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평화를 그리지만, 어른들은 전쟁을 그린다

[책읽기가 즐겁다 204] 티베트 난민 어린이들, <평화를 그리는 티베트 친구들>

등록 2008.08.07 18:26수정 2008.08.07 18:26
0
원고료로 응원
- 책이름 : 평화를 그리는 티베트 친구들

- 글ㆍ그림 : 티베트 난민 어린이들

- 엮은이 : 가브리엘 랩킨

- 옮긴이 : 베블링 북스

- 펴낸곳 : 초록개구리 (2008.7.25.)

- 책값 : 1만 원

 

 (1) 티베트 아이와 한국 아이

 

a

겉그림 티베트 난민 아이들이 쓴 글과 그린 그림을 모은 책. ⓒ 초록개구리

▲ 겉그림 티베트 난민 아이들이 쓴 글과 그린 그림을 모은 책. ⓒ 초록개구리

 한낮 푹푹 찌는 더위를 씻어내고자, 빨래 두 점을 합니다. 4층 살림집 수도에는 뜨뜻하게 덥혀진 물이 나옵니다. 물통에 받지 않고 물관으로 올라오는 물임에도 이렇게 덥혀졌다면, 빨래 한 점을 다 마칠 때까지도 뜨뜻한 물만 나온다면, 물관은 햇볕 잘 받는 자리에 있다는 소리가 아닐까 싶습니다.

 

 빨래를 해도 시원하지 않습니다. 차가운 물이 나오면 조금이나마 나을 텐데, 빨래를 해 본들, 뜨거운 햇볕에 잘 마르는 대목만 좋을 뿐, 빨래하는 즐거움을 느끼기 어렵습니다.

 

 아무래도 이 집이 많이 낡고, 집임자는 낡은 곳을 고쳐 줄 생각이 없기 때문인가, 하는 생각을 안 할 수 없습니다. 오래되었어도 튼튼하지만, 인천시에서 재개발을 한다며 법석이니, 집임자로서는 ‘곧 허물릴 집’을 돈들여 손질할 까닭이 없다고 뻗댈밖에 없습니다. 생각해 보면, 곧 허물리든 안 허물리든, 사람이 사는 집은 사람이 살도록 되어 있어야 하고 손질을 해야 옳건만, 돈을 써야 하고 주머니를 열어야 하는 쪽에서는 꼼짝을 안 합니다.

 

 이런 형편은 우리 집뿐 아니라, 이웃집들, 그러니까 다른 사람 집을 얻어서 지내는 모든 사람이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계약기간이 끝나면 떠나고 싶어지도록 미움이 박히고 집임자 꼴을 보기도 싫으니, 달삯 내고 살아도 달삯 낸 보람도 없지만, 자기 돈과 품을 들여서 집을 한껏 야무지게 가꾸고픈 생각을 못하게 됩니다.

 

 ‘옆지기 배속에서 자라는 아기는 지 아비 어미가 이렇게 사는 줄 알까?’하고 헤아려 봅니다. 다 한 빨래를 탁탁 털어서 빨랫줄에 널어 놓습니다. 햇볕이 뜨겁습니다. 눈을 찌푸리게 됩니다. 한손을 눈 위에 얹어야 비로소 살며시 뜨고 죽 내다볼 수 있습니다.

 

.. 우리가 티베트에서 살았을 때에는 / 추바푸르를 입고 털가죽 모자를 썼습니다. / 나는 밤색 추바푸르를 입었어요. / 그때에는 내 머리카락도 무척 길었어요. / 우리 나라 티베트에서 살 때에는 아주 행복했습니다 ..  (빠상 타시,12살 / 25쪽)

 

.. 이건 내 꿈이에요. / 꿈속에서 나는 부모님과 티베트에서 살았어요. / 나는 야크를 길렀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야크를 타고 다녔어요. / 그 야크는 검은색 털에 기다란 뿔을 가지고 있어요 ..  (아왕 잠빠,14살 / 43쪽)

 

 눈이 하염없이 내리고, 오래도록 쌓여 있는 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눈안경’을 낍니다. 눈알을 모두 가릴 만큼 종이판으로 알을 삼고, 가는 줄 하나를 구멍 삼아 직 그어 놓는 안경입니다. 온누리에 쌓인 눈에 햇빛이 비쳐 눈에 닿으면 너무 부셔서 눈이 멀 수 있다더군요. 그러고 보면, 한겨울에 눈이 많이 내린 날에는 늘 눈을 찡그리며 다녀야 했습니다. 어릴 적에도, 군대에서도.

