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 지은 인간들아, 절집 비빕밥을 먹어라

[절집 기행] 절집 비빔밥엔 세상의 모든 악업이 들어있다

등록 2008.05.15 18:22수정 2008.05.15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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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마노탑. 정암사에서 올려다 본 수마노탑. 수마노탑은 객을 굽어보고 객은 탑을 올려다 본다. ⓒ 강기희

▲ 수마노탑. 정암사에서 올려다 본 수마노탑. 수마노탑은 객을 굽어보고 객은 탑을 올려다 본다. ⓒ 강기희

지난 12일 부처님께서 세상에 오신 날 절집을 찾았다. 하늘엔 구름이 가득했으며 금방이라도 눈발을 뿌릴 듯한 그런 을씨년스런 날씨였다. 정암사에 가기 전날은 담아 놓은 물에 얼음이 얼었으며, 그날 아침엔 무서리가 하얗게 내렸었다.

 

자장이 열반한 정암사, 부처님 오신 날 맞아 '야단법석'

 

거리에 걸린 등은 강하게 불어오는 바람을 타고 이러저리 흔들렸다. 내가 찾은 절집은 적멸보궁이 있는 절집인 정암사. 며칠 전까지도 정암사는 절집 이름만큼이나 고요한 곳이었다. 그러나 부처님 오신 날 정암사는 대중불자들로 가득했다. 공양간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분주했고 사람들이 먹고 난 빈 그릇을 씻는 이의 손은 물기를 털어낼 시간조차 없었다.

 

강원도 정선의 함백산 자락에 위치한 정암사는 자장율사가 창건한 절집이면서 동시에 열반에 든 절집이기도 하다. 고찰 답게 절집이 앉은 자리만큼은 그만인 곳이다. 자장이 지었다는 5대 적멸보궁 중 하나를 간직한 정암사는 평소에도 보궁을 순례하는 순례자들의 걸음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고요하던 정암사가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그야말로 야단법석이다. 가슴에 꽃을 달고 온 이들은 경남에서 온 관광버스에서 내렸다. 광주에서 온 이들도 보였다. 그 먼 곳에서 정암사까지 온 데는 이곳에 적멸보궁이 있기 때문이다.

 

적멸의 땅에서 만나는 부처님은 대체 어떤 모습일까. 적멸보궁으로 걸음을 옮겨보지만 부처님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부처님이 앉아 있어야 할 불단에는 아사나는커녕 빈 방석만 놓여 있었다.

 

적멸보궁에 불상이 없는 것은 자장이 정암사에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셨기 때문. 불상이 앉아 있어야 할 불단에는 유리로 만들어진 작은 창이 있다. 오체투지로 절을 한 후 고개를 들다 보면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볼 수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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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락교. 범종루와 극락교. 극락교를 건너면 적멸의 땅인 적멸보궁. ⓒ 강기희

▲ 극락교. 범종루와 극락교. 극락교를 건너면 적멸의 땅인 적멸보궁. ⓒ 강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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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 적멸보궁 앞에서 부처님을 만나는 사람들. ⓒ 강기희

▲ 기원. 적멸보궁 앞에서 부처님을 만나는 사람들. ⓒ 강기희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있는 곳은 정암사 적멸보궁 뒤편 산자락에 있는 수마노탑. 인도에서 가지고 온 수마노석으로 쌓은 탑이다. 그러나 다른 적멸보궁과 마찬가지로 수마노탑엔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없다. 도굴을 염려해 수마노탑 근처에 묻었다고 하지만 그 또한 확인할 길은 없다.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셔 두었다는 수마노탑, 그 흔적은 찾을 길 없어

 

정암사를 찾은 대중불자들은 적멸보궁에 들렀다가 수마노탑으로 간다. 순례 코스이니 둘 중 어느 한 곳이라도 보지 않으면 정암사에 왔다 갔다는 말은 하지 말아야 한다. 전나무 숲길을 지나 계단을 숨차게 오르면 환한 빛과 함께 산중에 우뚝 솟아있는 수마노탑을 만날 수 있다.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다는 수마노탑은 장엄하다. 수마노탑은 한 때 검은 땅의 상징이었던 탄광촌을 굽어본다. 이 순간 수마노탑은 환락으로 물들어가는 탄광촌을 어떤 심경으로 바라볼까. 진창에 핀 연꽃이 더 아름다울 수 있는 이유를 수마노탑도 알까. 매우 궁금했다.

