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과 인간] 일본의 패망, 친일 지식인들만 감잡지 못하다

[김갑수 식민지역사팩션 125] 3부 '열두개의 눈동자'

등록 2008.09.30 19:25수정 2008.09.30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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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심한 일본인 영어 교사들

임주호는 영어를 좋아했지만 일본인 영어 교사들의 실력은 형편없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아버지에게 영어를 배워 웬만한 영문 서적은 읽을 줄 알았다. 처음 그는 일본인 교사들의 영어를 듣고는 영어가 아닌 것으로 알 정도로 그들의 발음이 괴상했다.

떼오리 오부 리떼루처(theory of literature)
이토 이스 레이닝(It is raining)
인 고도 아이 트라스트(In God I trust)

일주일에 여섯 시간이나 있는 일어는 따분하기 이를 데 없었다. 일어독본은 일본 문학 작품들이 발췌되어 실려 있는 책이었다. 그러나 어떠한 문학 작품에도 상상을 자극하는 사랑 이야기나 신비로운 내용은 없었다. 어떤 교사도 문학을 이해하거나 즐기도록 유도하지 않았다.

일어 작문 시간에는 글짓기를 자주 했다. 주제는 교사가 정해 주었다. ‘조선인은 덴노에게 감사해야 한다.’거나 ‘일본은 지구상에서 가장 위대한 나라’거나 ‘진정한 효’ 등이었다. 주어지는 시간에 무조건 일정한 분량을 채워야 하는 글짓기였다. 작문 교사는 눈 밖에 나는 학생을 흘겨보는 데다 목소리마저 여자 같았다. 그래서 그에게는 내시 또는 호모라는 별명이 붙었다. 그는 작문과 상관없는 역사 이야기를 자주 했다.

“조선은 중국의 속국이었으므로 지금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다고 해서 억울할 것이 전혀 없어요.”
그가 수업을 끝내고 문을 나가려 할 때, 임주호는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내에시.”


내시는 휙 돌아보았다. 교실이 아직 조용한 줄을 임주호는 미처 몰랐던 것이었다. 내시는 임주호에게 다가와 그의 뺨을 후려갈겼다. 많은 학생들은 임주호가 왜 맞는지를 모르고 있었다.

“교무실로 와!”

그는 눈을 흘기면서 임주호에게 말했다.

교무실에 들어가니 많은 선생들이 잡담을 하고 있었다. 내시는 분노를 삭이지 못하고 있었다. 임주호가 가까이 가자, 내시는 출석부를 들어 임주호를 내려치려고 하면서 앙칼진 음성으로 소리쳤다.

“네가 감히 나한테,”

여기까지 말했을 때, 많은 선생들이 놀라 내시 쪽을 쳐다보았다. 내시는 말과 동작을 순식간에 멈췄다. 그러더니 출석부를 책상에 내려놓았다. 내시는 책상 서랍을 급히 뒤적거려 필기구를 꺼내 들더니 책상 위에 있는 종이에다 휘갈겼다. 그는‘내시’라고 부리나케 썼다.

“라고 했지?”

임주호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내시는 당황했다.

“그랬어, 안 그랬어?
“안 그랬습니다.”

내시는 임주호를 흘겨보았다. 내시는 범인을 잘못 짚은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럼 뭐라고 했어?
“호모라고 했습니다.”

임주호는 4주 간 정학 처분을 받았다. 임주호와 함께 정학 처분을 받은 학생이 하나 더 있었다. 그 학생의 죄목은 이웃 학교 여학생에게 편지를 써 보냈다는 것이었다. 이웃 학교 여학생의 부모는 그 편지를 즉각 남학생의 학교 교장에게 보냈다고 했다. 임주호는 그 학생이야말로 자기보다 훨씬 더 억울하겠다고 생각했다.

일본의 패망, 친일 지식인들만 모르다

임주호의 부친은 놀고 지내는 아들에게 부담이 될 수 있는 어떠한 말도 하지 않았다. 그의 부친 임용희는 아들의 기질과 감성을 잘 알고 있었다. 임용희는 개성 상인으로 동아시아에 이름을 날린 임창용의 아들이었다. 게다가 젊어서 선박 무역으로 일확천금을 거머쥔 그였다. 그는 경성에서 최대 규모인 반도 호텔의 소유자이기도 했다. 그는 아들이 백수로 지낸다고 한들 그다지 괘념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다만 그는 아들의 재능이 아까웠다. 그는 아들을 일찍 미국에 보내지 않은 것을 후회하고 있었다. 일찍 미국에 유학 간 그의 장녀 수경은 물리학자로서 탄탄한 길을 걷고 있었다. 그는 아들 주호도 적당한 때에 미국에 보내려고 했는데, 중일전쟁이 터지면서 미국이 일본의 적성국가가 되자 미국 유학길이 봉쇄된 것이었다.