 

 티베트 아이들도 눈안경을 끼는가 모르겠습니다만, 어릴 적부터 눈이 먼 아이들이 제법 있다고 한다면, 맨눈으로 다니다가 눈을 잃어버리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문득, 어린 나이부터 눈이 먼 아이들은 티베트에서 어떤 대접을 받고 어떻게 살아가게 되는가 궁금합니다. 한국 같은 나라라면, 틀림없이 놀림과 따돌림과 괴롭힘을 받으면서 고달프고 고단한 삶을 꾸려야 했으리라 봅니다. 안마사 아닌 일자리를 얻기도 힘들지만, ‘스포츠 마사지’라는 이름을 내거는 사람들이 생겨나면서 안마사 일자리를 얻기도 수월하지 않습니다.

 

 눈이 멀게 되었다면, 이 삶은 이 삶대로 ‘다른 어떤 뜻’이 있어서 이렇게 되는 삶이라고 받아들일 수 있을지. 아니면, ‘왜 티베트 같은 나라에서 태어나’ 이렇게 앞도 못 보며 슬프게 살아야 하느냐고 푸념을 할는지.

 

.. 이 그림은 티베트 지도예요. / 티베트 지도는 무척 아름다워요. / 지도 위에는 나무와 냇물이 많아요. / 또 수많은 산과 야크 떼와 양 떼도 있습니다. / 양 떼와 야크 떼와 수많은 산은 정말 아름다워요. / 그리고 나무에는 사과가 주렁주렁 열려 있습니다 ..  (텐진 직메,8살 / 97쪽)

 

.. 나는 혼자이고 자유롭지만 / 기쁘지 않습니다. / 다른 새들과 함께 살아가며 / 함께 날아다니고 싶기 때문입니다 ..  (잠양 복토,12살 / 131쪽)

 

 그런데, 꽤 많은 티베트 아이들은 제 고향나라에서 고향사람들과 고향말을 주고받으면서 고향 문화를 누리거나 물려받으면서 살아가지 못합니다. 인도나 네팔이나 몇 군데 유럽나라로 몸을 옮긴 다음, 그 나라에서 ‘티베트말’이 아닌 영어와 두세 가지 바깥말을 배우게 됩니다. 어버이부터 자기한테 이어진 ‘고유한 티베트 문화와 삶’을 배우기도 하지만, ‘자기 어버이와 함께 떠나서 자리잡은 낯선 나라’에서 살아남자면 알아야 하는 문화와 삶을 더 많은 시간을 들이고 더 많은 품을 바쳐서 배워야 합니다.

 

 티베트 땅에 남아 있어도 고향이 없고, 티베트 땅에서 벗어나 있어도 고향이 없습니다. 뿔뿔이 흩어져 있습니다.

 

.. 새와 원숭이와 개가 모여서 자기네 집을 부숴 버린 / 사냥꾼을 혼내 주려고 회의를 했습니다. / 이 세 동물은 서로 힘을 뭉치기로 했습니다. / 세 동물은 겁을 주어서 사냥꾼을 숲 밖으로 내쫓았습니다. / 하지만 사냥꾼을 해친 동물은 아무도 없습니다. / 생명을 해치는 죄를 지어서는 안 된다고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  (린첸 왕모,13살 / 141쪽)

 

.. 깊은 바다 속에서 푸른 하늘 위까지 /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생물들이 보여요. / 사람들의 머리카락은 검은색일 수도 있고, / 회색일 수도, 노란색일 수도, 금빛일 수도 있어요. / 하지만 우리는 모두 어머니의 배속에서 나온 / 똑같은 사람이에요 ..  (텐진 초키,13살 / 158쪽)

 