 

대중불자들은 수마노탑에 삼배를 올리고 탑돌이를 한다. 한바퀴를 돌면서는 가족의 복을 빌고, 또 한바퀴를 돌면서는 가족의 건강을 빈다. 한 아주머니가 아홉 바퀴는 돌아야 한다고 말하자, 다들 아홉 바퀴를 돈다. 복을 비는 마음이 중요하지 몇 번을 돌았느냐가 중요할까.

 

나이가 지긋한 대중불자들은 불교를 기복신앙적 요소로 받아들인다. 그런 이유로 부처님께 복을 빌고 기원한다. 반면 젊은 불자들은 마음을 다스리는 공부로 불교를 받아 들이는 경우도 많다. 아무렴 어떨까. 부처님의 가르침이라는 것은 매한가지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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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나무숲. 숲길을 지나면 수마노탑으로 오르는 계단이 이어진다. ⓒ 강기희

▲ 전나무숲. 숲길을 지나면 수마노탑으로 오르는 계단이 이어진다. ⓒ 강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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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마노탑으로 가는 길. 할머니가 나무지팡이에 몸을 의지한 채 계단을 오르고 있다. ⓒ 강기희

▲ 수마노탑으로 가는 길. 할머니가 나무지팡이에 몸을 의지한 채 계단을 오르고 있다. ⓒ 강기희

 

점심 무렵이 되어도 바람은 잦아 들지 않았다. 옷깃을 여미어도 움츠려든 어깨는 펴질 줄 몰랐다. 바람이라도 피하면 그나마 견딜 수 있을 듯 싶었다. 한 끼의 식사를 해결하려는 사람들이 공양간으로 몰려갔지만 그리 넓지 않은 공양간은 바늘 하나 꽂을 자리도 없었다.

 

절집에서 먹는 비빔밥엔 우리의 죄가 있다

 

사람들은 스텐 그릇에 닮겨있는 비빔밥 한 그릇씩을 들고 아무렇게나 앉아 식사를 했다. 연등에 달린 이름들이 바람에 퍼드득 거렸다. 사람들은 그 바람을 맞으며 야채와 나물이 들어있는 밥을 썩썩 비볐다.   

 

나 역시 그들을 따라 비빔밥 하나를 받아 들고 찬 땅바닥에 앉았다. 손이 시려울 정도로 쌀쌀한 날씨. 나는 밥을 비비면서 '부처님께서 화가 단단히 나신 모양이로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곰곰 생각하니 부처님께서 화가 나실만도 했다. 나라 돌아가는 꼴이 부처도 고개를 돌리고 싶을 정도 아니던가.

 

그런 생각을 하며 콩나물을 비볐고, 무생채를 비볐다. 오이채와 도라지나물, 취나물 등 6가지 나물을 놓고 밥과 고추장으로 만들어진 비빔밥. 건강에 좋겠다는 것은 잠시, 비빔밥에 든 재료가 우리가 지은 온갓 업보와 악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세상에 던진 내 죄를 비비고, 허공을 떠도는 타인의 죄들도 함께 비볐다. 사기 쳐서 빌딩 산 이들의 죄는 콩나물에게 물었고, 위장전입 해서 부자된 이들의 죄는 도라지나물에게 물었다. 또한 터널을 뚫어 강과 강을 억지로 교미 시키겠다는 이명박 정부의 대운하 죄는 고추장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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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양 중. 어린 아이에게 밥을 먹이기 위해 준비하는 젊은 어머니. ⓒ 강기희

▲ 공양 중. 어린 아이에게 밥을 먹이기 위해 준비하는 젊은 어머니. ⓒ 강기희

 

정암사 하늘에 뜬 무지개와 해무리 '부처님 오셨다!"

 

죄를 썩썩 비벼 한 입 뜨는데 찬 바람이 휭하니 불어왔다. 죄 보다 바람이 먼저 위를 한바퀴 지나가는 시간, 스스로 지은 죄지만 '죄 먹기가 이렇게 힘들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적우적 죄를 먹는데 구름이 걷히더니 햇살이 정암사 마당으로 쏟아졌다.

 

"어, 저기 하늘 좀 봐. 무지개야."

 

비빔밥에 든 죄를 절반이나 먹었을까. 절 마당에서 누군가 소리쳤다. 죄 먹기를 멈추며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정말이지 청명한 하늘엔 속세와 천상의 세계를 이어주는 무지개가 곱게도 펼쳐져 있었다.

