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다 글쓴이 삶이 묻어납니다

[헌책방 나들이 165] 서울 노고산동 <숨어있는 책>

등록 2008.06.22 17:46수정 2008.06.22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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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 안쪽 서울 신촌에 자리한 <숨어있는 책> 문간에서 바라본 안 모습. ⓒ 최종규


 (1) 책을 읽는 우리들

새책이나 헌책이나 똑같은 ‘책’입니다. 밑줄이 그어져 있거나, 밑줄 하나 그어져 있지 않거나 똑같은 ‘책’입니다. 겉종이가 반들반들하거나 겉종이가 다치거나 잔금이 그어져 있거나 똑같은 ‘책’입니다. 종이장이 접혀져 있거나 반듯하게 펴져 있거나 똑같은 ‘책’입니다. 오래 묵어 먼지가 내려앉아 있거나 막 나와 새하얀 종이결이거나 똑같은 ‘책’입니다.


그렇지만 우리 나라에서는 새책과 헌책이 똑같은 ‘책’ 대접을 받지 못합니다. 새책을 다루는 사람과 헌책을 다루는 사람 대접도 다릅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언제 어디서나 ‘책’을 찾아서 읽을 뿐, 새책이나 헌책을 나누지 않습니다. 책을 모르기 때문에 새책과 헌책을 나누고, 새책방과 헌책방을 나누게 됩니다.

책을 알아가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돈으로 사들이는 물건이 아니라, 마음으로 새겨읽는 밥이 되는 책을 차츰차츰 깨달으려고 합니다. 책 하나 엮어내어 우리한테 마음밥을 선물하려는 사람들 땀방울을 헤아리고 살갗으로 받아들입니다. 대가를 치르고 사들이는 책임을 느끼고, 누군가한테 빌리거나 얻어서 읽으면 고마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합니다.

책을 알아가려 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1회용품마냥 한 번 슥 훑고 내버리는 물건으로서 책을 받아들이기에, 새책방에서 사도 투덜투덜, 헌책방에서 사도 꽁알꽁알입니다. 책 하나 묶어내어 사람들한테 마음밥을 베풀고자 하는 핏방울을 헤아리지 않거나 나 몰라라 합니다. 대가를 치르며 사들이는 책이라고 생각하지 못하는 한편, 누군가 책을 거저로 주거나 빌려 주어도 하나도 고마운 줄 몰라, 책을 함부로 다루며 다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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쌓인 책 책방 한쪽에 쌓여 있는 책들. 꽂힌 책과 쌓인 책들을 찬찬히 헤아리면서, 내 마음에 밥이 될 책을 고릅니다. ⓒ 최종규


 (2) 어떤 삶이 묻어나는 책인가

헌책방 <숨어있는 책> 나들이를 합니다. 오늘 하루도 마음밥이 될 책을 만나고 싶어서 먼걸음을 합니다. 마음밥이 될 책은 하나가 될 수 있고 다섯이 될 수 있으며 열이 될 수 있습니다. 때로는 스물이나 서른이 되기도 하여, 가방이 넘치거나 따로 끈으로 묶어서 날라야 하곤 합니다. 오늘은 어떤 책으로 굶주린 내 마음을 채울 수 있을까 생각하면서 책시렁을 둘러봅니다.


<모리스 드리용/배성옥 옮김,최윤경 그림-초록색 엄지소년 티쭈>(민음사,1991)라는 어린이책이 보입니다. 새로 옮겨진 판이 있고, 집에도 한 권 있습니다만, 살며시 집어듭니다. 잿빛으로 가득한 세상에 풀빛으로 싱싱한 사랑을 나누는 티쭈라는 아이가 나오는 프랑스 동화. 이웃 일본이나 유럽이나 미국은, 우리와 견주어 어린이문학 역사나 문화가 깊고 넓어서 이처럼 아름다운 작품이 꾸준하게 나옵니다.

책 뒤쪽을 봅니다. "고려대학교의 김화영 선생님을 비롯한 길우경, 고인숙, 심민화 선생님이 최근에 프랑스에서 나온 어린이책 중에서 2년 동안 고르고, 검토하여 준비한 책 열 권 가운데 하나입니다"라는 말이 나옵니다. 티쭈 이야기는 1권입니다.

