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년 함께 살아온 부모님을 인터뷰 하다

[가족 인터뷰] "다시 태어나도 당신하고 결혼할거야"

등록 2008.06.01 13:35수정 2008.06.01 13:35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내가 살아온 얘기를 책으로 쓰면 열권은 나올 거다."


엄마가 평소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다. 그렇다면 엄마 삶의 반 이상을 차지하는 결혼 생활은 어떨까? 그것도 여러 권의 책으로 쓸 수 있을 만큼 온갖 희로애락이 담겨 있지 않을까. 5월 28일 저녁 집안 거실에서 한 시간 남짓 부모님을 인터뷰했다.

- 지난 3월 13일이 엄마, 아빠 결혼 30주년이었나요?
(엄마) "아니, 29주년. 참, 누나 애기 가진 거 알아?”

- 몰라요. 임신한 지 얼마나 됐는데요?
(엄마) "이제 4주 됐대. 축하한다고 문자라도 보내. 엄마한테 들었다고."

- 엄마랑 아빠 처음에 어떻게 만나서 결혼하게 됐는지 좀 들려주세요.
(엄마) "우리는 중매결혼이었지. 네 큰어머니의 친정 부모님이 중매를 해주셨어. 네 큰어머니들이랑 엄마가 모두 같은 동네 출신이거든. 78년 12월 24일 날 아빠랑 선을 봤어."

- 79년 3월 13일에 결혼했으니까 만난 지 석 달도 안 돼서 결혼한 거네요?
(엄마) "응. 그 당시에 엄마는 시골에서 네 외할머니 모시고 5남매의 맏이로 살다 보니까 서울에서 장사한다는 네 아빠가 돈도 융통해서 쓸 수 있고 괜찮을 줄 알았지. (웃음) 아빠 처음 봤을 때 굉장히 순수했어. 네 외할머니한테도 정말 잘 할 것 같았고."


이 닦기 싫어했던 아빠가 첫날밤 던진 한마디 

a

엄마, 아빠의 젊은 시절이다. ⓒ 이덕만


- 프러포즈는 누가 했어요?
(엄마) "그야 당연히 남자 쪽에서 했지. 프러포즈라기보다 중매로 만난 사이니까 자연스레 결혼하게 됐지."

- 아빠도 좀 얘기해주시죠.
(엄마) "자기가 먼저 결혼하자고 했잖아.그런 얘긴 해. 흉보는 거 아니니까. 어?"
(아빠) "난 안해……."

- 아빠는 엄마의 어떤 점이 좋았어요?
(아빠 묵묵부답)

- 없었어요, 하나도?
(엄마) "빨리 얘기해. 명랑하고 쾌활했다고 해."
(아빠) "자기가 다 해. 난 안해."
(엄마) "얘가 이거 기사 쓴다고 물어보잖아. 자기 생각을 말해야지. 내가 성질이 못돼 처먹었다고 얘기하던가."
(아빠) "(웃음) 아이고, 참……."

- 엄마랑 왜 결혼하기로 결심한 건데요?
(아빠) "안한다니까 난……."
(엄마) "묻는 말에만 대답해줘. 얘가 알아서 정리한다잖아."

(5분간의 실랑이가 벌어졌다)
아빠는 지난번 인터뷰한 게 마음에 걸리셨는지 이번 인터뷰는 너무나도 말씀을 아끼셨다.

(아빠) "착하고 순진하고 나한테 잘 할 것 같아서."
(엄마) "잘 할 것 같아서? 내가 처음부터 말려들었구먼. (웃음)"

- 이제 신혼여행 얘기 좀 해주세요.
(아빠) "자기가 얘기해."
(엄마) "아빠는 그 당시에 마마보이 기질이 있었나봐. 신혼여행을 가는데 돈을 하나도 안가져간거야."

- 아빠 돈이 하나도 없었다고요?
(엄마) "아빠랑 네 할머니가 옷가게 장사를 했으니까 아빠 수중에 돈이 좀 있을 줄 알았는데, 아빠는 아무 대책도 없이 돈을 안가져간거야. 그래서 신혼여행을 갔는데 돈도 제대로 못썼어."

