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왜 주민등록증이 없는가?

[인터뷰] 일본서 지문날인 거부한 김영만 대표

등록 2008.04.16 16:32수정 2008.04.16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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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만 대표(오른쪽) ⓒ 남두현


후쿠오카 입국심사장에서 지문날인을 거부하고 돌아온 김영만 corea평화연대 대표가 그 경위를 쓴 글을 오마이뉴스에 올려 화제가 됐다. 김영만 대표가 지난 기사에서 못다 말한, 일본의 외국인 입국자 지문날인 제도와 현행 주민등록증제도의 문제점, 2010년부터 전면도입 예정인 전자여권 문제점을 중심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 먼저 축하드립니다. 김주열추모사업회 회장님이시기도 한데, 새롭게 만든 김주열열사 기념조형물이 다들 잘 되었다고들 합니다.
"여러분들이 도와준 덕분입니다. 개인적으로 김주열열사의 친구로서 흉상이 초라해보여 안타까웠는데, 마음의 짐을 조금이라고 덜어낸 것 같아 기쁩니다."

- 선생님이 모처럼 일본여행을 가셔서, 입국심사장에서 지문 날인을 거부하고 다시 돌아왔다는 것을 오마이뉴스에서 뒤늦게 보았습니다. 간단하게 경위를 좀 말씀해 주시죠.
"예, 아내의 환갑기념 여행이었습니다. 둘이서 오붓하게 갈 형편은 못되었고요, 유기농산물 유통업체인 (주)녹색세상의 해외연수 프로그램에 끼여 간 겁니다. 집사람이 생산자 자격으로 여행비 일부를 지원 받아 가게 된 것이지요. 3월27일 부산국제여객선터미널에 모여 후코오카행 여객선에 올랐지요. 일본여행은 처음이었습니다."

- 국가유공자시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예, 2007년 2월 고엽제 판정을 받고 전상군경 국가유공자가 되었습니다. 언제 부터인지 제 별명이 '걸어 다니는 종합병원'입니다. 오래전부터 검사라도 한번 해야 되겠다는 생각은 했는데 미련퉁이 짓을 하다가 더 이상 견디기가 어렵게 되어 혹시나 하고 보훈병원에서 신체검사를 받았더니 고엽제 환자로 판명되었습니다."

- 해병으로 베트남전에 참전하여 일계급 특진에 화랑무공훈장도 받았다는 이야기도 사실입니까?
"제대 할 당시 전쟁 중 입은 총상으로 전상 1, 2급 해당하는 후유증이 있었음에도 만기가 되었으니 제발 나를 그냥 제대시켜 달라고 통사정을 했습니다. 아무리 씻어도 내 몸에서 피 냄새와 화약 냄새를 지울 수가 없어 하루라도 빨리 군대 환자복을 벗어 던지고 전쟁의 기억을 훌훌 털어버리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의병제대가 아니라 만기제대를 했습니다만 그런다고 나를 그냥 내보낸 당시 군행정이 지금과는 달리 매우 허술하고 무책임 했던 것 같아요. 그래도 국방부와 행자부의 관련문서에 제가 1967년부터 무공수훈자로 등록되어 있었음을 몇 년 전에 확인했습니다."

- 입국심사장에서 지문날인 거부 행동을 이해하는데 참고가 될 것 같아 드린 질문이었습니다. 일본에서 입국심사 때 지문 날인을 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상태에서 후쿠오카로 출항한 후 뒤늦게 선상에서 그 사실을 알고 난 뒤 갈등을 많이 느꼈겠습니다.
"당연하지요. 눈 질끈 감고 그냥 들어갈 생각도 했습니다. 아내와의 환갑기념 여행이라는 좋은 핑계꺼리도 있고요. 근데 내가 일본의 외국인 입국자에게 강요하는 지문날인을 거부하지 못하고 지문을 찍었다면, 일본서 지문 찍고 온 내가 한국에 돌아와 지문날인 거부운동을 계속 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남은 속여도 자신을 속일 수는 없는 일이지요."

- 그러니까 선생님의 지문날인 거부는 일본의 부당한 제도에 대한 즉흥적 분노가 아니라, 일관된 신념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사실, 저도 60년대 말 박정희 독재정권 시절에 발급한 지문날인이 된 종이코팅 주민등록증이 있었습니다. 그러다 1996년 김영삼 정부시절, IC칩이 들어가는 스마트카드 형태의 주민등록증을 도입할려고 했습니다. 그때부터 주민등록증 제도의 심각성을 인식했습니다. 지역에서 여러분들과 같이 반대운동을 했습니다. 이후 90년대 말 개정된 주민등록법에 따라 현행 플라스틱 주민등록증으로 교체될 때, 지문날인을 거부하고 새 주민등록증 발급을 받지 않았습니다."