 

'저 무지개 다리를 밟고 모르면 천상의 세상에 이를 수 있을까.'

 

가능하다면 무지개 다리에 올라 죄도 없고 전쟁도, 굶주림도, 이해 타산도, 사랑도, 사랑해서 미워하는 마음도 없는 천상의 세상으로 오르고 싶었다. 그리하여 이슬만 먹고도 살 수 있는 미물되어 남의 삶을 보내고 싶었다.

 

잠시 후 하늘엔 무지개와 함께 해무리가 만들어졌다. 바람 많던 부처님 오신 날에 만나는 무지개와 해무리는 절집에 있던 대중불자들을 들뜨게 했다. 부처님이 드디어 오셨다며 흥분하는 이들도 있었다. 몇몇 이들은 보통 일이 아니라면서 길흉을 점치기도 했다.

 

무지개와 해무리는 곧 사라졌다. 흥분하던 사람들은 그제야 고개를 숙여 자신들의 죄를 먹기 시작했다. 바람은 더욱 거세게 불었다. 밖에서 밥을 먹기도 힘들 정도였다. 그릇에 남은 절반의 죄를 억지로 먹었다.

 

바람이 불어 수십 개의 풍경이 일제히 소리를 내는 시간, 비빔밥을 한 그릇씩 비운 사람들은 정암사를 우르르 빠져 나갔다. 먼 길을 달려 늦게 도착한 이들은 그 시간 정암사를 떠나는 이들과 어깨를 스치며 일주문을 지나 적멸보궁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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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죄. 삶에서 지은 우리의 업보를 비빔밥으로 먹는다. ⓒ 강기희

▲ 우리의 죄. 삶에서 지은 우리의 업보를 비빔밥으로 먹는다. ⓒ 강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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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마노탑. 부처님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다는 수마노탑에서 참배객들이 탑돌이를 하고 있다. ⓒ 강기희

▲ 수마노탑. 부처님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다는 수마노탑에서 참배객들이 탑돌이를 하고 있다. ⓒ 강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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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암사. 수마노탑에서 내려다 본 정암사 모습. 저 산너머엔 환락의 도시가 있고. ⓒ 강기희

▲ 정암사. 수마노탑에서 내려다 본 정암사 모습. 저 산너머엔 환락의 도시가 있고. ⓒ 강기희

 

내가 사는 곳이 극락정토인 것을 뒤늦게 알아차렸다

 

저녁 시간 다른 절집에서 또 비빔밥을 먹었다. 야속한 부처님은 그날 만큼은 너희들의 죄를 스스로 먹어 없애라고 끝까지 강요했다.

 

'그러지요. 지은 죄 많다면 그 죄 다 먹어 치우지요.'

 

두 그릇의 비빔밥을 먹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바람은 여전했다. 밤은 깊어갔으며 집 마당에 들어서니 풍경이 소리를 내며 흔들렸다. 불이 켜진 집에는 칠순이 넘은 노모가 반듯하게 앉은 채 더덕을 까고 있고, 노모가 만들어 낸 더덕향은 마당까지 전해졌다.

 

'이런 내가 사는 곳이 절집이었군.'

 

나는 그제야 내 집에 절집과 다르지 않았는 것을 알아차렸다. 생각해보니 노모는 생불이었으며 나는 그 집의 불목하니인 것을 모르고 하루 종일 다른 곳을 떠돌았다. 문을 열고 집을 들어서니 노모께서 하던 일을 멈추며 어딜 다녀왔냐고 물었다. 나는 절에 갔었다며 정암사에서 챙겨온 절편을 노모께 건네주었다.

 

"절에서 만든 떡이로구나. 고맙다."

 

노모는 떡 하나를 드시고 다시 더덕을 깠다. 사각사각 더덕 까는 소리와 처마 끝에 걸어 놓은 풍경이 하모니를 이루는 부처님 오신 날 밤. 그날 만큼은 내가 머물러 있는 집이 바로 우리가 기원하는 극락정토의 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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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 어느 때고 항상 깨어 있으라. ⓒ 강기희

▲ 깨달음. 어느 때고 항상 깨어 있으라. ⓒ 강기희
2008.05.15 18:22 ⓒ 2008 OhmyNews
#부처님오신날 #정암사 #함백산 #자장율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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