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드레밥 먹고 '곤드레만드레'하면 클나요!"

[우리 동네 맛집] 정선에서만 맛보는 곤드레나물 별미

등록 2008.03.26 09:48수정 2008.04.01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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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산 곤드레밥 군침 돌면 정선으로 오세요! ⓒ 강기희




24일 어제 하루 내린 비로 그새 계곡물이 불었다. 올 들어 처음으로 진 봄장마. 군데군데 건천이었던 계곡은 오랜만에 물소리를 시원스레 내며 콸콸 흘렀다. 계곡물은 동강으로 흘러든다. 동강의 물도 장마를 만나 누런 황토빛이다.

30여년 전만 해도 봄장마가 지면 냉장고 문짝보다 큰 얼음덩이가 둥둥 떠내려갔다. 전설이 된 먼 시절의 이야기이다.

24일, 강원도 정선은 화창했지만 바람이 강하게 불었다. 이 지역에서 가장 먼저 꽃을 피우는 나무는 생강나무. 나무에서 생강 냄새가 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정선에서는 '동박나무'라고 부르며 꽃은 산수유꽃과 비슷하게 생겼지만 선이 굵고 향기도 진하다.

산 정상에는 눈이 가득하다. 간밤에 내린 눈이지만 한낮까지 녹지 않고 있다. 산자락에 불어오는 눈바람은 차고 맵다. 그래서인지 막 피어난 생강나무는 바람을 견디지 못하고 여린 꽃술을 급히 닫았다.

정선 아라리 들으며 먹는 곤드레나물밥, 그 오묘한 맛


정선 읍내에 볼 일이 있었다. 읍내에 가는 길에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마침 점심 때, 친구와 점심 약속을 했다. 뭘 먹고 싶냐는 친구에게 "곤드레밥"이라고 대답했다.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고 먹고 돌아서면 '더 먹을걸'하고 후회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는 밥으로, 곤드레나물로 지은 밥이다.

친구가 선택한 집은 <싸리골식당>, 내 단골이기도 하다. 읍내를 돌아다니다 배고프면 집을 찾아들 듯 들어가 밥 한 끼를 뚝딱 하고 나오는 곤드레나물밥 전문집이다. 나만 그런 줄 알았더만 친구도 그런다고 한다.

점심 시간을 맞은 싸리골 식당은 빈 자리가 없을 정도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시간에 쫓기는 직장인들은 "주인에게 미안하다"며 다른 식당으로 가지만 먼 데서 일부러 찾아온 여행객들은 빈 자리가 생길 때까지 기다려서라도 반드시 먹고 가는 집이다.

싸리골에 들어서면 다른 음식점에서 맡을 수 없는 특유의 음식향이 난다. 그것이 바로 정선 지역에서만 맛볼 수 있는 곤드레나물이 만들어내는 향이다.

곤드레나물은 학명으로 '고려엉겅퀴'다. 엉겅퀴과인 곤드레나물은 가시가 있는 엉겅퀴와 달리 가시가 없으며, 꽃은 보라색으로 엉겅퀴와 흡사하다. 줄기와 잎이 연해 오래 전부터 식용으로 쓰였으며 보릿고개를 넘게 해주던 구황식물이기도 했다. 곤드레나물은 단백질·칼슘·비타민 등의 영양소가 풍부하여 건강식품으로 널리 알려진 산나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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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드레나물 잎을 포함해 줄기를 꺾으면 며칠 후 다시 순이 돋아난다. ⓒ 강기희


정선의 흙과 바람, 고운 햇살이 키운 곤드레나물

산나물이 어느 지역보다 많이 자생하는 정선. 1000m가 넘는 산들이 병풍처럼 둘러싸인 고장이다. 높은 산에는 곤드레나물 외에도 곰취·참취·미역취·떡취·참도돌치·명이·고사리·다래나무순·참두릅·개두릅·삿갓나물·참나물 등등. 봄에 산에 오르면 먹을 것들이 천지인 고장이다.