문득, 번역책 고르는 데에 두 해를 썼다고 하는 만큼, 창작책을 뒷배하고 북돋우는 데에도 이렇게 여러 해를 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래도 다양성이 살아 있으면 훌륭한 작품이 나오기 마련입니다. 출판사에서 도움을 주든 도움을 안 주든. 또, 어른문학이건 어린이문학이건. 집에서 아이들한테 어느 한 가지 길로만 걸어가도록 다그치지 않는다면, 학교에서 아이들을 대학입시로만 내몰지 않는다면, 아름다운 문학이 태어납니다.

그러나 똑같은 학교옷으로 틀에 박히게 하며 머리길이 닦달하고 옷차림 다그치면, 아이들 다양성이나 개성은 살아나기 힘듭니다. 말이 좋아 ‘용모단정’이지, 모든 사람이 똑같은 차림에 똑같은 얼굴에 똑같은 몸짓에 똑같은 일을 똑같은 생각으로 똑같은 시간을 들여서 하라는 소리 아니겠습니까. 대학교에도 농학과가 있으나, 농학과를 나온들 농사꾼 되기를 가르치지 않습니다. 우리들은 밥을 안 먹고는 살 수 없습니다만, 농업고등학교는 거의 모두 ‘농사일 가르치기’에서 손을 들었고, 농업중학교나 농업초등학교란 아예 없습니다. 우리 사회에 농중과 농초만 없겠습니까마는, 우리 스스로 밥 주권을 지키거나 가꾸지 않으면서 어떤 정책을 올바르게 꾸려나갈 수 있을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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묶인 만화책 묶여 있는 만화책들. 짝을 잃지 않으려고 묶어 놓습니다. ⓒ 최종규

<강민경,김석,남보라,박명균,오해주-이제 거진 어른인걸요>(동녘,1990)라는 책이 보입니다. 고등학교 아이들이 쓴 글을 모은 책입니다. 1990년 앞뒤로 해서 ‘중고등학교 아이들 글을 모은 책’이 곧잘 나왔는데, 요사이는 없습니다. 논술을 말하는 책이 아닌 ‘아이들 삶을 아이들 스스로 말하는 책’은 없습니다. 아이들 삶을 고이 돌아보면서 껴안으려고 하는 책조차 찾아보기 힘듭니다.

적잖은 어른들이 아이들 탓을 많이 하는데, 누구보다도 우리 어른 스스로 아이들이 살갑게 읽을 책을 제대로 마련하지 않는 가운데, 아이들 스스로 자기 이야기를 느긋하게 적어내려갈 수 있는 틈을 내어주지 않는 탓이 크지 않으랴 싶습니다.

.. 변한 건 하나도 없다. 아이들은 여전히 공부를 했고, 그저 나 혼자만 감상에 빠져 있었다. 죽은 사람은 죽은 거고 난 살아 있다. 그래! 그게 제일 중요했다. 하지만 모든 게 꽉 막히고 깜깜했다 … 나만 예전으로 돌아오면 모두가 잘 될 것을. 미안해요. 하지만 난 안 돼요. 난 이미 내가 아닌걸. 난 이미 없는 걸. 난. 부담스러웠다. 모든 게 가식처럼 보였다. 이젠 공부를 할 수가 없다. 아직도 2년이나 남았는데. 어쩌지? 어떡하지? 누가 나 좀 도와주지. 누가 좀. 나 어떡해? ‘널 믿는다, 널 믿는다, 널 믿는다’ 아버지! 내 아버지의 영상. 내 아버지의 실체. 언제부턴가 아버지께선 ‘널 믿는다’ 그 한 마디로 내 가슴 깊은 곳에 자리잡으셨다 ..  (14∼18쪽/남보라)

<김유정-산골 나그네>(정음사,1973)가 보입니다. 정음사에서 펴낸 ‘한국단편문학전집’ 가운데 하나입니다. 짝을 잃고 홀로 떠도는 책이기에 집어듭니다. 수십 권에 이르는 전집까지는 장만하기 힘들기도 하고, 다 못 읽을 듯하지만, 이렇게 한 권만 집어들어 찬찬히 읽어서 모아 나갈까 싶습니다.

