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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이동을 막아라-재활용②] 국내 유일 친환경 문구브랜드 '공장'

등록 2008.08.21 15:28수정 2008.08.21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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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는 올 한 해 동안 연중기획으로 '쓰레기와 에너지'를 다룹니다. 지난 5월 '친환경 결혼'을 주제로 쓰레기 문제를 다뤘고 6월~8월엔 '쓰레기 이동을 막아라'란 주제를 통해 쓰레기 감량과 재활용 없이는 결국 쓰레기 절대치가 변함 없다는 점을 확인할 계획입니다. 이번 주제는 '재활용'입니다. [편집자말]

친환경 문구브랜드 공장을 만든 박현정(왼쪽), 장지나씨. ⓒ 공장



친환경 문구브랜드 '공장'. 나무로 만든 종이 대신 비목재펄프나 재생지, 화학접착제 대신 풀 제본이나 박음질, 스티커와 코팅장식 빼고 끈과 버튼. 번들번들한 투명한 비닐 아닌 우윳빛 생분해성 비닐, 화학기름 말고 콩기름 인쇄를 한다. ⓒ 공장


학창 시절, 학교 앞에는 문구점과 분식점이 나란히 있었다. 떡볶이로 육신을 살찌웠다면 편지지로 영혼의 허기를 달랬었다. 연습장·공책·수첩·메모지·필기도구 등 문구용품은 그저 구경만 해도 배가 불렀다.

반들반들한 하얀 종이는 뽀얀 김 모락모락 나는 쌀밥이었다. 끼니와 끼니를 잇대어 나이를 먹듯 종이와 종이를 채우며 자란 셈이다.  

친환경 문구브랜드 '공장(gongjang)' 가는 길. 그래서 더 설렜다. 친환경 종이로 만든 공책은 어떤 느낌일까. '유기농 문방사우'라고 생각하니 신기하고 궁금했다.

하긴 유기농 식단과 유기농 의류가 이미 보급된 마당에 늦은 감이 있다 싶기도 했다.

불덩이처럼 뜨거운 8월의 태양을 이고 서울 합정동 주택가 골목을 돌아 '공장' 앞에 당도했다.

공장(工匠)은 '공방에서 물건을 만드는 장인' 또는 '물건을 생산하는 장소'라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정작 공장이 밀집한 공단은 디지털단지로 간판을 바꿔달고 잰 척하는 추세이건만, 시대가 내다버린 개념을 되살려 쓴 선택부터 친환경적이다.


카네이션 판 종잣돈으로 노트 팔다 공장까지

1층 창고에는 물건이 가득하다. 2층 작업실에 오르니 '공장장' 장지나·박현정씨가 반긴다. 그들은 제품 디자인을 맡고 있는 '여공'이기도 하다. 두 사람의 손끝에서 탄생한 제품들이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연필이며 메모지 노트 등 문구용품들이 은은한 멋으로 말을 걸어온다. 사납지 않은 색깔, 요란하지 않은 모양이 '소박한 밥상'을 연상케 한다.

'공장'의 설립배경이 재밌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건 2002년이다. 학연 등 직접 관계는 없다. 친구들 모임에서 알게 됐다. 둘 다 미술학도이며 휴학 중이고 배낭여행을 다녀온 직후였다. 시간도 있고 돈도 벌 겸 어버이 날 홍대 앞에서 카네이션을 팔았다. 이익금 8만원이 남았고 그 돈으로 노트를 만들어 팔기 시작하면서 '공장'이 가동됐다.

"처음에는 단순히 자연 소재나 느낌을 선호해서 내추럴하고 심플한 디자인의 제품을 만들었어요. 그러다가 대학원에서 그린디자인을 공부하면서 환경이란 코드로 접목시켜 친환경제품을 만들게 됐죠. 소재 선택은 물론 제조과정과 폐기단계까지도 환경 요인을 고려합니다. 2006년부터 친환경 브랜드로 전환했고 지금은 점차 틀이 잡혀가는 중이에요."

신문을 재생하여 만든 연필. 케이스는 콩기름을 인쇄하고 박음질로 처리했다 ⓒ 공장


박현정씨의 말대로 공장은 우리나라 최초이자 유일의 친환경 문구브랜드로 뿌리내리고 있다. 친환경 소재 레시피는 이렇다. 나무로 만든 종이 대신 비목재펄프나 재생지를 쓰고, 화학접착제 대신 풀제본이나 박음질을 한다. 스티커와 코팅장식 빼고 끈과 버튼을 단다. 번들번들한 투명한 비닐 아닌 우윳빛 생분해성 비닐을 입히고, 화학기름 말고 콩기름 인쇄를 한다.