그 중에서도 곤드레나물은 정선과 인근의 지역에만 자생하는 특산물이다. 다른 지역에서는 먹을 수도 구경할 수도 없는 귀한 나물인 곤드레는 정선의 흙과 바람이 키워냈고, 정선 사람들이 살아내온 질박한 삶과 함께 했다.

정선 사람들은 척박한 땅을 일구며 구성진 가락의 '정선아라리'를 만들어냈고, 정선아라리는 이 나라 아리랑의 근원으로 평가받는다. 곤드레나물이 정선 사람들과 함께한 흔적은 전승되고 있는 이 정선아라리 가사에서도 확인이 된다.

곤드레 딱주기는 내가 다 뜯어 줄거니
참나물 참도들치는 그대가 뜯게

곤두레 만두레 쓰러진 골로
우리집 삼동세 봄 나물 가세

곤드레 맨들레 늘어진 골에 당신은 나물 뜯고
나는 꼴 비벼 단둘이나 가자
- '정선아라리' 가사 중에서

빈 자리를 찾아 앉자마자 곤드레밥이 나온다. 반찬으로 나오는 것들도 죄다 야채류. 바다 것은 꼴뚜기젓이 유일하다. 나물밥에 웬 젓갈이라고 하면 오산. 곤드레밥과 궁합이 기가 막히게 잘 맞는다. 주인인 최정자(53)씨가 곤드레밥집을 한 지 몇 년 만에 찾아낸 음식 궁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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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리골 음식 맛은 허름함에서 나온다고 했던가. ⓒ 강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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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박장 볶음장이라고도 한다. 된장에 야채, 멸치, 다시마 등을 넣고 끓였다. ⓒ 강기희



한 그릇은 된장으로, 또 한 그릇은 간장으로... 마지막엔 니 맘대로?

밥에 섞여 나오는 것은 바로 곤드레나물. 그래서 이름도 생경한 곤드레나물밥이 됐다. 밥을 할 때 잡곡을 넣는 건 봤지만 나물을 넣어 밥을 하는 것은 곤드레밥이 유일하다. 그런 이유로 음식을 처음 먹어보는 이라면 "어떻게 먹어요?"라고 묻게 된다. 그러면 주인이 오기 전에 옆 자리에 앉은 사람이 맛있게 먹는 법을 먼저 일러준다.

"된장으로 지진 자박장과 양념 간장이 있는데요. 된장으로 비벼 먹으면 맛이 깊고 나물 향이 그윽하게 배어 나오고요. 간장으로 비비면 그 맛이 세련되면서도 감칠맛나고, 밥맛이 고소해요."

곤드레 나물밥을 먹는 방법이다. 특별한 비법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설명에 나는 나만이 알고 있는 한 가지를 더 얹어준다.

"한 그릇은 된장으로 비벼 먹고요. 또 한 그릇은 간장으로 비벼 먹습니다. 그런 다음 된장과 간장 중에서 더 입맛에 맞는 걸로 세 번째 그릇을 비빕니다."

이렇게 먹으면 총 세 그릇을 먹게 된다. 추가 비용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마음씨 좋은 싸리골 식당에선 반찬과 나물밥 모두가 무한정 리필이다.

그렇게 말을 하지만 나 자신도 세 그릇은 먹어 보지 못했다. 몇 번을 도전해 봤지만 번번히 실패했다. 싸리골 식당에 갈 때마다 한 끼 정도는 굶고 가지만, 아직 세 그릇을 해치울 정도로 내공을 쌓지 못한 탓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한 그릇은 다음에 와서 먹겠습니다"며 먹지 못한 마지막 한 그릇을 저축해 둔다. 그렇게 지금까지 저축해둔 곤드레밥만 해도 수십 그릇. 갈 때마다 한 그릇씩 늘어나기 때문이다.