.. 바깥에서 신발 소리가 자작자작 들린다. 귀가 번쩍 띄어 그는 방문을 가볍게 열어젖힌다. 머리를 내밀어, “덕돌이냐?” 하고 반겼으나 잠잠하다. 앞뜰 건너편 숲옹우를 감돌아 싸늘한 바람이 낙엽을 흩뿌리며 얼굴에 부딪친다. 용마루가 쌩쌩 운다. 모진 바람소리에 놀래어 멀리서 밤개가 요란히 짖는다. “쥔어른 계서유?” 몸을 돌리어 바느질거리를 다시 집어들려 할 제 이번에는 짜장 인기가 난다 ..  (198∼199쪽)

예전, 일제강점기 때 쓰인 소설을 읽으면 구수하다고 느낍니다. 말투로도 구수하고 이야기로도 구수합니다. 그동안 ‘나는 왜 이렇게 느낄까?’ 하고 생각만 하다가 오늘 모처럼 김유정 님 작품을 다시 읽으면서, ‘그때는 그때 삶이 고스란히 문학에 담겼으니까 구수했겠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면 요즘 사람들 작품은 요즘 삶이 안 담겼나? 요즘 사람들도 요즘 사람들 삶을 작품에 담습니다. 그러나 요즘 사람들 삶은 거의 모두 도시 물질문명을 누리면서 헤프거나 바쁘게 꾸리는 삶.

저로서는 이와 같은 도시 물질문명 삶이 달갑지 않습니다. 즐겁거나 반갑지도 않습니다. 더욱이, 요즘 도시사람들 말씨나 말투가 조금 엉망이어야지요. 대학교를 나오건 고등학교까지만 배웠건, 말그릇이 얼마나 가볍고 홀쭉한지요. 말 한 마디 올곧게 쓰는 사람이 얼마나 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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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상 책을 구경하다가 마음에 드는 책이 있어서, 살까 말까 헤아리면서, 또는 그냥 느긋하게 책을 읽고 싶어서, 앉아서 읽을 수 있는 걸상 둘. ⓒ 최종규

따지고 보면, 삶이 올곧지 않으니 말이 올곧지 않습니다. 삶이 야무지지 않으니 말이 야무지지 못합니다. 낱말 한두 마디 제대로 쓰느냐 못 쓰느냐를 넘어서, 자잘한 일 한두 가지 잘하느냐 못하느냐를 넘어서, 자기 삶을 자기 깜냥껏 슬기롭고 아름답게 가꾸고 돌보느냐를 헤아릴 때에, 요즘 도시사람들 삶은 그다지 애틋하지도 살갑지도 못하다고 느낍니다. 이리하여 요즘 사람들 문학은 영 내키지 않다고 느끼며, 저부터 자꾸자꾸 멀리하게 되지 않았으랴 싶습니다.

<조선말새말사전>(료녕민족출판사,1991)이 보입니다. 1991년치 ‘새말’이니, 열일곱 해가 지난 2008년에는 더 많은 새말이 있을 텐데, 2008년치 <조선말새말사전>을 엮는다면 어떤 낱말을 모을 수 있을까요. 처음부터 끝까지 죽 훑어보는데, 토박이말로 빚어낸 새말은 드물고, 거의 모두 한자말로 빚어낸 새말이며, 영어로 빚어낸 새말이 이 다음으로 많습니다.

[바자전술] 축구에서의 방어전술의 한가지. 문앞 30메터좌우 되는 곳에서 반칙으로 하여 상대방에 자유축을 주었을 때 9.15메터 밖에 몇사람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막아서서 차넣기의 각도를 줄이는 전술. (168쪽)

‘바자전술’처럼 빚어낸 새말은 드뭅니다. 그래도 이런 낱말이 드문드문 보여서 반갑습니다. ‘울바자’에서 ‘바자’를 따 온 ‘바자전술’ 풀이를 보면, ‘자유축’과 ‘차넣기’라는 낱말이 보입니다. ‘자유축’이란 ‘자유차기’를 말할 테고, ‘차넣기’는 ‘킥’을 말할 테지요. ‘차넣기’라는 낱말은 곰곰이 헤아리면서 남녘말로 받아들여도 괜찮으리라 생각합니다.

손바닥책으로 나온 <조오지 오웰/김병익 옮김-동물농장>(문예출판사,1972)을 봅니다. 겉그림이 재미있습니다. 뚱뚱보 돼지가 손으로 어디를 가리키니, 날카로운 이빨과 손톱을 세운 개처럼 보이는 짐승이 마구 달려가는 모습이 나옵니다. 어느 분이 그렸는지 모르겠는데, 섬뜩하면서도 웃음이 피식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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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그림 헌책방 길그림을 벽에 붙여놓고, 다른 헌책방을 알아보고픈 이들한테 도움을 줍니다. ⓒ 최종규


 (3) 이명박 대통령님 만세?

