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재활용? 시민이 불편하면 안 된다"

[쓰레기 이동을 막아라-싱가포르④] 싱가포르 국립환경청 공무원들을 만나다

등록 2008.08.19 15:47수정 2008.08.20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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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는 올 한 해 동안 연중기획으로 '쓰레기와 에너지'를 다룹니다. 지난 5월 '친환경 결혼'을 주제로 쓰레기 문제를 다뤘고 6월~8월엔 '쓰레기 이동을 막아라'란 주제를 통해 쓰레기 감량과 재활용 없이는 결국 쓰레기 절대치도 변함 없다는 점을 확인할 계획입니다. 이번엔 이번엔 깨끗한 나라로 알려진 싱가포르를 찾아가봅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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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를 상징하는 공공임대 아파트촌 ⓒ 김대홍



싱가포르에서 환경 관련 업무를 맡고 있는 부서는 두 군데. 하나는 싱가포르 국립환경청(National Environment Agency), 또 다른 곳은 싱가포르 환경위원회다. 전자는 환경관련 업무를 총괄하고 있고, 후자는 환경교육과 관련한 일을 맡고 있다.

싱가포르 국립환경청을 찾았다. 공무원들의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태도가 인상적이었다. 싱가포르 공무원은 최고 엘리트조직으로 유명하다. 모든 질문에 시원시원하게 대답했지만, 민감한 문제에 대해선 "말해줄 수 없다"면서 입을 닫았다. 

심지어 지하철승차권 재활용 문제에 대해서도 공무원들은 "말할 수 없다"고 딱 잘랐다. 싱가포르 지하철승차권은 우리나라처럼 1회용권이 아니다. 선금을 내고 승차권사용료를 내고, 지하철을 이용한 뒤 다시 반납하면 맡긴 선금을 돌려받는 식이다. 올해 폐지된 우리나라 컵보증금 제도를 떠올리면 된다. 재활용 사례로서 모범이라고 생각했지만, 공무원들은 입을 다물었다.

"국가가 국민을 불편하게 할 수는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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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 지하철표. 보증금+지하철 요금을 내고 표를 받은 뒤, 목적지에 도착해서 지하철표를 밀어넣으면 보증금이 나온다. ⓒ 김대홍

선임행정관인 마리 친을 비롯 선임행정관 차메인 소, 행정기술자 데스몬드 탄 등 다섯 명이 배석했다.

환경청에선 쓰레기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었다. 1979년 만든 소각장(1100톤 규모) 건설에 1억3천싱가포르달러(986억), 1999년 만든 매립장에 6억1천싱가포르달러(4629억), 2000년에 만든 소각장(3000톤 규모)에 8억9천싱가포르달러(6749억)이 들었다.


환경청 담당자는 "이런 식으로 나가면 5~7년 사이에 새로운 소각장이나 매립장이 필요할 것"이라며 "어떻게 쓰레기를 줄일까를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불가능할 것 같지만 전혀 매립하지 않는 것도 생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환경청은 재활용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재활용을 위해서 필요한 분리수거가 거의 이뤄지지 않는다. 뭔가 어긋난다는 생각이 들었다.

- 자동차에서 본 싱가포르는 무척 깨끗했다. 관광 사진에서 본 그대로였다. 그런데 거리에 쓰레기통이 너무 많다. 거리는 깨끗하지만, 한편으론 마음껏 쓰레기를 버리도록 조장하는 것 아닌가.
"그렇지 않다. 거리가 깨끗한 것은 좋은 것 아닌가. 지금 주거지에 1600통, 상업지에 2200통의 쓰레기통이 설치돼 있는데, 앞으로 더 늘릴 예정이다."

- 재활용율을 높이기 위해선 모든 가정에서 분리수거가 필수다. 왜 그렇게 하지 않나.
"모든 일반 가정에서 분리수거를 하는 것은 복잡하고 힘들어서 주민 참여가 어렵다. 국가가 국민을 불편하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공공임대주택 중심으로 분리수거 캠페인을 꾸준히 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과 같은 방식을 계속 지킬 것이다." (싱가포르에서 주택은 주택개발청(HDB)이 공급하는 공공임대주택(플랫)과 민영주택(콘도미니엄)으로 나뉜다. 현재 싱가포르 전체 주택의 80%가 공공임대주택이다.)