 한국땅 아이들한테는 고향나라가 있고 고향이 있습니다. 비록 고향이 서울시 강남구 압구정동이든, 서울시 은평구 불광뉴타운이든, 경기도 고양시 일산구 아파트이든, 이웃나라한테 빼앗기지 않은 고유한 나라가 있습니다. 어버이와 떨어지지 않은 채 살고, 죽음을 무릅쓰고 고향을 떠나야 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이 나라 한국 아이들한테 참다운 고향나라가, 고향땅이, 고향마을이 있다고 할 수 있을까 모르겠어요. 어릴 때부터 영어를 배워야 하고, 한자도 익혀야 하며, 독후감 쓰기 책을 줄줄줄 외워야 하는데다가, 먼 뒷날 대학논술시험을 미리부터 준비한다며 글쓰기 학원에도 나가야 합니다. 학원돌기를 마친 뒤에는 컴퓨터게임을 하면서 머리를 식히지만, 아이 어버이가 아이한테 ‘어버이 스스로 몸을 부대끼며 얻거나 익힌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는 법이란 없습니다. 한국사람으로서 한국땅에서 살아가며 쓸 한국말을 올바르게 가르쳐 주는 어버이는 없습니다. 한국땅에서 살자면 영어를 잘해야 한다며, 어버이부터 나서서 영어학원에 넣고 영어책을 쥐어 주고 영어비디오를 봅니다.

 

 티베트 아이들도 마음껏 뛰놀 너른 들판을 빼앗겼지만, 한국 아이들도 신나게 뛰놀 논밭과 산들바다와 골목길을 빼앗겼습니다. 누구한테? 바로 자기가 살고 있는 아파트와, 자기가 아파트에 살면서 쓰는 물건을 만들 공장과, 자기가 어버이와 함께 타고다니는 자동차와, 자동차가 다닐 찻길과 놓일 주차장과….

 

a

아이들 그림과 사진 티베트 아이들이 그린 그림과 글, 그리고 엮은이가 찍은 티베트 어린이 사진. ⓒ 초록개구리

▲ 아이들 그림과 사진 티베트 아이들이 그린 그림과 글, 그리고 엮은이가 찍은 티베트 어린이 사진. ⓒ 초록개구리

 

 (2) <평화를 그리는 티베트 친구들>이라는 책

 

.. 티베트는 중국 서쪽에 있는 나라로, 1951년에 중국에게 나라를 빼앗겼습니다. 티베트의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는 중국의 탄압을 피해 1959년에 이웃 나라 인도로 망명했습니다. 그 뒤로 수많은 티베트사람들이 중국의 지배를 견디다 못해 조국을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 중국의 지배를 받고 있는 티베트에서는 어린이들이 티베트어와 티베트 문화를 배울 수가 없었습니다 … 티베트가 중국의 지배를 받으면서부터 티베트어는 점점 더 중국어에 밀려나고 있습니다. 티베트어를 가르치는 학교도 있기는 하지만, 좋은 시설을 갖추고 있다고 알려진 웬만한 학교에서는 모든 과목을 중국어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 말보다 더 빨리 사라지는 것은 티베트 글자입니다 ..  (14∼17쪽)

 

 책을 읽으면 알 수 있는 이야기가 있으나, 책을 읽어도 모르게 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책에 안 나오는 이야기가 있으며, 책에 안 넣으려고 하는 이야기도 있어요. 책을 많이 읽는다고 해도 어느 한 가지나 몇 가지 책에만 기울어져 있을 때에는, 세상을 좁게만 바라보고 맙니다.

 

 한국사람한테 ‘티베트(티벳)’는 어떠한 나라인가 생각해 봅니다. 한국사람들이 가까이할 만한 ‘티베트 이야기책’은 몇 가지가 소개되었는지, 이렇게 소개된 책 가운데 가까운 책방에 나들이를 가서 들춰볼 수 있는 책은 몇 가지가 있는지, 전문가나 평론가라고 하는 분들이 추천해 주는 ‘티베트 삶과 문화 이야기’ 다룬 책은 얼마나 꼼꼼히 티베트를 돌아보고 있는지 생각해 봅니다. 성지순례나 명상여행이나 ‘공기 맑은 곳 나들이’를 넘어서는 이야기를, 우리들은 얼마나 만날 수 있는가요.

