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전쟁 책임? "너 지나인이지"

[해외리포트] 티베트 독립론자들과 일본 우익이 공존하는 8·15의 야스쿠니 풍경

등록 2008.08.20 10:44수정 2008.08.20 10:44
0
원고료로 응원
a

야스쿠니신사. ⓒ 위키피디아 공공자료실


야스쿠니신사는 전후 일본에서 청산되지 않은 군국주의적 역사 인식을 상징하는 장소로 평가된다. 일본인 A급 전범이 합사(合祀)돼 있는 야스쿠니신사에서 그 전범들을 분사(分祀)해야 한다는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고, 조선인 및 타이완인이 일본인과 합사돼 있는 점도 논란이다.

기자가 올해 8월 15일 야스쿠니신사를 찾았을 때는 예년에 비해 차분하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조용했다. 베이징올림픽이 한창인데다, 후쿠다 야스오 일본 총리가 한중관계를 고려해 참배하지 않은 점도 이러한 분위기를 만드는 데 한몫했다고 할 수 있다.

8월 15일, 티베트 등 독립론자들과 일본 우익의 기묘한 두 풍경

그런데 그곳을 찾은 기자의 눈을 잡아끈 이들이 있었다. 반중국 피케팅을 하는 이들이었다. 야스쿠니신사로 향하는 길목에는 반중국 기치를 내건 각종 단체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들은 "중국은 21세기 최후의 식민주의 국가다"라는 피켓을 위시해 '티베트 독립 회복', '동투르키스탄(중국에서 분리 독립을 주장하는 이슬람계 세력은 신장 위구르 자치구를 동투르키스탄이라고 부른다) 독립'을 주장하는 피켓들을 각기 내걸고 있었다. 흥미롭게도 이들의 피케팅과 구호 제창은 일본 우익 단체들의 선전 행렬 앞에서 평화롭게 이뤄지고 있었다. 한마디로 서로 묵인하며 평화 공존하는 모습이었다.

반중국 피켓 중에서는 베이징올림픽 반대 선전도 찾아볼 수 있었다. 그중에는 코카콜라를 마시지 말라는 피켓도 있었다. "코카콜라는 베이징올림픽에 찬성하는 기업"이라는 것이 그 이유였는데, 베이징올림픽 스폰서로 대거 참가한 일본 기업들에 대한 불매 운동 피켓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a

재일 티베트인들이 야스쿠니신사로 가는 길가에서 '티베트 독립 회복' 피케팅을 하고 있다. ⓒ 곽형덕


그렇다면 일본 주재 티베트인과 '동투르키스탄'인, 타이완인들은 왜 하필이면 야스쿠니신사 앞에서 독립 운동을 하고 있는 것일까? 이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흥미로운 다음 장면과 함께 이 문제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기자는 야스쿠니신사를 둘러보고 헌책방이 즐비한 진보쵸(神保町)로 가는 길에 일본 진보 단체가 주도한 야스쿠니신사 반대 시위대와 조우했다. 그 시위 행렬 뒤에도 '티베트 독립 회복'을 외치는 한 무리의 사람들(야스쿠니신사 앞의 반중국 행렬과는 다른 그룹이다)이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재미있는 사건이 벌어졌다.


시위대를 에워싼 경찰들 뒤에서 일본 우익 단체 회원들이 그들을 향해 "일본에서 나가라", "외국인은 나가라"고 악을 써대는 것이 아닌가. '티베트 독립 회복'을 주장하던 이들도 이러한 악다구니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일본 우익 단체 회원들이 야스쿠니신사 앞에서 '티베트 독립 회복'을 외치며 피케팅을 하던 사람들과 일렬로 늘어서서 평화 공존하던 것과는 너무나 다른 장면이었다.

a

진보쵸 방향으로 진입하는 사거리에서 만난 일본 진보 단체 중심의 반야스쿠니신사 시위대. ⓒ 곽형덕


"하나의 타이완 지지"... 중국 분열 꿈꿔온 일본 우익

'티베트 독립 회복'이라는 같은 내용의 피켓을 든 이들에 대한 일본 우익의 반응이 이렇게 엇갈린 근원에는 근대 일본의 역사가 깔려 있다. 일본은 청일전쟁, 러일전쟁을 거치며 타이완과 조선을 차례차례 강탈한 후, 1931년 만주 침략과 1937년 중일전쟁을 통해 중국 본토의 상당 부분을 손에 넣었었다.

