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뽑지마! 뽑지마, 응?"

흰머리카락의 등장을 지켜보며

등록 2008.07.16 08:11수정 2008.07.16 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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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에 머리를 감고 드라이기를 돌리다가 우연히 흰머리를 발견했다. 으악~. 난생 처음 내 머리에서 발견된 흰머리! 꼬불 꼬불한 것이 미끄러워서 여러 번의 손가락 당김에도 어찌나 튼튼하게 자리 잡았는지 결국 핀셋을 동원한 제거작업을 거쳐 그 녀석을 제거했다. 흰머리를 뽑으면서 맘이 너무 울적해졌다. 이웃에 사는 선배에게 전화를 돌렸다.

 

“언니, 나 흰머리 났어. 어떡해~.”

“어머, 얘! 40 넘긴 애가 그건 당연한 거야, 난 30대부터 나기 시작했어. 그건 아무것도 아냐.”

“너 흰머리도 오기가 있어 자꾸 뽑으면 두 배로 생기니까, 그러려니~ 해야 돼 절대 뽑지 마. 뽑지 마 응?”

 

그날로부터 난 수시로 머리를 이리저리 뒤적이며 흰머리 살피기에 안간힘을 썼다. 선배 말대로 흰머리는 며칠 만에 벌써 여러 개가 생기는 것 아닌가. 한 친구가 얼마 전 모임에서 염색을 하고 왔다고 했다.

 

얼마나 자주 염색을 하냐고 하니 자기는 한 달에 한 번은 해줘야한다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흰머리가 올라오면 거의 몇 주 동안 대외 활동을 모두 중지하고 집에서만 지내고 염색을 하면 그날부터 2주간은 친구며 동창들을 만나러 다닌다고 했다. 알레르기가 심한 체질이라 염색한 날은 잠을 못잘 정도로 머리를 긁어야하지만, 검은 머리로 염색된 자신의 모습을 보면 저절로 자신감이 생긴다고 했다.

 

그날 친구들은 서로 흰머리 안 생기는 법에 대해 심도 깊은 대화를 나누었다.

 

“흰머리는 매일 족욕을 하면 쏙 들어간대, 내 회사 동료의 경험담이니까 너희들도 해봐.”

“흰머리는 멜라닌 색소가 안 생기는 거니까 검은 콩이나 두유를 먹으면 아주 효과가 좋아.”

 

그날의 모임은 마치 ‘검은 머리 만들기 협회’ 박사님들이 모인 회의장 같았다. 흰머리는 유전인 경우가 많다지만 한두 가닥 비치는 새치와 달리 30대에도 흰머리로 고민하는 사람이 많은 것을 보면 복잡한 현대인에게는 스트레스가 주원인이라고 한다. 사실 검은 머리가 흰머리에 비해 똑같은 얼굴이라도 5년 내지 10년 정도는 젊어 보인다. 한두 가닥이면 모르겠지만 반백인 머리를 보면 아무래도 노인 취급을 받기가 쉽다.

 

하지만 가을의 낙엽이 한여름 신록처럼 빳빳하다면 너무 재미없을 것 같다. 신록은 신록대로 낙엽은 낙엽대로 연륜이 주는 아름다움이 있다. 신록의 무성함보다는 여유 있는 그들의 색깔이나 온화함이 보는 이에게 또 다른 안정감을 주는 것을 낙엽은 모를 것이다.

 

‘그래, 너무 흰머리에 연연하지 말자. 낙엽이지면 낙엽이 지는 대로, 검은 머리가 흰머리가 되면 흰머리대로 그저 담담하게 받아들이자.’

 

이렇게 마음먹고 나니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여름 한철 뜨거운 태양 아래 영글어진 열매가 더욱더 단단하고 풍부한 맛을 내는 것처럼 정열적인 젊은 시절을 보낸 그대의 머리에도 아름다운 서리가 내리는 것이다. 흰머리는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연륜의 훈장이 아니겠는가. 오늘부터 아침마다 이렇게 외쳐보리라.

 

‘나는 신록보다 낙엽이 좋다. 나는 낙엽을 사랑한다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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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16 08:11 ⓒ 2008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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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 #흰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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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입니다.세상에는 가슴훈훈한 일들이 참 많은 것 같아요. 힘들고 고통스러울때 등불같은, 때로는 소금같은 기사를 많이 쓰는 것이 제 바람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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