- 그 당시 전국적으로 많은 분들이 공감하고 동참 한 것으로 아는데 그분들이 지금까지 현행 주문등록증을 발급받지 않았는지 궁금합니다.
"잘 모르긴 해도 아마 많은 분들이 생활의 불편 때문에 뒤늦게 발급받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저처럼 주민등록증이 없는 분들이 꽤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 주민등록증이 없으면 일상생활하기가 많이 불편하지 않을까요? 금융거래를 하거나 시험 칠 때 주민등록증이 없으면 어떻게 하지요?
"얼마 전 경남 김해시에서 구여권과 청소년증을 본인 확인 서류로 제출하고 여권을 갱신 발급받은 사례가 있습니다. 그 과정이 매우 힘들었다는 뉴스를 본적이 있습니다만 처음으로 주민등록증을 발급받게 되는 세대들은 본인임을 간단하게 확인시킬 증명이 없어 엄청난 어려움을 겪을 겁니다. 사업하시는 분들은 까다롭기로 유명한 금융사에서 융자 받을 때 곤란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제 개인의 경우를 말한다면 큰 불편은 느끼지 않았습니다. 자동차 운전 면허증, 여권과 같은 것으로 주민증을 대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권 발급신청도 운전면허증만 있으면 아무 문제없거든요."

- 불편하지는 않았다 해도 주민등록증이 없어 불쾌한 경험은 없었습니까?
"요즘 관공서에서는 행정전산망이 깔린 인터넷으로 업무를 보는데, 공무원들이 컴퓨터 화면을 보고 '어! 주민등록증이 없네요'하면서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을 때가 있습니다. 국외로 나갈 때 공항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면서 '왜 없는지?' '지금 바로 신청하라'고 하면서 이상한 사람 취급할 때는 저도 황당합니다."

- 서로가 서로를 황당하게 보는 거겠군요. 그럴 때마다 어떻게 대응하십니까?
"'걱정해 줘서 고맙지만 난 괜찮다'며 웃고 말지요."

- 우리나라의 주민등록 제도는 세계에서 유래가 없는 제도라고 들었습니다.
"다른 나라에서도 어떤 형태로든 신분증은 있지만 우리의 주민등록 제도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입니다. 우리는 마치 범죄자들이나 하는 열손가락 모두의 지문을 채취하고 주민등록번호 하나로 컴퓨터를 통해 혈액형, 결혼여부, 주소변동사항, 본적변경여부, 학력, 학과, 직업 등 무려 141가지나 되는 개인정보를 바로 확인해 볼 수 있답니다. 국가권력 앞에 국민들이 알몸으로 서 있는 꼴이지요. 무서운 일입니다."

김영만 대표(왼쪽) ⓒ 남두현


- 주민등록 기재사항이 그 정도라면 국민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는 관점에서 본다면 그 사람의 생각이나 행동패턴까지도 알수 있겠는데요? 실제 60년대 말 박정희 군사 독재 정권이 주민등록제도를 만들 때 간첩색출과 범죄예방을 이유로 들었습니다. 실제 효과가 있었을까요.
"글쎄요, 실효성에 대해서 저는 비전문가라서... 미국이나 일본 같은 나라에서는 주민등록증이 없는데 범죄예방과 범인검거를 어떻게 하는지, 우리나라와 비교해서 범인 검거율이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저도 무척 궁금합니다."

- 대부분의 국민들이 오랫동안 그 제도에 익숙해져 주민등록증이 없다면 많이 불편할 것이라고 지레 짐작하는 것이 지문날인 주민등록증 반대운동을 하는데 가장 어려운 문제인 것 같습니다만.
"우리 국민들이 이제는 주민등록증은 당연히 있어야 하는 걸로 생각합니다. 국가 통제 시스템에 완전히 순치되어 버린 거지요. 그것이 가장 큰 문젭니다."

- 1980년대 중반, 재일동포들의 지문날인 거부운동이 일어났을 때 대한민국 정부도 지원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 결과 1994년 재일동포의 지문날인제도가 폐기되었지요. 정작 우리나라에서는 전 국민에게 지문날인을 강요하면서 말이지요.
"한마디로 국제적 블랙 코미디입니다. 물론 한국정부의 항의가 재일동포 지문날인 거부운동에 힘을 실어 준 측면도 있었겠지만 당시, 일본측에서 한국정부의 주민등록증을 거론 하며 비아냥거린 것으로 압니다."

