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위에서 신선 대신 샌들 신은 미인을 만났네

전망 좋고 아기자기 스릴 넘치는 바위능선, 제천 신선봉에 오르다

등록 2008.08.27 16:18수정 2008.08.28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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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자기하고 스릴 넘치는 바위능선 길 ⓒ 이승철


“기막히게 좋은 산이야, 오르내리는 길은 계단 없는 흙길이고 능선 길은 아기자기하고 스릴 넘치는 바윗길이어서 정말 좋구먼.”
“그런데 갖출 것 다 갖춘 이 멋진 산이 왜 100대 명산에 들어가지 못했지?”
“그러게 말이야, 전망은 또 얼마나 좋았어? 이만한 산 정말 흔치 않은 산인데.“

정상까지 올랐다가 내려오는 길에서 일행들이 나눈 말이다. 일행들의 말처럼 산은 정말 대단히 멋지고 아름다운 산이었다. 등산객들이 바라는 거의 모든 조건을 두루 갖춘 산이었다. 지난 26일 찾은 충북 제천의 신선봉은 이름처럼 신선이 머물만한 아름답고 멋진 산이었다.


이번 등산은 다른 등산길에서 얻은 안내장을 보고 털보산악회를 따라 함께하게 된 것이다. 영동고속도로와 중앙고속도로를 달려 남제천 나들목을 빠져 나온 관광버스는 남한강 충주댐으로 생긴 청풍호반 길을 구불구불 달렸다. 그렇게 달려 청풍면 학현마을이 있는 산골길로 들어섰다.

“어, 이길 전에도 와봤던 곳 같은데, 어느 산에 갈 때였었지?”
일행 한 사람이 옛 기억을 더듬어 보았지만 선뜻 떠오르지 않는 모양이었다. 몇 가구의 농가와 펜션들이 바라보이는 골짜기는 매우 깊었고 골짜기 양쪽에 솟아있는 산들은 우람하고 높아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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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바위에서 바라본 청풍호 ⓒ 이승철


“자, 내리세요. 이 산은 그리 높지 않아서 4시간이면 충분할 겁니다. 그러나 능선 길은 바위봉우리들이 많고 밧줄을 타야 하는 곳이 많으니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선두를 맡은 등산대장이 산행 안내를 마치자 곧 등산이 시작되었다. 오른편 숲 속으로 뚫린 길은 금방 경사가 급한 산길로 이어졌다.

“선두, 천천히 좀 갑시다. 오늘은 시간 여유도 충분한데...”
중간쯤에서 따르던 몇 사람이 천천히 오르자고 했지만 소용없었다. 앞장선 사람들은 선두대장도 기다리지 않고 쏜살같이 올라간다. 마치 정상에서 누군가 빨리 오라고 재촉이라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산악회 산행, 꼴찌로 뒤처져 따라 올라가는 것은 외롭고 힘들다


“아, 힘들어 도저히 못 따라 가겠네, 천천히 가야지.”
100여 미터쯤 헉헉거리며 따라가던 일행들이 멈춰서며 숨을 돌린다. 숲은 짙고 나무 그늘 밑에 들면 불어오는 바람이 시원했다. 오르는 길은 경사는 급했지만 흙길이었다. 그러나 요즘 산에서 조금만 경사진 곳이면 으레 만들어져 있는 계단은 보이지 않았다. 계단이 없으니 오르기도 편하고 느낌도 좋았다.

경쟁이라도 하듯 빠른 걸음으로 올라간 사람들은 꽁무니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마음이 조급할 것은 없었다. 다행이 우리일행들보다 뒤쳐진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50대로 보이는 부부였다. 이들 부부는 우리들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남편은 등산실력이 월등한 것 같았지만 쩔쩔매며 따르는 아내를 돌보며 걷느라 자꾸만 뒤처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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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인 대신 멋진 소나무들이 즐비한 미인봉 ⓒ 이승철


“오늘도 뒤처지는 동지가 한 팀 있어서 다행이구먼, 저들이랑 함께 천천히 올라가는 게 좋겠어,”
전에 몇 번 다른 산악회와 함께한 등산 생각이 난 것이다. 우리들과 비슷한 수준의 동지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마음 든든한 일인가. 30여명이 함께 오르는 등산길에서 우리 팀 몇 명만 뒤쳐진다는 것은 상당히 외롭고 힘든 일이다. 우리들 때문에 전체의 진행에 방해가 된다는 원망이 돌아올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우리들과 비슷하거나 우리들보다도 더 뒤처지는 팀이 있어서 그만큼 우리 일행들에게는 부담감을 덜어주고 오히려 여유로움을 주고 있었다. 그들 부부에게도 어쩌면 우리들이 같은 존재일 것이다. 그들과 천천히 올라가노라니 뒤에서 또 두 사람이 따라온다. 한 사람은 여성이었는데 후미를 책임진 산악회 총무였다.