"분리수거는 힘든 일, 국민 선택에 맡길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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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에 있는 동안 안내를 맡아 준 싱가포르 환경청 공무원 마리 친. ⓒ 김대홍

정부에선 모든 지역에서 분리수거를 하지 않는 대신 몇 군데 별도 분리수거통을 두고 있다. 인터넷 웹사이트에 들어가면 분리수거통이 있는 곳을 알 수 있다.

정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주민 63%가 분리수거에 참여했다. 하지만 이 땅에서 분리수거는 의무가 아니라 선택사항이다.

모인 쓰레기는 소각 과정에서 10분의1로 줄지만 나머지 1은 여전히 남는다. 바다를 메워 땅을 넓히던 싱가포르는 바다 한가운데 매립장을 만드는 데까지 나아갔다.

1965년 독립 당시 581.5㎢이던 땅은 2003년 697.2㎢로 116㎢ 정도 넓어졌다. 지금 영토의 16%를 매립해서 얻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영토가 넓어질수록 주변 국가의 신경이 날카로워진다. 2003년 말레이시아는 국제사법재판소에 소송을 제기한 적도 있다. 싱가포르 정부도 무조건 소각과 매립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몇년 전 건설폐시멘트를 부순 뒤 보도블럭으로 만들어 도로턱에 쓴 것은 매립량을 줄이고자 한 고민에서 나왔다. 이 방안이 활성화됐다면 매립량을 줄이는데 도움이 됐겠지만 오래 가진 못했다. 도로턱 부분이 깨지는 경우가 나타나면서 수질 오염 문제가 불거졌기 때문이다. 이후 건설폐시멘트를 재활용하는 계획은 백지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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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에선 비닐 사용이 자유롭다. 심지어 물건 하나에 비닐 하나씩 담아주는 일이 빈번하다. ⓒ 이봉렬

2007년 4월 18일 비닐봉지 안 쓰기 운동을 시작한 것도 쓰레기 감량 정책의 일환이다. 한 달에 한 번 첫번째 수요일에 NTVC라고 하는 수퍼마켓 체인에서 실시한다. 이 때 따로 장바구니를 갖고 오지 않은 사람은 돈을 주고 천으로 만든 장바구니를 사야 한다.

환경기부금도 10센트를 내야 한다. 그 돈은 싱가포르 환경위원회에 기부된다. 자발적이다. 환경위원회가 벌이는 쓰레기 재활용 운동에 사용된다.

비닐 안 쓰기 운동이 바람직하지만, 일부 가게, 그것도 한 달에 한 번으론 너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에 대해 정부는 계획을 바꿀 생각이 없다. "시민을 불편하게 해선 안된다"는 게 싱가포르 정부의 일관된 정책이었다.

"앞으로 늘릴 계획이다. 그러나 강제로 참여하게 하진 않을 것이다. 주민을 불편하게 해선 안된다. 자연스럽게 참여하도록 할 것이다."

모든 것은 자율에... 그러면서 규제는 엄격히?

싱가포르 환경청 공무원들과 이야기하면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은 '자율'과 '자발'일 것이다.

그러나 싱가포르는 정부가 가장 강력하게 규제를 하는 계몽국가로 잘 알려져 있다. 쓰레기 투기를 하면 초범일 경우 1000달러, 재범일 경우 두 배인 2000달러와 공공장소 청소하는 벌을 주고, 껌은 아예 수입금지 품목이다. 거리 전체를 금연구역으로 묶어서 담배꽁초를 버리지 못하도록 했다. 그런 나라에서 '자율'과 '자발'을 강조하는 게 어색했다.

분명히 느낀 것은 싱가포르 정부는 지금 환경 정책에 큰 확신을 갖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이어나갈 것이란 점이다. 어쩌면 100% 소각과 100% 소각재 활용 방법을 찾을 지도 모른다. 싱가포르 공무원들의 자신감과 단호한 모습에서 어쩌면 그런 일이 가능할지도 모른다고 느끼게 됐다. 나도 세뇌가 된 것일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국언론재단 기획취재 지원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이뤄졌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한국언론재단 기획취재 지원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이뤄졌습니다.
#싱가포르환경청 #쓰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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