일본인들이 2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이후에도 한국과 중국에 대한 비하 및 우월 의식을 표출하는 경우가 많은 것도 이러한 기억과 관련이 있다. 이런 경향은 특히 우익에게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른바 '종군위안부' 문제가 제국주의 일본의 조직적 범죄였음을 인정하지 않는 것도, 중국의 난징대학살을 부정하는 것도 모두 그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과거사에 대한 끊임없는 망언, 식민지근대화론 부각, 그리고 수많은 조선인과 중국인 등을 강제로 전쟁터로 끌고 간 사실은 쏙 빼놓은 채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만을 과도하게 강조하는(일본인 납치가 옳은 일이라는 뜻이 아니다) 행동도 일본 우익들의 그러한 역사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또한 일본 우익은 강대국 중국이 아닌 자신들이 통제할 수 있는 중국을 원하고 있다. 그들이 생각하는 방책은 중국의 분열이다. 일본 우익이 타이완에 우호적인 까닭이 타이완이 반공 이념을 내걸고 만들어진 국가여서만은 아니며, 그 밑바탕에는 중국의 분열을 즐기는 속내가 있다. 실제로 일본 제국주의가 강성하던 2차 세계대전 이전에도 일본 우익은 만주, 내몽골은 물론 신장-위구르 등까지 중국에서 떼어내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a

"하나의 타이완"을 내건 피케팅. ⓒ 곽형덕

야스쿠니신사 앞의 피켓들 사이에서 "일본은 하나의 타이완을 지지한다(Japan supports One Taiwan!!)"는 문구를 발견할 수 있는 것도 이와 관련 있다. '하나의 타이완'은 '하나의 중국'을 내건 중국 정부의 기치에 정면으로 맞서는 안티테제로서 중국 분열을 꿈꾸는 일본 우익의 속내에 들어맞는 구호다.

예컨대 일본 우익의 대표적 인물인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慎太郎) 도쿄도 지사는 중국에 대해 지나(支那, 본래 중국을 지칭하는 지리적 개념이었으나, 일본이 근대화 과정에서 이 말을 중국을 경멸적으로 부를 때 사용하면서 정치적 개념으로 바뀌었다)라는 경멸적 표현을 써가며 하대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타이완에는 상당히 우호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티베트, '동투르키스탄', 타이완 독립 회복"을 주장하는 이들이 야스쿠니신사 앞에서 평화 공존하던 모습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칼 슈미트의 표현대로 '강력한 적대국'이 코앞에 다가온 것에 대해 경멸 섞인 불안감을 느끼는 일본 우익이 새로운 제국(중국)의 분열을 꿈꾸는 이들의 시위를 거부할 이유가 없지 않겠는가(이런 측면에서, 평화 공존 수준을 넘어 반중연대의 징후마저 엿볼 수 있다).

침략 전쟁 책임 거론? "너 지나인이지"

일본 우익이 이처럼 반중국 세력에 우호적인 배경 중 하나는 일본 사회의 우경화다. 이는 또한 일본의 치부를 드러내는 움직임에 대한 강렬한 적대 의식으로 이어지고 있다. 실제로 야스쿠니신사 앞에서 이른바 '종군위안부' 문제나 일본의 전쟁 책임 관련 피켓을 들려고 하면, 우익 단체 회원들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피켓을 빼앗기 일쑤다.

리인(李纓, 중국 광둥성 출신의 영화 감독으로 일본에서 살고 있으며, 1999년 <2H>라는 작품으로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NETPAC상을 받음) 감독의 다큐멘터리 <야스쿠니>(2007년 제작)에는 이에 관한 흥미로운 사례가 나온다.

