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는 서울공화국 대통령? 지방은 '전투모드'

이명박 대통령이 '지역균형발전' 대신 '시장친화발전' 내세운 이유

등록 2008.05.10 10:31수정 2008.05.10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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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29일자 <조선일보> PDF ⓒ 조선PDF

조금 지난 일이다. '새 정부의 국가균형발전위원장으로 최상철 서울대 명예교수가 내정되었다'는 뉴스를 전하면서 대구·경북 지역의 한 언론은 이 곳 출신인 최 교수를 가리켜 '서울 TK'라 소개했다. 대구·경북 사람들이 그냥 'TK'라 하지 않고 '서울 TK'라 부르는 것은 뭔가 마뜩찮고 편치 않은 심사를 표현하는 것이다. 비아냥거리는 의미도 있다.

출향 인사가 높은 자리에 올랐는데 축하하지 못하고 이렇게 빈정대는 것은 최 교수가 지역균형발전에 반대해 온 대표적 인물이고, 최 교수가 임명되면 지역균형발전이 퇴보할 것이라는 '혐의' 때문이다. 수도이전반대국민연합 대표로서 그가 한 발언이나 경기도 선진화위원장이라는 이력은 그에게 불리한 '알리바이'다. 그는 '혁신도시'에 대해 "거대한 망국적 실험"이고 "좌파적 평등주의 도착증"이라는 모진 소리까지 한 적이 있다.

최 교수에 대한 비토는 대구·경북 지역만이 아니다. 대전·부산·광주·춘천 등의 신문을 뒤져보니 다 그렇다. 거의 모든 비수도권 지방이 최 교수 내정을 계기로 속속 '전투모드'로 전환하고 있다. 지역균형발전 문제를 가지고 정부와 크게 한 판 붙을 기세다.

비수도권 13개 시도지사는 대통령에게 지역균형발전 문제를 강력히 제기할 것이라 하고, 시민단체는 대규모 집회·서명운동·토론회 등 저항운동을 조직화할 계획이라고 한다. 각 지역 국회의원들도 가만히 있을 것 같지 않다.

최상철 균형발전위원장 내정에 지방은 전투모드로

새 정부 지역균형발전 정책의 대강이 아직 드러나지 않았지만, 지난 몇 달간의 '징후'로 보아 각 지방이 전투모드로 들어가고 있는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 보인다.

이명박 대통령의 취임사를 주의깊게 지켜보았던 사람들은 어느 전임자도 빼놓지 않았던 지역균형발전 정책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는 점을 의아하게 생각했다. 지역균형발전 정책은 대통령직인수위에서부터 국정과제 우선순위에서 밀려났고 대신 수도권 규제 완화가 중요한 자리를 차지했다. 예사롭지 않은 일이었다.


신자유주의적 경쟁과 효율성을 강조하는 이명박 정부가 지역균형발전 정책을 어떻게 추진할 것인가? 지방에서는 그때부터 걱정이 태산 같았다. 지역균형발전 정책이란 수도권에 비해 발전이 늦은 비수도권 지방을 계획적으로 지지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그것을 '시장친화적'으로 하겠다고 했다. 지방으로서는 이 '시장친화적'이라는 말이 못내 마음에 걸렸다. 행여 이것이 비수도권 지방에 대한 계획적 지지를 약화시키자는 뜻은 아닐까 가슴을 졸였다. 시장경쟁을 강조하는 극단적인 사람들이 지역균형발전 정책을 비효율적인 좌파 정책이라고 몰아붙이던 기억이 새로웠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는 물론 아니라고 했다. '시장친화적' 지역균형발전 정책이란 지방을 막연하게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지방이 스스로 발전할 수 있는 역량을 만들게 하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것을 위해 기존 행정구역을 초월하여 광역경제권을 만들고 거기에 새로운 성장동력을 구축하기 위해 필요한 자원과 프로그램을 넣자는 것이었다.

지방의 자생적 역량을 만들자는 것은 좋은 말이다. 문제는 이것이 수도권 규제완화 전략과 동전의 양면처럼 맞닿아 있다는 점이다. 이명박 정부는 수도권과 비수도권 지방의 균형발전 문제는 수도권을 규제해서 해결할 일이 아니라 비수도권 지방의 경쟁력을 제고해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규제완화를 경쟁력 제고의 가장 중요한 전제 조건으로 여기는 정부는 어느 한 쪽을 규제해 다른 한 쪽을 키우는 것은 온당한 일이 아니라고 했다.

그러나 지방의 입장에서는 가슴이 철렁할 노릇이었다. 수도권 규제 완화 가능성이 내비치는 바로 그 순간부터 비수도권 지방에 투자하려던 기업들은 눈치를 볼 것이 뻔하고, 수도권 규제 완화는 비수도권 지방의 경쟁력을 높이려는 어떠한 노력도 순식간에 물거품으로 만들어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당장 수도권 규제를 풀겠다는 것은 아니라고 하지만 비수도권 지방은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서울공화국 대통령'?

아니나 다를까?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자 혁신도시 사업에 대해 '전면 재검토', '발전적 보완', '수정 강행' 등 갈팡질팡하는 말들이 난무했다. 지방 사람들은 황당했다. 공공기관 지방 이전도 공공기관 민영화와 맞물려 어디로 흘러갈 것인지 모를 상황이 되었다.

다음 국회로 넘어가기는 했지만 수도권 정비계획법 개정안을 제출한 것을 보면 경쟁과 효율을 강조하는 이명박 정부는 수도권 규제 완화를 기본 축으로 지역균형발전 정책을 크게 바꿀 것이 분명하다.

지역균형발전 문제를 소홀히 다루면 자신의 텃밭인 대구·경북에서부터 지지를 잃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이명박 정부는 알아야 한다. 대구출신 이한구 한나라당 정책위 의장조차도 '이명박 정부는 수도권 규제 완화에만 치중하고 지방에는 별생각도 배려도 없다'고 비판하고 있고, 한나라당의 힘으로 당선된 김범일 대구시장은 날로 커가는 수도권 집중을 지켜보며 '차라리 서울공화국이라 불러라'라며 절규하고 있다.

역시 한나라당원인 김관용 경북지사는 최근 지역균형발전협의체에 각 시도 기획관리실장과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구성된 실무협의회를 구성하고 비수도권의 생존권 차원에서 수도권 규제 완화를 저지하겠다고 결의를 다졌다.

가볍게 여길 일이 아니다. '시장친화적' 균형발전 정책은 철회되어야 한다. 국가균형발전위원장으로 내정된 최상철 교수를 '서울 TK'라고 한 동향 언론의 '거리두기'처럼 적어도 균형발전 문제에 관한 한 출향 인사라고 너그럽게 봐주지 않겠다는 것이 지역 분위기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경쟁과 효율을 철학으로 가지고 있고 서울시장 출신으로서 수도권의 든든한 지지를 정치적 자산으로 여기기 때문에 비수도권 지방에 대한 인식의 한계를 가지고 있지 않을까 하는 의심을 받고 있다. 유념해야 한다. 지방 민심이 이명박 대통령에게도 어느날 '서울 TK', '서울공화국 대통령'이라는 이름표를 붙일지 모른다.

덧붙이는 글 | 김태일 기자는 영남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이며 지방분권운동대구경북본부 초대집행위원장을 지냈다.


덧붙이는 글 김태일 기자는 영남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이며 지방분권운동대구경북본부 초대집행위원장을 지냈다.
#지역균형발전정책 #대구경북 #서울공화국 #수도권규제완화 #혁신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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