔 술을 먹고 진압에 나서기도 했다. 시위를 진압하는 우리도 무섭기는 마찬가지다. 쇠파이프를 들고 화염병을 던지는 시위대와 마주서는 것은 목숨을 거는 일이다. 실제로 옆에서 동료들이 피를 흘리는 것을 보면 젊은 혈기를 누를 수가 없다. 분노하게 된다. 그래서 더욱 거칠게 진압을 하고 체포를 하게 된다. 시위가 끝나고 나면 왜 내가 이 현장에 서야하나 회의감이 물밀듯이 몰아친다."

대학교 시절, 시위의 현장에서 담배를 나눠 피우며 백골단과 나눴던 이야기다. 실제 백골단과 전경 그리고 대학생들은 처지만 바꿨지, 피를 흘리기는 매한가지였다. 강한 시위진압은 강한 시위대를 만든다. 악순환은 무자비한 폭력에 의해서다. 

불법폭력 시위는 근절해야 옳다. 그러나 지금이 어느 시대인가? 불법폭력시위 통계를 보니 2001년 215건에서 2007년 64건으로 감소했다. 평화시위가 정착되는 모양새다.

체포전담조 운영은 아무래도 무리수로 보인다. 국가의 부름을 받았다지만 그들이 흘릴 피도 그렇고, 그들로 인해 또 다시 죽어갈지도 모를 사람들이 걱정된다. 과거의 아픈 기억은 1991년도로 끝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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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권으로 보는 그림 스포츠백과>(진선아이)의 글저자입니다. "오래오래 비루한 행복에 빌붙어 사느니 피가 우는대로 살아볼 생각이다"(<혼불> 3권 중 '강태'의 말)에 꽂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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