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일팩션 62회] 광복군, 최후의 항전을 결사하다

김갑수 항일역사소설 <제국과 인간> 상해의 영혼들편

등록 2008.05.19 20:09수정 2008.05.26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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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중국의 손중산은 1921년 5월 광주에서 호법정부(護法政府)의 비상대총통에 임명되었다. 임시정부는 호법정부로부터 외교적 승인을 얻기로 의결했다. 의정원에서는 신규식을 특사로 지명해 호법정부와의 외교 승인 전권을 부여했다. 신규식은 일단 여운형을 보내 총통 취임을 축하해 주었다. 원로 박은식은 따로 승인을 위한 예비 협상 직업을 벌였다.

신규식은 측근들을 다시 소집했다.

“상황은 어려워도 정부를 만들고 중국의 협조를 얻어낸다는 것이 내 필생의 목표였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 것이오. 백주원 동지와 김태수 동지 그리고 민필호 동지는 수행원에 포함될 것이오.”

김태수가 먼저 이의를 제기했다.

“예관 선생님, 저는 자격이나 실력이 외교 수행원으로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저는 하고 싶은 일이 있습니다.”
“그게 무슨 일인가?”
“소련으로 가겠습니다. 가서 서일과 김좌진 장군을 돕고 싶습니다.”
“아, 서일 장군!”

그들이 서일을 말하고 있던 그 해 여름, 한국 독립군은 일본군의 무자비한 대토벌 공세에 다급히 쫓기고 있었다. 일본군은 청산리 패배 이후 광복군이 머물렀던 마을을 무조건 초토화시키며 주민을 집단 학살하는 만행을 서슴지 않고 있었다. 

서일은 항전의 참혹한 결과에 크게 상심하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그가 지휘하는 부대의 청년 병사 15명이 마적의 습격으로 죽는 일이 발생했다. 그는 지휘관으로서 무거운 자책감을 느꼈다. 그는 다음 날 혼자 산에 올랐다. 그는 준비해 간 올가미를 나무에 건 후 자신의 목을 넣었다. 그렇게 그는 자결하고 말았다.


김태수의 말을 들은 신규식은 일단 위험한 발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김태수의 아버지 김인용의 얼굴을 불현듯 떠올렸다. 신규식은 자신이 김인용의 아들을 맡아 놓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늘 해 오고 있던 차였다. 이제는 정세가 험악해져서 상해에서 노령까지의 행로 자체가 위험할 뿐 아니라 그곳에 무사히 간다 해도 안전을 보장할 수가 없는 일이었다. 아버지 김인용을 생각해서라도 김태수를 보내면 안 될 것 같았다.

민제호도 말리고 나섰다. 평소 그는 타인의 일에 간섭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게다가 그 일이 그 사람의 실존적 결단이라면 더욱 그래야 할 일이라고 민제호는 여기고 있었다. 하지만 민제호의 만류에는 충분한 이유와 근거가 있었다. 민제호는 먼저 김태수의 심성을 거론했다. 그는 김태수가 독립운동에 목숨을 걸어야 하는 심성을 타고나지 않은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런 일을 그에게 맡기는 것은 도리에 어긋난다는 것이었다. 가야 한다면 차라리 자기가 나서겠다고 했다. 그러나 민제호는 건강이 많이 쇠약해져 있었다.

“일단 소련은 광복군 중에서 이념에 따르지 않는 사람은 숙청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따라서 광복군이 소련의 도시로 들어가는 것은 함정에 빠지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니 내가 가서 그것을 알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김태수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그는 김좌진이 백주원을 통해 우정의 표시로 선물한 칼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었다.

“김 동지, 그것은 아주 위험한 일이오.”

민제호가 안타까운 목소리로 말했다. 백주원의 얼굴에서는 감동의 기색이 물결치듯이 일고 있었다. 그녀에게는 남자의 용기 있는 언행에 필요 이상으로 매료되는 기질이 있었다. 그러나 그녀 역시 만류할 수밖에 없었다. 민필호는 눈만 꿈벅거리고 있었다.

