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침해 집시법' 인권이사국 자격 있나

엠네스티 "한국 집시법 인권침해"... 한국적 특수성 들어 인권침해하는 정부

등록 2008.05.29 17:03수정 2008.05.29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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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우병 위험으로부터 안전하지 않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학생과 시민들이 24일 저녁 서울 청계광장에서 한미 쇠고기 재협상을 촉구하며 촛불을 밝히고 있다. ⓒ 남소연

광우병 위험으로부터 안전하지 않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학생과 시민들이 24일 저녁 서울 청계광장에서 한미 쇠고기 재협상을 촉구하며 촛불을 밝히고 있다. ⓒ 남소연

지난 21일(현지시각) 유엔 총회에서 실시된 인권이사국 선거에서 우리나라가 재선에 성공했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우리 정부는 "인권이사회 재선 이사국으로서 국내외 인권증진 관련 자발적 공약 이행 및 주요 국제 인권문제 논의에 적극적인 참여 등 인권보호 및 증진을 위한 국제협력에 적극 기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로부터 며칠이나 지났을까. 세계 최대 민간 인권단체인 국제엠네스티는 28일 '한국의 국가보안법(국보법)과 집회와시위에관한법률(이하 집시법) 등이 국민의 인권을 침해하고 있다'는 내용이 담긴 '2008년 연례보고서'를 발표했다.

 

<한겨레> '엠네스티 "한국 집시법이 인권 침해"'(28일자) 기사에 따르면 김희진 엠네스티 한국지부 사무국장은 보고서를 발표하며 "국제엠네스티에서도 한국 촛불문화제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며 "경찰의 폭행이 없었다 하더라도 경찰의 연행으로 시민들이 공포를 느낀다면 인권침해로 볼 수 있다"고 밝혔다.

 

엠네스티에서 이번 미쇠고기 수입 반대 관련 촛불문화제에 대한 현 정부의 대응을 문제 삼고 나선 것이다. "살다 살다 초중고생과 싸우는 대통령은 처음 본다"는 비아냥거림 속에서도 촛불문화제에 참석하는 학생들을 막는 경찰과 교육부, 청와대의 노력이 눈물겹다.

 

엠네스티, "촛불문화제 시민 연행, 인권침해 가능성"

 

학생들의 촛불문화제 참석이 연일 계속되자, 교육청과 경찰, 각 학교에선 학생들을 제지하려고 혈안이 됐다. 특히 경찰은 5월 초순경 학생들 사이에 퍼진 '5월17일 동맹휴교' 문자의 진원지를 찾겠다며 성남과 분당·안양 등의 고등학교를 찾아다니며 수사를 벌였고, 결국 지난 26일 최초 유포자인 재수생을 불구속 입건했다. 

 

지난 6일엔 전주덕진경찰서 한 형사가 촛불문화제 신고를 낸 고3 학생의 학교로 찾아가, 학생이 수업중임에도 밖으로 불러내 "배후가 누구냐"고 묻는 등 추궁한 것으로 밝혀져 논란이 일었다. 이후 경찰이 수사한 것이 밝혀지며 물의가 일어나자, 해당 학생에게 "수업시간이 아니었다"고 거짓말을 하도록 시켰다.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 27일 서울 청계광장 촛불문화제에 참여한 한 고3 여고생은 호송차에 태워져 경찰서로 연행되기도 했다. 연행 과정에서 여학생이 분명히 '고등학생'이라고 밝혔음에도, 경찰은 이 학생을 그 다음날 아침까지 돌려보내지 않았다. 이와 관련 네티즌과 시민들의 항의가 빗발치자, 오후가 되어서야 여학생을 훈방조치 했다. 하지만, 경찰의 고등학생 연행은 다음 날도 계속됐다.

 

막 나가는 경찰에 뒤질 세라 교육 당국도 대응에 나섰다. 교과부 장관은 배후 운운하고, 교육감들은 긴급회의를 소집하더니 학교장 이름으로 가정 통신문까지 대필하여 각 가정으로 보냈다.

 

교과부는 이것도 성에 차지 않았던지 장학사와 교감 등을 직접 촛불문화제에 '투입', 교복 입은 학생이나 학생처럼 생긴 사람은 광화문 근처에 얼씬도 못하도록 막았다. 더 나아가 징계 협박에 내신 불이익까지 운운하여 결국 지난 22일 청소년 단체와 인권단체들이 국가인권위원회에 긴급 구제를 신청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왜 세계 보편기준인 청소년 인권은 무시하나

 

광우병 위험으로부터 안전하지 않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학생들이 15일 저녁 서울시청 앞에서 재협상을 촉구하며 촛불을 들고 있다. 학교측으로부터 촛불문화제 참가제지를 받은 이들의 요청으로 얼굴은 부득이하게 모자이크 처리했다. ⓒ 남소연

광우병 위험으로부터 안전하지 않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학생들이 15일 저녁 서울시청 앞에서 재협상을 촉구하며 촛불을 들고 있다. 학교측으로부터 촛불문화제 참가제지를 받은 이들의 요청으로 얼굴은 부득이하게 모자이크 처리했다. ⓒ 남소연

 

거대한 촛불의 물결에 대한 청와대에서부터 교육부, 경찰로 이어지는 눈물겨운 대응은 급기야 죽은 귀신까지 불러내었다. 5공 군사 독재정부에서나 있을 법한 '공안대책회의'라는 것이 다시 부활했다. 이날을 기점으로 촛불에 대한 대응이 더욱 격해져서 지난 27일엔 100명이 넘는 시민들이 연행됐다.

