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만에 화해하는 자리, 2% 부족했던 까닭

[40년만의 무죄와 화해②] 국가폭력 가해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등록 2008.07.10 20:01수정 2008.07.10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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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만에 만든 화해의 자리 그러나 애초 참석할 것으로 알려졌던 경찰관계자의 모습은 끝내 보이지 않았다. 위도 간첩조작 사건의 피해자들은 경찰 등 국가기관의 잔혹한 폭력의 희생양이었다. ⓒ 이주빈

▲ 40년 만에 만든 화해의 자리 그러나 애초 참석할 것으로 알려졌던 경찰관계자의 모습은 끝내 보이지 않았다. 위도 간첩조작 사건의 피해자들은 경찰 등 국가기관의 잔혹한 폭력의 희생양이었다. ⓒ 이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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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대표로 강대광씨가 인사말을 하자 많은 주민들이 눈물을 흘리며 어깨를 들썩였다. ⓒ 이주빈

피해자 대표로 강대광씨가 인사말을 하자 많은 주민들이 눈물을 흘리며 어깨를 들썩였다. ⓒ 이주빈

피해자들과 그 이웃들이 마련한 40년 만의 화해의 자리 

 

"간첩 아닌 간첩의 누명을 쓰고 살아온 지 오늘로 40년 7일째 되는 날입니다. 그 세월 동안 가족 빼고는 아무도 반겨주지 않는 냉대 속에 살았습니다. 울기도 참 많이 울었고, 몇 번 죽으려고도 했습니다. 이제 여러분 곁에서 따뜻하게 함께 살고 싶습니다."

 

40년 만에 간첩 누명을 벗은 그도 울먹였고, 자리를 함께 한 200여명의 주민들도 함께 눈물을 훔쳤다. 10명의 순한 어부들에게 온갖 고문을 자행해 간첩으로 만들었던 가해자는 한 명도 보이지 않는데 강대광씨는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살겠다"고 순한 다짐을 또 한다.

 

10일 오전 11시 전북 부안군 위도면 위도중·고등학교 강당에서는 '진실규명 결정에 따른 위도 주민 화해 한마당'이 열렸다.

 

이 행사는 강대광씨를 비롯, 어부 10명이 연루됐던 68년 어부납북사건과 78년 위도 계모임 간첩단 사건이 9일 재심을 통해 무죄를 확정 받은 것을 기점으로 주민화해를 도모하자는 차원에서 마련됐다. 아울러 고 백남욱씨 간첩사건에 대한 진실화해위의 재심권고가 내려져 명예회복의 길이 열렸다는 점도 작용했다.

 

위도에서는 잇단 조작 간첩사건으로 이웃이 이웃을 간첩으로 모는 허위진술을 강요당하는 사례가 빈번했다. 다정한 이웃이 하루아침에 원수가 돼버린 것이다. 따라서 이번 화해 한마당은 고문으로 간첩이 된 사람이건 경찰의 강요로 허위진술을 한 주민이건 간에 모두 피해자이기 때문에 지난 아픔을 털고 새로 출발하자는 취지에서 준비됐다.

 

김호수 부안군수는 한마당에 참석해 "오랫동안 위도면뿐만 아니라 역사의 아픔 속에서 해결하지 못했던 부분이 실마리를 찾아가는 기분"이라며 "오늘을 기해 갈등을 털고 같이 아픔과 기쁨을 나누는, 위도만의 우애를 돈독히 다지는 기회로 삼자"고 인사했다.

 

김준곤 진실화해위원회 상임위원은 "오늘은 간첩과 간첩가족이라는 억울한 누명을 벗는 날이고, 억울한 응어리를 함께 벗어던지는 날"이라고 각별한 의미를 부여했다. 김 상임위원은 "국가기관이 주민들을 상호 이간질한 만큼 가해자는 국가인데 주민들이 원수가 되어 공동체가 황폐화됐다"고 안타까워했다.

 

특히 김 상임위원은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가혹한 고문을 당해 간첩이 된 사람이나 협박에 (간첩이 하는 말을) 들었다고 거짓 자백한 모두가 피해자"라면서 "감옥에서 보낸 청춘을, 간첩이라 받았던 냉대를 어떤 걸로 보상할 수 있겠냐, 정말 세월을 돌려놓고 싶은 심정이고 국가를 대신해서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머리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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찍어내도, 찍어내도 마른 눈물이 그치지 않는다 위도 납북어부 간첩단 사건의 피해자는 비단 고문 받고 감옥에 간 이들만이 아니다. 40년 세월을 간첩의 이웃이라는 손가락질을 받아온 주민 모두가 피해자였다. ⓒ 이주빈

▲ 찍어내도, 찍어내도 마른 눈물이 그치지 않는다 위도 납북어부 간첩단 사건의 피해자는 비단 고문 받고 감옥에 간 이들만이 아니다. 40년 세월을 간첩의 이웃이라는 손가락질을 받아온 주민 모두가 피해자였다. ⓒ 이주빈

 

"아들에게조차 숨겨온 간첩누명, 이제는 말할 수 있다"

 

강대광씨는 조작 간첩단 사건의 피해자를 대표해 한 인사말에서 "납북어부가 저뿐 아니라 아주 많다"며 "옥살이를 하고 있을 때 면회 온 가족들에게 '마을은 평안하냐'고 물어보면 아무 대답도 않을 때 제일 힘들었다"고 했다. 간첩 가족이라 말 한마디 섞을 이웃도 없었던 아픈 현실을 말하는 것이다.