설령 곤드레나물밥이 맛있어서 많이 먹었다 해도 걱정할 필요는 없다. 소화가 잘 되는 음식이니 굳이 소화제를 찾는 우를 범하지는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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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드레밥 곤드레밥을 한 상 차려 놓았다. "자 드시죠!" ⓒ 강기희


햄버거 좋아하던 아이들도 한 그릇씩 뚝딱

오늘도 점심 식사를 하는 사람들 중에는 여행객이 많다. 이미 곤드레밥을 맛 본 사람도 있고 처음인 사람도 있다. 햄버거에 길들여진 요즘 아이들도 나물밥 한 그릇씩을 뚝딱 뚝딱 한다. 신기한 일이다. 곤드레밥에 무슨 비밀이 있는 것일까.

서울 태릉에서 왔다는 가족은 곤드레밥을 먹으려고 일부러 들렀다고 한다. 맛이 어떠냐고 물으니 "정말 맛있어요"라는 답이 돌아온다. 다음에 또 올 거냐고 물으니 "물론 또 와야죠"한다. 옆 자리에 앉은 중년의 부부는 서울 서대문에서 왔다고 한다. 그들 부부는 정선에 오는 날 곤드레나물밥을 먹었고, 떠나는 날인 오늘도 곤드레나물밥을 먹으러 왔다고 한다.

서울 사는 이승철 시인은 정선에 사는 내가 서울 갈 때마다 "곤드레밥을 왜 가지고 오지 않았느냐"고 타박을 한다. 정선에 올 때마다 곤드레밥을 먹었던 그는 돌아갈 때 곤드레밥을 싸가지고 갈 정도로 곤드레밥 마니아다. 입맛 까다롭기로 소문난 사람들이 문인 아니던가.

곤드레밥을 잊지 못한 이승철 시인은 급기야 며칠 전에 전화를 걸어왔다. 직접 해 먹을 테니 밥 하는 법을 적어서 곤드레나물과 함께 택배로 보내라는 것이다. 이쯤 되면 곤드레밥에 대한 더이상의 설명은 군더더기에 불과하다.

내가 어릴 때만 해도 곤드레나물로 죽은 끓여 먹었지만 밥을 짓는다는 것은 생각지도 못했다. 대체 곤드레 나물밥은 언제부터 생겨난 것일까. 그 근원이 궁금해 주인인 최정자씨에게 물었다.

"이 자리에서 1994년에 처음 곤드레나물밥이 태어나긴 했지만 당시만 해도 그다지 호응을 얻지 못했어요. 식당 운영이 어려울 정도였지요. 그랬던 식당을 내가 1996년에 인수하면서 지금의 곤드레나물밥을 새롭게 만들어낸 것이지요. 곤드레밥을 지금과 같은 맛을 내기까지는 많은 시행착오와 긴 시간이 필요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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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드레밥 먹으려고 서울에서 왔어요. "한 입 드실래요?" ⓒ 강기희



곤드레나물밥집의 관건은 안정적인 곤드레 확보

곤드레밥이 인기를 끌기 시작한 것은 웰빙 바람. 건강식으로 알려지면서 손님이 줄을 섰다. 곤드레밥이 소문나자 다른 식당들도 곤드레밥 메뉴를 추가하기 시작했다. 애초 곤드레나물밥을 개발했던 집은 싸리골 식당 옆에 다시 식당을 열었다. 곤드레나물밥의 전성기가 열린 것이다.

"곤드레나물밥 전문점을 하겠다며 밥 짓는 법을 배우러 오는 분들도 있어요. 지금까지 10명 정도 되는데 성공한 집도 있고 실패한 집도 있어요."
"왜 실패했다고 하던가요?"
"곤드레를 안정적으로 확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생산량은 한정되어 있는데 수요가 값자기 늘었거든요. 그런 이유로 나물 값이 많이 올랐어요."

싸리골 식당에서 1년 동안 소비하는 곤드레나물이 얼마나 되는지 물으니, 산지에서 구매하는 가격으로 1500만원 어치나 된다고 한다. 그렇게 준비한 곤드레를 삶아 냉동 보관하거나 말려서 나물밥을 만든다.

손님이 많은 날은 하루 200그릇 정도 나간단다. 한적한 시골 동네에서 그 정도면 상한가를 치는 셈이다. 주말이나 정선 장날엔 미리 예약을 해야만 좁은 틈이라도 앉을 수 있는 곳이다. 곤드레밥의 가격은 4000원. 나물값과 야채 가격이 올라 4월부터 5000원으로 올릴 계획이란다.