이 영화에서 일본 우익 단체 회원들은 야스쿠니신사 앞에서 일본의 전쟁 책임론을 외치던 청년들을 향해 "중국인은 일본에서 나가라"라고 위협한다. 우익 단체 회원들은 집요하게 반전 청년들을 따라가며 밀치고 "너 지나인(중국인)이지!"라고 위협한다. 그 청년들이 끝내 경찰에 연행되며 "우린 일본인입니다. 왜 우리를 연행합니까"라고 외치는 실제 장면은 매우 인상적이다.

이처럼 우익의 기준으로 볼 때, 일본의 치부를 드러내는 이들은 자국인이든 아니든 '비국민'인 셈이다. 앞에 거론한 사례에서 일본 우익의 속내와 들어맞는 '티베트 독립' 피켓을 들고 있었는데도, 반야스쿠니 시위대와 함께 움직였다는 이유만으로 싸잡아 악다구니 대상이 된 것도 이 때문이다.

a

야스쿠니신사로 가는 길가에서 '동투르키스탄(신장 위구르 자치구) 독립'을 주장하며 '국기'를 펼쳐 보이는 모습. ⓒ 곽형덕


가해 책임 벗고 자기애로 무장한 일본

매년 8월, 일본에서 피해의 역사는 강조되지만 가해의 역사는 잘 드러나지 않는 것은 우익들의 이러한 역사 인식이 우익들만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2차 세계대전 후 냉전 바람과 한국전쟁 등의 영향을 받으며 일본 사회 전반의 군국주의 청산 흐름이 완전하게 작동하지 못했고, 그 결과 가해의 역사를 망각하는 흐름이 일본 사회의 밑바닥에 자리 잡고 있다. 과정(침략)을 생략하고 결과(패전)만을 받아들인 결과 일본 사회의 주류 역사 인식이 피해자 의식으로 전환된 것이다. 역사교과서 왜곡을 주도하는 일본 우익은 이러한 흐름이 표면에, 그리고 전면적으로 드러난 것일 뿐이다.

매년 발표되는 평화선언문에도 이는 잘 나타난다. 아키바 다다토시(秋葉忠利) 히로시마시장의 '2008년 평화선언'에도 피해에 대한 강조는 있어도 왜 그러한 일이 벌어졌는지에 대한 성찰은 존재하지 않는다. (일본이 원폭을 맞은 것이 잘된 일이라는 말이 아니다. 미국이 무리하게 원폭을 투하하게 된 배경에 일본의 아시아 침략전쟁이 있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임을 기억해야 한다는 뜻이다.) 

일본의 나르시시즘(자기애)은 야스쿠니신사 앞에서 우익들이 "일본에 A급 전범은 존재하지 않는다. 후쿠다 수상은 야스쿠니에 참배하라. 지나(중국)와 한국은 야스쿠니신사에 관여하지 말라"라고 피케팅을 하는 모습에서도 잘 드러난다.

이러한 가해의 집단적 망각은 고이즈미를 비롯한 역대 총리들의 야스쿠니신사 참배로 이어졌고, 현재는 보통국가론 논의(교전권을 부인한 평화헌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주장)로 이어지고 있다. 역사적 책임을 벗어던지고 피해자 의식과 자기애로 무장한 일본. 8월 15일 야스쿠니신사 부근에서 마주친 두 풍경을 흥미롭게만 바라볼 수 없는 이유다.

a

2006년 8월 15일, 주변국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A급 전범들이 합사돼 있는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한 고이즈미 당시 일본 총리. ⓒ 연합뉴스 / EPA

#야스쿠니신사 #동투르키스탄 #일본 우경화 #티베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캐나다서 본 한국어 마스크 봉투... "수치스럽다"
  2. 2 100만 해병전우회 "군 통수권" 언급하며 윤 대통령 압박
  3. 3 300만명이 매달 '월급 20만원'을 도둑맞고 있습니다
  4. 4 시속 370km, 한국형 고속철도... '전국 2시간 생활권' 곧 온다
  5. 5 두 번의 기회 날린 윤 대통령, 독일 총리는 정반대로 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