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 나이가... 4학년?"

[두 바퀴에 싣고 온 이야기보따리 45] 청암사 비구니 스님이 건네준 초코파이

등록 2008.05.01 16:06수정 2008.05.02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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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암사 보광전(경상북도 문화재자료 288호) 조선 정조 6년(1782)에 새로 고쳐 지었다는 걸 보아 그보다 훨씬 오래 앞서 세워진 거예요. 이 보광전은 숙종 때 인현왕후가 장희빈 때문에 폐위되어 이 청암사 극락전에서 지냈답니다. 그때 인현왕후의 복위를 비는 마음으로 세운 거라고 합니다. ⓒ 손현희


"우와! 두 분 참 멋지세요. 보기 좋으십니다."
"아이구 고맙습니다."


모퉁이를 돌다가 사진을 찍고 있는 우리를 보고 비구니 스님이 두 손을 모아 인사를 건넵니다. 그러다가 우리 차림새를 보고, 참 멋지다고 하면서 멀찌감치 떨어져 부도탑 사진을 부지런히 찍고 있는 남편과 나를 번갈아 보았어요. 구경 잘하고 가라고 하며 돌아서 가더니, 다시 뒤를 돌아보세요.


"가만, 나이가 꽤 들어 보이는데요?"
“하하하. 네. 좀 그렇지요?"
"그럼…. 4학년?"
"네. 맞습니다."
"아이구 대단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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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암교 청암사 청암교에요. 너른 마당에 들어서니, 그동안 우리를 괴롭히던 바람도 잠잠하고 추위도 잊었답니다. 때 아니게 추운 날씨였지만 그윽한 절집 풍경 때문에 힘든 줄도 몰랐답니다. ⓒ 손현희


우리가 자전거를 타고 다니다보면 만나는 사람마다 '반말투'로 말하는 이들이 참 많아요. 하기야 시골마을만 찾아다니다보니, 만나는 사람마다 거의 어르신들이 많아서 반말로 얘기해도 그다지 잘못된 건 아니지요. 그런데 어떤 때에는 우리와 또래 같아 보이거나, 그보다 아래일 듯한 사람들도 그렇게 말할 때가 있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몸에 쫙 달라붙는 옷차림에 헬멧 쓰고 빛깔안경까지 쓰고 나가면 잘해야 대학생 정도로 본답니다. 이거 나이보다 훨씬 젊게 봐주니 오히려 고마워해야겠지요? 하하하.

"절에서 도를 닦는 스님이라 그런가? 족집게네!"

남편한테 스님이 한 얘기를 했더니, 크게 웃으면서 말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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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봉당 부도 이밖에도 여러 스님들의 부도가 모셔져 있어요. ⓒ 손현희


때 아닌 추위와 싸우다

김천시 증산면 평촌리, 불영산(수도산) 골짝 아래 고즈넉이 자리 잡고 있는 청암사를 찾아가는 길은 참으로 힘들었어요. 구미에서는 어제(25일)까지만 해도 반팔 차림으로 자전거를 타고 다녔는데, 한 해에 한두 번 있을까 말까한 '이틀 쉬는 날', 하필이면 비 소식에 몹시 마음을 졸였답니다.

새벽 5시30분에 집을 나서서 성주를 거쳐 김천 증산까지 닿을 동안 후드득 떨어지는 빗방울과 가파른 오르막을 몇 번이고 넘어가야 하는데, 가는 내내 맞바람이 불어서 때 아니게 춥고 몹시 힘들었어요. 심술궂은 날씨가 얼마나 미웠는지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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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락전 앞 마당에서 내려다본 대웅전 청암사에는 크고 작은 전각들이 매우 많았어요. 하나 같이 예스런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데, 무척 멋스럽고 정겹게 보였답니다. ⓒ 손현희


힘들게 예까지 왔기 때문일까? 청암사로 올라가는 들머리는 더할 수 없이 아름답고 그윽했어요. 울창한 숲길로 들어서는데, 오면서 그렇게나 우리를 괴롭히던 바람도 잠잠하네요. 청암사에는 비구니 스님들이 계시는 곳이라 들었는데, 들머리부터 그 모양새가 여자처럼 조용하고 차분한 느낌이에요.