“무리하시지 말고 천천히 올라가세요?”
여성총무는 마음이 느긋한 사람인 것 같았다. 뒤쳐졌다고 재촉하거나 조급해하는 표정이 아니었다. 오히려 뒤쳐진 사람들이 무리할까봐 천천히 올라가라고 격려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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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선길에서 바라본 아름다운 풍경 ⓒ 이승철


“우와! 저 아래 좀 봐, 저 물줄기들, 저기가 어디지?”
그렇게 천천히 올라 첫 번째 오른 낮은 봉우리는 특이한 이름의 쪼가리봉이었다. 작은 바위들이 몰려 있는 작은 봉우리에 올라서자 바라보이는 풍경이 일품이다. 맞은편에 불숙 솟아있는 두 개의 산봉우리가 우람하다. 그러나 일행이 감탄을 하는 것은 저 아래 쪽으로 바라보이는 청풍호수였다.

아슬아슬한 능선 바윗길과 산 아래 펼쳐진 아름다운 풍경

충주댐 상류의 청풍호수가 산과 산 사이를 메우고 푸른 물줄기를 드러내놓고 있는 모습이 정말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아름다운 풍경은 시작에 불과했다. 제 모습을 다 보여주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조금 더 올라가 전망바위에서 바라본 풍경은 한결 멋진 풍경이었다.

산길은 이곳에서부터 완전히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쪼가리봉까지 오르는 동안 평탄한 흙길이었는데 능선을 타고 오르는 길은 거칠고 위험한 바윗길이었다. 길은 상당히 험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위험하고 오르기 어려운 곳마다 튼튼한 밧줄이 걸려 있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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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위에서 바라본 그림같은 골짜기의 산마을 풍경 ⓒ 이승철


“오늘 아주 멋진 산행을 하는 걸, 이 산 정말 멋진 산이잖아?”
평소 약간의 고소공포증과 함께 바윗길에 거북해하던 일행 한 사람이 오히려 멋진 산이라고 칭찬을 한다. 그는 힘든 산행에 온몸이 비라도 맞은 것처럼 흠뻑 젖어 있었지만 바윗길 산행의 묘미를 만끽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어느 곳에서는 몇 미터 정도로 그리 높은 것은 아니었지만 수직절벽을 밧줄에 의지하여 오르기도 하고 발 디딜 곳이 없는 바윗길을 내려가며 쩔쩔매야 했다. 그렇게 아슬아슬한 바윗길을 걷고 오르내리며 미인봉에 올랐다.

“저 아래 골짜기 산마을 좀 봐? 그림 같은 풍경이네. 그런데 저 맞은 편 산이 무슨 산이지?”
미인봉에 오르자 골짜기 건너 맞은편 산이 거인처럼 떡 버티고 서있는 모습이 우람하기 짝이 없다. 지난겨울 짙은 안개 속을 뚫고 올랐던 금수산이었다. 그 옛날 퇴계선생이 단양군수시절에 올랐다가 비단을 펼쳐놓은 것 같다 하여 붙은 이름의 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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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직 바위절벽 오르기 ⓒ 이승철


그 금수산과 이쪽의 산 사이의 깊은 골짜기에 자리 잡은 산마을이 정말 한 폭의 그림 같은 모습이었다. 반대쪽으로 저 멀리 아스라하게 높이 솟아 있는 산이 월악산이었다. 월악산과 금수산이 마주 보는 사이에 금수산 쪽으로 치우친 곳에 오밀조밀하게 우뚝우뚝 솟아 있는 봉우리들이 신선봉 줄기였다. 그리고 그 아래쪽으로 아스라하게 산줄기 사이사이를 푸른 강물이 휘감고 있는 것이 청풍호수였다.

“빙 둘러봐? 정말 아무리 보고 있어도 질리지 않는 기막힌 절경들이야.”
일행 한 사람이 다시 감탄사를 터뜨린다. 짙푸른 산봉우리와 호수 위에 두둥실 떠오른 뭉게구름이 절묘한 조화로움으로 환상적인 풍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일행들은 경치에 취해 다음 코스로 걸어갈 생각마저 잊고 있는 표정이었다.

“경치에 취하셨나 봐요, 이제 그만 가시죠?”
우리들을 움직이게 한 사람은 예의 산악회 여성총무였다. 우리일행보다도 조금 뒤처져 따라오던 부부팀과 함께 올라온 여성총무가 경치에 취해 있던 우리일행들의 의식을 깨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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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구간에 설치해놓은 밧줄들 ⓒ 이승철


“정상은 아직 멀었습니까? 혹시 저 앞에 보이는 저 봉우리가 정상 아닙니까?”
그러나 정상은 아직 눈에 보이지 않았다. 깎아지른 절벽으로 눈앞에 보이는 높은 봉우리도 정상봉우리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길은 점점 더 험한 난코스가 이어지고 있었다. 지금까지 지나온 바위능선보다 훨씬 어려운 곳들이 많았다.

