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기 넘치는 유월의 텃밭... 마음도 넉넉!

만물상이 차려진 텃밭을 둘러보는 재미 쏠쏠

등록 2008.06.11 08:28수정 2008.06.12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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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전문 농사꾼 저리 가라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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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작물들을 심어놓은 우리 텃밭. 유월 들어 자라는데 탄력이 붙었다. ⓒ 전갑남


유월 들어 비가 잦다. 물기 머금은 작물들이 신선하다. 요즘 같아서는 작물 자라는 게 아침 다르고 저녁 다르다. 하루가 다르게 자란다는 말을 실감하는 때가 바로 지금이다. 어디 작물뿐이랴. 잡초도 제 세상 만난 듯 작물과 키 재기를 한다.

새벽 6시, 밖이 훤하다. 장화를 신고 밭으로 나왔다. 밭에 나오면 호미부터 찾는다. 나는 아침마다 두어 고랑씩 풀을 뽑는다. 풀을 뽑고 나면 마음도 개운하다. 한참 풀과 씨름을 하고 있는데 이웃집 할머니가 오셨다.

"밭에 나왔을까 했는데 벌써 일을 시작하네. 선생님, 참 부지런도 하셔."
"할머니 따라가려면 저는 아직 멀었죠. 공연히 그러시죠?"

내 웃음 섞인 물음에 할머니는 미소만 짓는다. 당신 밭에 오면서 우리 집에 들르신 모양이다. 그냥 오시진 않은 것 같다. 뒷짐 진 손에 까만 비닐봉지가 들려있다. 뭘까?

"이거 팥하고, 흰콩이야. 올핸 이것도 심어보라고. 서리태는 있지?"
"어디서 구할까 했는데, 고마워서 어쩌죠!"
"고맙긴. 서너 알씩 심는 거 알지? 요즘 심으면 맞아. 서리태는 좀 이따 심고!"


봉지에 빨간 팥씨과 흰콩인 메주콩씨가 담겨있다. 양도 수월찮다. 심고 남으면 밥에 놓아먹으라며 넉넉히 가져오셨다. 할머니의 고마운 마음이 느껴진다.

할머니께서 우리 밭을 둘러보며 대뜸 칭찬부터 늘어놓으신다. 풀이 보이지 않은 깨끗한 밭이 마음에 드시는 모양이다.

"와! 만날 밭에 살더니만 밭이 반질반질해! 전문 농사꾼 저리가라구먼. 이젠 우리가 배워야할 판이야!"

할머니는 우리 농사짓는 폼이 많이 늘었다고 한다. 수십 년 짓는 자기네나 다를 바 없이 가꾸는 모습이 기특하단다.

작물도 자랄 때 참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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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텃밭에서 자라는 각종 작물들이다. 요즘 한창 예쁜 모습을 뽐내고 있다. ⓒ 전갑남


나는 텃밭을 둘러보는 것으로 일상을 시작한다. 밤새 자라있을 작물들이 궁금하여 일찍 일어난다. 반갑게 아침인사라도 나누고 싶다. 예쁘게 자라는 모습을 보면 정말 기분이 좋아진다.

작물이 클 때, 처음부터 예쁘게 자라는 게 아니다. 새싹이 올라올 때는 제대로 구실을 할까 기대 반 우려 반이다. 어린 싹은 그야말로 시나브로 큰다. 그래도 몇날 며칠을 진득하게 기다리다보면 어느 순간 제 모양을 낸다. 날마다 정성의 손길로 돌보고, 마음을 기울여줄 때 더 예쁘게 자란다.

어린 모를 옮겨 심을 때도 마찬가지다. 새 뿌리를 내려 땅 맛을 보기까지는 꽤 시일이 걸린다. 옮기고 나면 금세 시들시들 몸살을 앓는다. 따가운 햇볕이 내리쬐는 한낮에는 고개를 푹 숙인다. 그러다 해거름에는 정신을 차리고, 이튿날 아침 싱싱하게 살아있다. 이렇게 사나흘 반복하다 기운을 차리고 모르는 새 조금씩 자라게 된다.

학생을 가르치는 일에서도 같은 경험을 한다. 어린 철부지들이 어떻게 사람 구실을 할까 하여도 진득하게 지켜보면서 인정해주고, 정성을 다해 돌보면 제몫을 하는 사람으로 반듯하게 성장한다. 자연의 섭리에서 교육의 이치를 깊이 느끼고 깨닫는다.

유월 들어 기온이 오르고부터 작물 자라는 데 탄력이 붙었다. 키가 훌쩍 크고, 곁가지를 뻗는다. 그리고 꽃이 피면서 작은 열매를 맺기 시작했다. 꽃이 핀 작물은 탐스럽기 그지없다.