친환경종이는 나무로 만든 종이가 아닌 비목재펄프지와 폐지로 만든 재생지를 뜻한다. 풀(草)로 만든 풀종이나 케나프 섬유에서 뽑아낸 종이, 무염소 표백지 등을 통틀어 '에콜로지 페이퍼'라고 부른다. 

신문을 재생하여 만든 '재생 신문연필'도 있다. 가볍고 세련됐다. 케이스는 재생지에 콩기름으로 인쇄하고 박음질로 마무리했다. 메모지는 종이제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남는 자투리 종이들로 만들었다. 수첩도 속지와 표지끈 하나가 전부다. 군더더기 없이 디자인과 가공공정을 최소화한 것이 공장 제품의 특징이다. 

백문이 불여일견. 장지나씨가 출시 준비 중인 빨간 필통을 내민다. 작은 단추를 풀어 펼치니 복사용지 크기의 네모난 피혁조각이다. 다시 접어서 끼우면 뚝딱 멋진 필통이 된다. 같은 이치로 명함지갑도 만들었다. 미니멀리즘의 승리다. 과거엔 심미적인 차원에서 심플하게 만들었다면 지금은 '친환경'을 고려하는 쪽으로 관점이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접착제 안쓰고 코팅 안하고... 어떻게 공책 만든 거야?

공장에서 만들어진 제품에는 제작과정이나 취지를 담은 메시지가 간단히 적혀 있다. ⓒ 공장


보기도 좋고 쓰기도 편하고 의미도 따뜻한 친환경 문구용품. 하지만 기본 가격이 서너배 비싸다. 소재 가짓수가 많지 않고 구하기도 어렵다. 옥수수로 만든 100% 생분해성 비닐봉투 제조업체를 찾기까지 죽을 고생을 했다고 한다. 제품 디자인과 맞아 떨어지는 소재를 찾기까지는 우주적인 노력과 인내가 필요하다며 장지나씨가 말을 이었다.

"인쇄소 아저씨는 왜 굳이 콩기름 인쇄를 하느냐며 귀찮아 하세요.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요(웃음). 아마 인쇄소에서도 계속 써보고 좋으면 점차 콩기름으로 바뀔 거예요. 친환경제품이 단순히 소재 선택의 차원만이 아니거든요. 소재를 덜 써서 부피를 줄이면 운반과정까지 영향을 미치죠. 트럭 3대에 실을 걸 1대만 해도 되면 기름도 아끼고 대기오염도 줄이고요."

섬세하고 치밀하다. 단순한 그린디자이닝을 넘어 '녹색종합예술' 수준이다. 그렇게 지극정성과 소신으로 공들여 만든 제품은 '텐바이텐'과 같은 문구전용 쇼핑몰과 'yes24' 등 온라인 매장, 교보문고 잠실점 등 오프라인 매장에서 판다.

각 제품에는 제작과정이나 취지를 담은 메시지가 간단히 적혀 있다. '콩기름으로 인쇄했습니다.' '폐지 재활용은 톤당 30년 생 나무 17그루를 살릴 수 있습니다.' 등등. 소비자들은 무심코 구입했다가 제품에 적힌 친환경메시지를 보고는 "뜻도 좋고 제품도 좋다"며 애용하겠다는 소감을 남긴다고 한다.

작업중인 박현정씨. 박씨는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한다. ⓒ 공장


"디자이너의 역할이 중요한 거 같아요. 친환경제품을 전시한 홍콩 박람회에 가보니 디자인부터 매력적이더라고요. 우리나라도 대형매장에 친환경제품 코너가 있지만 친환경 마크가 엄청 크게 새겨져 있고(웃음). 너무 재활용제품스러워서 구매력이 떨어지잖아요. 분리수거용 쓰레기통도 예쁘고 편리하게 디자인해서 절로 하고 싶도록 유도할 수 있다고 봐요."

서른을 목전에 둔 두사람은 여전히 홍대 거리에서 마주칠 법한 멋쟁이 미술학도 분위기가 솔솔 풍긴다. 하지만 친환경에 대한 고민을 일상에서 직접 풀어내는 행동파 디자이너다. 박현정씨는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한다. 환경에도 좋지만 즐겁고 건강에도 좋으니까 계속 타게 된다고 말한다.