“거기 왼쪽 바위 모서리를 잡고 오른발을 오른쪽 바위 모서리를 밟고 올라가세요.”
이번에는 만만치 않은 바위절벽이었다. 손으로 붙잡는 것도 발을 디디고 오르기도 쉽지 않은 곳이었다. 쩔쩔매는 일행에게 뒤따라온 여성총무가 오르는 방법을 가르쳐 주고 있었다.

일행은 여성총무가 가르쳐주는 대로 바위 모서리를 붙잡고 발을 디뎌 무사히 바위에 올라섰다. 그런데 이 여성총무는 우리 일행들이 힘들고 어렵게 쩔쩔매며 오른 바위를 아주 손쉽게 올라선다. 대단한 등산솜씨요 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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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봉 정상표지석과 산악회 총무 김애경씨 ⓒ 이승철


“헉! 저 총무 좀 봐? 저 발가락 나온 신발.”
그런데 그녀의 신발을 보니 이건 등산화가 아니다. 지금까지 우리들은 무심코 앞장서서 같이 왔는데 모처럼 앞에 있는 그녀를 보니 발가락이 모두 나온 샌들을 신고 있는 것이 아닌가. 오르막길의 흙길은 문제가 안 될 것이다. 그러나 샌들을 신고 험한 바윗길을 오르다니,

험한 바위산을 샌들을 신고 거침없이 오르는 산악회 여성총무

이쯤에서부터 정상까지 가는 능선길은 정말 장난이 아니었다. 거의 수직에 가까운 바위절벽 사이로 난 험한 길을 완전히 밧줄을 붙잡고 올라야 하는 곳도 있었다. 또 어떤 곳은 겨우 발을 디딜 수 있는 좁은 길을 바위를 붙잡아 안고 돌아가야 하는 위험천만한 길도 나타났다.

특이한 모습은 바위 능선 길이 그렇게 험한 곳인데도 이 산에는 그 흔한 철제사다리 하나 설치되어 있지 않은 것이었다. 오르는 길에 계단이 설치되어 있지 않은 것처럼 아슬아슬한 바윗길 어느 곳에도 밧줄 외에 다른 시설은 전혀 되어 있지 않은 것이었다.

“이 산의 매력 중의 하나가 바로 이런 모습 아니겠어? 조금만 어려운 곳이면 아무데나 마구 설치해 놓은 철제사다리와 쇠줄 대신 밧줄만 걸어 놓은 것 말이야.”
인공시설이 너무 많아 바위산 본래의 모습을 잃어버린 대부분의 다른 산들에 비하면 이 산은 그야말로 자연 상태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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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물이 흐르는 골짜기 개울 위에 놓인 돌다리 ⓒ 이승철


그 매력덩어리의 바위능선과 봉우리들을 넘고 넘어 정상에 오르니 정상은 오히려 너무 평범한 모습이었다. 해발 845미터라는 작은 정상표지석이 세워져 있는 옆에는 역시 작은 돌무더기 한 개가 있을 뿐이었다.

정상에 오른 기념으로 사진촬영을 하자 여성총무가 자신의 사진도 한 컷 찍어 달라며 표지석 뒤에 선다. 우리일행들이 험한 바위봉우리와 능선을 넘어 오느라 땀에 흠뻑 젖은 모습과는 달리 여성총무는 땀도 흘리지 않고 피로한 기색도 전혀 보이지 않는다.

“신선봉에 올랐는데 신선들은 모두 어디로 갔지 아무도 보이지 않네.”
“신선? 그렇구먼, 그런데 신선이 없어서 섭섭하긴 하지만 신선처럼 샌들 신고 오른 미인 총무님이 있어서 더욱 좋은 걸 허허허.”

일행들의 농담으로 힘들게 정상에 오른 사람들이 함께 유쾌한 웃음을 터뜨리는 순간이었다. 처음으로 함께한 산악회여서 모두들 낯선 얼굴들이었지만 모두 정다운 표정들이었다. 5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성 총무의 이름은 김애경씨로 이 산악회 회장의 부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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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입구 장승과 남근목, 그리고 정자에서 점심먹는 산악회원들 ⓒ 이승철


정상에서부터 시작한 하산 길은 다시 느낌 좋고 계단 없는 흙길이었다. 오르내림이 심하지 않은 세 개의 봉우리를 더 넘어야 내리막길이었다, 내리막길도 여전히 같은 모습이었다. 부드럽고 편안한 길을 걸어 다시 골짜기로 내려가는 길에서 바라본 하늘은 여전히 뭉게구름이 두둥실 떠 있는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학현 마을에 도착하자 먼저 내려온 산악회원들이 마을 정자에 올라 점심을 먹고 있었다. 양쪽에 높고 우람한 신선봉과 금수산이 서 있는 골짜기 가운데 자리 잡은 마을은 초가을의 깊은 정적에 싸여 있었다. 그리고 정자가 있는 마을 마당 입구에는 몇 개의 커다란 나무장승들과 함께 역시 커다란 남근목이 세워져 있는 이채로운 모습이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이승철 #신선봉 #금수산 #월악산 #김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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