- 조지 오웰의 <1984년>이라는 소설에는 빅브라더가 개인을 하나하나 감시하는 끔직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지금은 컴퓨터나 CC TV, 전자칩, 바코드 등의 기술에 이용 권력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소설을 현실로 만들 수 있는 시대입니다. 모든 권력은 스스로 권력을 강화하려는 속성이 있기 때문에 단순한 걱정이 아닙니다. 국가가 빅브라더가 되어 국민을 감시하는 세상이 올 수도 있습니다.
"지식정보사회에서 정보민주주의운동을 해야하는 이유입니다. 그러고 주민등록증이 강제 발급된 68년 이후 사체를 토막 내어 유기하는 잔혹 범죄가 증가한 것과 연관이 있지 않은가 얘기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살인자들이 피살자의 신분을 쉽게 확인하지 못하게 하느라 그랬다는 거지요. 지문날인이 된 주민등록증이 있으니 지문만 대조하면 금방 확인가능 하니까요."

- 정말, 알면 알수록 우리나라의 주민등록 제도는 심각한 문제가 많습니다. 며칠 전 이명박 대통령내외가 전자여권 1. 2호를 받았다고 하는 뉴스를 들었습니다. 전자여권에 대해 인권단체의 반대가 많았던 것으로 아는데요.
"우리 정부에서는 전자여권을 사용하면 마치 우리가 선진국국민이나 되는 것처럼 이야기 하는데 실은 그게 엄청난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이미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표준에 따라 전자여권을 도입한 미국, 영국 등에서 전자여권이 해킹 당하고 개인정보가 유출되고 있어, 전자여권에 대한 리콜운동이 벌어지고 있고 EU 공식 보안전문가들이 전자여권 표준의 폐기를 주장하는 공식선언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이미 전자여권을 도입한 미국, 영국, 일본과 같은 국가들도 지문정보를 수록하지 않고 있을 뿐만 아니라 ICAO 표준도 지문수록을 표준에서 제외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유독 한국만 지문을 이용한 본인확인절차를 도입해 강제신분증을 만들려 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지문에다 주민등록번호까지 수록할 계획이라는데 주민등록번호가 해외용 신분증인 여권에 왜 필요지 도저히 이해 할 수 없습니다."

- 해외에서 이미 전자여권은 쉽게 복제, 해킹, 도용될 수 있다는 실험을 하고 그것을 UCC 통해 공개한 사례들을 저도 본 일이 있습니다. 만일 전자여권을 분실할 경우, 지문 등 생체정보와 주민등록번호까지 모두 해외에 뿌려놓게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되더군요.
"뭔가 멋질 것 같은 '전자여권 시대'가 사실은 '개인정보 국외유출 시대'가 된다는 생각을 하면 아찔해 집니다. 인권단체들의 저항으로 지문이 수록된 전자여권은 2010년으로 미루어 졌지만 이야말로 조삼모사한 행동으로 국민을 우롱하는 짓입니다."

- 정부가 전자여권을 서두르며 내세우는 명분 중 하나가 미국 입국비자면제 때문이라고 들었습니다.
"사실상 이름만 다른 비자제도를 도입하면서 비자를 면제해준다는 미국의 기만에 한국 정부가 놀아나고 있는 거지요. 정부가 미국과의 협상을 공개하지 않고 있는데요 미국이 제시한 비자면제 프로그램(VWP) 가입 조건에 심각한 인권침해 내용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특히 여행자 정보 공유 협정과 전자여행허가제(ETA)를 통해 개인의 사법기록 등 국민들의 개인정보가 다른 나라의 정부로 넘어가는 것은 프라이버시와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을 무시하는 심각한 인권문제입니다. 때문에 국민의 개인정보는 행정부 사이도 공유해볼 수 없도록 법으로 규제하고 있습니다. 또, 지난 1월 인권단체에서 외통부에 보낸 공개질의 답변에서 미국은 비자심사 대신 도입되는 전자여행허가제(ETA)를 통해 입국자격심사를 계속할 것이며, 비자수수료와 비슷한 종류의 요금이 징수할 것이라는 것이 밝혀졌다고 합니다.

- 입국비자가 면제된다는 뉴스에 한미관계의 긍정적 발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텐데 알고 보니 정말 문제점이 한두가지가 아니군요. 선생님은 이번 일로 스스로 또 하나의 무거운 짐을 지게 되셨습니다. 그동안 살아오신 삶에 후회는 없습니까?
"제 인생 중 많은 부분은 스스로 선택한 것이니까 후회는 없습니다. 다만 가족들에게는 늘 미안한 마음입니다."
#지문날인 #지문날인거부 #주민등록증 #전자여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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