처음엔 환경문제에 큰 관심이 없었다는 장지나씨. 집이 멀어 자전거를 타고 다니진 못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에어컨도 잘 켜지 않고 코드도 빼고 음식물 쓰레기도 남기지 않게 됐단다. 평소 작업할 때 소재선택부터 가공과정까지 '환경에 해가 덜 되는 방법'을 고민하면서 생긴 자연스러운 '일상의 변화'라고.

두 사람은 거창한 사명감이나 투철한 의식이 있어서가 아니라, 하다 보니 훨씬 편하고 좋으니까 친환경적인 생활로 변해가더라고 말했다. 이렇듯 '그린디자인'으로 체질개선된 삶은 '공장'에 확실한 성장 동력을 제공한다. 판매용 문구용품 제작을 넘어 다양한 실험과 도전을 시도하고 있다.

그녀들은 꿈꾼다, 에코프린세스1호점

공장은 자투리지면을 이용하여 무료로 명함을 제작해준다. ⓒ 공장

'공장'의 명함 프로젝트는 유명하다. 제품 인쇄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자투리 공간을 이용해 명함을 무료로 제작해주고 있다. 제작 의뢰는 메일로 가능하지만 수령은 직접 방문이 필수다. 명함 하단에는 'gongjang 제품의 자투리 종이로 만든 명함입니다'라는 문구를 넣어 친환경에 대한 인식의 확산을 돕는다. 

오는 10월 창원에서 열리는 람사르 환경올림픽에는 신문지로 만든 연필세트를 기념품으로 공급하기로 했다. 이를 계기로 기업이나 단체의 행사 판촉물에 친환경 문구용품 공급을 모색 중이다.

일전에 어느 환경단체 행사에 갔더니 아이러니하게도 기념품이 종이상자·포장지에 화학 비닐까지 과포장이 심각하고 음식낭비가 극심했다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옳은 것은 행하고 좋은 것은 나눈다. 그들의 모토는 담백하다. 앎과 삶이 다르지 않은 두 사람은 앞으로는 친환경 문구용품을 전문으로 파는 '에코샵'을 운영하고 싶다는 다부진 꿈을 밝힌다. 산들내음과 풀향기 피어나는 에코팬시샵 '공장 1호점'을 기대해본다.

인터뷰를 마치고 1층 창고로 향했다. 에콜로지 페이퍼로 만든 두툼한 노트와 얇은 노트를 한 권씩 샀다. 박현정씨는 생산자 직거래라며 시중가의 30%를 할인해준다. 장지나씨는 여기저기 뒤져보더니 끈이 안 달린 수첩 하나를 수줍게 끼워준다.

정겨운 손길이다. 자두 한 소쿠리 사면 못난이 하나 더 끼워주던 행상 아주머니의 선심, 시위현장에서 우유를 나눠주던 '82쿡' 회원들의 고마운 인심이 배어난다. '세상을 바꾸는 여자들'은 곳곳에 있었다.

친환경 농사짓는 그린디자인 실험 집단 '농장'

공장은 농장도 운영한다. 농장(nongjang)은 친환경 디자인 프로젝트 그룹이다. 문구용품만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환경 피해를 최소화하는 디자인 방법을 함께 고민하는 디자이너들의 실험공간이다. 농장은 '디자인하는 행위'를 '농사짓는 것'으로 보고, 밭을 디자이너에게 분양해 가꾸게 한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디자이너들은 친환경 방법으로 자신의 밭을 일구고 그 수확물을 함께 나눈다.

지난 6월 '마이너스 1'이라는 타이틀로 첫 전시를 마쳤다. '마이너스 1'은 우리 주변에서 낭비되는 것들을 조금씩 줄여나감으로써 절약을 실천해보자는 뜻을 담았다. 예를 들어 티셔츠에 여러 개의 단추를 달아 크기를 자유롭게 줄이고 늘임으로써 온 가족이 함께 입을 수 있게 한 옷, 먹을 수 있는 쿠키접시 같은 것이다. 첫 번째 전시를 성공리에 마치고 조만간 있을 두 번째 전시로 농장 회원들과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덧붙이는 글 | '공장' 홈페이지 http://www.gongjangs.com

* 이 기사는 한국언론재단 기획취재 지원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이뤄졌습니다.


덧붙이는 글 '공장' 홈페이지 http://www.gongjangs.com

* 이 기사는 한국언론재단 기획취재 지원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이뤄졌습니다.
#친환경디자인 #에콜로지페이퍼 #장지나 #박현정 #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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