- 신혼여행을 부산으로 가셨잖아요. 그 정도면 잘 간거에요?
(엄마) "괜찮게 간 거지. 당시에는 아예 못 간 사람들도 있었으니까."

- 여행 중에 재미난 에피소드 없었어요?
(엄마) "돈이 없으니까 여인숙에서 잤는데, 엄마는 아빠랑 그날이 첫날밤이니까 수줍게 칫솔을 내밀며 '이 닦으세요' 했지. 그랬더니 아빠가 '아침에 닦았는데요' 그러는 거야. (웃음)”

- 아빠, 그거 농담이었어요, 진담이었어요?
(엄마) "아빠가 어려서부터 닦는 걸 참 싫어했대."

a

내 돌 잔치 때다. 문방구 단칸방에서 아빠와 함께. ⓒ 이덕만


- 문방구는 언제부터 한 거지요?
(엄마) "너 돌 지나면서 했지. 아빠가 옷 장사를 하는데 만날 술 마시고 친구들한테 돈 꿔주고 그래서 엄마가 같이 문방구를 하자고 한 거야. 한 9년 정도 했네."

- 근데요. 부모님을 인터뷰하기로 한 건데 엄마만 계속 얘기하고 있잖아요. 아빠도 얘기 좀 해주세요.
(아빠) "얘기할 게 뭐가 있어……."
(엄마) "후회하는 걸 얘기해도 되고, 그냥 솔직하게 해”
(아빠) "인터뷰는 내 체질이 아닌데.”

- 지난번에는 하셨잖아요.
(아빠) "그 때는 멋도 모르고 했지.”

(또다시 실랑이)

(엄마) "문방구 할 때 생각나? 그때 단칸방에 살았잖아. 연탄가스 맡고 토하기도 하고. 넌 꼭 우리 밥 먹을 때만 옆에서 요강에다 똥 싸고."

- 내가 어렸을 적에 엄마랑 아빠가 만날 싸운 게 기억나는데, 언제부터 그렇게 두 분이 싸운 거예요?
(엄마) "문방구 할 땐 그렇게 많이 싸우지 않았는데, 문방구 그만 하고 아빠가 경비원 생활하면서 많이 싸웠지. 거기 사람들이랑 어울려서 고스톱 치고, 술 마시고, 묻지마 관광하고."

"직업에 대해서 부끄럽다는 생각은 안 했어"

a

왼쪽 부터 나, 누나, 엄마. 문방구 앞에서 찍은 사진이다. ⓒ 이덕만


- 엄마는 문방구 그만 두고 보험회사 다녔잖아요. 그러다가 청소 일 하시게 됐는데, 보험회사는 왜 그만 둔거에요?
(엄마) "아빠가 자꾸 의심하는 것 같더라고."

- 뭘 의심해요?
(엄마) "엄마가 돈 있는데 안 준다는 식으로 말이야."

- 엄마는 청소 일 얼마나 한 거죠?
(엄마) "한 13년 다녔네."

- 엄마는 청소 일 하게 된 게 전부 아빠 때문이에요?
(엄마) "응. 엄마는 다른 일 할 수도 있었는데, 아빠가 경비 생활 하면서 자꾸 엄마 직업이랑 비교하고 그러니까 아빠한테 맞춰주려고 했지.

누나랑 너 때문에 저녁에는 일찍 끝나고 새벽에 일찍 나가는 직장을 택한 거야. 아침에 너희들 못 챙겨주긴 했지만. 사무실 청소 일이 오전이면 거의 다 끝나거든. 점심에 남는 시간에는 중국집 가서 서빙도 했지."

- 청소 일은 어떤 점이 가장 힘들어요?
(엄마) "왁스 작업하며 대청소 할 때. 이게 계절 바뀔 때마다 하는 건데 정말 힘들지. 평소 때는 단순 노동이니까 익숙해지면 별로 힘들지는 않아."