러시아 사진책을 하나 봅니다.  < РАДИ ЖИЗНИ НА ЗЕМЛЕ >(1977). 책겉에는 “1941∼1945”라는 숫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1941년부터 1945년까지 있었던 어떤 일을 적바림하는 사진책이구나 싶습니다. 책끝에는 모두 쉰다섯 사람에 이르는 사진기자 얼굴을 하나씩 싣고, 짤막하게 소개글을 붙입니다. 책을 한 장 두 장 넘깁니다. 군인이 나오고 전쟁에서 벗어나려는 사람이 나오고 무너진 건물이 나오고 죽고 죽이는 군인이 나옵니다. 글을 읽을 수는 없지만, 독일이 일으킨 전쟁에 맞서서 러시아가 어떻게 싸워서 제 나라를 지켜냈는가 하는 이야기를 보여주려는 사진책이구나 싶습니다. 책끝에 나오는 사진기자는 ‘종군 사진기자’로 보입니다.

<조은산-밥상대통령 강순남과 청소부 이명박>(참빛,2008)이라는 만화책이 보입니다. 책방 바깥, ‘한 권에 천 원’으로 파는 책시렁에 꽂혀 있습니다. 뭔 책인데 나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밖에다 내놓고 천 원에 판다고 하나 싶어서 끄집어내어 펼쳐 봅니다.

.. 추켜세우는 게 아닙니다. 대통령님께선 이 나라 국토의 장청소를 해내신 위대한 분이십니다. 청계천 복원사업이 바로 그것입니다. 피비린내 나는 오천 년 역사의 찌꺼기들을 털어내고, 나라의 장을 깨끗이 하셨으니, 당연히 대통령이 되신 것이지요! 장차 대운하를 실현해 세계로 잇는 혈맥을 바로하면, 칼을 대지 않는 수술인 단식으로 피가 맑아진 몸처럼, 땅의 기가 맑아져 국운이 상승하니 자연법 최절정 고수 대통령이 되시는 것이지요! ..  (28∼30쪽)

만화를 그린 이는, 정주영,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한승수 같은 사람들 ‘만화 전기’를 그려 왔고, 이밖에도 수많은 국회의원들 만화를 그렸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정치꾼 이야기를 만화로 담아서 ‘아무개 씨는 세상에 둘도 없이 훌륭한 일을 하는 멋진 사람이니, 이 사람한테 표를 줍시다’ 하는 이야기를 그리는 사람이군요.

.. 바로 그겁니다! 대통령님이야말로 배고픔에 소리 죽여 울어 보았고,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두 주먹을 불끈 쥐고 투쟁을 해 보았던 대통령님이시니, 민중의 반발과 저항을 극복할 방법일 이미 꿰뚫고 계신 겁니다! ..  (113쪽)

지난 대통령 선거 동안, 인터넷에서 자료찾기를 하려고 ‘헌책방’을 찾아볼 때마다 ‘이명박 후보는 고학생일 때 청계천 헌책방에서 책을 얻어서 공부를 했다’는 기사가 수없이 뜨고 또 떴습니다. 신문이나 잡지에서 헌책방을 다룬 기사가 있는가 늘 찾아보고 있는 저로서는 여러모로 골치 썩이는 일이었습니다. 검색말에 ‘헌책방’이 들어가도록 보도자료를 뿌리고 또 뿌린 탓입니다. 이명박 씨가 마흔 해 앞서쯤 헌책방에서 고시책을 사서 보았다고 하는 이야기를 보아도 그렇지만, 이명박 씨를 내세우는 기사를 보면, ‘가난을 겪어 보았기에 가난한 사람 마음을 안다’는 대목이 늘 보입니다. 따지고 보면, 가난을 안 겪어 보고는 가난이 얼마나 사람마음을 괴롭히는지 느끼기 어렵습니다. 고문과 구타가 사람몸을 얼마나 힘겹게 하는지는 안 겪어 보고는 헤아리기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겪어 보지 못했다고 해서 모른다고 할 수 없는 한편으로, 겪어 보았어도 잊는 사람이 있습니다. 겪어 보고도 이웃사람들 아픔과 힘겨움에 등돌리는 사람도 있어요. 대통령 이명박 씨는 어떤 사람일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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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꾼 책상맡 책방 일꾼이 앉는 자리. 책 찾아 달라는 주문쪽지를 곳곳에 붙여놓습니다. 바라는 대로 헌책이 들어올 수도 있지만, 웬만하면 우리 스스로 다리품을 팔아서 찾을 때가 한결 낫습니다. ⓒ 최종규