만물상이 차려진 우리 텃밭

할머니가 두어 마지기가 넘는 우리 텃밭의 작물들을 보고 짐짓 놀라신다. 부부가 낮엔 밖에서 일하고, 어느 틈에 이렇게 잘 가꿨느냐는 것이다. 신통방통하다는 표정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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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가장 공을 들이고 있는 고추밭이다. 꽃이 피고 작은 열매가 달리기 시작했다. ⓒ 전갑남


우리 텃밭의 주력 작물은 고추이다. 1000주 넘게 심었다. 작년에 비해 양을 늘렸다. 또 청양고추, 꽈리고추, 파프리카, 피망 등 여러 품종을 심었다. 고추 딸 일이 걱정이라고 하면 아내는 농사만 잘되면 그게 무슨 대수냐고 한다. 고추농사는 끝까지 가봐야 한다. 할머니는 지금상태로는 아주 잘 자라고 있다며 때맞춰 소독하는 것을 잊지 말라고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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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확이 얼마남지 않은 감자밭이다. 땅 속의 하얀 보물이 기대된다. ⓒ 전갑남


감자밭에 감자줄기가 고랑을 완전히 덮었다. 지금쯤 밑이 들고 있을 것이다. 감자 캐는 날이 멀지 않았다. 토실토실한 감자가 기대된다. 며칠 전 흐드러지게 핀 하얀 감자꽃을 따주었다. 꽃을 따주면 밑이 실하다며 아내가 일삼아 죄다 따주었다. 씨감자 반 박스를 심었는데 얼마나 거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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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특산품인 속노랑고구마를 많이 심었다. 고구마는 다이어트식품으로 각광받고 있다. ⓒ 전갑남


고구마밭의 고구마줄기가 정신을 차린 듯싶다. 순을 꽂고 살아날까 애를 태웠는데 곁가지가 나와 줄기를 뻗기 시작하였다. 머지않아 밭고랑을 뒤덮을 날도 머지않으리라. 고구마농사는 잡초만 두어 차례 잡아주면 달리 관리가 필요 없다. 다이어트 식품으로 새롭게 관심을 끄는 고구마인지라 우리 식구는 벌써부터 기대가 크다. 

아내가 소쿠리를 옆에 끼고 밖으로 나왔다. 야채를 뜯을 폼이다. 할머니를 보며 반가워한다. 그리고 금세 자랑을 늘어놓는다.

"할머니 우리 참외, 수박 참 예쁘게 자라죠?"
"모두 잘 크고 있네! 그런데 식구 몇이나 된다고 이렇게 많이 심었어?"
"집에 오는 사람들이랑 나눠먹죠."
"나한테도 차례가 올려나?"
"그럼요."

두 판지에 심은 참외와 수박이 힘차게 줄기를 뻗기 시작했다. 키가 훌쩍 자란 찰토마토, 방울토마토는 줄을 두 번 묶어주었다. 한여름에 할머니는 우리 집에 놀러오면 입이 심심하지 않을 거라며 부러워한다.

풍성함이 넘쳐 마음까지 넉넉해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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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야채가 자라고 있는 채마밭. 아내는 수시로 들락거리며 쌈을 뜯고, 여러 이웃들과 나눠먹고 있다. ⓒ 전갑남


요즘 우리 텃밭에서는 각종 쌈 종류를 뜯고 있다. 아내는 쌈을 뜯으러 아침저녁으로 채마밭에 들락거린다. 상추를 비롯하여 쑥갓, 치커리, 고수, 겨자채 등이 아내를 밭으로 끌어들인다. 야채를 좋아하는 아내는 이맘때 쌈을 맛있게 먹을 수 있어 입이 즐겁다고 한다. 음식 욕심이 없는 아내지만 쌈 욕심은 많아 한 끼 한 바구니는 먹는다. 그야말로 소여물 먹듯 한다. 그래서일까? 심하게 앓던 비염 알레르기가 없어진 것 같다.

우리 텃밭에서 가장 싹 트는데 오래 시간이 걸린 게 토란이다. 씨를 넣은 지 한 달 가까이 되는 데 이제 잎이 넓어지기 시작했다. 흙 속의 알이라는 토란은 탕을 끓여먹고, 줄기는 말려 나물이며 육개장을 끓일 때 요긴하게 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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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텃밭에는 강낭콩, 참외, 수박, 오이, 완두콩 등도 잘 자라고 있다. ⓒ 전갑남


며칠 내로 수확을 앞둔 완두콩도 무성하다. 파란 완두콩을 까서 냉동실에 보관하면 여러 날을 먹을 수 있다. 강낭콩도 하얀 꽃을 피우고, 꽃이 진 자리에 열매가 맺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내의 최대 관심종목인 옥수수가 기세 좋게 자라고 있다. 밭 가장자리에 많이도 심었다. 옥수수를 끼니로 때울 만큼 좋아하는 아내는 이제나 저제나 여물기를 기다린다.

오이, 가지, 호박도 우리 텃밭의 귀중한 작물이다. 여름철 갖가지 음식을 간단하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요긴한 먹을거리이다.

날마다 변화가 있는 우리 텃밭. 둘러볼 때마다 기쁨이 넘친다. 할머니가 돌아간 뒤 아내가 기분좋게 말을 꺼낸다.

"여보, 우리 밭 정말 풍성하다! 당신의 땀과 정성을 아는지 작물들이 건강하고 기운찬 것 같아요. 보기만 해도 마음이 넉넉해지네! 이제는 좀 쉬엄쉬엄해도 되겠지?"
#텃밭가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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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마니산 밑동네 작은 농부로 살고 있습니다. 소박한 우리네 삶의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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