- 엄마는 아빠보다도 새벽에 더 일찍 나가셨잖아요. 새벽 3시 20분이면 늘 알람이 울렸고요. 그런 점이 힘들지는 않았어요?
(엄마) "난 그런 거 갖고 힘들다고 생각은 안했어. 대신 너희들한테 미안한 거는 있었지. 아침도 제대로 챙겨주지 못해서. 밥은 다 지어놓고 갔지만."

- 아빠는 아파트 경비원이셨고, 엄마는 사무실에서 청소 일을 하셨는데, 두 분 직업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셨어요?
(엄마) "부끄럽다고는 전혀 생각 안 했고. 그 일을 하면서 겸허한 마음과 남을 배려하는 마음을 배운 것 같아. 육체적으로 힘든 건 있었어도 정신적으로는 편안했어. 새벽에 버스를 타면 사람들이 엄청 많아. 엄마보다 나이 더 드신 분들도 많고."

- 이제 우리 집 마련한 거에 대해서 이야기 들려주세요.
(엄마) "여섯 번을 이사하다가 결국 아파트 분양을 받게 된 거지. 결혼하고 17년 만에 우리 집을 장만했어."

- 두 분이 월급을 많이 받은 것도 아니고, 아파트 분양 받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요.
(엄마) "우리 식구는 여가 활동을 제대로 하지도 않았고, 남들보다 돈을 덜 썼지. 그리고 너희들이 과외 하나 안 했고. 알뜰하게 살았던 거지 뭐. 집 살 때 은행에서 장기 대출도 받았고."

a

15년 전의 사진이다. 다정한 모습. ^^ ⓒ 이덕만


- 결혼하고 29년을 살아오면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들은 언제에요?
(엄마) "너희들 학교 다닐 때 공부 잘 해서 상장 타오고. 엄마 주위 사람들로부터 애들 착하게 잘 키웠다고 칭찬 들을 때.”

- 아빠는요?
(아빠) "똑같지 뭐."
(엄마)"자기는 딴 거 말해야지. 마누라 잘 얻었다고 해. (웃음) 음, 요새는 또 행복하다고 느낀 게, 엄마가 교통사고 때문에 팔이 부러져서 7주째 병원에 입원 중이잖아. 아빠가 매일 병원에 와서 엄마 간호해주는 거. 손 잡아주고, 안마도 해주고, '이런 게 부부 정이구나'라고 느껴지더라고."

부산에서 회는 먹었지만...

- 두 분이 지난 3월에 결혼 29주년을 맞이해서 부산으로 여행 갔다 오셨잖아요. 그 때 얘기 좀 해주세요.
(엄마) "재미난 일이 생각났는데, 먼저 몇 년 전에 통영으로 여행 갔던 얘기를 해줄게. 그 때 아빠랑 같이 통영 바닷가에 갔는데, 아빠가 제육덮밥을 먹겠다고 하는 거야. (웃음) 결국 아빠 고집 때문에 바닷가 가서 회도 못 먹고 같이 제육덮밥을 먹었어. 그래서 이번에 부산에 갈 때는 아빠한테서 다짐을 받았지. 꼭 회를 먹기로. 그렇게 식당에 갔는데 '돔’을 시켰어. 그런데 아빠가 엄마한테 '이 콘돔이 참 맛있는 거'라고 그러는 거야. 그래서 거기 있던 사람들 다 웃었지 뭐."

a

올해 부산에 여행가셔서 찍으신 사진이다. 저 때 참 행복하셨단다. ⓒ 이덕만


- 다른 행복했던 순간이나 재밌었던 일 더 들려주세요.
(엄마) "응. 엄마는 시간 날 때 산에 나물 캐러 가는 걸 좋아하잖아. 하루는 엄마가 아빠를 꼬셔서 산에 데려갔지. 엄마는 즐겁게 나물을 뜯고 있는데, 어디서 동물 소리가 들리는 거야. '산에 곰이 사나' 무서워서 산 밑으로 내려오니까 아빠가 나무 그늘 아래서 신문지 깔고 누워서 코 고는 소리였어. (웃음)"

- 이제 살아오면서 힘들었던 순간 얘기해주세요.
(엄마) "아빠가 사채 빚 졌을 때. 엄마가 그거 갚느라고 무척 힘들었지. 그 때 한창 엄마가 아빠한테 이혼하자 그랬고, 그 이후로 아빠가 노름을 끊었지."

