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취생, 허브화분을 선물 받다

화분을 키우며 알게된 홀로서기의 의미

등록 2008.05.17 13:06수정 2008.05.18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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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브thyme 친구의 집에서 허브 화분과 룸메이트 ⓒ 권연주

▲ 허브thyme 친구의 집에서 허브 화분과 룸메이트 ⓒ 권연주

 

허브화분 'thyme'를 선물받았습니다. 매일 지나는 꽃집 앞. 햇볕이 좋은 날이나 보슬비가 내리는 날엔 예쁜 아이들이 한가득 나와서 무엇을 살까 고민만 하다가 지나가고 그랬는데 드디어! 어제는 친구가 산다길래 덤으로 선물해달라고 졸라서 똑같은 것을 받았습니다. 톡 건들이기만 해도 퍼지는 상큼한 향기에 반해버렸습니다.

 

예전에 읽은 책 요시모토 바나나의 '키친'에서 홀로서기를 하려면 무엇이든 키우는 것이 좋다고 했던 것이 기억납니다.  

 

'정말 홀로서기를 하고 싶은 사람은 뭘 기르는 게 좋아. 아이든가, 화분이든가. 그러면 자신의 한계를 알 수 있게 되거든. 거기서부터 다시 시작하게 되는 거야.'

 

 대학에 올라와 갓 자취생이 된 저는 진정한 홀로서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 책을 다 읽은 날 일기에 "아, 그러니 나도 화분을 사야겠다"라고 썼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작은 화분 3개가 생겼습니다. 선물받은 'thyme'까지 더하면 4개 째군요. 10평 남짓한 방 군데군데 초록색 생명체가 살고 있습니다. 물을 주면서 돌보면서, 하나씩 식구가 늘어날 때 마다 자취생의 홀로서기도 자리를 잡아가는 듯 했습니다. 화분 하나 하나 이야기가 담겨있어 더 소중한 듯 합니다. 화분이 생기던 그 날들은 희안하게 자세히 기억납니다. 기온, 습도, 햇빛 사람들.

 

로즈마리, 선인장과 야생초 하나. 처음에는 물도 꼬박꼬박 열심히 주고, 잎사귀도 열심히 닦아줬습니다. 좁은 방이지만 제일 좋은 자리에 떡하니 놓고 행복해했습니다. 한 달 두 달 건강하게 잘 살아있는 화분들. 어느정도 됬구나 싶어 갈수록 물 주는 횟수도 줄어들게 되고 내 일에 치여 존재자체도 까먹을 때가 종종 있었습니다. 관심이 줄어든 것이었죠.  

 

그런데 겨울방학 때 한 달 간 여행을 가게 되서 대신 자취방에 살게 된 언니에게 화분들을 부탁했습니다. 돌아왔더니 이미 로즈마리 화분은 누렇게 변색되어서 사망직전이었고, 선인장도 작은 뿌리는 썩어있어서 뽑아버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신경을 너무 안썼구나. 괜찮겠거니 넘어간 작은 부분들이 쌓이고 쌓여 죽게 만든 것 같아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변색된 부분들은 잘라내고, 햇볕이 좋은 날에는 밖에 내놨다가 밤에 들여놨다가 아무튼 엄청 신경썼습니다. 그래도 살아날 생각을 하지 않는 로즈마리 이 녀석. 결국 시들시들하다가 말라죽어버렸습니다.

 

홀로서기를 할 때 무언가를 키우라는 의미를 이제는 어렴풋이 알 것 같습니다. 그 누군가가 나에게 마음놓고 의지할 수 있는 정도를 키운다는 것. 누군가가 마음놓고 의지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은 나 스스로가 독립적이 되어서 다른 누구를 받아줄 수 있게 되었다는 것. 누군가를 받아줄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는 건 타인의 한 마디에 울고 웃지 않는다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남에게 휘둘리지 않는다는 건, 그만큼 남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도 애정을  듬뿍 줄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는 것일까요.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누군가를 받아줄 수 있는 마음이 끊어지지 않는 것인 듯 합니다. 내가 하고 싶은 때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맞추는 것이 아니라 상대에게 맞추는 마음이 지속되는 것인 듯 합니다.

 

 남아 있는 화분들은 지금은 다들 건강 괜찮으신 듯 합니다. 홀로서기의 의미를 조금이나마 느낀 내 마음도 괜찮아진 듯 하고.나에게 마음놓고 의지할 수 있도록 이제 모두에게 듬뿍듬뿍 애정을 줘야겠습니다.

 

새로운 식구 'thyme'에게도 듬뿍듬뿍.

 

작은 허브들과 함께 하는 나의 자취 2년차 홀로서기도 쑥쑥 크길.

2008.05.17 13:06 ⓒ 2008 OhmyNews
#허브키우기 #홀로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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