 

정부는 협상이 철저하게 OIE(국제수역사무국)라는 세계 보편 기준에 맞게 이루어진 것이라고 하지만, OIE 스스로 "이 기준은 회원국들에게 의무 사항이 아니라 최소 기준이며, 이를 참고하여 각 나라별로 수입 기준을 정할 수 있다"고 하고 있다. 유럽과 일본, 심지어 미국까지도 각자가 판단하는 기준에 따라서 쇠고기 수입 기준을 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최근 미국과 협상을 한 태국, 필리핀, 멕시코 등도 모두 30개월 이하 쇠고기만 수입하기로 했다.

 

앞서 열거한 촛불문화제 참석 학생들에 대한 우리 정부의 대응을 볼 때, 과연 우리 나라가 '유엔인권 이사 재선국이 맞는가'란 생각이 든다. 세계 보편 기준도 아닌 OIE의 광우병 기준은 그렇게 맹신하면서, 왜 세계 보편기준인 청소년 인권은 무시하는가.

 

지난 1989년 유엔에서 만장일치로 채택된 아동청소년권리협약 12조는 "청소년은 본인에게 영향을 미치는 모든 문제에 있어서 자신의 견해를 자유스럽게 표시할 권리를 보장되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1990년 11월 20일 이 협약을 비준했고, 아동권리협약은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을 갖는다.

 

'한국적 특수성' 운운하며 학생들 인권침해하는 정부

 

2003년 유엔아동권리위원회는 두발문제, 체벌문제, 과도한 학습시간 등을 이유로 우리나라를 법률적으로 18세 이하의 어린이·청소년들의 인권 보장이 취약한 국가로 규정하며 '이들이 의사결정 과정과 정치적 활동에 적극 참여할 수 있도록 관련 법규를 개정할 것'을 한국 정부에 권고했다. 즉, 정부가 청소년의 인권을 보호하고 있지 않다고 규정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이를 무시했다. '한국적 특수성'을 거론하며 아직까지 정치활동의 자유는커녕 학생회 등의 자치활동조차 제대로 보장하고 있지 않다. 공직자 선거법과 학생회칙은 학생들의 정치활동을 명시적으로 제한하고 처벌할 수 있다. 청소년의 시민권은 철저히 박탈돼 있는 것이다. 대부분 학생회 회칙 또는 학칙을 통해 학생의 정치활동, 외부 단체 가입과 활동을 금지하고 이를 징계 사유로 규정한다.

 

지난 4월 15일 발표된 '학교자율화' 조치는 청소년의 정치적 권리가 아니라 잠잘 권리, 먹을 권리, 쉴 권리로 대표되는 '생존권적 권리'를 위협하는 것들이다. 이런 생존권적 요구를 하고 있는 학생들에게 우리 정부는 징계와 형사처벌, 협박도 모자라 경찰들을 앞세워 연행도 마다하지 않는다.

 

학생들이 외치고 있는 '잠 좀 자자, 밥 좀 먹자', '0교시, 우열반, 강제야자 금지'는 잠잘 권리, 먹을 권리, 차별받지 않을 권리에 대한 선언이고, '미친소 너나 먹어'는 안전한 먹을거리에 대한 자기 선택 권리 선언이다. 최소한의 보편성인 청소년의 인권과 생존권에 어떤 특수성도 우선할 수 없다. 청소년들은 정부에게 다음과 같이 묻는다.

 

법을 지켜야 하는 정부가 왜 스스로 가입한 유엔 아동청소년 인권 선언도 지키지 않는가? 가장 기본적인 잠잘 권리, 먹을 권리도 제대로 인정하지 않는 정부가 어떻게 유엔인권이사 재선국이 되었는가?

덧붙이는 글 | 김행수 기자는 서울의 현직 고등학교 교사입니다. 

이 기사는 민중의 소리에도 송고하였습니다.

2008.05.29 17:03 ⓒ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김행수 기자는 서울의 현직 고등학교 교사입니다. 

이 기사는 민중의 소리에도 송고하였습니다.
#촛불 #UN 인권 재선국 #엠네스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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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육에 관심이 많고 한국 사회와 민족 문제 등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합니다. 글을 읽는 것도 좋아하지만 가끔씩은 세상 사는 이야기, 아이들 이야기를 세상과 나누고 싶어 글도 써 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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