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엄마 다리에 지렁이가 살아요"

일하는 사람들에게도 앉을 권리를 주자!

등록 2008.04.18 13:32수정 2008.04.18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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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아이가 이렇게 말했다. “우리 엄마 다리에는 지렁이가 살아요.”

 

이런, 지렁이가 어떻게 사람의 다리에 사나, 혹시 피부 속으로 들어간 것일까? 얼핏 진짜 지렁이 같았지만, 그 아이가 말한 것은 하지정맥류였다. 하지정맥류는 혈관이 우툴두툴 튀어나와서 마치 지렁이같이 보인다.

 

발병 원인 가운데 하나는 오랫동안 서서 일하는 것이다. 대형 마트, 매장에서 일하는 직종에 종사할 경우가 대표적이다. 지렁이는 땅 속에서 자연을 정화하는 좋은 생물이지만, 어머니 다리 속의 지렁이는 반갑지 않다.

 

고깃집에서 일하며 생계를 잇는 드라마 <누구세요>의 손영인(아라)이나 고급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시트콤 <코끼리>의 국채아(한채아)도 대부분 서서 일한다. <오필승 봉순영>과 <조강지처클럽>에도 할인매장 등에서 서서 근무하는 여주인공이 있는데, 드라마 주인공들은 잠시 거쳐 가지만 실제 매장에서 근무하는 여성들은 하지정맥류가 생길 정도로 일한다.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에서 미숙(문소리)도 마트에서 일한다. 영화는 서서 일하는 것이 어떤 신체 질병을 낳는지보다 국가 대표 선수인데 소속 팀이 해체되어 비정규직 마트에 근무하는 것에 주목했다. 미숙도 늘 그렇게 오랫동안 서서 근무하다 보면 다리에 지렁이가 생길 것이다. 정란(김지영)은 고깃집 사장님 부인이기 때문에 하지정맥류에 덜 걸릴까?

 

많은 직장 여성이 싸워야 할 대상은 다리 속 지렁이라는 사실에 착안한 것일까. 얼마 전부터 민노총에서는 할인마트, 백화점 매장, 식당 등에서 일하는 이들의 근무지에 의자 놓기 운동을 벌이고 있다.

 

산업보건기준에관한 규칙 제277조는 “사업주는 지속적으로 서서 일하는 근로자가 작업 중 때때로 앉을 수 있는 기회가 있을 때는 당해 근로자가 이용할 수 있도록 의자를 비치해야 한다”라고 했다. 하지만 매장에 의자는 없다.

 

2007년 국가인권위원회의 조사에 따르면, 유통서비스업계 여성 노동자 질병 가운데 하지정맥류가 47%나 됐다. 서서 근무하면 심혈관계 질환이 더 악화할 수 있다고 한다. 영국 정부는 서서 근무하는 직종을 가진 노동자 19만2000명이 다리 이상의 고통을 호소했다고 밝혔고, 영국 직업병에서 근골격계 질환 중 17%가 다리 부근이었다.

 

영국 노동안전보건단체는 수백만 명의 노동자가 하루 대부분을 서서 일하도록 강요받고 있다고 했고, 영국 유통업체 노동자동맹조합(USDAW)은 “장시간 서서 일하는 노동자에게 의자를!”이라는 구호를 내걸었다고 한다.

 

우리는 청소년 시기에 아르바이트를 할 때부터 서서 근무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흔히 종업원이 앉아 있으면 자의든 타의로든 게으름을 피우거나 열심히 일하지 않는 것으로 간주한다. 일하는 사람의 앉을 권리는 효율성 논리에 묻혀 다리 속 지렁이의 거름이 되었다.

덧붙이는 글 | 뉴스메이커에 실린 글입니다.

2008.04.18 13:32 ⓒ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뉴스메이커에 실린 글입니다.
#하지정맥류 #지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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