 

강씨는 "87년 성탄절 특사로 만기출소를 했어도 주거제한으로 감옥살이나 마찬가지였다"며 "심지어 아파서 병원을 오가면서도 신고를 해야 했고, 나를 그림자처럼 12년 동안이나 따라다니며 감시한 경찰도 있었다"고 울먹였다.

 

현재 인천에서 살고 있는 이정섭씨는 "서른이 넘은 아들에게조차 내가 어제(9일) 40년 만에 간첩 누명을 벗었다고 차마 밝히지 못했다"고 했다. "알면 실망할까봐 말을 못했다"는 것이다. 이씨는 "이제는 아비로서 아버지의 과거와 현재에 대해서 얘기할 수 있겠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위도 주민인 최길섭(59)씨는 "(간첩사건 관련자들의) 집에 불만 꺼져도 수상하다고 초소에 있는 경찰이 그랬다"며 옛일을 회고했다. 최씨는 "이런 일이 더 이상은 없어야 한다"며 "우리끼리는 아무 타의(다른 뜻, 다른 마음-기자 주)가 없으니 화목하게 잘 지낼 것"이라고 말했다.

 

아픈 과거를 털고 따뜻하게 서로 잘 지내자며 마련된 화해 한마당. 그러나 참가자들 모두의 가슴에 남은 '2% 부족함'은 어쩔 수 없었다.

 

피해자와 피해자 가족은 보이는데 가해자 혹은 그를 대표할 이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위도 사건들은 명백히 국가기관이 고문이라는 반인륜적 범죄를 통해 저지른 범죄행위였음이 재심 재판결과를 통해 밝혀졌다.

 

피해자들이 만든 화해의 자리에 가해자는 끝내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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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수가 건넨 축하의 잔 김호수 부안군수(오른쪽 가운데)가 강대광(오른쪽 안경 쓴 이)씨등 사건피해자들에게 축하의 건배를 제의하고 있다. ⓒ 이주빈

▲ 군수가 건넨 축하의 잔 김호수 부안군수(오른쪽 가운데)가 강대광(오른쪽 안경 쓴 이)씨등 사건피해자들에게 축하의 건배를 제의하고 있다. ⓒ 이주빈

 

하지만 어부들에게 고문을 가한 당시 경찰관은 물론 애초 참석해 상징적으로 화해의 모습을 보여주기로 했던 부안경찰서장 등 경찰 관계자의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한 관계자는 "경찰은 현재 고 백남욱씨 사건 등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참석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전했다. 또한 화해 한마당엔 경찰의 강요에 의해 거짓진술을 해 이웃을 간첩으로 만들었던 주민들의 모습도 전혀 보이지 않았다.

 

피해자는 화해하자며 잔치마당을 준비하고 있는데 정작 먼저 용서를 청해야 할 이들의 모습은 경찰이건 거짓 진술했던 주민이건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조작간첩 사건이 일어났던 위도면 대리 이장인 강대식(55)씨는 "거짓진술을 했던 분들에게 찾아가 화해 마당에 나오시라고 했는데 '나도 피해를 당했다'고 말하는데 어쩔 수 없었다"면서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개인적으로라도 스스로 찾아가서 피해자들에게 용서를 구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위도 계모임 간첩단 조작사건으로 5년 집행유예(불고지죄)를 받은 김영석씨는 "내 젊은 날의 둥치를 꺾어버린 정부(국가)를 불신하고 살아왔다"며 "하지만 이제는 무죄도 밝혀졌고 해서 감정있는 사람은 없으니 진실로 말해서 풀고 살았으면 좋겠다"고 거듭 화해의 손을 내밀었다.

 

한 사건 관련자의 가족은 "다른 것은 몰라도 당시 고문을 가해서 사건을 조작했던 경찰들은 당사자 안모(현재 호주 거주)씨가 아니더라도 대신 와서 용서를 구하는 모습을 보였어야 한다"고 서운해 했다.

 

40년 동안 간첩 누명을 쓰고 살아온 이들이 40년 만에 누명을 벗고 화해의 손을 내밀고 있다. 이들의 내민 손을 잡아줘야 하는 이는 과연 누구인가.

2008.07.10 20:01 ⓒ 2008 OhmyNews
#위도 #납북어부 #조작간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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