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 내관이 왜 홍국영에게 하대하냐고요?

[사극으로 역사읽기] 독자의 쪽지에 대한 답변

등록 2008.04.16 17:47수정 2008.04.16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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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드라마 <이산>에서 내관 남사초가 홍국영에게 하대를 하는 장면이 여러 차례 방영되었습니다. 남 내관은 단지 반말만 하는 게 아니라 목과 배에 힘까지 주면서 '아끼는 후배' 대하듯이 홍국영을 하대하고 있지요. 나는 새도 떨어뜨렸다는 홍국영에게 일개 내관이 과연 하대를 할 수 있었는가와 관련하여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갖고 있는 듯합니다.

<오마이뉴스> 쪽지함에 의견을 주신 분들 중에도 그런 의문을 갖고 있는 독자분이 계십니다. 이에 대해 <이산> 홈페이지의 관계자가 답변을 한 적이 있지만, 보다 정확한 지식을 많은 분들과 공유하기 위하여 그 독자분에 대한 답변을 기사 형식으로 제공하고자 합니다.<기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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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독자분이 보내주신 쪽지. 남 내관이 홍국영에게 하대하는 장면을 보고 도대체 상선이란 자리가 얼마나 높기에 홍국영에게 하대를 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 것이다. ⓒ <오마이뉴스> 쪽지함



드라마 <이산>에서 남 내관이 도승지 겸 숙위대장 홍국영에게 하대를 하는 문제와 관련하여 크게 두 가지 측면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하나는 형식적 측면이고 또 하나는 실질적 측면이다.

형식적 측면인 품계를 볼 때에, 남 내관이 홍국영에게 하대를 하는 것은 너무나 지당한 일이다. 왜냐하면, 최근에 종2품 상선으로 승진한 남 내관이 정3품 도승지인 홍국영보다 상급자이기 때문이다.

<이산> 홈페이지의 답변은 이러한 형식적 측면에 기초하고 있다. 상급자가 하급자에게 반말을 하고 하대를 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게 <이산> 측의 답변이다.  

이처럼 품계로만 보면 남 내관이 엄연히 상급자이므로 그가 홍국영에게 하대를 하는 것이 얼마든지 이해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당시에 존재했던 실질적 측면 즉 그 시기 나름대로의 특수한 정황을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그 당시는 홍국영 세도의 절정기였을 뿐만 아니라 홍국영 자체가 예법을 준수하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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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 내관. 드라마 <이산>. ⓒ MBC


3월 18일자 기사인 '홍국영, 맨발로 손님 절 받았다?'에서 소개한 바와 같이, <정조실록>에 따르면 홍국영은 숙위소 사무실에 높은 평상을 갖다 놓고는 비스듬히 누운 자세로 맨발로 손님을 맞이한 사람이었다.

심지어는 나이 많은 상급자 즉 재상들이 찾아와서 절을 해도 자세를 고치지 않은 사람이었다. 또 그가 누구에게든 함부로 상스러운 말을 했다는 것이 <정조실록>의 기록이다.

이런 점들을 본다면, 세도가 홍국영이 자신보다 나이가 많거나 품계가 높다고 해서 존대를 했을 가능성이 낮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홍국영의 세도가 절정에 오른 그 시기에 홍국영보다 나이가 많거나 품계가 높다고 하여 그에게 함부로 하대를 하거나 그 앞에서 목이나 배에 힘을 주기가 힘들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설령 상급자로서 반말을 할 수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 태도가 매우 조심스러웠을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남 내관처럼 '아끼는 후배' 대하듯이 몸에 잔뜩 힘을 준 상태에서 홍국영을 대한다면, 위아래 안 가리는 홍국영이 그런 사람의 '조인트'를 까지 않았을까?

일반 백성들이 사석에서도 홍국영 석 자를 함부로 부르지 못하던 당시의 정황을 고려할 때에, 홍국영보다 높은 사람은 사실상 정조 임금 1명뿐이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홍국영 앞에서는 권력의 크고 작음이 존재했을 뿐이지 서열의 높고 낮음은 존재하지 않았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것이 사료에서 알려주는 홍국영의 이미지다.

그래도 남 내관은 대전 내관이지 않은가? 군주를 지근거리에서 모시는 사람이라면 홍국영에게 그런 하대를 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런 의문을 가질 수도 있다.

그러나 홍국영이 정조 앞에서 어떻게 행동했는지를 살펴보면 그 해답이 쉽게 나올 것이다. 3월 18일자 기사에서 소개한 바와 같이, 정조 임금의 처소 바로 옆에 숙위소 처소를 설치한 홍국영은 평소에 정조 임금을 거의 의식하지 않는 편이었다. 홍국영은 주군이 담 너머에 있는데도 큰소리로 고함을 치는 사람이었다.

물론 정조 임금 앞에서야 대놓고 무례한 짓을 하지 않았겠지만, 담 너머에서 조용히 책을 읽거나 공문서를 검토하고 있는 주군에 아랑곳없이 큰소리를 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대전 내관이라고 무서워했을까? 

그리고 실록에 따르면 홍국영은 정조의 귀에 들어갈 것이 뻔한 상황에서도 중전에 대해 곧잘 험담을 하곤 했다고 한다. 정조도 그런 홍국영을 그냥 묵인했다고 한다. 이 정도의 사람이라면 대전 내관이 상급자임을 내세워 자기 앞에서 몸에 힘을 주고 하대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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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종2품 상선으로 승진한 남 내관. 드라마 <이산>. ⓒ MBC



그렇지만, 남 내관과 홍국영의 관계는 특수하지 않은가? 홍국영과 남 내관은 정조가 세손이었을 때부터 알고 지낸 사이이기 때문에 남 내관이 얼마든지 하대할 수 있지 않겠는가? <이산> 측이 제시한 답변의 한 부분이다.

하지만, 그것은 문자 그대로 드라마 속의 상황일 뿐이다. 드라마에서라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홍국영의 세도가 절정에 달한 정조 초기에는 실제로 발생하기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남 내관이 실존 인물이었다는 확실한 근거도 없지 않은가?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이산>에서 남 내관이 홍국영에게 반말을 하고 하대를 하는 것은 품계라는 형식적 측면에서 본다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 시기의 실질적 측면을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시기는 홍국영 세도의 절정기였다. 홍국영이 나이 많은 상급자들에게도 함부로 하대를 했을 뿐만 아니라 상급자들이 도리어 홍국영을 존대하지 않으면 안 되던 때였다. 하도 기막힌 일인지라 사관들이 그런 소소한 내용까지 실록에 다 기록해 두었다.

이러한 점들을 볼 때, 만약 남 내관 같은 사람이 실존했다고 하더라도 그 당시에 홍국영 앞에서 몸에 힘을 꽉 주고 반말을 하기는 힘들었으리라 본다.
#이산 #남 내관 #남사초 #홍국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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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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