 (4) 글쓴이 삶이 묻어나는 책

저는 저대로 제가 볼 책을 고릅니다. 옆지기는 옆지기대로 옆지기가 볼 책을 고릅니다. 두 사람이 고른 책을 셈대에 쌓습니다. 책값을 치를 돈이 모자라, 집으로 돌아가서 은행계좌로 보내기로 합니다. 가방은 책으로 꽉 차게 되고, 따로 한 아름 책을 안습니다. 2호선 줄기에서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만큼, 신도림역을 거쳐가야 하니 꽤나 고달픈 길입니다. 그렇지만 맨몸과 빈 가방으로 나선 책방 나들이를 마치면서, 여러 가지 이야기로 마음을 채웠고, 온갖 책으로 가방도 채웠습니다. 주안역까지 내내 서서 가야 하지만, 좋은 사람들 좋은 이야기가 담긴 책(또는 얄궂은 사람들 얄궂은 이야기가 담긴 책)을 차근차근 새기면서, 제 마음에 좋은 이야기를 새길 수 있다면, 또는 얄궂은 이야기는 슬기롭게 곰삭이면서 거울로 삼을 수 있다면, 오늘 하루도 보람차게 보냈다고 생각하며 마무리할 수 있으리라 봅니다.

서울로 오는 동안 전철에서 읽은 책 <마스다 시로/이영세 옮김-대학에서 어떻게 공부할 것인가>(백산서당,1994)에, “또 한 가지 나에게 큰 영향을 준 것은 이와나미 문고가 출간된 일이었습니다. 아마 1927년이었을 겁니다. 그런 영향을 받은 것은 우리만이 아니었는데, 그것은 그 당시 학생들 모두에게 아주 큰 의미를 가졌던 것입니다. 그 문고는 대체로 고전적인 가치를 갖는 것 중에서 언제 누가 읽어도 쓸모가 있는 책을 펴내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고 하였으며, 주머니에도 넣을 수 있는 크기에다가, 당시 별 하나짜리는 10전만 내면 살 수 있었기 때문에, 가난한 학생들에게도 ‘그림의 떡’은 아니었습니다(58쪽)”라는 대목이 있습니다. 대학교도 안 다닌 주제에, 또 다시 대학교에 갈 마음도 없는 주제에 ‘대학에서 어떻게 공부할 것인가’라는 책을 읽고 있습니다. 이 책은 대학생이 되려는 젊은이한테 들려주는 이야기이기도 하면서, 한 사람이 어떻게 공부를 하며 사회를 헤아려 왔는가를 보여주는 책입니다. 글쓴이 삶이 오롯이 묻어난 책입니다. 머리로 쓴 책이 아니라, 예순 해가 넘는 긴 세월을 곰곰이 돌아보면서 자기 발자취와 부대낌을 고이 담아낸 책입니다. 한 사람씩 붙잡고 자기 삶을 들려줄 수 없으니, 글을 써서 누구나 이이 삶을 엿볼 수 있도록 묶은 책입니다.

글쓴이는 스스로 대단하거나 남다르게 살아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하는데, 젊은이들한테도 대단하거나 남다르다고 하는 일을 하기보다는, 자기가 참으로 좋아할 만한 일과 자기 스스로 뜻과 보람을 찾을 수 있는 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앞으로 저도 이이, 마스다 시로라는 사람과 같은 나이가 되었을 때에는, 무럭무럭 자라나는 젊은이들을 앞에 두고 무슨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을까 헤아려 봅니다. 저 또한 ‘영광스러운 길이 아닌 자기가 좋아할 만한 길을, 이 길이 가시밭길이건 아니건 꿋꿋하게 걸어가기를’ 하고 말할는지요. 저도 제 삶이 묻어나는 책을 엮어낼 수 있을는지요. 아니, 어떤 책이든 글쓴이 삶이 묻어나기 마련일 텐데, 제가 엮어낼 책에는 어떤 모습과 어떤 이야기가 담긴 책이 될는지요.

덧붙이는 글 | - 서울 노고산동 〈숨어있는 책〉 / 02) 333-1041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http://hbooks.cyworld.com (우리 말과 헌책방)
http://cafe.naver.com/ingol (인천 골목길 사진)


덧붙이는 글 - 서울 노고산동 〈숨어있는 책〉 / 02) 333-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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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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