“그래도 갈 사람은 나밖에 없습니다. 그들에게는 무엇보다 돈이 필요할 것입니다.”

신규식은 조금 더 생각해 보자고 하고 다시 광동 행 건으로 화제를 돌렸다. 그러자 이번에는 민필호가 의견을 내 놓았다.

“예관 선생님 저는 아직 어립니다. 영광스러운 그 일을 하고 싶어 하는 선배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니 저를 빼 주십시오.”

신규식은 약간 언성을 높였다.

“이 사람아, 그런 이유라면 더 말도 꺼내지 말게. 직장에 휴가를 낼 준비나 하게.”
“알겠습니다.”

신규식은 김태수 때문에 고민에 휩싸였다. 위험하기도 하거니와 김태수가 아닌 다른 사람이 간다 해도 문제는 있었다. 왜냐하면 빈손으로 보낼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임시정부의 재정은 광동 행 여비도 빠듯한 상태였다.

일본군의 간도 출병은 사실상 전쟁이나 다름없었다. 그들은 봉오동과 청산리에서의 패배를 참변으로 받아들였다. 그들은 러일전쟁 때 투입한 규모보다 많은 지상군을 광복군 토벌에 내보냈다. 한편으로는 외교적으로 중국을 압박하면서 광복군의 입지를 어렵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들은 대대적인 양민 학살을 자행했다. 광복군과 주민의 연결 고리를 끊기 위해서였다. 특히 연변 자치주의 행정 수도인 연길과 용정 등지의 주민에 대한 가혹 행위는 광복군에 대한 보복의 성격을 아주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었다. 그들은 간도뿐 아니라 노령 연해주의 동포들에게도 비슷한 만행을 저질렀다.

김좌진은 분격했다. 그는 만주와 노령 일대에 흩어져 있는 모든 광복군을 규합하고 일본과 마지막 전쟁을 벌이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군정서 포고문을 내려 마을의 장승과 길목의 나무들에 써 붙였다.

슬프도다! 적의 독균이 간도에까지 이르렀다. 무고한 우리 양민이 적의 독봉 아래 원혼이 된 자 얼마며, 그 많은 재물과 양곡이 화염 속에 사라진 것이 얼마며, 땅은 얼고 찬 기운이 뼈를 깎는데 집과 옷이 없어 굶어 죽은 자가 또 얼마인가? 정의에 민감한 것이 우리 독립군의 정신이요, 싸움에서 물러나지 않는 것은 우리 독립군의 기백이니 어찌 공로를 셈하고 이익을 꾀함으로 대의를 저버릴 수 있겠는가? 이 격문을 읽는 즉시 다시 단결하여 함몰되어 가는 조국을 건지기 위한 대열에 동참함으로써 조국 광복의 대업을 조속히 이루어내자.

약속이나 한 듯이 모든 독립군들이 소만 국경에 있는 밀산(密山)으로 모여 들었다. 그들은 소나무 껍질을 씹어야 했고 심지어는 배낭에 있는 양초를 꺼내 먹기도 했다. 그들은 퉁퉁 언 발로 백설을 디디며 밀산을 향해 걸어갔다. 그들 중에는 집과 가족을 잃은 유랑민도 많이 섞여 있었다.

그들은 독립군 부대 총연합군을 결성했다. 자결한 서일을 총재로 추대하고 김좌진, 홍범도, 조성환이 부총재로 위촉되었다. 그리고 김규식을 총사령, 이장녕을 참모장, 지청천을 여단장으로 임명하였다.

덧붙이는 글 | 제국주의에 항거한 인간들의 치열한 삶과 매혹적인 사랑을 그리는 소설입니다.


덧붙이는 글 제국주의에 항거한 인간들의 치열한 삶과 매혹적인 사랑을 그리는 소설입니다.
#간도 #서일 #홍범도 #손중산 #호법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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