- 저 군대에서 있었던 일은요?
(엄마) "그게 제일 힘들었지. 내 생애 가장 힘든 순간이었어. 너가 제대 6개월 남겨두고 우울증이 걸려서 군 병원에 입원해 있는데, 그 때 엄마도 놀랐지만 너도 정말 힘들었잖아. 너가 군 병원 정신병동에 입원해 있을 때 엄마가 아빠랑 면회를 갔는데, 환자복 입고 있는 초췌한 네 모습을 보니까 정말 안타까웠어. 아빠도 그 때 집에 오셔서 조용히 우시더라……."

- 제가 초등학교 때 전교 어린이 회장 했을 때도 마냥 기쁘지만은 않았죠?
(엄마) "그치. 그때는 기쁘다기보다 부담이 컸지. 없는 살림에 너가 회장하는 동안 2백만 원 정도 썼지. 하기 싫어도 그 때는 그렇게 접대를 안 하면 안 되는 상황이었어. 너한테 내색은 안했지만 그런 걸로 부담이 너무 컸지."

- 두 분이 서로에게 바라는 점이 있다면요.
(아빠) "나야 뭐, 늘 고맙지. 엄마한테 너무 못해줘서 항상 미안하고."
(엄마) "아빠가 이제 술 완전히 끊었으면 좋겠고, 자기 자신을 사랑했으면 좋겠어. 자기 관리도 잘 하고, 빨리 취업했으면 좋겠고. (웃음)"

- 다시 태어나도 두 분이 결혼할 거예요?
(엄마) "난 안해." (아주 단호하게)
(아빠) "나야 하지. 못해준 거 잘 해줘야지."
(엄마) "지금도 못해주는데 그 때 잘 해준다는 건 완전 거짓말이지. 술 먹지 말라는데도 술 마시고. 으이구."

a

인터뷰를 마치고 부모님 사진을 찍었다. 가운데는 우리 집 귀염둥이 토토. ⓒ 이덕만


애초에는 부모님 인터뷰를 계획했지만 결국 엄마만 얘기하고 말았다. 이게 뭐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평소에도 엄마는 늘 쾌활하고 말씀이 많으시고, 아빠는 내성적이고 조용하시다. 부부는 반대로 만난다더니 우리 부모님이 꼭 그런 경우 같다.

부모님은 그동안 싸우기도 참 많이 하셨지만 결과적으로 지금은 어느 부부 못지않게 다정하시다. 애증의 관계에서 이제는 서로를 보다듬는 사이가 되신 것 같다. 아빠는 통풍 때문에 고생하시고, 엄마는 교통사고로 병원에 입원해 계셨는데, 그런 때 서로 믿고 의지가 되셨던 것 같다.

엄마의 바람처럼 아빠가 자신의 건강을 더 챙기셨으면 좋겠고, 아빠의 바람처럼 두 분이 다시 결혼할 수 있게끔 앞으로 더 사랑하셨으면 좋겠다.

"저도 엄마, 아빠를 사랑해요!"

덧붙이는 글 | <가족 인터뷰> 응모글


덧붙이는 글 <가족 인터뷰> 응모글
#가족 인터뷰 #부모님 인터뷰 #결혼생활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61세, 평생 일만 한 그가 퇴직 후 곧바로 가입한 곳
  2. 2 죽어라 택시 운전해서 월 780만원... 엄청난 반전이 있다
  3. 3 "총선 지면 대통령 퇴진" 김대중, 지니까 말 달라졌다
  4. 4 '파란 점퍼' 바꿔 입은 정치인들의 '처참한' 성적표
  5. 5 민주당은 앞으로 꽃길? 서울에서 포착된 '이상 징후'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