 

 <티베트, 말하지 못한 진실> <티베트의 자유를 위하여> <티베트로 가는 길> <티벳 전사> <티베트와 중국> <타쉬> 같은 책들이 있기는 한데, 이 책들은 얼마나 읽히는지, 읽힌 뒤 얼마나 곰삭여지고 있는지, 읽은 이들 삶이나 생각은 얼마나 깊어지거나 넓어지고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 최닥 상뽀(9살)는 내가 처음 말을 걸었을 때에는 대꾸도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조금 친해진 뒤에는 왜 중국사람들이 티베트에 쳐들어왔는지, 중국사람들은 왜 티베트사람들을 못살게 구는지, 왜 사원을 부수고 승려들을 내쫓았는지, 그리고 티베트사람들이 왜 자신들의 나라를 떠나야 하는지 물었습니다 ..  (121쪽)

 

 <평화를 그리는 티베트 친구들>은 어린이책으로 묶여 나옵니다. 가만히 보니, <티베트, 말하지 못한 진실>부터 <타쉬>까지, 어른이 볼 만한 책으로 꾸며져 있지, 아이들이 볼 만한 책으로 꾸며져 있지 않습니다. 곰곰이 살피면, 티베트가 어떤 길을 걸어왔고 어떤 아픔을 겪고 있는지 차근차근 헤아리는 어른도 몹시 드물지만, 아이들한테 손쉽게 풀어내어 이야기해 주는 어른도 아주 드뭅니다.

 

 하긴, 우리 어른들 스스로 티베트 삶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있지 않으니, 아이들한테 티베트 삶을 있는 그대로 들려줄 생각을 할 수 없습니다. 우리 어른들 스스로 한국 사회와 문화를 속속들이 살피며 받아들이며 들여다볼 줄 안다면, 아이들한테도 우리 사회와 문화를 깊이있게 들려주거나 알려주어서 아이들 나름대로 곱씹어 새로워지도록 할 수 있어요. 그렇지만 어른들이 걷는 길, 어른들이 알려고 하는 세상, 어른들이 보여주는 모습은 속이 아닌 겉이고, 알맹이가 아닌 껍데기입니다.

 

.. 또 하나 놀라운 사실은 티베트 어린이들이 보여준 겸손과 참을성입니다. 예를 들어, 열 명의 아이들이 크레용 한 곽으로 그림을 그릴 때에, 아마도 크레용을 먼저 차지하려고 급히 그리거나 다투지 않았습니다 ..  (174쪽)

 

 모자라나마, <평화를 그리는 티베트 친구들> 같은 책 하나로, 이 땅 이 나라 아이들한테 평화란 무엇인지 보여줄 수 있을까요. 우리와 이웃한 곳에서 아픔을 먹고 자라는 동무들 삶을 들여다볼 수 있으려나요. 이 책 하나를 읽으면서, 아픔과 슬픔을 미움과 짜증이 아닌 더 깊은 사랑과 믿음으로 꽃피워 내는 마음을 읽거나 나눌 수 있으려나요. 입으로는 ‘평화를 사랑한다’고 외치면서도, 몸뚱이로는 ‘전쟁을 사랑한다’고 할 만한 삶을 꾸려 나가는 어른들 눈가림과 거짓을 깨닫게 할 수 있을까요.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http://hbooks.cyworld.com (우리 말과 헌책방)
http://cafe.naver.com/ingol (인천 골목길 사진)

2008.08.07 18:26 ⓒ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http://hbooks.cyworld.com (우리 말과 헌책방)
http://cafe.naver.com/ingol (인천 골목길 사진)

평화를 그리는 티베트 친구들

가브리엘 랩킨 엮음, 배블링 북스 옮김,
초록개구리, 2008


#어린이책 #티베트 #티벳 #티베트 난민 #어린이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천연영양제 벌꿀, 이렇게 먹으면 아무 소용 없어요
  2. 2 61세, 평생 일만 한 그가 퇴직 후 곧바로 가입한 곳
  3. 3 버스 앞자리 할머니가 뒤돌아 나에게 건넨 말
  4. 4 "김건희 여사 라인, '박영선·양정철' 검토"...특정 비서관은 누구?
  5. 5 죽어라 택시 운전해서 월 780만원... 엄청난 반전이 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