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만세 운동 이후 가장 많이 모였어요!"

[현장] 강원도 정선에서 미친소 수입 반대 촛불을 또 들었습니다

등록 2008.06.04 18:06수정 2008.06.04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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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 촛불. 3.1 만세 운동 이후 가장 많은 이들이 모였다. ⓒ 강기희

▲ 정선 촛불. 3.1 만세 운동 이후 가장 많은 이들이 모였다. ⓒ 강기희

촛불을 들기로 한 날 기상예보에는 많은 비가 온다고 했다. 그러나 비는 오지 않았다. 봄 가뭄에 시달리는 농민들을 생각하면 기우제라도 지내야 했지만 행여나 촛불이 많이 모이지 않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비가 오지 않기를 기원하기도 했다.

 

촛불 든 산골마을 사람들 "이명박 대통령 정신 차리세요!"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 취임 100일째 되는 날엔 비가 오지 않았다. 다행스럽다고 이해해야 하는 날, 산골 오지 마을인 강원도 정선에서도 촛불이 타올랐다. 지난 5월 27일 촛불을 들기 시작한 이후 두 번째로 벌어진 일이다.

 

전국 90여 곳에서 촛불을 들었다는 6월 3일. 조용하기만한 마을에도 '협상 무효! 고시 철폐!' 함성이 울려 퍼졌다. 정부가 미국측에 30개월 이상의 소를 수출하지 말라고 무릎 꿇고 빌고 있다지만 그런 약효는 전혀 먹혀들지 않았다.

 

어제 정선 장터 문화마당에 모인 이들은 150여명 이상. 첫 번째 행사 때 보다는 조금 더 많은 인원이었다. 인구 1만명도 되지 않은 작은 마을치고 꽤 많은 사람이 모였다. 농사꾼도 있고 읍내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이들도 있다. 가족 전체를 데리고 나온 가장은 아이들에게 암울했던 지난 역사를 가르치기도 했다. 

 

"지금은 촛불을 들지만 20년 전엔 화염병을 들었지."

 

가장은 "국민의 의식은 20년 동안 많이도 변했다"며 "그러나 이명박 정부와 경찰의 수준은 여직 20년 전의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말도 했다. 중학생인 그의 아들이 그 말뜻을 어떻게 이해할지 모르겠지만 정선에서의 촛불 상황은 그렇게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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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아라리 공연. 정선아라리도 "미친소 미친 정부 반대합니다!" ⓒ 강기희

▲ 정선아라리 공연. 정선아라리도 "미친소 미친 정부 반대합니다!" ⓒ 강기희

 

"미친소 먹으라는 대통령이 나는 싫소"

 

정선아라리의 고장 답게 촛불 행사는 정선아라리 가락으로 시작되었다. 해학적인 가사가 압권인 정선아라리는 역사의 물결을 거역하지 않았다. 정선아라리는 현 상황에 맞는 가사로 새롭게 만들어졌다.

 

국민보고 미친소 먹으라니 대통령이 미쳤나

어느 나라 사람인지 알다가도 모르겠네

 

대통령은 백일 잔치 국민은 백일 고통

미친소 먹으라는 대통령이 나는 싫소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 고개로 나를 넘겨 주게 - 정선아라리 가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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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고 싶어요. 어린 소녀가 촛불을 든 까닭은 "오래 살고 싶어요!" ⓒ 강기희

▲ 살고 싶어요. 어린 소녀가 촛불을 든 까닭은 "오래 살고 싶어요!" ⓒ 강기희

 

"광우병 걸린 쇠고기 들어오면 북한으로 갈랍니다"

 

정선아라리 가락이 울려 퍼지자 여기 저기에서 춤을 덩실덩실 추었다. 우리네 한과 기쁨이 하나로 통해지는 정선아라리. 그 시간에도 150여 개가 넘는 촛불이 바람에 일렁거렸다. 자유발언에 나선 농사꾼의 얼굴은 익어가는 오디처럼 검게 그을려 있었다.

 

"광우병 걸린 미국산 쇠고기가 들어오면 북한으로 갈 겁니다. 적어도 북한엔 그런 쇠고기가 들어 오지 않을 거 아닙니다. 국민 보고 병 걸린 소 먹고 죽으라는 대통령을 어찌 믿고 이 나라에서 살겠습니까. 안 그래요?"

 

농사꾼의 말에 참석자들이 환호했다. 옛날 같으면 큰일 날 소리지만 지켜보던 경찰들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오죽했으면 그런 말을 할까 싶었던 탓일 게다. 국민의 안위를 가장 먼저 염려하고 걱정해야 하는 대통령이 한 짓 치고는 정말 '나쁜 일'을 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어느 나라 사람인지 묻고 싶은 이유가 거기에 있다.

 

헌법 제1조 노래를 불렀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임을 깨닫는 순간. 농사꾼들은 대통령의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사실도 그때에야 새삼 알았다. 이명박 대통령을 찍었던 한 농사꾼은 막걸리 잔을 비우며 "내가 미쳤지!"하고 한탄했다.

 

두 시간 가까이 진행된 정선의 촛불문화제. 거리 행진을 하고 싶지만 행진을 할 거리도 없다. 거리는 조용했고 가끔씩 지나가는 취객만이 이곳이 사람 사는 마을임을 확인 시켜주었다. 행사는 그 자리에서 행사를 마무리 했다.

 

3·1 만세 운동 이후 가장 많은 이들이 모였다는 강원도 정선. 4·19 때도 6·10 민주항쟁 때도 정선은 조용했다. 90년 만에 정권에 저항하는 정선군민들. 오지 마을 사람들도 인간 광우병 걸리기 싫어한다는 사실을 이명박 대통령은 알까. 농투성이들이 피곤한 몸 이끌고 촛불의 거리로 나온 그 이유를 얼마나 그는 어떻게 이해하고 있을까. 그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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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든 가족. 촛불을 들기 위해 김밥까지 준비했다. "미친 정부 이끌고 있는 대통령도 하나 드실래요?" ⓒ 강기희

▲ 촛불 든 가족. 촛불을 들기 위해 김밥까지 준비했다. "미친 정부 이끌고 있는 대통령도 하나 드실래요?" ⓒ 강기희
2008.06.04 18:06 ⓒ 2008 OhmyNews
#정선촛불 #정선아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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