임용희는 잦은 해외여행과 외국 신문 독서로 국제 정치의 흐름을 정확히 읽고 있었다. 그는 일본제국이 멀지 않아 망하리라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 그의 친구인 일본의 경제인들은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사태를 전혀 모르고 있는 사람들은 한국의 친일 계몽주의자들과 일본의 인문계 학자들이었다. 전시동원체제가 가동되면서 국가총동원령이 내리고 창씨개명과 황국신민서사가 강요되는 환경에서 지혜로운 사람이 할 일이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임용희는 자기 아들 주호가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이유를 잘 헤아리고 있었다. 그러기에 그는 아들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것이었다. 그는 오히려 그런 아들이 일면 바람직해 보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여생이 구만 리 같이 젊은 놈을 무한정 내버려 둘 수도 없는 것이 아비의 마음이기도 했다.

그는 아들과 대화를 갖기로 했다.

“주호야, 너는 아무래도 자연과학 쪽에 소질이 있어 보인다.”
“제가 무슨 소질이 있겠습니까? 하지만 정치나 역사에 둔감한 것은 사실이지요. 독서회에 나가 보고서 새삼 그걸 느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의 일본 유학을 거론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생물학이나 물리학 중에서 어느 것이 좋을까?”
“아버님, 제에게 학문을 할 수 있는 자질이 있을까요?”

“그것은 네가 더 잘 알 것이다. 너의 어머니가 전국 수학경시대회에서 1등을 두 번씩이나 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너에게는 미국에 있는 누나보다도 더 예민한 감수성이 있어. 학문은 이성으로 하는 게 아니다. 감성이 있어야 성공하는 것이다. 게다가 미국 학생들은 대부분이 바보라고 생각하면 틀림없다. 다만 지금 미국 유학길이 막혀 있으니 안타까울 뿐이다. 그러니 우선 일본에라도 가서 공부해야 하지 않겠니? 틀림없이 너는 이학 방면에 타고난 재능을 가지고 있다.”

“저는 수학이나 물리학이 더 좋습니다.”
“그러니까 우선 일본에 가서 공부하다가 누나가 미국 국적을 얻게 되면 너를 초청할 수 있을 테니 그 때 미국에 가서 공부하는 방향으로 해 보자.”

임주호는 내심으로 크게 놀랐다. 임주호는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었다.

“아버지, 그건 안 되는 일입니다.”

아들의 미국 유학을 위해 딸의 국적을 바꿔 이용하려는 아버지를 임주호는 이해할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누나가 미국 국적을 얻는 것은 누나 개인의 선택입니다. 내 공부를 위해 그리하시는 거라면 제가 결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임주호는 단호하게 말했다. 그가 아버지 앞에서 언성을 높인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요컨대 그것은 아버지가 아들을 실망시킨 최초의 사건이기도 했다. 아버지는 아들의 예민한 기질을 미처 헤아리지 못한 자신의 불찰을 가슴 아프게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아들을 위해서는 자신의 판단이 옳다는 생각을 버리지는 않고 있었다.

아버지는 아들을 위해 말없이 영문 잡지 한 권을 놓고 갔다. 거기에는 최근 독일에서 미국으로 망명한 아인슈타인에 대한 특집 기사가 게재되어 있었다.

사실 임주호는 당대의 역사 현실을 거의 모르고 있었다. 다만 그는 성인이 다 된 대학생이 강제로 삭발을 해야 하고, 잘 알지도 못하는 일본 천황의 신민임을 서약해야 하며, 일본 궁성을 향해 요배를 해야 다닐 수 있는 학교라면 차라리 그만두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그는 농사를 짓거나 노동을 하는 삶이 오히려 행복할 수 있다고 여겼다. 이런 아들이 아버지에게 철없이 비쳐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덧붙이는 글 | 식민지 역사를 온전히 청산해 보고자 쓰는 소설입니다.


덧붙이는 글 식민지 역사를 온전히 청산해 보고자 쓰는 소설입니다.
#궁성요배 #중일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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