산나물로 출렁거리는 정선장터. "저거 무슨 나물이에요?" ⓒ 강기희


정선아라리와 누룽지는 덤

유행가 '곤드레 만드레'로 대중에게 더 알려지게 된 곤드레나물밥.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싸리골 식당으로 들어오면서 '곤드레 만드레~~' 노래를 부르며 들어선다. 그러면 주인은 "곤드레밥 잡숫고 곤드레 만드레하면 클나요!"한다.

주인장에게 곤드레나물밥을 집에서도 지어 먹을 수 있냐고 물었다.

"그럼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처음 몇 번은 제 맛을 내기 힘들어요. 물 조절을 하지 못해 생기는 일이지요. 밥물만 잘 조절하면 집에서도 맛있는 곤드레밥을 만들 수 있어요."

주인장이 말하는 곤드레나물밥 짓기에 빠질 수 없는 것은 들기름이란다. 참기름을 써서도 안되고 반드시 들기름을 사용해야만 제 맛을 낸다고 한다. 산나물을 무칠 때도 들기름이 들어가야지 맛있다는 말도 덧붙인다.

실은 이제야 고백하지만 나도 집에서 곤드레나물밥을 직접 해 본적이 있었다. 그런데 뭐가 잘못되었던지 실패하고 말았다. 그때 나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곤드레나물밥이 별미로서 유명세를 탈 일이 없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정선의 봄은 늦다. 산나물이 나기 시작하는 것은 4월 중순부터. 그 무렵이 되면 정선은 산나물 향으로 멀미가 날 정도다. 곤드레나물도 그 때가 되어야 산에서 내려온다. 싱싱한 산나물은 삽겹살 구울 때 최고의 인기를 누린다. 곤드레나물에서 나는 독특한 향이 기름의 느끼함을 제거하기 때문이다.

곤드레나물밥 집에서 만들어 봐요!

<음식 재료>
곤드레나물 400g, 쌀 4컵, 들기름 2큰술

<음식 조리법>
1. 밥 지을 쌀을 씻는다.
2. 말린 나물은 삶아서 건진 다음 물기를 빼어 먹기 좋을 정도로 알맞게 썬다. 막 뜯은 나물은 살짝 데쳐서 물기를 뺀다.
3. 삶은 곤드레나물을 들기름에 (반드시) 무친다. 기호에 따라 소금과 참깨를 섞는다.
4. 들기름에 무친 곤드레나물을 솥 밑에 깔고 위에 쌀을 앉힌다.
5. 곤드레밥의 성패는 물 조절. 물을 평소보다 조금 많게 한다.
6.끓인 양념된장이나 양념간장을 얹어서 비벼 먹는다.

그러나 곤드레밥은 봄이 되어도 여전히 귀하다. 그럴 땐 싸리골로 가야 한다. 싸리골 식당에 가면 계절과 상관없이 상큼한 봄향을 맛볼 수 있다.

보너스다. 계산할 때 슬쩍 "누룽지 없나요?" 하고 물으면 여행하면서 입이 심심하지 않을 수 있다. 곤드레밥에서 생긴 누룽지 맛은 밥만큼이나 그 맛이 독특해 술마신 다음 날 속풀이용으로도 그만이다.

독자 여러분은 이제 곤드레나물밥의 오묘하고도 기막힌 맛을 찾아, 한의 소리인 정선아라리 가락을 찾아, 레일바이크를 찾아 강원도 정선으로 걸음할 일만 남았다. 정선에 와서 곤드레밥 먹지 않고 가면 정선 다녀갔다고 말할 수 없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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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분들도 곤드레밥 소문 듣고 드시러 왔다네요. ⓒ 강기희

덧붙이는 글 | '<우리 동네(학교) 맛집>' 응모글입니다.


덧붙이는 글 '<우리 동네(학교) 맛집>' 응모글입니다.
#곤드레밥 #싸리골 #곤드레나물 #정선아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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