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과 '10살'의 차이

베트남 이주여성 탐이 38kg인 이유 (1)

등록 2008.05.10 16:37수정 2008.05.10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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숱한 외국인들을 만나며 상담을 하다 보면, 종종 여러 단체에서 같은 상담을 하다 온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원칙적으로 타 단체에서 상담을 진행하는 건에 대해 끼어들지 않지만, 여러 단체에서 상담을 했던 사람들의 경우 그 사실에 대해 처음부터 다 털어놓는 경우가 드물다는데 어려움이 있다.


그러다 보면 서로에게 피곤한 일이 반복되는 일이 발생한다. 답답한 마음에 상담을 의뢰한 입장에서는 다른 곳에서 수차례 주고받았던 질문과 답이 이어지면, 괜히 짜증이 나고 답변은 건성이 되며 마음을 닫기 쉽다.

그나마 타 단체에서 상담을 하고, 숙식 문제나 접근성의 문제로 상담단체를 옮기는 경우는 기본적인 상담일지 등을 건네받기 때문에 기본적인 정보를 알고 상담하다 보면 훨씬 수월한 부분이 없지 않지만, 좀 더 상세한 사항을 알기 위해 질문을 이어가다 보면 역시 같은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얼마 전 결혼이주여성을 상담하며 기본적인 신상에 관한 질문을 통역을 통해 해야 했었다. 그런데 가정 폭력으로 병원에서 진료를 받고 타 단체에서 상담을 받은 후에, 우리 쉼터로 온 베트남 출신 탐(28, Tham)은 질문에 대해 건성건성 답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러더니 순간 눈물을 쏟아내는데 앞에 앉은 사람까지 착잡하게 할 정도로 어깨를 들썩이는 것이었다.

나는 상대방이 이미 여러 차례 받았을지도 모를 질문을 해서 그런가 보다 하고, '피곤하면 나중에 해도 된다'고 밝히고 "당신이 무슨 말을 하든지 들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말을 자르지 않을 테니 속에 있는 것을 다 털어놔 보세요" 말했다. 그러자 탐은 조용히 괜찮다고 답을 했고, 상담이 이어졌다.

처음에는 서로 교감이 없어서 그런지 질문하는 사람이나, 질문 받는 사람이나 심지어 통역까지 종종 엉뚱한 말을 하기까지 했다.


"학교는 어디까지 나왔어요?"
"10년이요."
"10년이면 고등학교 중퇸가요?"

한참 말을 끊었던 탐은 다시 "10살"이라고 답했다. 10살까지 학교를 다녔다는 말이냐고 되묻자,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상적인 대화였다면 박장대소했을 의사 소통의 문제였겠지만, 마냥 가슴 한 켠이 짠해오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계속된 상담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은 이것이 온전한 상식을 가진 사람들이 사는 세상인가 싶을 지경이었다.

탐에 의하면 중개업소의 소개로 한국에 온 지 8개월째였는데, 외출하는 시부모에게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와 인사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녀는 시아버지에게 몽둥이찜질을 당했다고 했다. 탐은 구타당한 후에 곡기를 끊고 나흘을 누워 있다가 시어머니에게 베트남으로 돌려 보내달라고 했다고 한다. 그러자 시어머니는 결혼 비용 1천 1백만 원을 내놓으면 돌려보내주겠다는 말을 하며 여권을 빼앗았다고 한다.

결국 눈치를 살피던 탐은 그 다음날 집을 나왔고, 길을 가던 행인의 안내로 경찰서를 찾았고, 경찰의 도움으로 병원에서 진료를 받은 후에 상담단체를 찾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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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타로 멍이 든 종아리 쉼터에서 상담할 당시 모습으로 구타 사건 후 일주일이 지나 멍자국이 많이 없어진 상태. ⓒ 고기복


우리 쉼터에 오기까지는 구타 사건이 있은 후, 일주일이 지나고 있었는데도 손목과 종아리에 멍이 남아 있었다. 게다가 여권 사진과는 달리 통통하던 볼이 쏘옥 들어간 모습은 그 동안 몸과 마음 고생이 어떠했는지를 가늠하게 해 줬다. 그녀에 의하면 입국 당시 49kg이었던 몸이 지금은 38kg이라고 했다. 탐은 의도하지 않은 다이어트의 고통을 8개월 동안 감내해 왔던 것이었다.

그래도 요 며칠 쉼터에 온 후 눈에 띄게 밝아진 모습이다. 누군가에게는 무엇보다 소중한 딸이었을 탐의 얼굴에 더 이상 서러운 눈물이 맺히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가정폭력 #상담 #통역 #다이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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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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