오른쪽으로 꽤나 오래 되어 뵈는 비각 두 채(대운당비각, 회당비각)가 나란히 있고, 전각에서는 오랜 세월을 견디어낸 흔적을 엿볼 수 있었어요. 크고 화려하게 지은 전각보다 빛깔이 바랜 단청을 보니, 그 예스러움이 듣던 대로 '천년고찰', 남다른 감동이 느껴집니다.

'청암교'를 지나 올라서니 돌담에 둘러싸인 전각들이 눈에 띄어요. 바깥 풍경만으로도 남다른 얘깃거리가 숨어있는 듯 신비롭기까지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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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암사 극락전 야트막한 돌담에 둘러싸인 극락전은 절집보다는 여염집 같은 모습이었어요. 사진을 찍고 있는 내내 안에서 비구니 스님들이 정답게 얘기하는 말소리가 새어나왔어요. 또 이 극락전에서 인현왕후가 숨어(?) 살기도 했답니다. 이 곁(서쪽)으로 보광전이 있어요. ⓒ 손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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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락전 누마루 인현왕후가 지냈다는 극락전에 툇마루와 이어진 누마루가 있어요. 빛깔은 바랬지만 그래서 더욱 아름다웠어요. 누마루는 부드러운 '선'이 무척 아름다워요. ⓒ 손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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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암사 보광전 극락전 서쪽에 있는 보광전이에요. 폐위된 인현왕후의 복위를 빌며 지었다고 합니다. 겹처마 팔작지붕인데 건축양식이 매우 남달랐어요. ⓒ 손현희


스님이 건네준 초코파이와 과자

극락전 뜰 앞, 온갖 꽃들이 피어나 힘겹게 올라온 길손을 편안하게 반깁니다. 툇마루로 이어진 높다란 누마루가 무척 아름다워요. 무엇보다 부드러운 선이 참 멋스러웠어요. 게다가 '뎅그렁 뎅그렁' 울리는 풍경 소리는 더욱 잘 어울렸어요. 극락전 예스런 풍경에 빠져 한참 동안 사진을 찍고 있는데, 남편이 저만치서 손짓하며 나를 불렀어요.

누마루를 따라 모퉁이를 돌아가니, 그만 입이 딱 벌어졌어요. 빛바랜 단청을 옷 입고 꽤나 낡아 뵈는 '보광전'이 눈앞에 펼쳐졌어요. 또 그 앞에는 아까 잠깐 뵈었던 그 비구니 스님이 손에 무언가를 들고 나를 기다리고 계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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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情) 이 담긴 초코파이 비구니 스님이 건네준 초코파이와 과자, 이렇게 고마울 수가? 스님 덕분에 청암사를 구경하는 내내 얼마나 따뜻하고 정겨웠는지 모른답니다. ⓒ 손현희


"이거 간식이라도 하세요."

스님이 나한테 건네준 건 초코파이 두 개와 과자 두 개였어요. 스님은 이것들을 수줍게 건네주고는 이내 총총히 뜰 뒤로 가버리셨어요. 남편한테 물으니, 아까부터 보광전 뜰 앞에서 내가 오기를 기다렸다고 했어요. 자전거를 타고 여기까지 온 길손한테 간식이라도 하라면서 내주신 초코파이와 과자를 보니, 얼마나 고마웠는지 몰라요. 스님의 따뜻한 맘씨가 느껴져서 초코파이 봉지에 쓴 '정(情)'이라는 글자처럼 참으로 고맙고 따뜻했답니다.

"어머나! 세상에, 우리가 절집에서 스님한테 빵을 다 받아보다니!"
"하하하 그러게 말이야. 참 고마운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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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십이수 관음보살좌상 보광전 안에 따로 모셔둔 불상인데, 모양이 매우 남달랐어요. 이런 불상은 처음 봤네요. 손이 왜 이렇게 많을까? ⓒ 손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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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암사 대웅전(경북 문화재자료 120호)과 다층석탑(경북 문화재자료 121호) 대웅전 뜰 앞에는 돌탑이 하나 있어요. 대웅전과 어우러져 참 아름답더군요. 틈틈이 여승들의 모습을 볼 수 있어 남다른 신비로움까지 느꼈답니다. ⓒ 손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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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암사 대웅전(경북 문화재자료 120호) 이 대웅전도 꽤 오래 되어 보이지요? 신라 헌안왕 3년(859)에 도선국사가 세운 절이에요. 대웅전 편액은 명필이었던 '성당 김돈희'가 쓴 글씨라고 합니다. ⓒ 손현희



