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플루토늄' 16년 진실게임의 승자는?

[심층진단] 북 제출 문서에 1992년 '이전' 플루토늄 추출 근거 없어

등록 2008.05.29 20:48수정 2008.05.29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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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방북, 북한 측과 핵프로그램 신고 협의를 진행한 성 김 미국 국무부 한국과장이 10일 오전 '핵 관련 자료'로 보이는 박스를 들고 판문점 북측구역에서 군사분계선을 통과하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난 8일 방북, 북한 측과 핵프로그램 신고 협의를 진행한 성 김 미국 국무부 한국과장이 10일 오전 '핵 관련 자료'로 보이는 박스를 들고 판문점 북측구역에서 군사분계선을 통과하고 있다. ⓒ 연합뉴스

16년 전에 발생해 한반도를 전쟁 일보 직전까지 몰아넣었던 '플루토늄 불일치' 문제가 6자회담의 최대 쟁점으로 부상할 조짐이 점차 가시화되고 있다. 일단 북한이 미국에 제출한 5㎿e 원자로와 재처리 시설 가동일지 자료에는 북한이 1992년 이전에 다량의 플루토늄을 추출했다는 증거가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미국의 <맥클래치(McClatchy)> 신문이 미국 정부 관계자들과 민간 전문가를 인용해 28일 보도한 것에 따르면, 미국 정부가 북한이 제출한 1만8822쪽에 달하는 문서를 초기 검토한 결과, 이와 같이 밝혀졌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이 신문은 "북한의 문서가 CIA의 주장에 도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미국의 중앙정보국(CIA) 등 정보기관은 북한이 1992년 이전인 89년, 90년, 91년 3차례에 걸쳐 1~2개의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10㎏ 안팎의 플루토늄을 추출했다고 주장해왔다. 반면 북한은 89~90년에 손상된 연료봉을 통해 실험적으로 1회 추출한 플루토늄은 90g 정도라고 반박해왔다. 

 

북한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이에 앞서 미국 국무부는 북한이 제출한 문서가 조작된 것은 아니라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이는 이 문서들이 과거 핵 시설 운영 당시의 기록을 담은 것이지, 미국에 제출하기 위해 최근 만든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따라 1986년부터 가동일지를 담고 있는 이들 문서는 북한이 1990년 이전부터 국제사회를 속이기로 마음먹지 않았다면, 진실에 가까울 가능성이 높다.

 

이와 관련해 미국의 핵전문가인 데이비드 올브라이트는 "북한이 제출한 문서는 북한이 주장해온 것과 일치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북한의 문서는 "내적으로 일관성이 있고, 이걸 위조하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고 덧붙였다고 <맥클래치>는 전했다.

 

일단 북한이 제출한 문서에는 "북한이 1992년 이전에 비밀리에 플루토늄을 추출했다고 볼 수 있는 근거가 없다"는 '잠정' 결론이 나왔다. 지난한 검증 과정이 기다리고 있지만, 만약 북한이 제출한 문서 내용이 사실로 밝혀질 경우, 그 파장은 상상을 초월한다.

 

지난 20년간의 한반도 현대사를 새로 써야 하고, 한국·미국·일본의 대북정책의 과거와 현재도 전면 재평가되어야 하며, 미래 전략도 재구성되어야 한다. 물론 이는 그동안 사실처럼 받아들여졌던 '북한이 1990년을 전후해 핵무기 1~2개를 만들 수 있는 10㎏ 정도의 플루토늄을 추출했다'는 미국의 주장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을 때를 전제로 한다.

 

높아지는 검증의 파고

 

북한이 제출한 문서에 1992년 이전에 다량의 플루토늄을 추출했다는 근거가 없는 것으로 드러나면서, 워싱턴에서는 북한의 신뢰성에 대한 논란이 재점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UEP) 및 북한-시리아 핵거래설도 은근슬쩍 넘어갔다고 비난해온 강경파들은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문제삼을 것이다.

 

이러한 기류를 반영하듯, 미국 정부의 한 관리는 <맥클래치>와의 인터뷰에서 "이것은 북한의 기록이다, 미국 정부 내 누구도 이것을 그대로 삼키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철저하게 검증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기류는 김계관 외무성 부상과 만나기 위해 중국 베이징으로 향한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에게서도 확인된다. 27일과 28일 이틀에 걸쳐 김 부상을 만난 힐 차관보는 "회담은 건설적이었다"면서도, 검증의 어려움과 중요성을 되풀이해서 강조했다.

 

그는 김 부상과의 회담은 "검증의 필요성과 검증 체제 구축 문제에 집중되었다"며, "앞으로 수주 동안 기술적인 회담을 가질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올해까지 비핵화 과정을 완료하기를 희망하지만, 대단히 어려울 것이라고 말해, 검증 문제 합의에 상당한 진통이 있음을 내비쳤다.

 

결국 16년 전의 불일치 문제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김정일 위원장과 부시 대통령의 결단이 요구된다. 우선 북한이 1992년 이전에 플루토늄을 추출하지 않았다는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전면적인 핵사찰을 받아야 한다.

 

당시 핵시설 종사자에 대한 면담권 허용은 물론이고, 원자로와 재처리 시설에 대한 시료 채취, 그리고 의심 시설에 대한 사찰도 받아야 한다. 이는 북한에게 주권침해를 받아들여질 수 있는 사안으로 김정일의 결단이 있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김정일과 부시, 결단 내릴까

 

이는 거꾸로 부시의 결단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테러지원국 해제 및 적성국 교역법 종료를 조기에 완료하겠다는 방침을 확실히 전달하는 것은 기본에 해당한다.

 

더 중요한 것은 검증이 완료되지 않더라도 6자회담 3단계, 즉 북핵 폐기와 북미관계 정상화 및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추진할 수 있다는 입장을 전달할 필요가 있다. 만약 검증 완료를 고집할 경우, 북한이 아무리 협력해도 올해 내에 검증이 완료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현실 인식을 가질 때 가능한 결단이다.

 

가장 중요한 결단은 16년 동안 지속되어온 미국 정보기관의 판단이 착오로 드러날 경우, 이를 인정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럴 경우 미국의 신뢰는 회복하기 힘든 수준으로 추락하겠지만, 엄밀히 말해 이는 부시 행정부의 잘못이 아니다. 1차 핵위기 때의 미국 정부는 아버지 부시 행정부와 클린턴 행정부였기 때문이다.

2008.05.29 20:48 ⓒ 2008 OhmyNews
#북핵 #플루토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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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네트워크 대표와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의 관심 분야는 북한, 평화, 통일, 군축, 북한인권, 비핵화와 평화체제, 국제문제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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