정말 그랬어요. 우리가 문화재를 찾아다니다보니, 절집에 자주 찾아가는데 스님을 틈틈이 만나기는 했어도 이렇게 먹을 걸 내다주는 분은 처음이었어요. 게다가 우리는 불교신자도 아니어서 법당에 들어가 절을 하거나 예를 올리는 일도 하지 않거든요. 그러니 사실 스님을 만나더라도 그다지 할 말도 없어서 가볍게 고개인사만 할 뿐이었지요.

스님이 주신 초코파이와 과자를 먹으면서 또다시 절집을 구경하는데, 이젠 모든 것이 새롭게 보여요. 아니, 전각 하나 하나와 절집 분위기가 모두 따듯해 보이고 정겨웠어요. 마치 스님의 따듯한 맘씨처럼 '청암사'가 미칠 만큼 좋았어요. 참 희한하죠? 눈길 닿는 데로, 보이는 것마다 그렇게 따스하게 느껴질 수가 없었답니다.

아마 두고두고 잊지 못할 거예요. 절집을 찾아다니면서 참 많은 곳을 봐왔지만, 크고 화려하며 반듯하게 지은 전각들을 보면 왠지 기가 죽고 썩 정이 가지 않았어요. 우리가 불교신자가 아닌 탓도 있겠지만, 왠지 절집도 자꾸만 '돈'과 잇닿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또 절 마당 안까지 아스팔트로 쫙 깔아놓은 걸 보면 그것도 싫었어요. 산골짜기 좋은 곳마다 터 잡고 있는 것도 못마땅했지요.

청암사를 구경하고 돌아 나오면서 다시 뒤돌아보니, 아직도 바람이 불어 춥고 쌀쌀한 날씨였지만 가슴만은 그 어느 때보다 따듯했답니다. 비구니 스님의 그 따듯한 정을 먹었으니, 오늘 하루가 참으로 즐거울 듯했어요.

"스님, 고맙습니다. 그날 주신 초코파이와 과자, 우리가 얼마나 맛있게 먹었는지 모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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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암사 뜰앞 청암사 뜰 앞이에요. 꽃이 참 예쁘지요? 청암사는 비구니 스님들이 계시는 곳이에요. 승가대학이 있어 여승들이 무척 많았어요. 불영산(수도산) 골짝 아래 큰 개울을 가운데에 두고 대웅전과 보광전, 극락전이 나뉘어 있답니다. 비구니 스님이 계신 곳이라 그런가? 절집 풍경이 여자처럼 아름답고 차분했어요. ⓒ 손현희

덧붙이는 글 | 다음 이야기는 가파른 오르막이 무려 7km! 추위와 싸우며 힘들게 다녀온 불영산 꼭대기에 있는 수도암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뒷 이야기와 더욱 많은 사진은 한빛이 꾸리는'우리 말' 살려쓰는 이야기가 담긴 하늘 그리움(http://www.eyepoem.com)에서 볼 수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다음 이야기는 가파른 오르막이 무려 7km! 추위와 싸우며 힘들게 다녀온 불영산 꼭대기에 있는 수도암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뒷 이야기와 더욱 많은 사진은 한빛이 꾸리는'우리 말' 살려쓰는 이야기가 담긴 하늘 그리움(http://www.eyepoem.com)에서 볼 수 있습니다.
#청암사 #비구니 #초코파이 #청암사보광전 #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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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오랫동안 여행을 다니다가, 이젠 자동차로 다닙니다. 시골마을 구석구석 찾아다니며, 정겹고 살가운 고향풍경과 문화재 나들이를 좋아하는 사람이지요. 때때로 노래와 연주활동을 하면서 행복한 삶을 노래하기도 한답니다.

이 기사는 연재 자전거는 자전車다 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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